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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오지 스테이를 떠나며

by 다문화인

현지 사람들의 체취가 땀 냄새에 식습관상 커리(카레) 냄새까지, 어떨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했다. 좀 씻고 다니지 하는 푸념까지 했는데, 한편으로 인프라가 발달되지 않아 위생에 대한 생활양식이 좋지 않고 더우니까 그런 것이라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차츰 적응해 갔고 우리에게서도 마늘 냄새가 난다는 것을 좀 늦게 깨달았다. 남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나를 브라더라 부르며, 궁금해하는 물음에 친절하게 답하고 설명해 주는 주민들, 어떤 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손수 나를 데리고 길 안내를 해줘서 고맙다. 정이 들었고 형제가 맞다.



첫 해외파병을 무사히 끝내고 돌아왔을 때, 감격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이 순간을 맞이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파견 전 교육을 받았지만, 당시 우리의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기반은 매우 부족했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고, 유엔이 정한 필수 과목을 제대로 교육할 여건도 안 됐다.


마치 거대한 미로에 던져진 것 같은 막막함이 스치기도 했었다. 당시 카슈미르에 파견 온 국가 중 절반 이상이 튼튼한 나무처럼 뿌리를 내린 평화유지활동 관련 교육기관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시스템의 보완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유엔초소에서 만난 외국군 장교들은 각기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모두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들과 나눈 대화는 오래된 와인처럼 깊고 진한 맛을 남겼다. 때로는 밤이 깊도록 이어지는 대화에 다음 날 활동을 생각하며 적당한 시간에 마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들의 여유 있는 모습은 북한이라는 현존하는 적을 마주한 우리 군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유럽이나 남미 출신 장교들은 어딘가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우리는 다소의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많은 분쟁지역에 파견을 보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북유럽 국가들은 잠재적인 적을 염두에 두고 상비군 대신 발달한 예비군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동료 중에는 소방관이나 택시 기사로 일하다가 예비역으로 파견된 이들도 있었다.


지속되는 인구 감소, 군 초급 간부 지원 기피와 같은 이유로 우리 군이 점점 줄어드는데, 지금 수준의 파견 병력 유지와 부족해지는 현역 위주의 군 구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평화유지활동 경험과 역량을 갖춘 예비역 장교를 개인 파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능하다면, 병 출신 예비군은 주특기, 본인 희망 등을 고려하여 남수단 한빛부대, 레바논 동명부대, 청해부대와 같은 부대 파병에 포함할 수도 있겠다. 우리 경찰도 평화유지활동에 파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유엔의 이름으로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며 세계 평화와 증진에 이바지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노력과 참여의 확대가 결국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튼튼한 안보를 보장하는 중요한 방편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우리 군의 해외파병을 더욱 넓고 다양하게 증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파견의 성과로 유엔 메달을 받았다. 첫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끝맺고 돌아오는 길, 무엇보다도 함께했던 가족과 1년간의 오지 살이를 무사히 다하고 돌아올 수 있어서 기쁘고, 함께해서 더욱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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