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영 May 06. 2021

우리는 사랑 안에서 자랐음을

할머니 집

며칠 전, 어버이날을 앞두고 언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 다녀왔다. 1년 반 만이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집도 너무 그리웠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비해 바깥 생활을 많이 하는 우리가 그곳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혹여나 위험해질까 걱정됐다. 그래서 엄마도 명절이 아니고서야 엄마를 잘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결혼을 해서 나간 딸(언니)와도 잘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 일일 감염자 수가 폭등해서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그 때문에 언니 부부와의 만남이 미루어질 때마다 엄마의 얼굴엔 그늘이 한 겹씩 짙어졌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난, 딸을 못 보는 할머니의 마음도 엄마와 같겠지 싶어 조금 서글퍼졌었다.


죄스러운 마음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할머니 취향에 맞춰 빨간색 꽃다발 하나, 수수한 걸 좋아하는 할아버지 취향에 맞춰 주황색 꽃다발 하나를 사서 기차를 탔다. 오리백숙집에 들러 전날 미리 주문해둔 능이 오리백숙을 들고 집으로 갔다. 할머니 집이 몇 동인진 늘 헷갈리지만 몸이 기억한다. 익숙한 동의 엘리베이터를 잡아타자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집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지 말고, 초인종 누르자.”


“그래, 근데 왜?”


집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이, 할머니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마중을 나와 계셨다. 분홍색 봄 잠바를 입은 할머니 얼굴이 참 해사했다.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 단장한 덕에 늘 빠글빠글하게 컬이 살아있던 할머니의 머리칼도 이번엔 차분히 내려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소파에 90도로 앉아 현관 쪽으로 목을 길게 뺀 채 우리를 환영했다. 능이백숙을 솥에 넣어 살짝 데워서 먹었다. 할아버지는 백숙을 그릇째 들고 국물까지 마셨다. 그러면서 “아~ 맛있다~!!” 그릇을 완전히 비운 뒤에 “아~ 잘 먹었어~!!” 라 외쳤다. 밥을 안 먹어도 배 부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밥을 다 먹은 후에 할머니가 깎아준 사과를 먹으며 함께 사랑의 콜센타(트로트 예능)을 봤다.


난 트로트를 들으며 할머니 주방, 베란다, 거실에 새로 생긴 코지마 안마의자, 할머니 할아버지 방, 우리가 잤던 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할머니가 30년 넘게 수집한 식기들이 있는 그릇장을 열었다 닫았다,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침대에 누워 한번 뒹굴어도 보고, 장롱을 열어 이불 냄새를 맡았다가 할아버지 등산용 굿즈들을 한 번씩 다 착용해봤다. 할머니 화장대에는 여전히 썬크림, 얼굴(남성), 눈 이라 매직으로 용도를 크게 적어둔 화장품들이 가득 올려져 있고, 볕이 잘 드는 앞 베란다에는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는 식물들이 일렬로 서서 햇빛을 먹고 있었다. 식물들 머리에는 빨갛고 노란 꽃이 피어있었다.


할머니의 자식들


늘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집을 가꾸는 할머니 덕에 두 분만 사는 집에서도 이곳저곳에 생기가 돈다. 매일 꽃을 보고 사는 할머니도 꽃다발을 건네받고는 얼굴이 또 한 번 해사해졌다. 두 분은 우리에게 “꽃 사다 줘서 고맙다~”, “용돈 줘서 고맙다~”, “찾아와 줘서 고맙다~” 라 연신 말했다. 기차 타고 20분이면 오는 거리를 거의 2년 만에 온 손주들인데, 연신 고맙다 표현하는 두 분을 보니 더 죄송스러웠다. 첫 손주였던 우리는 지금껏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받아왔다. 이제 우리도 두 분에게 줄 때가 되어 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주는 사람을 기쁘게도 하는 두 분을 보면서 ‘우린 여전히 받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사랑이 많은 어른 안에서 자란 건 정말 큰 행복이라 또 한 번 느꼈다.


식곤증에 못 이겨 졸고 계시는 두 분을 보곤 미리 예약해뒀던 기차표를 취소하고 더 이른 시간으로 앞당겼다. 우리가 집에 갈 채비를 하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우리가 할아버지의 양쪽 어깨를 안으며 장난스레 놀리니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헤어질 때마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는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말하지만, 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인지 우리도 알 수 있다.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는 지금이 손주들을 보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다 생각하는 걸 거다. 할머니는 ‘저 냥반이 또 그러네.’ 하는 듯한 마른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더니 신발을 신고 먼저 밖으로 나섰다. 우리가 탄 택시가 출발하고서야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살짝 났다. 자주 찾아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 필요 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 얌전히 있다가 할머니 집에 조만간 또 가야겠다. 그땐 할머니 할아버지 침대에서 동그란 꽃무늬 베개 베고 낮잠도 잘 거야.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59일 차 _ 우리는 사랑 안에서 자랐음을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보이지 않는 버블에 갇힌 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