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의 산장이 위치한 숲은 새벽마다 어디선가 희미한 안개가 새어 나와 숲 전체를 뒤덮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에드먼드는 언젠가 이런 모습을 두고 숲이 내뱉는 작은 한숨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고, 웬디는 시적인 그 표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어김없이 산장을 둘러싼 안개는 도저히 한숨 정도로 여길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무심코 창밖을 본 웬디는 우윳빛으로 물든 숲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누군가 숲 전체에 거대한 솜사탕을 풀어놓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산장 자체가 하늘로 치솟아 구름 한복판에 도착하기라도 한 걸까. 창문에 손을 대자, 평소보다 훨씬 축축하고 차가운 냉기가 얇은 유리를 통해 느껴졌다. 도시에서의 회색빛 먼지나 숨이 턱 막히는 공장 매연과는 달랐지만, 어딘가 꺼림직한 기분이 드는 건 매한가지였다.
웬디는 눈매를 좁히고 바깥을 자세히 살피려 애썼지만, 초록빛으로 싱그럽게 빛나는 잎사귀도, 붉은 꽃망울이 피어나던 화초도 모두 안개에 잡아먹혀 희미한 실루엣조차 남기지 않았다. 모든 색채가 사라지고 순백의 정적만 남은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웬디는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평소라면 집무실에 차를 마시고 있을 에드먼드가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에 서 있었다.
“에드먼드 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좋은 아침이군, 웬디.”
에드먼드는 소금 같은 하얀 가루를 창틀마다 정성스레 바르고 있었다. 웬디는 그의 기이한 행동에 앞서 창밖을 가리켰다.
“오늘 숲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바깥이 전혀 보이질 않네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네.”
에드먼드는 가루가 든 주머니를 가볍게 털어내며 말했다. 그런 후 창문을 활짝 열고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안개는 열린 창문으로 밀려들려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듯 창가 주변만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하얀 가루는 안개의 침입을 막아내는 모양이었다.
“이건 말하자면 숲이 자기 집을 청소하는 과정이라네.”
“청소요?”
웬디는 복도 한복판에서 스스로 바닥을 쓸고 있는 빗자루를 흘끗 쳐다봤다.
“산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그들이 놓고 간 부정적인 감정들이 먼지처럼 쌓인다네.”
“응접실 벽난로에 손님의 근심을 태우고, 호숫물로 남은 감정을 씻어내도 그런가요?”
웬디의 물음에 에드먼드는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맞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석구석에 밴 찌꺼기까지 치울 수 없지. 그래서 숲의 정령들이 주기적으로 마력을 뿜어내 묵은 때를 씻어내는 거라네.”
“이 안개들이 정령들이 뿜어낸 마력이라는 거네요.”
웬디는 그제야 새벽안개의 비밀을 깨달았다. 호수와 제법 떨어진 숲에서도 안개가 끼길래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정령들이 일으키는 오묘한 현상이었다.
“그러면 산장에 해가 되는 건 전혀 없나요?”
“그랬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에드먼드는 벌써 귀찮은 일이 생기기라도 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안개가 짙은 날에는 숲의 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네. 그 틈을 타 낯선 존재들이 흘러 들어오거나 불순한 목적을 가진 놈들이 몰래 숲에 드나들지.”
그 말에 웬디는 처음 숲에 당도했을 무렵, 산장 입구에서 봤던 표지판이 떠올랐다. 정갈한 필체와 어울리지 않는 조잡한 그림이 공존하는 표지판 아래에는 빨간 글씨로 된 경고문이 있었다.
‘해당 숲은 결계석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사유지로 초대장 없이 무단출입을 금합니다. 만약 초대장 없이 우연히 숲에 흘러들어왔을 경우, 성급하게 되돌아가지 마시고 곧바로 언덕 위의 본관으로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숲의 안개에 휩쓸릴 경우, 공간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 구조 작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초대장 없이 어떻게 숲에 도착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오늘과 같은 상황을 상정한 경고문인 듯했다. 그 말은 공간의 틈새에 빨려 들어간다는 말도 결코 겁주기용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웬디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안개를 바라보던 에드먼드가 뒤늦게 생각났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오늘 밤에는 절대 이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게. 밤이 되면 숲에서 씻겨 나온 부정적인 감정과 안개가 완전히 뒤섞이거든. 그 안개를 오래 들이마시면 감정에 오염되고 말 걸세.”
“오염된다고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우울함에 잠식되거나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경우를 말한다네. 심각한 경우에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네.”
“상상만 해도 무섭네요.”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면 과연 온전한 ‘나’로고 부를 수 있을까. 불길한 생각에 몸서리치던 웬디는 팔등을 문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창틀에 발린 하얀 가루 덕분에 안개가 본관으로 들어오지 못했지만, 안개 근처에는 손끝조차 대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낮에는 그저 평범한 안개와 다를 바 없다네.”
에드먼드는 안심하라는 듯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안개를 부드럽게 휘저었다. 그러자 우윳빛 안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의 손가락 사이를 휘감다 흩어졌다. 하지만 웬디는 여전히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해 창문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불순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숲에 드나든다고 했잖아요? 이 숲에 무슨 목적을 가지고 오는 건가요?”
“보통은 두 부류로 나뉜다네.”
에드먼드는 손가락 끝에 맺힌 물기를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숲이 내뿜는 진한 마력에 취해 경계를 넘는 자들이지. 하지만 이런 녀석들은 발을 들이기 전에 헨리가 눈치 빠르게 쫓아내니 문제 될 건 없다네. 문제는 소위 잡상인이라 불리는 놈들이지.”
