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우울감이 몰려든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무기력하고 머리속은 복잡하며, 가슴에서는 이유없는 울분이 밀려든다. 예전에 있었던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 때 내지 못한 화가 뒤늦게 올라온다. 혼자 길을 걷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운전을 했다면 사고를 냈을 수도 있고, 손에 뭔가 들려 있었다면 어딘가로 던져버렸을 수도 있겠다. 때로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도 있다.
잠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을 무작정 키보드로 옮겼다. ‘다 집어치우고 싶다’, ‘서 있고 싶다’ 같은 순간적인 감정들도 적고, 뉴스에서 보던 정치 관련 생각들도 적었다. 문장이 되거나 안되거나 중요하지 않다. 또각또각 타이핑 소리만으로도 잠시 응급처치는 된 것 같다.
한 때 분노 때문에 글을 쓰던 적이 있었다.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분노, 이런 거창한 감정이 아니다. 그냥 직장과 사회에서 흔히 겪는 절망감, 싫은 사람에 대해 몸서리 쳐질 정도의 울화 정도다. 그때는 뭔가 화가 나는 일들이 많았다. 정신과 진료를 생각해볼 정도로 심각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고 늘 그렇듯 술로 기분을 다스렸다. 이러다가 내가 망가지겠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그러던 중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치유가 되는 나를 발견했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은, 마음속 감정들이 생각보다 더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지금은 잊었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이 흘러나왔다. 일상에서 애써 외면했던 외로움, 스스로를 다그치며 쌓아왔던 부담감, 말하지 못했던 두려움까지. 이런 감정들이 응어리져서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할때 글을 쓰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 완성된 글을 쓰지는 않더라도 그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의 효과는 있는 듯 하다.
글쓰기로 마음을 치유한다는 말을 책을 통해서는 많이 봤다. 베스 제이콥스는 <감정 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라는 책에서 글쓰기가 혼란스러운 정서를 조직화하고, 감정을 조절해 분노조절 장애나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글쓰기를 통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저널테라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학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미술치료, 음악치료와 같이 굳이 우리말로 이름을 붙이자면 ‘글쓰기 치료’ 정도 되겠다. 60년대 미국에서 자기 계발과 자가치료의 방법으로 등장해 정신과 상담을 대체하는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혈압을 낮추거나 탈모가 치료됐다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감정을 안전하게 풀어내고, 숨겨진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다. 거기엔 특별한 규칙도, 문법도 필요 없다. 자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써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이 조금씩 맑아진다. 솔직하지 못한 나는 아직도 글 속에 담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니터와 키보드를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치유를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