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처음으로 여군 동료 전입
남녀 성비가 45대0.
남녀가 동등하다는 유엔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 정전감시단 얘기다. 옵서버 45명이 모두 남자다.
내가 빔버 초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을 때, 여군 옵서버가 우리 초소에 배치된다는 소식을 본부로부터 들었다. 감시단이 1949년 문을 연 후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여군 옵서버가 참여하게 되었다. 뭐든지 그렇지만 새로운 것이나 변화는 조금은 번거로울 수 있는데, 동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여성이니까 숙소를 별채로 마련해줘야 하고, 다행히 여기는 다른 초소에 비해 방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본부에서 이곳으로 보냈겠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우리 초소에 처음으로 여군 옵서버가 배치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신경이 바짝 쓰였다. 숙소도 별도로 마련했고, 동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했다. 이제 마리아나 대위만 오면 된다.
크로아티아의 마리아나. 중간 정도의 키에 갈색 단발머리로, 훤하게 잘생겨 보인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웰컴 투 파라다이스! 초소 대표 장 소령이에요. 파라다이스라 말하는 건 우리 초소 전통이라……. 여긴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바로 그 중간 어디쯤입니다."
마리아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천국도 지옥도 아니라고요? 그럼 여긴 뭘까요?"
"그냥 카슈미르죠. 핫 스폿이지만 아주 매력적인 빔버랍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울 정도로요."
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먼저, 우리 초소의 훌륭한 동료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괴짜는 한 명도 없으니까."
나는 마리아나를 데리고 동료들이 모여 있는 상황실로 갔다. 동료들은 미소와 함께 손뼉을 치면서 그를 환영했다. 마리아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눈치였다.
소개가 끝난 후, 나는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마리아나는 둘러보며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여기서는 서로 돕고 지내야 하니까요.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설거지 당번 바꾸고 싶어도 괜찮습니다. 하하, 농담이고요. 취사병이 도와주니까 염려하지 말아요."
나는 그에게 초소의 기본적인 규칙과 업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는 주로 이런 업무를 하게 될 겁니다. 처음이라 낯설겠지만, 곧 익숙해질 거예요. 우리도 최대한 도울게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요."
마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감시단의 첫 여군 옵서버인 마리아나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그가 잘 적응하고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조금의 번거로움을 동반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일들이 많지 않을까. 그리하여 성비가 비로소 44대1이 되었다.
마리아나가 온 뒤로 초소 주변에 변화가 생겼다. 우리는 일을 끝내고 저녁 식사 전에 운동을 하는데, 이 초소 옆에는 파키스탄군 여단 본부가 쓰는 스쿼시 코트가 있다. 그래서 우리도 체력단련을 하는데, 그도 칠 줄 알아서 같이 운동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파키스탄 장교 여러 명이 매번 구경을 나온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히잡 쓴 주변 여성을 주로 보다가 생소한 서양 여성이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하는 것을 보려고. 차마 같이 경기하자고는 못하는데, 뭐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어쨌든 구경만 한다. 덕분에 그전까진 우리 동료들끼리가 다였는데, 이제는 관중까지 있다.
운동하면서 땀을 한번 쭈욱 빼고, 씻고 나면 개운하고 저녁 밥맛도 좋다. 물론 족구도 한다. 룰은 내가 가르쳤다. 그런데 이탈리아 동료 팔라와 1대1 족구 시합을 했는데 졌다.
그 친구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리그의 유벤투스팀 찐 팬인데 너무 잘한다! 공 다루는 리프팅도 선수급!! 그의 수준은 1군, 나는 1.5군. 하긴 뭐 한국에서도 1군 실력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