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은 무슨...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인도-파키스탄 주재 유엔 정전감시단 본부가 있는 라왈핀디로 우선 통근했다.
페르시아어로 깨끗하고 성스러운 나라라는 의미의 파키스탄Pakistan.
그리고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등 국가명에 ‘-스탄stan’이 붙은 나라가 근처 중앙아시아권에 있는데 스탄은 땅이란 의미로 나라나 넓은 지방을 뜻한다.
이슬라마바드는 이슬람의 도시라는 의미. 즉, ‘-바드bad’는 도시, 작은 지방을 뜻하며 인도의 하이데라바드Hyderabad, 미국에 의해 2011년 5월 제거된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가 있었던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Abbottabad 등 여러 도시명에 포함되어 있다.
라왈핀디는 뭐랄까, 생소했지만 어렸을 적 외가댁에 놀러 갔을 때 볼 수 있던 시골 읍내 느낌, 낯설지만 정겨움이 조금은 묻어났다. 높지 않은 2층짜리 고만고만한 집들이 정답게 마주하고 서로 대소사에 대강 참견할 것만 같은, 그런 마을이 늘어서 있다.
유명한 청량음료 광고판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로터리쯤 돼 보이는 분주한 거리에는 갈색, 흰색 말이 끄는 마차가 줄지어 서있고 마부와 타려는 사람 사이에 마차 삯을 흥정하는 모습이 낯익다. 아직 말을 부리는 이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옷차림은 생경했다. 목의 브이존은 와이셔츠처럼 생겼는데, 아래로 내려다보면 단추가 사라지고 옷 트임이 없는 독특한 형태의 상의는 무릎까지 축 늘어져 길다. 주로 흰색이나 밝은 색 계열의 전통 남자 의상 빤자비. 그 아래 통이 넉넉한 같은 색의 바지가 보인다.
머리만 히잡으로 덮은 여자부터 눈을 제외하고 부르카로 온몸을 가린 여자들까지. 물론 남녀 모두 우리와 같은 보편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다.
유엔 마크, 블루 베레, 블루 머플러를 받고, 본부 직원과 인사, 간단한 상황 브리핑, 아이디카드 발급 등 며칠간 감시단 수속 절차를 진행했다.
드디어, 근무할 휴전선 일대의 길깃 초소로 향하는 날이다. 같이 온 다른 동료들은 모두 차량으로 임지를 향했는데, 나만 비행기를 탔다. 뭐 내가 이뻐서 그런 건 아니고, 하하 너무 멀어서 차량으로 갈 수가 없다.
뭐 비행기로는 또 장거리는 아니어서 40인승 정도의 프로펠러 여객기를 탔다. 우리가 아는 제트엔진 여객기는 소음이 주로 엔진 소리라서 그 특유의 소음 대역이 있는데, 이 프로펠러기의 소음은 엔진보다는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는 프로펠러 때문에 방방 뜨는 듯한 소리다.
나중에 들으니,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유럽 특히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 출신 동료들은 내가 무슨 빽(?)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는 소문이…. 빽은 무슨.
그들은 설산의 대자연, 고국의 풍광과 비슷한 산악지대인 길깃 근무를 그렇게 해보고 싶어 하는데 그곳은 소수가 배치되는 곳이어서 1년 파견 동안 근무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동료가 많다고 한다.
조금 있자니까, 기내 방송이 나온다.
“레이디스 앤 젠틀멘, 저는 기장입니다. 우리 비행기는 현재...(중략)…. 왼쪽을 보시면 ‘낭가파르바트’가 보입니다….”
비행기 고도만큼이나 높은 히말라야산맥의 끝자락, 낭가파르바트. 세계 8천 미터 14좌 중 하나.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고,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많이 들어봤을 K2.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이걸 보고 있구나, 깎아지를듯한 절벽과도 같은 설산. 웅장하고 장엄하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보고 있는 중간에 7, 8부 능선쯤에서 눈보라인지 눈사태인지 순간 휘몰아치는 장관까지 보너스로 보여준다.
지금은 가을이지만 창밖으로 새하얀 눈이 덮인 수많은 산봉우리가 군락을 이뤄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히말라야 산신령이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를 선사하면서 눈 부신 햇빛은 하얀 눈에 반사되어 눈이 시리도록 하얀 세상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비행기에서는 뭐 1시간 동안 커피 한 잔을 안 주네…. 하지만 됐네, 눈 호강을 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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