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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스테이: 첫 외국살이 적응 필살기?

카슈미르 별미, 짜파티

by 다문화인

난생처음 외국에 왔다. 설렘 반 걱정 반.

유엔 필드 스테이션UN Field Station이라 불리는 정전감시 초소는 옵서버가 사용하는 본채와 주재국 병사들의 별채 정도로 구분되고, 본채의 중심에는 상황실 겸 사무실과 우리 각자의 방, 그리고 식당 겸 휴게실이 있다. 건물 밖에는 차량 2대가 있는 주차장까지.

상황실에는 감시단 본부와 그리고 활동 중인 우리 차량과 교신할 수 있는 무전기, 컴퓨터, 데이터링크라 불리는 임무 장비가 있다. 휴게실 천장에는 오래돼서 그런지 약간 힘든 소리를 내며 팬이 돌고 있어 이국적인 감성이 낭랑하다.


우리말로 초소라 해서 그렇지,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하는 구파발이나 청평 국도에 있는 초소처럼 왜소하지 않고 큰 관공서 기관 느낌도 나지 않고 그냥 큰 가옥의 분위기가 온화하게 다가왔다.

멀리서 보면 우리 초소는 외딴섬 무인도다. 보안을 유지해야 해서 그랬겠지만 널찍한 들판에 초소만 덩그러니 서 있다. 여기는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 휴전선으로부터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곳 길깃은 약 1,300km 길이의 파키스탄-중국 간에 놓인 현대판 실크로드인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지나가는 도시다.

단순한 교통로를 넘어 중국과 파키스탄의 경제, 군사적 협력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옛 실크로드의 정신을 느끼고 라카포쉬, 낭가파르바트, 파이브 핑거와 같은 높은 설산들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지역 사람들도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중국과 가까워서 그런지 마을이나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외부 사람을 대하는 분위기가 좀 더 개방적으로 다가온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런 천혜의 자연경관을 그러려니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지냈다니-몇 차례 다른 척박한 지역 배치를 받은 후 여기서 일했어야 이 귀함을 알았을 텐데-지나고 나니 참 많이 아쉽기도 했다.




배꼽시계가 울리면 어김없이 취사병이 현지 주식인 짜파티를 식당으로 내온다.


금방 구워 따끈따끈한 얇은 밀가루빵 짜파티에, 달이라고 부르는 노란 녹두 비슷한 것을 약간의 향신료와 소금을 넣고 삶아 조린 것, 이름하여 ‘달 앤 짜파티’다. 빵을 한입 크기로 떼어 달을 얹거나 찍어 먹는다.

짜파티 / 난

좀 더 크고 두툼한 '난'이란 빵도 있다. 어떤 때는 치킨 커리와 짜파티를 먹는다. 스웨덴 동료 라스는 닭을 ‘인터내셔널 버드’란다. 소나 돼지는 어느 특정 문화권에서는 안 먹지만 닭은 만국 공통 고기라서.


치킨 커리는 우리 닭조림과 비슷한데 카레가 들어가고 좀 덜 맵고 기름기가 좀 많은 정도…. 꽤 먹을만하다. 맛뿐만 아니라 닭의 모습은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해 보인다.




이곳에 온 후 이튿날 배에서 살살 반응이 왔는데 설사다. 통과의례인가. 내가 건강한 편인데, 그래도 한창때 4년간 현대의 화랑이 되어 사관학교에서 절제된 생활과 체력단련을 한 터라 어쨌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뱃속은 낯선 환경에서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사는 환경이 바뀌면 보통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전임자가 알려주기도 해서 정수된 물을 주로 마시고, 익힌 음식 위주로 먹으면서 제 딴에는 주의를 한다고 했는데, 속이 슬슬 아려오기 시작한다.


말라리아 예방약까지 먹고 있어서였을까, 말라리아 걸리지 않으려고 오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식자우환이라더니 파견 전 교육 때부터 여기 와서까지 말라리아에 관한 넘쳐난 지식이 우리를 괴롭혔을까, 모기는 명성만큼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다. 구급약품함에 있는 지사제를 하나 먹었다. 처음에 적응해야 하고 일을 배워야 하는데, 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시차가 4시간이다. 많은 차이는 아니지만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고 졸리고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도로정찰을 나가면 차 안에서 졸기도 했다.


이곳 길깃은 파키스탄 측 근무지 중에서 책임 지역이 가장 넓은 곳이라 상대적으로도 오래 차를 타야 한다. 일이십 분이 아니라 한두 시간여…. 더구나 내가 운전하지 않고 앉아 있으니 더 졸리다. 그래도 참아야 했는데 부끄럽다. 왼쪽 어깨에 달린 태극마크를 생각하며 이겨냈어야 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아찔하다. 도로 옆은 천 길 낭떠러지, 덜덜. 낭떠러지 쪽에 옹벽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안전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구간이 대부분이다.

차들이 서행으로 다니긴 한다. 바위산에 어떻게 저런 도로를 깎았지? 말 그대로 깎았다. 다시 말해서 차량 위 하늘 대신 터널처럼 암벽 지붕이 그대로 있다. 상상이 되는가.

차량 두 대 겨우 교행 할 폭으로 도로를 깎았는데 아슬아슬하다. 앞에서 차가 마주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야 했다.

가끔 양 떼를 만나기도 한다. 보통 때는 반갑지만 이런 도로에서는 역시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 경관은 무척 아름다운데…….



도로 옆의 구멍가게에 잠시 들렀다. 우리 휴게소에 비할 순 없지만, 파키스탄 운전병과 함께 짜파티를 먹으며 꿀맛 같은 휴식! 하루 이틀이 지나고 회복이 되어갔다. 만회하자! 그리고 변치 않는 진리, 졸리면 쉬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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