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입성 특명! 김태호PD를 잡아라!!

'무한도전' 김태호PD와 18년간 쌓은 애증의 시간

by mulgae

방구석 TV 시청 수습을 마친 뒤 드디어 출입처에 입성하게 됐다. 연예부 기자들의 출입처는 크게 방송, 가요, 영화로 나뉜다. 이 중 방송은 사회부 기자들의 경찰 사스마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K팝이란 말이 생기기 전 한국 가요계는 그야말로 점조직처럼 흩어진 취재원을 찾아나서야 하는 각개전투의 장이었고 영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사 뒤 인터뷰와 리뷰 작성이라는 시스템으로 움직였다. 반면 방송은 엔터산업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출입처였다. 연예인을 기용한 프로그램 제작이 이뤄지다 보니 연예인, 연예인 매니저, PD, 작가, 제작사 관계자 등 관련 취재원들을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회부 기자들이 수습 시절 경찰서 마와리를 돌 듯 대부분의 연예기자들은 막내 시절 방송사 마와리를 돌았다.


당시엔 지상파 방송사(KBS, MBC, SBS)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OTT와 유튜브는 아예 생기지도 않았고 CJ ENM 계열 tvN, Mnet 등은 그저 변방의 케이블 방송사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연예매체들은 지상파 방송사에 1진, 2진, 3진을 두고 취재를 시켰다.


MBC는 만만치 않은 출입처였다. 인기 프로그램이 많은데 반해 홍보팀은 불친절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인기 프로그램이 많다는 건 그만큼 취재하고 기사 쓸 거리가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래서 매체들은 각사에서 가장 극성맞고 공격적인 기자를 MBC에 배정했다. 출입기자에겐 얼굴 사진이 박힌 출입증 목걸이가 나왔다. 여의도 시절에는 이 출입증이 발부되면 사내를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다. 추후 상암으로 이전 뒤 로비에서 이름과 소속을 대고 미팅 상대를 확인한 뒤 출입증이 배부되는 시스템으로 변경됐다.


당시 MBC는 여의도에 본사와 경영센터가 있었다. 본사에는 드라마국, 라디오국, 아나운서국, 그리고 맛있다고 소문난 사내 식당이, 맞은편 경영센터에는 예능국과 홍보팀이 있었다. 기자들은 본사를 한 바퀴 돈 뒤 경영센터 3층 예능국을 돌고 7층 홍보실 내 기자실에서 기사를 썼다. 선배들은 이곳에서 간혹 밀린 수면을 취하거나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했다. 신입기자가 오면 기자실에서 90도로 인사한 뒤 관등성명을 댔다. 긴장도 됐지만 나름 끈끈한 정이 있었다. 지금도 MBC 출입기자 OB모임이 이어질 정도다.




그 무렵 스타덤에 올라선 김태호PD는 예능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존재였다. ‘무한도전’이 막 인기를 얻고 있었다. 내가 주로 만난 사람은 ‘놀러와’의 권석PD, ‘황금어장’의 여운혁PD, 임정아PD, ‘일밤’의 김유곤PD, ‘환상의 짝꿍’의 유호철PD 등이었다. 어떻게든 김태호PD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출입처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당시 회사는 기자들이 출입처에 가는 걸 싫어했는데 (출입처에서 취재하는 것보다 앉아서 보도자료 쓰는 게 조회수가 더 잘 나온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내가 취재하러 가겠다고 보고하면 군소리 없이 보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어쨌든 그런 고생 끝에 드디어 김태호PD와 만났다. 역시 스타PD라 패션이 범상치 않았다. 이전에 방송사에서 만났던 PD들은 면바지에 루즈한 피케티셔츠를 걸친, 평범한 아재 패션이었던데 반해 그는 예능국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빨간 스키니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강렬한 패션과 달리 몹시 정중하고 낯을 가렸다. 그때는 MBTI란 개념도 없었지만 아마도 대문자 ‘I’ 성향이라 확신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충청도 출신이라 측근들에게도 좀처럼 자기 속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김PD와는 내내 ‘애증’의 관계였다. 좀 친해졌다 싶어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하면 “방송을 보고 확인하시라”고 답하곤 했다. 데스크는 당장 알아오라 성화고, 방송을 보고 기사를 쓰면 “받아쓰기한다”고 누리꾼들이 야단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한테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기자들에게 썸타듯 답을 안했고 전화도 잘 안받았다. 정말이지, 스타PD만 아니면 매일매일 잘근잘근 조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곤 했다.


매일 열심히 MBC를 들락거리는 나를 측은히 여겼는지 한번은 내부 직원이 제보를 했다. ‘무한도전’이 일본에 간다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확인전화를 했으나 그의 대답은 역시나 NCND였다. 내부에서 제보했으니 가겠거니 하고 기사를 질렀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나지만 굉장히 불쾌한 답변이 왔던 것으로 기억이 남아있다. 기사를 놓고 그런 식의 기싸움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너무 피곤해 남자친구 집에서 까무룩 졸았던 어느 날, 항의 전화가 와 남자친구 앞에서 전화로 대판 싸운 적도 있다.


