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go home
칸자르 지역 바위에 적혀있는 낙서를 봤다. ‘UN Dog’, ‘go home’. 그리고 비슷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동료들에게서 듣기도 한다. 현지인들이나 현지 분위기 같은 동향은 우리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에 어떤 파키스탄 사람이 우리 옵서버에게 가운뎃손가락 욕을 했다고 한다. 아이고, 다행히 칠레 동료 보덱커가 땡큐 라고 하며 넘겨서 별 마찰 없이 지나갔다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 70, 80년대에 나타났던 반미 감정 같은 것인가.
어느 겨울날 도로정찰 중, 몸을 녹일 겸 벨기에 동료 안드레와 길가의 조그만 가게에 들러 차를 한 잔씩 시켰다.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옆자리의 주민들과 이슬람 인사를 나눴다.
"아사라무 알레이꿈"
"알레이꿈 아살람" 그들이 답해준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저희는 유엔 옵서버입니다. 여러분의 지역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도움을 드리기 위해 이곳에 있어요."
그리고 앞선 궁금한 점도 넌지시 언급했더니, 한 주민이 약간 심드렁한 표정과 불만 섞인 목소리로,
"유엔? 외국인들만 또 오고 가고,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아요.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들 때가 있어요."
옆에 있는 안드레가 거든다. "저희는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안전이라고요? 우리는 총격과 폭탄 소리에 시달리고 있어요. 당신들이 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지, 글쎄요……." 다른 주민이 비꼬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이어갔다.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상황을 보고하고 있거든요." 나는 진지하게 이해시키려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가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예요. 우리는 외국 군인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집에 가라'라고 쓴 이유도 아마 그것 때문일 거예요." 답답함을 참지 못한 듯이 한 주민이 말했다.
안드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독였다. "보고는 우리의 중요한 임무니까요, 여러분의 좌절감을 이해합니다. 저희는 여러분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전달하려 애쓰고 있지만, 여러분의 관점에서 상황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한숨을 쉬며 다른 주민이 덧붙였다. "우리는 너무 오래 이 상황을 견뎌왔어요. 이제는 누가 와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우리를 도울 수 있다면, 말해 볼 가치는 있겠죠."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요." 내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우리는 정찰을 마치고 초소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계속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현지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국제기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평소에 냉소적인 면이 있었던 안드레가 감정을 다스리고, 임무와 자신의 역할을 위해 공들이는 모습은 내게 새롭게 와닿아서 좋았다. 반전이네.
어떤 정치세력이나 정체성이든 모든 이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고 대다수의 마음을 얻기도 쉽지 않다. 하물며 유엔 같은 외부 세력은 말해서 뭐 하랴.
하지만 이곳의 평화 유지를 위해 우리 활동뿐만 아니라 언행이나 사소한 모습 하나부터 현지 친화적으로 할 수 있도록 더 힘써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평화가 분쟁지역 주민들을 보듬어 주기를 희망한다. 인샬라(신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