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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저북고의 현지 풍광: 지평선이 보여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

by 다문화인

‘내 걸음의 리듬에 맞추어 삐걱거리는 허공 다리는 흔들려 그 흔들림의 운동이 곧 내 걸음을 지배하여, 차츰 더 빨리 걸어야만 강 위에 큰 활처럼 흔들리는 다리 위에 달려 있을 수가 있었다. 마침내 건너편이 보였다. 산이 가파르게 내려와 따뜻한 강물에까지 뻗었다.’ 어스킨 콜드웰의 소설 <따뜻한 강>에 나오는 구절이다.




카슈미르 북부 고산지대와 남부 평원 사이의 중부 지역은 마치 이 두 세계를 잇는 다리처럼 서 있다. 파키스탄의 도멜과 라왈라콧, 인도 측 바라물라, 푼치, 라주리가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인더스강의 지류인 젤름 강이 이곳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며, 그 위에는 흡사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정말로 이 다리는 우리의 걸음을 따라 흔들리며, 그 흔들림이 우리의 리듬을 지배하고, 걸음을 맞추어 다리를 건너면 산이 강물에 닿을 듯 가파르게 내려오는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다. 도로정찰 중에 만난 산골 마을은 그 경이로움을 더한다. 어떻게 저 높은 산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반대편 인도 측의 바라물라와 푼치의 풍경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강물이 흐르는 모습도, 그 위에 서 있는 집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라주리의 하천과 그 주변의 논밭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그 속에서 자라는 쌀은 이곳 사람들의 생명줄처럼 보인다. 중부 지역이 우리나라 산과 들, 강의 모습과 제일 비슷하다.



북부 지역으로 올라가면, 여러 개의 높은 산이 거대한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곳의 험준한 지형은 경이롭고, 우리나라의 산세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길깃과 스카르두는 고도가 높아 이 지역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길깃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산맥 세 곳이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인더스강 동남쪽의 히말라야산맥 끝자락, 길깃강 동북쪽의 카라코람산맥 끝자락과 길깃시 서쪽의 힌두쿠시산맥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나는 꼭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더스강과 길깃강이 만나는 이곳은 고대와 현대가 만나는 장면을 연출한다.


길깃에서 북쪽으로 훈자강을 따라가다 보면, 카라코람산맥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곳에는 라카포시 산이 높이 솟아 있고, 혼자 계곡은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훈자 계곡의 카리마바드에서는 고대 성인 발팃 포트가 웅장하게 서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파이브 핑거의 다섯 봉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스카르두로 향하는 길은 진정 자연의 위대함을 따라가는 여행과 같다. 바위산을 가로지르는 아슬아슬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꽃상여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화물차가 나타나고, 멀리 산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양 떼들이 우리를 반기는 그 길 끝에는 데오사이 평원이 펼쳐져 있다. 해발 4,114미터의 이 평원은 마치 지구의 천장에 놓인 거대한 잔디밭 정원 같다.


그곳에 있는 셔사르 호수는 맑고 푸른 물을 품고 있어 히말라야 설산이 그 물속에 투영되어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정도 고도면 산소가 부족하여 속이 불편하거나 두통과 같은 고산증 증세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다행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스카르두 포트에서 내려다보면, 인더스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 그 길이만 무려 2,900킬로미터에 달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지평선이 보이는 카슈미르 남부 지역은 마치 드넓은 평원이 한눈에 펼쳐지는 풍경화 같다. 파키스탄의 빔버, 시알콧, 인도 측에 잠무로 이어지는 이 평원은 한때 전쟁의 상흔이 깊이 배어있던 땅이지만, 지금은 유엔 옵서버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다니는 곳이다. 특히 시알콧과 잠무는 국경 통과지점으로, 우리는 이곳을 통해 양국을 오가며 긴장감 속에서도 묵묵히 우리의 임무를 수행했다.


코틀리에서 빔버로 내려오는 길은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월 선암마을의 한반도 모양과 닮은 지형을 마주할 때면 잠시나마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망글라 호수는 평원 아래 자리 잡고 있다. 그 아래로 더 내려오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광활한 평지가 펼쳐지는데, 이곳에서는 유채꽃을 닮은 노란 들판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대지 위에 홀로 서 있는 전신주는 문득 어린 시절에 하던 놀이를 떠오르게 한다. 흙을 쌓아 올리고 나무 막대를 꽂아 놓은 후, 차례대로 흙을 빼내는 놀이. 마지막 깃대를 쓰러뜨리는 사람이 지는 그 놀이 말이다.


시알콧에 도착하면, 우리나라의 계룡대나 상무대처럼 여러 부대가 모여 있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의 민통선과 경고문구가 정녕 분쟁의 그림자처럼 느껴지고,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당신은 적의 직사화기 사정권 아래 있습니다.’



파키스탄 시알콧에서 국경을 넘어가면, 인도 측에 잠무가 있다. 이곳은 살그머니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큰 성곽과 힌두교 사원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도령이지만 무슬림 인구가 많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도 쉽게 눈에 띈다.

잠무의 유엔초소는 우리가 자주 머무는 곳이다. 이동 시간이 길어 하루가 더 걸리기도 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 이동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 도시의 매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아침 이동 중에 맡은 악취는 잠무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오물 처리 문제는 심각하다. 자유낙하식(?) 화장실과 노상 배변이 일상인 이곳에서는 종종 우리가 잊고 있던 불편한 현실이 불쑥 나타나곤 한다.




남한의 두 배쯤 되는 넓은 카슈미르가 가진 독특하고 각양각색의 모습이다. 그 이면에는 아픔과 함께 슬픔이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이는 갈라진 분단의 현실이…. 나의 작지만 평화를 갈망하는 이 몸짓이 이곳 분쟁지역,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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