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별빛에 홀린 존재들 (2)

by 달빛타래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 놀라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작 그 사실을 털어놓는 마가렛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나는 마법사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단다. 대개 그런 경우, 자식도 마법사가 될 확률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운이 없는 편이었지.”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마가렛은 꽤 유복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마가렛은 마법사들의 사회에서 서서히 도태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요리에 재능이 있었던 마가렛은 여러 자격증을 따낸 뒤, 마법학교 ‘윙그리폰’의 보조 요리사로 채용되었다.


“위대한 마법사들의 끼니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15년 가까이 버텼지만,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원할 때마다 음식을 갖다 바치는 하인에 불과했어.”

시간이 흐를수록 인정은커녕 멸시와 차별은 심해졌고, 매사에 긍정적이던 마가렛도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휴일, 마가렛은 시장에서 우연히 에드먼드를 만났다.


“마가렛이랑 에드먼드 씨가 아는 사이였나요?”

“에디의 모교가 바로 윙그리폰이거든. 마법학교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로 나뉘는데, 식사는 같은 식당에서 한 탓에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셈이지.”

졸업생이 되어 나타난 에드먼드는 머지않은 미래에 사계절이 공존하는 산장을 지을 계획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의 식사를 책임져 줄 뛰어난 요리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나는 계속되는 차별에 신물이 나서 요리를 완전히 포기하려던 참이었단다. 그런데 아직 짓지도 않은 산장을 설명하는 에디의 눈빛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그리고 나를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처음이라 홀린 듯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란다.”

과거를 추억하는 마가렛의 눈동자엔 웬디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과 해방감이 교차했다.


“차별받는 요리사를 알아봐 준 학생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에요.”

웬디는 마가렛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차별과 멸시가 가득한 도시를 뒤로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산장을 위해 압살드라를 떠난 마가렛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에드먼드 씨에게 두 분의 재회에 대해 다시 여쭤봐도 될까요?”

웬디는 벅차오르는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지만, 마가렛은 완성된 버섯볶음을 접시에 정갈하게 담으면서도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웬디, 에디에게는 절대 압살드라에 대해 언급하지 마렴.”

“어째서요?”

“자세한 건 에디의 사정이니 말해줄 수 없지만, 에디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아. 오히려 끔찍하게 생각한단다.”

“... 알겠어요. 절대 아는 척하지 않을게요.”

웬디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과거라면, 호기심 정도는 접어두는 것이 예의였다. 마가렛은 기특하다는 눈길과 함께 웬디에게 버섯볶음이 담긴 접시와 포크를 내밀었다.

“식기 전에 들렴. 오늘 같은 날은 특히 속을 든든히 채워야 한단다.”

웬디는 식당 한편에 자리를 잡고 곧장 포크를 들었다. 처음에는 익숙한 버섯 맛을 생각했지만, 찰진 식감과 크림을 먹는 듯한 달콤함이 느껴졌다. 끝맛은 허브를 연상시키는 상큼한 향이 남아 입안을 산뜻하게 만들었다.

“이것도 먹어보렴.”

웬디가 접시를 다 비울 무렵, 마가렛은 두툼한 페이스트리와 시원한 우유를 내밀었다. 겹겹이 쌓인 나선형 모양에 설탕 코팅을 덧씌워 윤기가 흐르는 빵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바삭거리는 빵을 한 조각 떼어내자, 새하얀 김과 함께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풍겼다. 웬디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어요!”

그동안 마가렛의 음식이 웬디를 실망하게 한 적은 없지만, 이 페이스트리는 그녀가 먹어본 빵 중 단연 1등이었다. 바삭한 식감을 음미하던 웬디의 이빨 사이로 작은 무언가 톡 씹혔다. 뒤이어 깊은 시나몬 향이 퍼진 덕분에 웬디는 그것이 퀴리 열매라는 걸 알아차렸다. 단숨에 빵과 우유까지 비워낸 웬디가 먹은 그릇을 정리하려는 때였다.


딸랑. 딸랑.