“잡상인이요?”
“별채 손님들에게 이상한 물건을 팔려고 혈안이 된 놈들이라네. 가끔 산장에 필요한 약초를 들고 오는 상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숲을 망치는 잡동사니만 들고 오지.”
에드먼드는 끈질기게 발을 들이미는 상인들이 떠올랐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그런 이들은 강경하게 축객령을 내리지 않으면 해가 질 때까지 숲을 배회하며 소란을 피웠다.
“이제 가서 아침이나 들게나. 오늘 같은 날은 마가렛이 평소에 보기 힘든 메뉴를 선보이곤 하니까.”
웬디는 잡상인이 과연 어떤 물건을 팔기에 에드먼드의 반응이 저럴까 궁금해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에드먼드의 말대로, 오늘의 아침 식사도 평소와 사뭇 달랐다. 도마 위에는 보랏빛을 내뿜는 버섯이 한입 크기로 다듬어져 있었고, 냄비 안에는 블루베리를 닮은 알록달록한 열매들이 보글보글 끓는 중이었다.
“마가렛, 이것들은 다 뭐예요? 전부 처음 보는 재료네요.”
웬디가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버섯을 보며 물었다.
“이건 안개버섯이야. 오늘처럼 안개가 끼는 날에 호숫가 근처에서 돋아나는 희귀한 식재료지. 마침 헨리가 이것들을 따왔길래 버섯볶음을 만들고 있단다.”
마가렛은 결대로 찢은 버섯을 프라이팬에 넣었다. 이어 올리브 오일과 소금, 그리고 후추와 함께 강한 불에 볶기 시작하자, 보라색 연기와 함께 진한 버섯 향이 주방에 풍겼다.
“냄비 안에 있는 열매들은요?”
“이건 퀴리 열매란다. 크기는 작아도 시나몬보다 몇 배는 깊고 강한 향을 품었지.”
웬디는 시나몬이라는 말에 냄비 위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숨을 들이켰다. 마가렛의 설명처럼 고소한 시나몬 향이 가득 올라왔다.
“이것도 숲에서 직접 따온 건가요?”
“이건 이 숲에서 나지 않는 재료란야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걸 오랜만에 꺼냈을 뿐이야.”
숲에서 나지 않는 열매라는 말에, 문득 웬디의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마가렛은 식재료를 어디에서 가져오는 거예요? 출근하실 때 항상 빈손이시잖아요.”
산장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웬디와 달리, 마가렛은 숲 밖에 집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했다. 그런데도 주방의 냉장고에는 고기나 우유, 달걀과 같은 신선한 재료가 끊이지 않았다. 웬디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뒤로 뺐다.
“혹시 마가렛도 에드먼드 씨처럼 마법사인 건 아니죠? 지팡이를 휘두르면 갑자기 냉장고에 재료가 나타난다거나.”
“후후, 그럴 리가 있겠니.”
마가렛은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낮게 웃었다.
“산장에서 쓰이는 식재료는 에디가 매일 공수해 온단다. 필요한 재료를 미리 말해두면 에디가 다음 날 냉장고를 채워주지.”
“에드먼드 씨요? 하지만 에드먼드 씨는 산장 밖으로 나간 적이 없으신걸요?”
펠에게 듣기로 에드먼드는 지난 몇 년간 숲의 결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가 남들 몰래 새벽마다 외출하거나 숲 어딘가에 소와 닭을 기르는 비밀 목장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웬디의 엉뚱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마가렛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이 본관에서 우리 둘이 못 들어가는 장소가 하나 있지 않니?”
“저희가 못 들어가는 곳이요?”
본관의 구조를 더듬어 가던 웬디는 곧바로 3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떠올렸다. 며칠 전, 호기심에 계단 한 칸을 딛자마자 어디선가 싸늘한 냉기와 귀를 울릴 정도의 칼바람이 불어와, 황급히 발을 뺐던 기억이 있었다.
“설마 마법사들만 올라갈 수 있다는 3층이요? 에이, 그 좁은 곳에 어떻게 그 많은 식재료가 있겠어요. 다른 공간과 이어진 것도 아니고.”
“이제 너도 산장의 마법에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구나.”
농담이라 생각했던 웬디는 돌아오는 마가렛의 칭찬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 정말로 3층이 다른 공간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단다. 에디뿐만 아니라 많은 마법사가 자신만의 다락방을 통로로 삼지.”
“대체 어디로 연결되어 있길래 그래요?”
“압살드라.”
마가렛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압살드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마법사들의 나라란다.”
마가렛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압살드라는 표면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하나의 도시에 불과했다. 과거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났던 마법사들이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마법 세계의 질서를 확립했고,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지며 지금의 도시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 규모의 도시라면 어떻게 세상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거죠?”
“마법사들조차 압살드라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란다. 산장의 다락방처럼, 허락된 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비밀 통로로만 도시에 발을 들일 수 있지. 에디가 가져오는 식재료나 코코 씨의 육각관 같은 것들도 전부 압살드라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들이란다.”
다양한 식자재와 마법 도구, 심지어 목수나 대장장이 같은 장인까지, 모든 물자가 비밀스러운 도시에서 이곳으로 공수된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가렛은 어떻게 그곳을 그렇게 잘 아세요? 에드먼드 씨가 알려준 건가요?”
“알 수밖에 없지. 나 또한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네?”
웬디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