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예매체에서 방송담당으로 MBC를 출입하며 빡세게 일했다. 이 회사에 있을 때 두 번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첫 번째 스카우트 제안은 잘 모르는 선배의 전화였다. 정말 죄송하게도 ‘보이스피싱’같은 이상한 제안인 줄 알고 단칼에 거절했다. 스카우트란건 얼굴 보며 얘기를 나눠야 하는 것인데 일면식도 없는 선배가 전화로 그런 얘기를 하니 당시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 역시 매너없게 거절의사를 전했다. 내게 스카우트 제안을 준 선배가 업계 대선배라는 사실을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됐다.
변명을 하자면 그 매체를 다닐 때는 정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홍보팀이 일상적인 페이스 미팅을 권유했을 때조차 거절했고, 방송사에서 기사를 읽고 출연을 권해도 무작정 NO를 외쳤다. 요즘 기자들은 급여가 적다보니 방송 출연을 과외수입처럼 생각해 즐겨 출연하곤 한다. 실제 방송에 자주 출연한 동기 기자는 자신만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등 급여보다 방송과 유튜브 출연 수입이 더 높다는 설이 있다. 또다른 여기자는 웬만한 연예인 뺨치게 협찬을 받곤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자는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방송에 출연하면 ‘관종’ 취급을 받았다. 또 방송 출연은 웬만큼 연차가 차 업계를 훤히 들여다보는 기자가 해야지, 저연차 기자가 방송에 출연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잿밥에 관심이 많다고 선배들에게 한소리 듣곤 했다. 인터뷰 온 연예인이랑 사진을 찍을라 치면 “네가 기자냐, 팬이냐”라며 야단맞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없이 일만 하니 싸가지는 없어도 일은 제법 잘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출입처였던 MBC에서 그런 나를 눈여겨 본 선배가 있었다. 기자로 일하던 그 선배는 MBC 홍보팀 경력사원 채용에 합격해 기자계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매체에 티오가 나자 해당 매체에 나를 추천했고 내게도 “한번 XX매체에서 일해보지 않을래”라고 권했다. 그 매체는 평소 내가 가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모 방송사의 자회사인 온라인 매체로 TV받아쓰기 같은 기사는 지양하고 직접 취재하는 기사로 승부하는 곳이었다. 다만 급여가 생각보다 적고(첫 매체보다 적었다) 연예부에 대한 지원도 많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떠날 이유가 생겼다. 맹장이 터진 것이다. 처음엔 단순 장염인줄 알고 약 먹고 좀 쉬면 낫겠지 했는데 갑자기 회사 앞 화분을 붙잡고 먹은 것을 게워 낼 정도로 복통이 심했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는 복막염으로 전이될뻔했다며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맹장염 수술이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어도 2박 3일은 입원해야 한다. 그간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기도 했다. 보통 회사라면 퇴원 뒤 연차를 붙여 쉬라고 했을 법 한데 당시 회사에선 퇴원했다는 내 전화에 “네가 없으니 힘들었다.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지금같으면 내가 먼저 휴가를 쓰겠다고 하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는 정말 나 없으면 회사가 안돌아가는 줄 알고 퇴원한 다음 날 바로 출근했다. 꿰맨 수술 자리가 채 아물지 않아 배가 계속 욱신거렸다. 결국 그날은 MBC 기자실에서 종일 누워있다 퇴근했다. 회사의 배려없는 행태가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결국 돈을 좀 적게 받아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옮겼다.
두 번째 매체에서는 KBS를 출입하게 됐다. 사실 좀 실망했다. MBC에서 제법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취재원들을 만나는 재미도 알게 됐고 남들이 안 쓰는 기사도 찾아 쓰곤 했는데 출입처가 바뀌면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취재원을 만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부서 막내니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입이 댓발 나온 채 KBS를 출입했다.
공영방송인 KBS는 MBC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MBC가 비교적 자유로운 언론사 분위기였다면 KBS는 그야말로 공기업 그 자체였다. 일반 기업으로 따지면 현대카드와 현대자동차의 차이 정도랄까? 홍보팀 마인드부터 달랐다. MBC 홍보팀은 처음이 힘들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면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KBS 홍보팀은 ‘공무원’ 마인드가 팽배했다. 출입기자도 ‘민원인’ 같은 느낌으로 대했다. 조직이 방대하고 콘텐츠보다 회사를 둘러싼 정치적인 이해 충돌을 방어하다보니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저연차 연예기자의 눈에는 아쉬움이 컸다.
