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팬케이크
'문화는 유난히 복합적인 단어로, 누군가는 이보다 복합적인 단어는 한두 개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네 개의 주요한 의미가 두드러진다. 문화는 (1)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업들 전체 (2)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 과정 (3) 사람들이 살아가며 따르는 가치, 관습, 신념, 상징적 실천들 (4) 총체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그의 저서 <문화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약간 복잡해 보이지만, 문화란 단순히 예술이나 문학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한 개인으로부터 국가나 문화권의 삶과 지내온 복합적인 내력이나 배경으로 이해했다.
일과를 끝내고, 저녁에는 식사하면서 옵서버 동료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온갖 화제가 넘쳐난다.
그날 했던 감시활동에 대한 평부터 현지 풍광이나 봤던 사람들에 관한 얘기, 카슈미르 분쟁의 역사, 우리 옵서버의 활동 영역과 한계, 그에 따른 푸념, 주재국 군에 관한 협조와 간혹 따르는 불만족 사항, 각자 자기 나라나 문화에 대한 홍보 아닌 홍보 등등.
이 중 문화와 역사에 관한 대화가 가장 흥미롭다. 얘기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책을 많이 읽을걸….' 하는 독서에 대한 필요성과 뉘우침이 남는 때도 더러 있다.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더라도 각 대륙이나 지역의 문화나 그 시대상을 잘 알고 있다면 대화에 더 참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 하지만 그러면서 이것저것 배운다.
하루는 덴마크 베프 예스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감시활동들 어땠어? 뭐, 흥미 있는 일 있었나?"
이탈리아 동료 팔라가 대답했다. "산길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지 뭐. 근데 덕분에 현지 마을 사람들한테 큰 웃음 선사했어. 날 보며 엄지척하더라고."
크로아티아의 마리아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늘 상황은 어땠어? 보고서에 넣을만한 사진 좀 찍었어?"
내가 웃으며 답했다. "사진은 찍었지. 근데 그 풍경 뒤에는 카슈미르 분쟁의 긴 역사가 숨어 있다는 걸 잊기가 어려워."
칠레 동료 보덱커가 끼어들었다. "카슈미르 분쟁? 그건 진짜 미로 같은 이야기야.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지."
덴마크의 제스는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리고 주재국 군과 협력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 가끔은 우리가 인내해야 하고…."
"그런 불만은 정말 어디서나 있는 것 같아." 예스퍼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귀성, 태극기 모양은 독특해 보여.”
이곳 파견국 다수의 국기가 유럽 특유의 단조로운 삼색기거나 일부는 십자가 문양이어서 그런지 동료들이 종종 묻는다.
"그렇지, 태극 원과 4괘가 있는데. 태극 원은 우주 만물의 근원인 음과 양의 조화를, 태극 원 주위 네 개의 괘는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해.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며, 전체적으로 조화, 균형, 평화, 통일의 의미를 담고 있어. 그리고 우리말은 서양인한테 정말 생소할 거야."
외운 대로 써먹었다.
"우리 군 이야기할 때도 다들 관심이 많더라고, 특히 북한과 대치 상황에 대해서는 귀를 쫑긋 세우더라." 말을 이었다.
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덴마크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상상하기 어렵지."
보덱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남미에서는 퇴근 후 친구들과 해변에서 즐기는 게 일상이야. 직접적인 위협? 그런 건 꿈에서도 안 나와."
내가 살짝 부러워하며 덧붙였다. "그런 여유가 부럽다. 우리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리아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는 게 많잖아. 상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니까."
내가 동의하며 말했다. "맞아, 대화를 통해 진짜 많은 걸 배우고 있어.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도 큰 도움이 돼. 그리고 솔직히 더 재미있고!"
우리의 것을 말해줄 때는 좀 낫다. 이곳에 오기 전에 준비했으니까. 독특한 우리 국기, 역시나 특별한 우리말. 서양인들에게 익숙지 않은 우리 이름, 동료들이 격하게 공감한다. 발음하기 어렵다고, 하하.
전방 근무의 고된 일상과 같은 우리 군에 관한 얘기할 때는 더 귀 기울인다. 반면,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이나 칠레, 우루과이 등 남미 동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살그머니 먼 나라 얘기 같다.
식사는 초소에서 이탈리아 동료와 지낼 때가 제일 좋다. 그들이 해주는 파스타, 피자 등 각종 음식으로 사육을 당하기 때문에. 유벤투스 축구팀을 좋아하는 팔라가 팬케이크를 잘 만드는데 하루는 팬케이크 위에 보드카를 뿌린 후 불을 붙여 주었다. 세상에, 팬케이크를 먹고 취했다니! 색다르고 오래 남는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