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서버는 멀티플레이어
카슈미르의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하늘은 희미하게 밝아 오고, 먼 히말라야 봉우리가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UNMOGIP, 즉 인도-파키스탄 주재 유엔 정전감시단, ‘운모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활동을 하며 분쟁의 한가운데서 평화를 엮어나가고 있었다.
운모깁의 임무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무게는 태산처럼 무거웠다. 카슈미르 분쟁지역에서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이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단순한 글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말이기도 했다.
임무는 다소 생소하지만 ‘맨데이트mandate’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이 단어는 유엔에서 결의안에 따른 각 임무단의 사명을 뜻한다.
옵서버 활동은 정전협정 위반 조사, 카슈미르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군의 동향 감시, 그리고 군이나 적대 세력에 대한 각종 첩보를 수집하고 보고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분쟁의 맥락 속에서, 평화라는 이름의 카펫을 짜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감시단은 두 가지 주된 축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감시단장CMO, Chief Military Observer과 그를 보좌하는 감시장교인 옵서버로 이뤄진 군사 부문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 재정, 보급, 수송, IT와 같은 지원을 담당하는 민간 부문이다. 민간 부문의 책임자인 CAOChief Administration Officer는 직제상 감시단장의 아래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로 협조하며 이 거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동반자였다.
정전위반 조사로부터 도로정찰, 관측소 설치 운용, 현지 인도·파키스탄 부대 방문, 인접 유엔초소 방문, 탄원서 접수까지 다양한 활동이 있다. 각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였고, 모든 것이 평화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이었다. 옵서버는 하나 이상의 일을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정전위반 조사는 마치 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따라가는 작업이었다. 인도나 파키스탄군 측이 정전협정 위반 사건을 알려오면, 우리는 그것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조사 계획을 세웠다. 분쟁 현장의 옵서버가 쓴 보고서가 뉴욕에 있는 유엔 사무총장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 활동 중 백미다. 사건 현장에 도착하면, 그곳은 이미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울분과 참담함을 가진 목격자들과 면담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었다.
이곳 휴전선 일대는 반듯한 철책이 없다시피 하고 파키스탄 측, 인도령에 따로 살더라도 같은 지역민이거나 친척이라 상호 왕래도 잦고 곡식 경작에, 목축에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첫 조사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빔버 지역에서 10살 남자아이가 인도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을 조사했다.
어른들은 영토 분쟁이다 종교의 다름으로 다툴지는 모르지만, 들판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과 상관없이 천진무구하게 놀고 있었을 그 어린아이가 영문도 모른 채 숨을 거두었다. 나보다 오히려 그 아이 아버지가 담담해 보였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슬픔을 삼키고 속으로 삭이고 있겠지만, 너무나 끔찍한 비극이었다.
이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내 아들도 10살이었기에, 그 아이의 죽음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유엔 활동의 원칙 중 하나가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립성인데……. 분쟁이란 참으로 잔인하고, 그곳에서는 인권조차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도로정찰은 가장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그 중요성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었다. 도로 상태를 파악하고, 부대의 이동을 감시하며, 유엔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 이 활동의 목적이었다.
도로를 따라 이동할 때마다, 그곳은 정녕 분쟁의 흔적이 스며있는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이 감시단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에서 지원하는 운전병이 함께했다. 이곳은 과거 영국의 영향을 받았던 터라 차량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고 도로 왼쪽으로 달린다.
내가 직접 운전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곳의 이질적이고도 특별한 분위기를 더했다. 첫 휴가 때 차를 몰면서 처음에는 한참 운전미숙! 방향지시등, 그러니까 깜빡이를 켜면 와이퍼가 돌아가거나 후진하려고 뒤를 돌아보며 오른팔로 조수석을 잡으려 하면 으레 오른쪽 창에 팔을 부딪치기 일쑤였다.
관측소를 세우면 흡사 적막한 전선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휴전선 근처 고지대에서 우리는 양측 부대 움직임을 주시했다.
때로는 실시간으로 포탄의 폭발이나 포연을 확인할 수도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이곳이 얼마나 위태로운 곳인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야간에 관측소를 지키며, 먹보다 진한 어둠에 익숙해지는 동안 느끼는 긴장감은 꼭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때론 우리를 짓누르곤 했다.
지금처럼 드론이 있으면 계곡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나 많이 떨어진 곳에 손쉽게 날려 보내 들여다볼 수 있었을 텐데.
파키스탄, 인도군 부대 방문은 그냥 감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고통을 직접 봤다. 휴전선 근처의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 주민은 우리의 존재를 반가워했다. 그들과의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곳에서 평화를 지속시키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키는 일이었다.
인접 유엔초소 방문은 단순한 활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각 초소에 흩어져 근무하는 동료들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1년 동안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동료가 있을 수 있다. 카슈미르의 험준한 지형 속에서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 방문을 통해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초소 방문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따뜻한 순간이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드문 활동으로 탄원서를 접수하는데, 그 의의는 지대했다. 2003년 1월 5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서 민족 대표들이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자결의 날Self-determination Day 행사를 마치고 내가 있는 도멜 초소에 와서 탄원서를 제출했을 때,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기자들을 대동해 오는데 덴마크 동료 론베드와 내 사진이 일간지 1면에 나오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먼 길을 왔고, 우리는 그 목소리를 모아 세계에 알렸다.
1년간 또는 그 이상 근무하면서 이 일을 해보지 못하고 마치는 옵서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운이 좋았다.
우리 임무는 그저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평화의 씨앗을 심는 것이었다. 카슈미르 아침은 여전히 차갑고, 하늘은 은빛으로 물들어가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언젠가 이곳에 진정한 평화의 햇살이 비추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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