최근에 정신병원을 다녀왔다. 사실 일 년 정도 되었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최근에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사실 일 년정도 되었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적인 느낌과 비교해본다면 어렵지 않게 ‘정신질환’에 반응하는 나의 온도가 몇도 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는 우리의 어린 시절 사용하던 언어에도 녹아 있었을지 모른다. ‘야 이 정신병자야 !’ ‘쟤 완전 정신병자야! 정신이 아파’이런 말을 사용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다른 ‘병’은 욕이 되지 않는데 왜 정신병은 욕이 되었던 것일까? ‘야 이 팔(혹은 다리) 부러진 환자야!’ ‘쟤 완전 다리병자야! 다리가 아파’ 이런 말은 아무리 들어도 욕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물론 시대의 맥락이 바뀌긴 했다. 과거보다 현재는 확실히 어디서나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질환을 대하는 우리의 온도가 딱히 따스해진 것은 아니다.
그 1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불편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누구나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게 만드는 이 사회의 모습들을, 어떠한 이유들로 병들게 된 이들의 아픔에 관하여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이것은 작정하고 해야 하고, 힘이 들어가는, 그야말로 부지런한 불편함인데 이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는 것도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판을 멋지게 뒤 흔들는 역할을 해주었다. 부지런함과 불편함 중에서 오직 부지런함만 가지고 이 드라마를 본다면, 앞서 말한 맥락에서의 정신질환을 대하는 온도가 1도 혹은 3도 정도까지 올라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다. 언제든지 내 가족이, 친구가, 직장동료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풀어내는 모양새가 따뜻하고 근사하다.
한 회 한 회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톤을 많이 담기는 했지만,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신질환에 관하여 밀도 높게 다루어주어서 포만감의 훨씬 좋았다고 할까나. 특별히 정신질환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것은 몹시 탁월한 지점이었다. 병을 앓는 사람들의 세계에 간접적으로 접속할 수 있어서 와 닿는 것이 어마어마했다, 아직도 그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마지막회를 보고 한국 드라마 만세를 세 번 외치고 싶었다. 시대는 더욱더 인간다움을 수시로 뺏어간다. 구조적으로나 관계적으로도. 새로운 정신질환이 생길 가능성도 크고, 드라마에서 다룬 병을 앓는 사람들도 늘어갈 것이다. 그럴 때 이 드라마가 분명 지금보다 더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진다. 꾸준한 시즌제로 곁에 머물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김예원 변호사의 말처럼 ‘정신질환도 여느 만성질환처럼 삶의 터전에서 치료받으며 다스릴 수 있을 때, 그 삶에도 진짜 아침이 올 수 있지 않을까’의 아침이 밝아서, 저 드라마는 너무 옛날 이야기야. 우리 저 드라마 다시 보지 말자 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 아닐까. 아침의 축복을 받으세요 중재자님, 이라고 부르며 환하게 웃던 김서완님의 맑은 미소를 떠올리며, 다시 좋은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