MBC에 ‘무한도전’만 있던 건 아니었다. 배용준이 출연한 ‘태왕사신기’가 큰 인기를 얻었고 이서진이 출연한 드라마 ‘이산’도 화제작이었다. 당시엔 아나운서들이 아나테이너로 인기를 얻던 시점이라 아나운서국도 챙겨야 했다. 할 일이 많았지만 성격상 한번 꽂히면 한놈만 패곤 했던 나는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무한도전’만 죽어라 팠다. 그러다보니 예능국에 내가 나타나면 ‘검은별이 떴다!’, ‘나쁜 별이 떴다!’고 PD들이 수군대곤 했다.


그래도 ‘무한도전’이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따라다녔다. 하하가 대체복무를 위한 훈련소 입소 전 여의도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을 때는 여의도의 칼바람을 맞았고 박명수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아내 한수민 씨가 운영하는 피부과에 환자로 위장하고 찾아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임진각에서 열린 가요제 때는 가을에 패딩을 챙겨입고 따라갔다. 롯데호텔에서 열린 김PD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젊고, 무모했던 막내시절이기에 할 수 있던 취재였다.


10월에 열린 무한도전 가요제 취재를 위해 패딩을 꽁꽁 챙겨입고도 사투를 벌였다.


2008년 ‘무한도전’이 청와대 특집을 기획한 적도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촬영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4월 중순 쯤 해당 내용을 제보 받은 뒤 적당한 시기에 기사화하려고 했는데 정확하게 4월 23일, 한 통신사에서 관련 기사가 보도돼 물을 먹었다. 결국 ‘청와대 특집’은 취소됐다. 정권에 우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는데 왜 굳이 청와대 특집을 기획했을까. 훗날 김PD를 만나 이유를 들어보니 청와대가 ‘무한도전’을 대국민담화처럼 활용하려 했기에 기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정권에서도 예의주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MBC가 파업을 하면 연예부 기자들은 ‘무한도전’ 방송이 멈췄다는 미다시(표제어)로 기사를 쓸 정도로 상징성이 강했다. 스타PD 상당수가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로 이적한 뒤에도 김 PD는 남았다. ‘무한도전’ 종영 간담회 때는 “혹시 꿈이 MBC 사장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 MBC를 출입하던 기자들 사이에선 "우리 '무한도전' 끝날 때까지만 기자하자"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했다. 어느날 유재석에게 이 얘기를 전하니 그는 "나 정말 그러면 다 같이 껴안고 펑펑 울거다"라고 답했다.


내 30대는 오롯이 '무한도전'과 함께 했다. 두차례 회사를 옮기는 동안 계속 방송되던 '무한도전’은 2018년 3월 31일 563부작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그 사이 나는 ‘무한도전’ 종영과 관련된 기사를 끊임없이 썼다. 커뮤니티에서 ‘무한도전’ 하면 내 이름이 떠돌 정도였다. 덕분에 '무한도전' 관련 칼럼도 기고했고, '무한도전'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에세이로 한국기자협회 기자의 세상보기 장려상도 받았다.


12년 동안 하나의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동안 김PD도, 나도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됐다. '놀면뭐하니'를 성공적으로 론칭한 그는 결국 새로운 꿈을 찾아 제작사 TEO를 차렸다. 그리고 못다한 실험을 시작했다. ‘서울체크인’, ‘지구마불세계여행’ ‘댄스가스유랑단’, ‘마이네임이즈가브리엘’, ‘굿데이’ 등 다양한 출연진과 협업했다.


결과가 매번 좋았던 건 아니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세상에 빛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협업이 필요했다. MBC는 조연출들의 편집 기술이 가장 빼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제작사 TEO의 인력이 MBC의 숙달된 인력들만큼 퀄리티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때로 지루하다, 늘어진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늘 그렇듯 덤덤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개척하고 있다.


네 번째 회사인 스포츠지로 이적 뒤 김PD에게 단독 인터뷰를 하자고 넌지시 권했다. 스타PD들도 연예인처럼 인터뷰 일정까지 관리받는 시기였다. 매체가 많아지다 보니 특정 매체한테만 베네핏을 주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16년이란 애증이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었기에 자신있게 인터뷰를 제안했고 그도 흔쾌히 응했다.


2년 전 ‘댄스가수유랑단’ 방송을 앞뒀을 때였다. 김PD의 취향이 반영된 상암동 사무실에서 약 2시간에 걸쳐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과거 내가 몸담고 있던 스포츠지 입사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동석한 회사 국장이 “우리 회사에 왔으면 지금의 김태호는 없었다”며 “인재를 알아보고 모시지 않은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당시 기사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0945448)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0945449)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0945450)


추후 내가 연예부장이 된 뒤 부서에 들어온 막내 기자가 김태호PD의 팬이라는 얘기에 그는 흔쾌히 시간을 내 미팅에 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바쁜 PD중 한명인 그가 시간을 내준 게 감사했다.


퇴사 뒤 TEO 프로그램 홍보를 전담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과거 첫 연예매체에서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기자 출신이었다. 그녀는 내게 “자기가 퇴사했다 하니 김태호PD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냐고 몹시 궁금해했다”며 안부를 전했다. 저 추억팔이하며 잘 살고 있어요. 조만간 필드에서 다시 만나요. 애증의 남자 김태호PD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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