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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샷은 잊어라,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

어느 불안한 밤에 쓰는 일기

by 동 욱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것들 중 딱 한 가지를 없앨 수 있다면 나는 ‘불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현대인의 불안은 아주 옛날 천적이 두려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차원의 불안과는 다르다. 죽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현대인은 없다. 그러나 남들이 앞으로 갈 때 나만 제자리에 있거나 혹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면 그 역시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우리가 지금 불안을 느낀다면 생존, 죽고 사는 문제와 깊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원하는데 내가 세상에 맞는 변화를 이뤄내지 못할 때 나는 불안하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흐르는데, 나의 생각은 과거의 어떤 사건에 사로잡혀 그 시간에 머물러 있을 때 나는 불안하다. 골프장에서 동반자들은 한 타 한 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서 헛스윙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미안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래서 또 헛스윙.


불안이 찾아오는 빈도가 많은 만큼,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공이 잘 안 맞으면 클럽을 바꿀 게 아니라 나의 자세를 바꿔야 하듯이. 불안에 사로잡혀 지배당할 것인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부터 생각해보자. 대부분 현재 시점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이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거나, 아니면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불안도 습관이라 이게 별 일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연습도 필요하다. 이런 태도만으로도 불안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불현듯 불안감이 몰려올 때 도망치지 않고 솔직한 태도로 대하는 것, 불안에 휩싸여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 것, 불안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평가절하하지 않는 것이다.

골프를 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번 샷은 잊어라!” 어쩌면 나는 약간의 실수도 허용하기 싫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건 아닐까. 타이거 우즈처럼 멋진 자세로 완벽한 경기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면 나머지는 다 의미 없다고 여긴 건 아닐까?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인생은 한 치의 오점 없는 골프가 아니라 약간의 실수와 해프닝 속에서도 꾸준히 앞으로 나가는, 결국 홀 컵에 공을 넣는 일이 아닐까?

불안은 감정이라 이성적으로 회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안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는 있다.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라는 광고 문구처럼.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고 그런 자기 확신을 통해 불안을 잠재울 줄 아는 것도 재능이다.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해 보고, 계획과 달리 상황이 꼬였어도 불안을 딛고 일어서는 것도 재능이다. 그렇게 마음이 원하는 것을 목표로 끝까지 한 번은 가봐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불안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될때가 있다. 하지만 불안한 감정을 티 내지 안하고 묵묵히 일상을 살다 보면 기회가 온다. 버티다 보면 새로운 국면은 반드시 찾아온다. 죽지 않고 살기를 잘했다는 이유를 만나는 때가 온다. 조용히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며, 각 페이지에 원하는 내용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불안의 다음 페이지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의 불안은 어쩌면 다가올 기회에 대한 예고편이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다. 그때마다 불안에 지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종종 불안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필수적인 긴장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긴장감은 우리가 더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고, 더 철저히 준비하게 만들어준다. 따라서 불안이 전혀 없었다면,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는 증거일 수도 있다.

불안을 이기는 데 있어서 나만의 작은 루틴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잠깐의 명상 시간을 갖거나, 산책을 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은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일상 속 루틴은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불안이 찾아올 때 그것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내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쌓을 수 있다.

지금 불안하다면, 그것은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은 우리에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렇기에 불안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오늘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앞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별일 없으면 잘 지내는 거다. 누구나 마음의 불안을 떨치고 잘 지내고 싶어 한다. 대단한 이벤트는 없지만, 별일 없이 하루의 일상이 이어지는 것, 티샷 다음에 세컨샷, 어프로치, 그리고 퍼팅까지 이어지는 골프의 루틴처럼 아무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달했으면 잘 지내는 것이다. 잘 지내는 것의 목표가 너무 높지 않아도 된다. 타수를 줄여 버디를 하면 좋겠지만, 백돌이에게 버디는 1년에 한 번 꼴의 특별한 이벤트다. 이런 일은 흔히 있지 않는다. 그렇게 별일 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홀아웃할 수 있으면 충분히 잘 지내는 것이다. 오늘 라운딩이 아무 일 없이 끝나기를 바라며, 그저 잔잔한 마음으로 다음 샷을 준비하자.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를 위한 응원법을 배워보자. 그러다보면 불안한 날은 가고 다음 홀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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