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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Nov 09. 2024

배추는 사은품, 겉절이는 서비스

색다른 광경이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한 켠에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바람도 쐴 겸 나들이 삼아 나온 길에 용인에 새로 오픈한 분양사무소에서 본 풍경이다. 이 곳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사은품으로 배추를 나눠준다고 한다. 아파트와 배추, 뭔가 신박한 조합이긴 하다. 상담해주시는 분에게 왠 배추냐고 물어보니, 요즘 배추값이 올라서 그런지 방문객들이 좋아하는 선물이라고 설명해준다. 몇 억짜리 아파트를 사러 온 사람도 한 포기에 만 원 가까이 하는 배추 가격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도 배추 3포기가 들어있는 한 망을 안아 들고 나왔다. 세종에서 용인까지 왔으니 맛집이라도 가야겠다 싶어서 가끔 가던 불고기집으로 향했다.


식당에서도 배추가 화제였다. 김치가 유난히 맛있어서 직접 담그신 거냐고 물어보니, 사장님 얼굴에 자부심이 한가득. 배추를 직접 사다 절여서 손수 담근 김치란다. 그런데 요즘 배추값이 올라서 힘들다는 푸념도 곁들인다. 트렁크에 있는 배추 3포기가 생각나 농반진반으로 ”저한테 배추 있는데 사실래요“라고 툭 던졌더니, 이 사장님 덥석 문다. 저 배추 집에 가져가봐야 뭐하겠나 싶어서 냉큼 차에서 가져왔더니 이리저리 살펴보던 사장님이 주섬주섬 1만5천원을 꺼내준다. 시골배추라 맛있어 보인다면서 아침에 사온 배추보다 좀 더 쳐준단다. 집에 가져가서 겉절이 담그실거라며 약간 신난 표정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델하우스에서 배추 좀 더 얻어올 걸 그랬나. 배추 사은품이 왠 말인가 싶었는데, 그걸 15,000원에 팔고 있는 나는 또 뭔가 싶어 웃기기도 했다. 식사도 끝났고 배추 거래도 끝났으니 집에 가려고 나서면서 사장님게 센스있게 ”겉절이 다 되면 연락주세요~“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더니 이 사장님 진짜 진지하게 배추총각 전화번호 좀 찍어달라며 자신의 번호를 건넨다. 다음에 올 때 좋은 배추 좀 더 얻어오라면서. 겉절이는 그 때 서비스로 주시려나 보다.


김장철이 다가오니 배추값이 오르긴 오르나보다. 배추 한 포기에 8천원이 넘는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다. 살면서 한번도 김치 걱정, 시장 물가 걱정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에피소드도 내겐 생소하고 신선하다. 경제도 어렵고 살림도 팍팍한데 5억짜리 아파트 구경가겠다고 들어간 모델하우스에서 받은 배추 사은품도 웃기고, 그걸 식당에 되파는 나도 웃긴다.


식당 사장님의 겉절이 맛을 볼 수 있을까? 불고기와 겉절이의 궁합은 어떨까? 그리고 그 아파트는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속이 잡스러운 생각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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