식당 밖에서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큼 작은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언뜻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같기도, 혹은 이질적인 타악기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윽고 기묘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잃어버린 자에겐 초침을 팔고, 마음을 잃어버린 자에겐 추억을 파네. 길 잃은 별빛을 담은 램프와 요정의 눈물을 말린 가루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제프의 마차라네!”

마가렛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제프가 일찍 도착했구나.”

“제프?”

“오늘처럼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항상 산장을 방문하는 상인이란다.”

“저분은 잡상인이 아닌가요?”

“잡상인?”

마가렛은 곧 잡상인이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깨닫고 웃었다.


“에디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도 아니지. 숙박은 하지 않고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러 오는 이들이니까. 그릇 정리는 내게 맡기고 너는 에디에게 가보렴. 아마 너를 찾을 거란다.”

“고마워요, 마가렛!”

웬디는 서둘러 앞치마를 고쳐 매고 프런트로 달려갔다. 때마침 식당 쪽으로 걸어오던 에드먼드가 그녀를 발견하고 말했다.


“마침 잘 됐군. 웬디, 날 따라오게.”

둘은 본관을 나서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산장 입구로 향했다. 짙은 안갯속에서 식당에서 들린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노래는 이십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군. 박자감이 저렇게 엉망인데 꿋꿋이 부르니, 숲의 정령들이 매번 귀를 틀어막고 도망가지.”

에드먼드는 혀를 차는 순간, 육중한 바퀴 소리와 함께 거대한 형체가 안개를 가르며 나타났다. 처음 그림자를 봤을 때, 웬디는 집채만 한 크기의 거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지자, 거북이의 눈으로 보였던 것은 주황빛을 내뿜는 등이었고, 등껍질의 정체는 냄비와 국자, 시계 등 수백 개의 도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마차였다. 바퀴가 구를 때마다 마차에 매달린 물건들이 부딪히며 불협화음을 자아냈다.


“오, 에드먼드 씨! 오늘도 마중을 나와주셨군요! 그런데 그 매끈한 턱선은 뭡니까? 풍성한 수염이 사라지니, 알에서 갓 부화한 아기 새 같군요.”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길게 찢어진 눈매와 뾰족한 코, 그리고 붉은빛이 도는 머리카락까지, 만약 남자의 얼굴 옆에 난 둥근 귀만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여우라고 착각할 법한 외모였다.


“제프, 자네의 그 방정맞은 입담은 안개도 가리지 못하는 모양이야.”

“하하, 그런가요?”

에드먼드가 엄한 표정으로 대꾸했지만, 제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는 웬디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렌즈를 세 개나 겹쳐 쓴 안경 너머에서 번뜩이는 눈동자가 그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렸다.


“에드먼드 씨. 드디어 인체 연성 마법에 성공한 겁니까?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생기 넘치는 아가씨를 낚아온 거죠?”

“웬디는 우리 산장의 직원일세. 무례하게 굴지 말게.”

제프는 운전석에서 뛰어내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 실례했습니다. 제 이름은 제프, 돈만 된다면 지옥 끝이라도 물건을 배달하는 방랑 상인이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 웬디.”

“반가워요.”

웬디가 마지못해 대답하자, 제프의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는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며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마가렛 여사님이 안개버섯볶음을 하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무언가 부족해요. 버섯의 미세한 흙 맛을 잡아줄 결정적인 조각이 빠졌어요.”

“결정적인 조각요?”

“뭔지 궁금한가요?”

제프는 능청스럽게 웬디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에드먼드의 싸늘한 시선에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게 어디에 있더라. 이쯤에 있을 텐데.”

제프의 회색 코트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주머니 안으로 팔꿈치까지 들어가는 걸 보아 생각보다 깊은 공간과 이어진 듯했다.


“자, 보시죠! 산장의 요리를 단숨에 일류 레스토랑 수준으로 끌어올려 줄 비장의 재료를!”

제프가 꺼낸 건 어린아이 주먹만 한 핑크색 소금 원석이었다.