KBS는 본관과 신관, 그리고 드라마국이 위치한 별관으로 구성됐다. 본관과 신관은 9호선 국회의사당 역에, 별관은 샛강 역에 위치해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지상파 채널의 위상이 기세등등할 때라 편성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별관에 가면 편성을 받지 못한 PD들이 별관 앞 커피숍에서 한량처럼 담배를 피우다 기자들을 맞곤 했다. 그곳이 기사 노다지란건 뒤늦게 알았다. A스타가 어느 드라마 출연하려다 번복했다더라, B스타는 무슨 스케줄이 있어 섭외 물망에 올랐다 뒤늦게 고사했다더라...PD들은 물론 배우 매니저들과 제작사 관계자들이 오가는 곳이니 커피숍에 앉아 귀만 쫑긋해도 기삿거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은 스타 연출자가 된 모PD도 그 때는 그곳에서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던 시절이었다.
예능국, 라디오국, 아나운서국은 본관에 있었다. KBS 예능국은 MBC보다 삭막했다. 조직 규모는 방대하지만 잘나가는 PD들은 자리에 붙어있지 않았다. 국장, 부국장, CP들이 기자들을 맞았다. 당시 KBS에서 잘 나가는 프로그램은 단연 ‘1박2일’이었다. 무려 시청률 40%를 넘나들던 시절이었고 그때도 나영석PD는 김태호PD의 라이벌로 꼽혔다.
두 사람의 캐릭터는 좀 달랐다. 김태호PD가 통통튀는 개성으로 젊은 마니아층을 사로잡았다면 나영석PD는 좀 더 폭넓은 대중들에게 두루 통용되는 웃음을 중요시했다. 훗날 나PD와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물어보니 그는 “KBS에서 배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노래자랑’이나 ‘콘서트7080’처럼 중장년을 위한 콘텐츠를 다수 제작하고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하는 공영방송 출신의 딜레마가 ‘꽃할배’나 ‘삼시세끼’, ‘윤식당’ 같은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배어난 것이다. 김PD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것과 달리 나PD는 후배들의 자율성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CJ ENM으로 이적 뒤 나영석 PD사단이 따로 생긴 것도 이러한 나PD의 리더십 영향이 컸다는 전언이다.
어쨌든 그토록 만나기 힘들었던 나영석PD와 여행을 떠나게 됐다. 물론 단 둘은 아니다. 당시 ‘1박2일’팀이 출입기자들과 함께 ‘1박2일’ 촬영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장소는 ‘서태지 흉가’라 불리는 강원도 인제의 한 폐가였다. 10월 31일이면 강원도 산속은 이미 혹한기였다. 기자들에게 ‘야생 버라이어티’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의 의도였다.
강호동, 은지원, 이승기, 김종민 등은 물론 지금은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춘 MC몽, 김C도 함께 했다. 나PD는 그때도 촬영 때문에 바빠 이명한CP가 기자응대를 담당했다. 그 1박2일간의고생담을 기사로 정성스럽게 풀어냈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079/0002005413)
강원도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없었지만 그날 녹화 이후로 나PD와 한결 가까워졌다. 특히 그는 전화취재에 성심성의껏 응했다. 이건 김태호PD와 확연히 다른 지점이었다. 신비주의에 가까웠던 김PD는 ‘무한도전’ 녹화와 관련한 전화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반면 나PD는 팩트를 확인하고자 할 때는 거짓 없이 답을 주곤 했다. (전화만 잘 받아도 기자에게 좋은 사람이 됩니다)
특히 놀란건 CJ ENM 이적 뒤였다. 급하게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얼마 뒤 콜백이 온 그는 “지금 네덜란드에서 비행기 환승 중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 때문에 전화했나”고 물었다. 환승을 하는 급박한 가운데 기자 전화를 응대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두 사람을 잘 아는 방송관계자들은 김태호PD가 아티스트 형이라면 나영석PD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다고 평하곤 한다. 어느 정도 그런 지점에 공감한다. 김PD가 완벽주의 성향으로 프로그램의 처음과 끝을 책임진다면 나PD는 협업을 열어놓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치열한 워커홀릭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기도 하다. 나PD는 “사람들이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회의만 하고 의외로 연예인들이랑 친하지 않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치열한 브레인 스토밍이 있기에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 웃음을 안기는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 아니었을까. 지금은 개그맨보다 웃기는 PD이자 스타유튜버가 됐지만 늘 바쁘고 치열했던 그의 30대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PD의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