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다. 내가 수학을 포기한건지, 수학이 날 포기한건지 잘 모르겠다. 검산도 수학의 영역이니 딱히 하고 싶지 않다.
수포자여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하지만 최근에 지장이 생겼다.
아빠 이거 모르겠어. 나는 그 소리가 아주 끔찍하다. 세음이가 수학학원 숙제를 할 때면 십분에 한번씩 나오는 그 소리.
이거 초딩 문제 맞나 싶다. 라떼 2학년은 덧셈 뺄셈만 잘하면 됐던 것 같은데? 이건 거의 암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말한다. 세음아 모르면 ‘별표’치고 넘어가. 괄호치고 ‘네가 못 푸는건 나도 못 풀 가능성이 농후하단 말이다. 왜냐면 아빠는 사실 수포자야!!’라고 외친다. 세음이가 말한다. 아빠 나 다 모르겠어. 선우정이의 ‘도망가자’를 듣고 싶어진다.
문득 모르면 별표 치고 넘어가 라는 말에 꽂힌다. 수포자지만 문학적 감수성은 차고 넘친다를 증명하기 위함이었을까. 왜 별표일까? 세모, 네모, 당구장 표시, 뫼비우스의 띠도 있는데. 라떼도 모르는 건 별표였고 지금도 모르는 건 별표다.
혹시 모름은 별처럼 반짝이기 때문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모름이 있기에 앎이 있고, 앎이 있기에 모름이 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름 일 때가 많았고, 모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앎일 때가 많았다.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꼭 살고 싶었다. 미지와 무지의 영역에 별표를 수놓았다. 칠흙 같은 밤처럼 보이는 인생이어도 그 별빛들이 있어서 삶은 삶 다워졌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치기 어린 시절에는 꽤나 선명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영역들이 시간의 세례 속에서 희미하다 못해 지워질 정도로 모름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안다고 생각했을 때 보다 삶이 반짝반짝 거림은, 그 별표들을 이어보니 점점 별자리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저게 도대체 무슨 모양일까,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조차도 여전히 모름이지만 모름을 모른다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말할 수 있음이 가장 큰 앎이라는 것을 믿고, 그 별들의 묵묵히 반짝임과 눈을 마주치며 간직하며 걸어갈 뿐이다.
세음아 그러니 너도 모름을 그저 모름으로 받아들이고, 별표 치고 학원 가서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안되겠니. 아빠가 정승제 쌤을 닮기는 했지만, 수학은 여전히 인생만큼 어려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