“히말라야의 깊은 계곡, 극지의 동토층에서 채취한 소금입니다. 밤마다 요정들이 밟고 지나간 덕분에 은은한 단맛까지 배어들었죠. 이건 마가렛 여사님께 드리는 작은 서비스입니다.”

제프는 웬디의 손바닥 위에 소금을 톡 올려두었다. 소금 덩어리는 의외로 사람의 체온처럼 미지근했다. 신기한 듯 소금을 내려다보는 웬디의 귓가로 제프가 상체를 숙여 은밀하게 속삭였다.


“미스 웬디, 당신의 눈을 보니 아주 귀한 재고를 잔뜩 쌓아두고 계시는군요.”

“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웬디가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를 내보이며 말하자, 제프는 한층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말한 재고는 물건이 아닙니다. 혹시 당신의 기억을 제게 팔 생각이 없습니까?”

“제 기억이요?”

웬디가 당황하여 되묻자, 제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져 어딘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좋은 기억은 보석이 되지만, 나쁜 기억은 무거운 짐만 될 뿐이지요. 도시라는 기계 장치 속에서 작은 톱니바퀴로 살았던 이들은 대개 불쾌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쉼 없이 쏟아지는 전화 소리, 숨이 턱 막히는 지하철의 공기,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 스스로를 깎아내는 그 비참한 심정!”

제프는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제프의 유려한 말솜씨는 웬디의 마음을 조용히 파고들었다.


“웬디 씨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쌓여 있지 않습니까? 마치 유통기한을 까먹고 냉장고 속에서 썩는 식재료처럼요?”

그의 말은 웬디가 잊고 있던 불편한 기억들을 강제로 깨워냈다. 회사가 부도나기 전, 눈알이 뻑뻑해질 정도로 모니터를 쳐다보던 야근 날, 숫자 하나만 틀려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몰아세우는 상사, 딱딱하게 식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던 쓸쓸한 저녁까지.


“제게 그 기억을 넘기세요. 당신이 가진 재고들은 깨끗이 치워드리고, 그 대가로 기분이 차분해지는 향수를 선물로 드리죠. 그걸로 부족하면 즐거운 꿈만 꿀 수 있는 드림캐쳐까지 드리겠습니다. 고통은 사라지고 안락함만 남는 거래,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눈앞의 남자가 수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웬디는 잠깐 머뭇거렸다. 제프의 제안은 분명 달콤했다. 과거의 나쁜 기억만 깨끗하게 도려낼 수 있다면, 종종 찾아오는 지독한 패배감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러나 웬디는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코코의 목걸이를 쥐었다. 차가운 펜던트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그녀와 함께 보낸 치열한 시관과 그 끝에 나누었던 대화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니요. 제 기억은 팔지 않아요.”

“어째서죠?”

제프의 눈이 의외라는 듯 가늘어졌다. 웬디는 목걸이에서 손을 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기억들마저 내가 살아온 삶이니까요. 그리고 나쁜 기억이 언제까지나 고통으로 남으리라는 법도 없고요.”

“아쉽군요. 정말 좋은 물건이 나올 것 같았는데.”

제프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에드먼드가 한마디를 던졌다.


“거절당했으면 물건이나 꺼내게. 주문했던 마법석 말일세.”

“물론이죠, 에드먼드 씨. 하지만 알다시피 제 마차가 워낙 많은 물건을 싣고 있어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제프가 마차 문을 활짝 열자, 웬디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마차 내부는 산장의 창고처럼 내부가 훨씬 넓었지만,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천장에는 거꾸로 도는 시계들이 매달려 있고, 선반에 꽉 낀 주전자와 녹슨 칼, 정체불명의 약초들이 산더미처럼 뒤엉켜 있었다.


“흠, 마법석이 어디에 있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비명 지르는 주전자 옆에 있었는데?”

제프가 마차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휘젓기 시작하자, 쨍그랑 소리와 함께 기괴한 소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에드먼드는 이마를 탁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상인이라는 작자가 물건 위치도 모르면 어떡하나. 마차 밖에 있는 짐까지 다 뒤지면 안개가 다 걷히겠군.”

