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로 오지 여행
인류에게 평화로운 시대가 있었을까? 2002년의 어느 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카슈미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이 땅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오랜 갈등이 아로새겨진, 마치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다 갑작스레 굳어버린 거대한 화산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유엔 옵서버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시절, 태극마크는 보편적인 군인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특별한 상징이었다. 파병이나 해외 근무를 떠나는 사람들만이 군복에 태극기를 달고 조국의 이름을 걸 수 있었다.
그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세계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카슈미르로 향하는 그 비행기는 나에게 모험이자 꿈을 실현하는 문이었다.
카슈미르는 한반도만큼이나 작지 않은 땅이었다. 하지만 그 속은 더욱 복잡하고 깊었다. 이슬람교인(무슬림이라고도 한다)이 주류를 이루고, 힌두교와 소수의 시크교, 불교 신자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흡사 다양한 색깔의 실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거대한 카펫 같았다.
그 위로는 히말라야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위엄 있게 솟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K2 봉은 이 지역 북쪽에 자리를 잡고,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을 거쳐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는 긴 여정은 신비의 땅으로 가는 문을 여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마법 같은 긴 여정 말이다.
하지만 카슈미르의 험준한 산악 지형 속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은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소중했다. 카슈미르는 당시 유엔 평화유지활동 중 가족 동반을 묵인해 주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이국의 땅에서 보낸 1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매달 한 번씩 전방 임무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은 오아시스 같은 휴식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금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카슈미르 관문 중 하나인 무자파라바드 근처의 '레스와 패스'를 지나가는 길은 정말 거대한 용의 등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도 숨 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한계령의 두어 배는 되는 스케일……. 그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71개 활동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었던 당시, 내가 몸담았던 인도-파키스탄 주재 유엔 정전 감시단UNMOGIP, United Nations Military Observer Group in India and Pakistan은 그중에서도 두 번째로 오래된 활동이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이 임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분쟁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었다.
카슈미르에서의 경험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곳은 그저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아니라, 인류가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여정의 한 부분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었다.
카슈미르라는 이름은 이제 내게 단순한 지명이 아니며, 인생 속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할 중요한 기억이고,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앞으로도 간직할 보석 같은 추억이다.
여기서 평화를 꿈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녕 웅장한 히말라야산맥이 수백만 년 동안 천천히 자라났듯이, 나도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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