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행사’를 보며 동료의 배신이 떠올랐다
“배신이 어디 있겠어. 믿은 사람이 잘못이지. 인간은 결국 자기 이익만 보고 사는 동물이니까.”
광고대행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대행사’의 한 장면. 주인공 고아인이 평소 멘토처럼 믿었던 선배 유정석은 자신의 정적이자 고아인의 라이벌 최창수 상무와 손잡고 회사로 돌아와 사사건건 고아인이 하는 일을 방해했다. 결국 고아인은 끊었던 약과 술을 마시며 자조한다.
18년의 사회생활동안 적지 않게 배신을 당하곤 했다. 아마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믿음에 실망을 줬을지 모른다. 모든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 그때는 아픈 상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은 새살이 나곤 했다.
하지만 전 직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했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에 아무렇지 않게 칼을 꽂았다. 적어도 ‘언론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언론윤리강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함께 일하게 된 동료 A는 우려되는 면이 적지 않았다. 종교적 배경이나 직업윤리에 배척되는 행위 등 그를 둘러싼 소문은 여러 기준에서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당시 경영진이 정한 연봉에 맞추려면 A 외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부서 운영을 위해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지금의 필요와 가능성을 우선시했다. 그가 입사 후 사내 윤리기준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첫 회식자리에서 소문의 일부 실체를 목격했다. 직업윤리상 선을 넘는 행위였다. 원칙대로라면 징계감이지만 내 선에서 경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실망이 커져갔다.
시간이 흘러 조직 내 노노 갈등이 심해졌다. 구조조정과 노사갈등, 노노갈등 등 다양한 정치적 이해 관계가 얽히던 시기였다. 나는 A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밉든 곱든 내 새끼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A는 나와 다른 선택을 했다.
어떤 말은 그의 직접적인 고백으로, 어떤 말은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편에 선 사람들을 앞장서 공격했다. 언론계 선배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했고,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앞장섰던 선배들을 향해 날선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의도는 명확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퇴사 후에도 A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들려왔다. 좁은 업계에서 그를 향한 말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대체로 한국 기자협회 언론윤리강령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들려오는 이야기 중 일부는 함께 일하기 전부터 반복됐다 한다. 앞서 겪은 일보다 퇴사 후 들은 소문이 더 충격이었다. 레퍼런스 체크에 완벽히 실패한 것이다.
퇴사 초창기에는 A가 죽도록 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A에 대한 미움은 서서히 나 자신한테 옮겨왔다. 언론윤리강령 따위는 살포시 무시하는 A의 행태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내가, 그의 비위가 드러났을 때 제대로 징계하지 않고 눈감은 나 자신이 미워졌다. 사람 보는 눈이 그것밖에 되지 않은 내가 한심했다.
A는 배신한게 아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배신이 어딨어, 믿은 사람 잘못이지”라며 술과 약을 들이키는 고아인의 그 씁쓸한 심경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