웬디는 마차의 입구에 서서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처음에는 무질서의 극치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선반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물건을 한꺼번에 담을 빈 상자도 보였다. 대략적인 견적을 잰 웬디는 에드먼드를 향해 말했다.


“에드먼드 씨, 마법석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실래요?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

“자네가 직접?”

“미스 웬디가 직접 말입니까?”

에드먼드에 이어, 제프 또한 마차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물었다.


“예전에 물류 창고에서 반품된 물건들을 분류한 적 있거든요. 느낌은 다르겠지만, 얼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만보면 은근히 재주가 많단 말이지.”

에드먼드가 묘한 시선을 보내며 꺼낸 말에, 웬디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스 웬디가 마차 내부를 맡아주시면, 제가 밖에서 찾아보죠!”

마차 주인인 제프는 과장된 웃음과 함께 흔쾌히 비켜주었다. 웬디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차 내부로 발을 들였다. 발밑의 낡은 책자가 밟히자마자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랐지만, 웬디는 경험을 되살려 마차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구분하고... 금속과 목재류는 이쪽으로... 제프 씨, 시계태엽 문양이 새겨진 모래시계는 뭔가요?”

“아, 그건 ‘거꾸로 흐르는 모래시계’입니다. 잘못 건드리면 하루 동안 갓난아이로 변할 수도 있으니, 꼭 옆에 있는 쇠집게로 옮기세요!”

간혹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보이면, 반드시 제프에게 용도를 물어본 후 분류했다. 그렇게 웬디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이 하나둘씩 질서를 되찾으면서 정신없이 울어대던 물건도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 웬디는 물건들도 편안함을 느끼는 건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꽤 지난 뒤, 마차 내부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 시간이 부족해 모든 물건을 정리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사람이 여유롭게 드나들 만한 통로가 생겼다. 그리고 웬디는 마침내 작은 상자 사이에 끼어 있던 정육각형의 원석을 찾아냈다.


“찾았어요! 에드먼드 씨가 말씀하신 마법석, 이거 맞죠?”

“정확하네!”

에드먼드는 마법석을 받아 들고 상태를 확인하는 사이, 마차 내부를 둘러본 제프가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나! 내 마차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미스 웬디. 당신은 혹시 정리의 요정인가요?”

“오늘 우리 직원에게 아주 큰 빚을 졌군. 그렇지 않나, 제프?”

“그럼요! 계산은 확실히 해야죠!”

에드먼드의 은근한 압박에도, 제프는 마차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코트 안쪽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잠시 후, 정교한 장식이 새겨진 은색 램프가 나타났다.


“이건 제 답례입니다. 별빛을 담은 램프입니다.”

“별빛이요?”

웬디는 투명한 램프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황금색 가루를 발견했다. 어둠을 밝히는 램프라기엔 가루들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웬디가 램프를 유심히 살펴보는 동안, 제프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이건 평범한 램프가 아닙니다. 짙은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존재들의 등대와 같죠. 만약 ‘별빛에 홀린 존재’들이 산장을 찾아오면, 꼭 이 램프를 사용하세요.”

“... 별빛에 홀린 존재?”

웬디가 조용히 되물었지만, 제프는 듣지 못했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폴짝 뛰어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간이 꽤 지체됐군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프는 방정맞은 웃음소리를 내며 마차에 달린 종을 울렸다. 커다란 마차는 금방 방향을 돌려 다시 안갯속으로 멀어졌다. 주황색 등불과 방울 소리가 잦아든 자리에는 안개가 기다렸다는 듯 빈자리를 메웠다. 제프가 남긴 말이 귓가를 맴돌았던 웬디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램프를 꽉 쥐었다. 에드먼드는 그런 웬디의 어깨에 가볍게 다독였다.


“고생했네. 안개가 더 짙어지기 전에 얼른 돌아가세.”

웬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개는 어느새 발등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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