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카슈미르의 생생한 모습
카슈미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히말라야의 설산? 그보다 더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끝나지 않는 갈등과 분쟁일 것이다.
어느 가을날, 인접 유엔초소 방문차 이동 중에-말이 인접이지 이틀이나 걸린다-장거리 길이라 중간에 파키스탄 군부대에서 하룻밤 묵어야 했다. 어둠이 깔려있는 저녁 그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그 일대 예상치 못했던 포탄 낙하가 시작되어 파키스탄 군 안내에 따라 반지하쯤 돼 보이는 벙커로 우선 대피했다. 아이고 놀라라.
파키스탄 측에 따르면, 인도 측에서 발사된 것으로 관측되었으며 여섯 발 정도 떨어졌고 가끔씩 있는 일상적인 포격이라 한다. 하지만 포격도발 정전협정 위반 사항을 본부에 보고하였다. 평화유지활동 초짜 신고식이란 말인가, 초반부터 제대로 담금질하는 듯... 이게 다가 아니다.
이듬해 반대쪽 인도 측 푼치라는 초소 근무시절, 이탈리아 동료 알베르토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포성이 울려 방탄복과 헬맷을 착용하고 밖으로 나와 관찰을 한 기억이 있다. 파키스탄 측 라왈라콧 쪽에서 발사된 여덟 발가량으로 보였고, 역시 위반 사항을 보고하였다.
물론 포격도발 부대에서 인도 측 우리 유엔 초소의 위치를 모르지 않을 터, 표적은 아니겠지만-그래서일까 초소 내에 지하 대피시설이 없다-그래도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갔고, 곡사화기인 야포의 정확도는 직사화기와는 다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두 번째 포격 체험이었다.
이 지역에는 남북한 사이의 군사분계선MDL과 비슷한, 그러나 또 다른 긴장감을 품고 있는 휴전선이 존재한다. 바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가르는 통제선LOC이다. 통제선은 그 이름처럼 두 나라 사이에 선명한 선을 그어놓았지만, 이 선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장면들은 오히려 의외의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시알콧에서 잠무로 넘어가는 국경 통과지점BorderCrossingPoint, 이곳은 유엔이 지정해서 그런지 긴장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양측 병사들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하며 서로를 반긴다. 이 모든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북한 사람들을 본 적 있다. 이슬라마바드 어느 가게에서 북한 말투를 사용해서 알아봤는데 신기하면서도 서로 먼발치에서 눈 마주치고 지나쳤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사람도 우리나라 국민이라는데, 간혹 다른 나라 사람보다 못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파키스탄 측 휴전선을 담당하는 국경 경비부대에 들어서면, 출입문이 보인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할 일은 현지 부대 장부에 출입 사항을 기재하는 것이다. 통제선의 문이 열리면 완충지대, 우리나라 같으면 비무장지대에 들어선다.
멀리서 인도 측 통제선이 보인다. 통문에는 인도의 국기가 그려져 있고, 그곳이 바로 통제선이란 사실이 실감 난다. 문이 열리자, 반대편 인도 측의 국경 통과지점 담당 유엔 초소 동료가 탄 차량이 완충지대로 진입하려고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양국의 시차다. 인도는 파키스탄보다 30분 빠르다. 그래서 모든 협조나 문서 작성 시 양국의 현지 시각을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시에 만나자'라는 간단한 약속도 작지 않은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 측 옵서버가 10시에 국경 통과 지점에 도착하면, 파키스탄 측 동료는 9시 30분이니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파키스탄 측 옵서버가 10시에 도착하면 인도 측 동료는 이미 30분 동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소한 차이도 경계선을 넘나드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복잡함 속에서도 긴장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양측 병사들은 서로를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동료처럼 협력하며, 각각의 차량은 마주 보고 서서 본부에서 발행된 문서나 행정, 보급 물자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을 마치면, 우리는 들어왔던 경로를 거꾸로 되돌아 나온다.
하지만 이 경계 너머의 현실은 여전히 무겁다. 양국 간의 분쟁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난민촌의 열악한 환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특히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교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둡고 먼지가 쌓인 교실이지만, 아이들은 책을 펴고 공부하며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대개 파키스탄 교실은 종교적인 영향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구분되어 수업받지만, 이곳에서는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할 수밖에 없다. 분단의 경계에서라도, 이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카슈미르의 휴전선은 단순히 두 나라를 갈라놓는 선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긴장감과 평온함, 갈등과 협력, 그리고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복잡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마주한 인간적인 순간들은 카슈미르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 통제선이 언젠가 평화의 상징으로 바뀔 날을 기대하며, 우리는 오늘도 이곳에서 작은 일상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