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실화, 곧 리얼이기 때문이다. 각본과 연출을 통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평소 느끼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를 주는 컨텐츠들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대표적이고, 그중에서 ‘막장’이라고 하는 장르가 그러하다. 아무리 막장이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보면서 ‘이건 만들어진 이야기지, 현실이 아니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보기 때문에 그 한계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번 <나는 솔로> 16기는 각본이 있는 드라마도 아니었고, 연출이 화려한 영화도 아니었다. 그저 돌싱인 남녀들이 나와서 새로운 짝을 찾기 위한 프로그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각본 있는 드라마보다, 헐리우드 거대 자본이 투자되어 웅장한 연출력을 자랑하는 영화보다 끝내주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왜? 이것은 실화, 곧 리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이 말을 반복재생 했을 것이다. ‘와 이거 진짜 실화야? 리얼이야?’ 그만큼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쭉쭉 펼쳐지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도 처음에 하도 어딜가도 나는 솔로 이야기만 나오길래, 이게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길래 그러나 하고 일상에서 짜투리 시간에 야금야금 틀어놓고 봤다. 몇 회차를 봐도 전혀 몰입감도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경각심’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에 마치 변기 물이 빨려져 내려갈 때의 모든 것이 휘말려 떠내려가는 것처럼, 그때부터는 그냥 그 속으로 휘말려 버렸다.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개그맨의 대부이신 이경규 씨는 몇 년 전에 지금이야 연출된 여러 예능들을 좋다고 재밌다고 보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런 것들을 다 지나가고 오직 ‘리얼’만 남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연출과 각본은 리얼이 주는 재미를 이길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요즘 대세인 컨텐츠들을 보면 이경규씨가 얼마나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서 감탄하게 만든다. 이번 나는 솔로 역시 딱 이러한 맥락에서 현실 리얼 막장 대환장 파티였기에 재미있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둘째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전 문학이 끊임없이 심층에 깔고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의 세례를 받아도 이 질문은 유효하기 때문에 끝없이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고전 문학에서 몇몇의 인물들이 어떤 사건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같이 지내게 되는 스토리 – 외딴 섬에 떨어진다, 감옥이나 수용소 등등 – 는 흔히 사용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어떤 이유나 목적으로 인하여서 고립된 극한의 상황이 가운데 ‘관계’라는 틀 안에서 나오는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솔로는 앞서 말한 이런 고전 문학의 구조와 같다. 무인도나 수용소나 감옥은 아니지만, 그들은 확실히 갇혀 있다. 표층적으로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라는 구조 속에 갇혀 있는 것이지만, 심층적으로 보자면 각자의 심연에 갇혀 있는 영역들이 나타난다. 바로 그 갇혀 있음이, 갇혀 있는 가운데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처절하게 목격한다. 나는 이번 <나는 솔로>는 그 어떤 세계 고전 문학과 비벼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만큼의 심도 깊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줬다고 생각한다. 이런 본질을 건드리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또한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그들의 캐릭터는 ‘선’과 ‘악’으로 명확히 갈리지가 않는다. 즉, 딱히 누가 선이고 악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맥락’과 ‘서사’라는 위에서 해석되니, 내가 만약에 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누구에 해당될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선도 악도 아닌 모호한 인간들이, 역설, 딜레마, 아이러니로 오케스트라를 이루어, 명징하게 직조해낸 카오스의 심포니를 발휘하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끝으로, 어쩌면 우리는 매주 이들을 보면서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말하고 싶다. 말 잘해야 하는 것 같은데 지금, 나는 솔직히 그랬다. 보는 내내, 매주 전설의 레전드를 갱신하는 그들을 보며 아, 나는 그래도 저 지점에 놓여있어도 저 정도는 아니겠지? 하며 위안을 받았다.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여운은 현실에 까지도 영향을 끼쳐서 조금 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에 경각심을 더해주기도 했다.
마지막 회차를 볼 때 그들과 꽤 정이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이 괴이한 감정들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이프를 까듯 반복 재생해서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라방을 보고 그냥 좋은 추억으로 간직해야지 한번 마음을 접었고, 지금 영숙과 옥순의 현실을 보면서 한 번 더 접어서 고이 보내기로 했다.
우리 모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서로에게 위안을 주며, 리얼에 도달하는 그날까지, 경각심을 가지고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