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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떡 May 31. 2024

광란의 라스베이거스 (2)

2023년 12월 18일

호텔에 입성한 후에는 먼저 체크인을 했다. 대부분 호텔의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 정도인데, 혹시 얼리 체크인이 가능할까 싶어 리셉션에 문의를 했더니 우리의 '리사' 언니가 흔쾌히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체크인 과정에서는 또다시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할 여러 가지 옵션들이 있었는데, 리사 언니는 우리에게 추가금을 조금 더 내면 숙박기간 내내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레이트 체크아웃도 가능하다고 했다. 짧고 굵은 라스베이거스 여행이지만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거의 저녁 시간이기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해당 옵션을 바로 결제했다. 

숙박 어플에서 예약할 때는 1박 가격이 25만 원 정도였는데, 도시세 및 리사 언니 추천 옵션 등 여러 가지를 더하니 1박 가격이 거의 50만 원에 육박하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환락의 도시에서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모든 편의를 제공할 리는 없지…. 뭔가 속은 기분에 분하다고 생각하던 중 리사 언니로부터 들은 즐거운 소식은, 10분 안에 빨리 라운지로 올라가면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크인 시간이 거의 오전 8시 40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침은 대충 때우려고 했는데, 훌륭한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체크인이 끝난 후 나는 들짐승의 그것과 같은 속도로 라운지로 향했다. 


내 인생 최고로 맛있었던 식빵


조식 메뉴는 단출했지만 인상 깊었다. 라운지 조식이라 그런지 국물 요리 등은 없었고, 빵과 떡갈비 비스무리한 패티, 계란 요리 등이 가득했다. 새벽부터 움직여서 배가 너무 고팠기에 닥치는 대로 그릇에 담았다. 그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저 식빵이다. 일반적인 식빵의 맛과는 다른 짙고 농후한 우유의 맛. 저 빵을 살짝 구워 따뜻할 때 버터까지 발라 먹었으니 아직까지도 안 잊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나게 아침을 챙겨 먹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를 구경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치안은 정말 좋지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리고 호텔 화장실에서 보았던 인신매매를 주의하라는 문구가 강렬해서인지 멀리는 나가지 않기로 결정한 터였다. 


인신매매를 주의하라는 문구. 오 마이갓!


그래서 바깥에는 정말 잠시 있었고, 주로 이 호텔 저 호텔 다니며 호텔 내부 시설 및 상점가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뭐야.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한다는 것이 고작 호텔 구경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다음 사진을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는 특이하게도 대형 호텔들이 특정 도시의 컨셉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중 가장 압권이었던 곳은 바로 내가 묵었던 호텔이었다. 공항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올 땐 잘 몰랐는데 배를 채운 후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니 세상에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그대로 옮겨 놓은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10여 년 만에 눈앞에서 다시 만나는 베네치아의 풍경에 입을 떡 벌리고 셔터를 마구 눌렀다. 베네치아보다 물도 더 맑고 건축물도 깔끔해서인지 "본토보다 훨씬 낫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거기다가 무심하게 지나가는 곤돌라는 또 어쩔 것인지! 도대체 어디서 무슨 돈이 이렇게나 많이 생겨서 도시 하나를 통째로 옮겨 놓았는지, 요 호텔의 건물주님이 대단히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건물 밖도 충격의 도가니였지만, 건물 내부는 더 놀라웠다. 아니, 실내에 하늘까지 옮겨 놓을 일인가? 하늘은 물론이거니와 곤돌라가 동동 떠다니는 운하와 유럽 감성 가득한 건축물까지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습들을 보며 새삼 자본의 위력을 깨달았다. 

세 시간 남짓의 구경이 끝나고는 호텔 방에 들러 잠시 휴식했다. 새로운 자극들에 의한 도파민 과다와 아침부터 울린 만보계 어플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눈도 붙이고 간단한 샤워도 하고 재정비의 시간을 마친 후 우리는 드디어 라스베이거스의 상징! '스피어(Sphere)'로 향했다!



스피어는 2023년 9월에 개장한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공연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LED스크린이 건물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설치된 공간이다. 외부 화면이 정말 초단위로 바뀌어 밖에서만 봐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평소 쉬는 시간마다 각종 SNS를 섭렵하는 나는, 우연히 스피어 내부 공연장 영상을 보고는 '아! 여기는 꼭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 세 달 전부터 내부 티켓(그것도 명당자리!)을 예매해 둔 상태였다. 여러분. SNS는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뜨거운 박수를! 짝짝짝!


입장까지는 여유로운 시간을 두고 도착했건만 개장 1년도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공간답게 예약자 입장 줄마저 어마무시하게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맛집이든 뭐든 줄 서는 건 너무너무 싫지만 별 수 있나. 왔으니, 그리고 돈 냈으니 반드시 가야지. 그렇게 약 30분가량을 대기한 후 드디어 스피어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피어에서는 여러 가지 공연이 열리는데, 내가 예매한 것은 지구 이곳저곳의 아름다운 영상을 초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지구에서 온 엽서(Postcard from earth)'라는 공연이었다. 말이 공연이지 사람이 와서 뭔가를 하는 건 전혀 아니고, 그냥 영화관처럼 영상을 틀어줄 뿐이다. 하지만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영화관을 생각하신다면 정말 곤란합니다. 이건… 정말이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크린이라구요!



공연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는데, 시간 맞춰 입장하니 막상 본 공연은 5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했다.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5시 30분이라고 적으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 자유시간 한 시간 동안 스피어 이곳저곳을 탐방하라는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이렇게 구성한 듯했다. 

일단 배가 고팠던 나는 스낵바로 향했다. 자그마한, 그리고 스피어 내부에서 유일한 이 스낵바는 공연 전에 뭔가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또다시 지옥의 줄 서기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메뉴판을 훑던 찰나! 나의 눈을 띠~용하고 뜨게 만드는 글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Pork Belly Bulgogi Sandwich'였다. 

우리나라 음식이 이런 이역만리에서도, 심지어 메뉴조차 몇 개 없는 공간에서 정식 메뉴로 팔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엔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가슴으로는 눈물이 흘렀다. 친구와 나는 국기에 대한 무형의 경례를 마친 후 망설임 없이 불고기 샌드위치와 참치 라이스볼을 주문했고 공연 시간까지 우리나라의 위상에 대해 토론하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5시 30분이 되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종료 후의 감동에 흐느끼며 찍은 사진들(그런 것치고는 초점이 잘 맞았다.)


내 글을 읽고 있을 몇 안 되는 독자분들께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언젠가 라스베이거스에 가게 된다면, 스피어 공연은 꼭 보고 오시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딘가에 살 듯한 대자연 속의 동물들을 눈에 가득 담다가, 1초 만에 히말라야 산맥으로 이동해서 설산의 절경에 취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현재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가 유일하다!) 더불어 올림픽 경기장 수준의 객석 규모에, 세계 각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의 흥분 어린 함성소리까지 더해지니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특히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이러한 자연을 초대형 스크린으로 우리 눈앞에 구현해 낸 인간의 경이로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23년 12월 18일 라스베이거스 스피어에서의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스피어 공연이 끝난 후에는 인근 호텔의 아름다운 야경과 분수 쇼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인근 호텔까지 걷기에는 왕복 40분이 걸리고, 택시를 타면 왕복 15분의 거리였기에 주저 않고 택시를 불렀다. 그러나 우리가 탄 택시는 이윽고 격렬한 싸움의 현장에 휘말리게 되었으니…….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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