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8일~19일
스피어 공연이 끝난 후에는 인근 호텔의 분수 쇼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분수 쇼가 진행되는 호텔까지는 도보로 약 25분, 자동차로 6분 거리였다. 이미 하루 걸음 수 2만 5천 보를 훌쩍 넘긴 우리는 당연히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도착지 근처에 다다르니, 이미 해당 호텔 근처는 쇼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택시 기사 청년은 사람이 드문 길에 우리를 내려주며, 여기서부터 살살 걸어 올라가서 쇼를 관람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과연 그 길은 좋은 길이긴 했다. 한 5m만 걸어올라 가면, 명당자리에서 쇼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땡큐! 땡큐!'를 외치며 택시에서 내린 순간, 난데없이 호텔의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택시 기사 청년에게 여기서 사람이 내리면 안 되니 다시 손님을 싣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뜻밖의 상황에 친구와 나는 멍-하니 있었고, 택시 기사 청년과 호텔 경비원은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손님도 내렸겠다 급기야 막무가내로 출발하려는 택시 앞을 호텔 경비원이 가로막으며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아…. 어떡하지……. 그냥 다시 타야 하나 싶은 순간 기사 청년이 '부웅-!' 하며 출발해 버렸다. 온몸으로 막아서던 호텔 경비원은 거의 차에 치일 뻔했다. 짧은 찰나에 우리도 소리를 지르고, 호텔 경비원도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서 몸을 피했다. 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살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당황한 호텔 경비원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후, 우리가 여기에 내려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우리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왜 항상 사과 포지션을 맡게 되는 것인지!) 호텔 경비원은 다행히도 껄껄껄 웃으며, 너희가 사과할 일이 아니니 나의 안내에 따라 안전한 곳에서 쇼를 관람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푸근한 인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경비원을 따라 '준명당' 자리에서 분수 쇼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단한 쇼는 아니었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분수 쇼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라서 그런지 분수 스케일은 엄청나게 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각종 캐럴 메들리로 분수 쇼를 진행했는데, 높이도 올라가는 물결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기 바빴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이전에 말한 바와 달리 라스베이거스의 분수 쇼는 꽤 대단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쇼가 끝난 후에는 터덜터덜 걸어서 호텔로 향했다. 택시를 탈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택시 기사 청년의 이른바 '치이든가 비키든가' 급발진 운전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세~게 왔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도 꽤나 아름다웠던 분수 쇼에 대한 후기보다는, 택시 기사의 행위에 대한 열렬한 토론을 벌이며 걸어갔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차로 치려 들면 안 되지, 택시 기사 양반!!) 그리고 호텔에 도착한 후에는 빛의 속도로 씻고 바로 잠들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단 한순간의 꿈조차 꾸지 않고 숙면했던 그런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이 될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입국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여전히 시차 적응 중이어서 또다시 새벽같이 눈이 떠졌는데, 세상에나! 이토록 귀여운 표정의 노른자가 된 스피어가 라스베이거스의 아침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첫날엔 아무리 기다려도 반구 전체가 노른자가 된 영상은 한 번도 틀어 주지 않더니 이른 아침 시간에서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시간까지는 광고 영상이 스피어를 차지하느라 노른자 스피어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 5~6시 사이에 일어난 부지런한 사람만이 저 풍경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시차부적응의 신이시여! 저에게 반강제 미라클모닝을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참이나 노른자 스피어와의 멍 때리기 시간을 가진 후에는 드디어 광고가 스멀스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먼 곳으로 이동했는데, 저 멀리 두터운 모래바람인지 뭔지를 보고 깨달았다. 여기는 네바다 주이며 네바다 주는 온통 사막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 어쩐지 공기가 너무 건조하다 했더니만.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독자분들이여! 겨울 라스베이거스 여행 때는 특히나 미니 가습기를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친구의 기상으로 고독의 미라클 모닝이 끝난 후에는 조식을 왕창 먹었고 호텔에서 푹 쉬었다. 체크아웃 전에는 마지막 발악으로, 빵빵한 배를 두드리는 한 마리 해달이 되어 수영장까지 야무지게 즐겼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저녁 여섯 시였는데, 갑자기 두 시간이 연착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이윽고 도착한 또 하나의 문자는, 우리의 비행기가 밤 열 시까지 연착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아! 어쩐지 웬일로 평탄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니만. 무려 네 시간 연착된 비행 스케줄 덕에 우리는 ‘오히려 좋아’ 정신으로 카지노도 가고, 야경도 구경하며 라스베이거스의 밤이나 좀 더 즐기기로 했다. 다음 날 이른 시간의 출근을 앞두고도 스트레스 안 받으며 함께 즐겨 준 나의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라스베이거스는 환락의 도시답게 각종 쇼와 카지노가 가득했는데, 카지노는 정말이지 인상 깊었다. 긍정적인 방향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연하게도 카지노에는 낮과 밤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에 내려가나 밤에 내려가나 언제나 똑같은 광경을 유지 중인데, 하루의 시간과는 동떨어진 채 거의 상주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특히 현란하게 돌아가는 화면을 보며 고장 난 로봇 마냥 버튼만 눌러대는 텅 빈 눈동자의 사람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기괴하게 느껴졌다. 재미 삼아해 보는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표정 없이 건조하게 계속해서 돈을 넣고 버튼만 연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다들 이른바 ‘한탕’의 경험이 있어서 도박을 놓지 못하는 걸까? 라스베이거스 입국 첫날 카지노를 구경하다 재미 삼아해 본 룰렛 게임에서, 삼분만에 만원을 잃는 비극을 나에게 선사한 카지노의 신에게 절로 감사하게 되었다. 카지노의 신이시여! 그날 최저임금을 너무나 빠른 시간에 잃어 극도로 흥분한 나머지 당신을 무지하게 욕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꾸벅!
카지노 밖으로 나오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공항 가기 전까지 야무지게 라스베이거스의 야경까지 카메라에 담은 후, 우리는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여행 속 여행이라 재미있었고 처음 만나는 자극들이 가득했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또 다른 여행 중이며 카지노의 성지 마카오로의 입국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오늘도 카지노를 가 볼 예정인데(물론 나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을 예정이다. 최저임금을 또 날릴 순 없기 때문이다!), 과연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기괴함을 오늘도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우당탕탕 여행 전문가가 다시 돌아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하다면,
다음 화를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