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4일 목요일
인생의 1/3을 영어 공부에 투자했건만 정작 미국 땅을 밟아 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한 나.
베스트프랜드의 샌프란시스코 발령을 빌미로 드디어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보기로 했다.
불법 체류자가 하도 많은 나라이니만큼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도 입국 심사관이 이것저것 까다롭게 군다는 말에 겁먹기도 했고, 낯선 땅에서 친구가 사는 집까지 혼자 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의 요즘 치안은 그리 좋지 않다는 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미지 탐험에 설레는 발걸음으로 총 총 총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는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바로 ‘리치’와 ‘몽구’! 이들은 유기견으로, 임시 보호 가정에서 지내다가 미국과의 인연이 닿아 입양을 가게 된 처지였다. 언젠가 미국을 가게 된다면 유기견 이동 봉사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출국 날짜가 정해진 날부터 이동 봉사 업체에 연락했고, 그중 한 업체에서 빠른 처리를 도와주신 덕분에 리치와 몽구를 미국으로 데려갈 수 있게 되었다.
‘유기견 해외 이동 봉사’라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막상 그 절차는 정말 간단했다. 내 이름으로 구입한 비행기 티켓에 수하물만 추가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검역 등의 절차들이 있지만 복잡한 것은 모두 업체에서 알아서 해 주시니 정말 편리했다. 좋은 일 한다는 기분까지 덤으로 가져갈 수 있으니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이 있다면 꼭 해보길 추천한다.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한 후 뜻밖의 난기류 이슈로 무려 13시간에 가까운 비행 끝에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해안 도시답게 푸른 바다 인근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행간 계절은 겨울이라 아름다운 바다에 몸을 담그기는 어렵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안전하게 도착했음에 그저 감사하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한 후는 정신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겪는 미국의 입국 심사는 대단했다. ‘무슨 이런 것까지 물어?’싶은 수준의 디테일한 질문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아무리 영어 사교육 받아봤자 네이티브 스피커 앞에서는 말짱 도루묵임을 깨달았다. 리딩과 리스닝에 투자한 시간의 반만 스피킹에 투자할걸. 흑흑.) 마지막 질문은 인터넷 후기에서 숱하게 보았던 ’ 여행 기간 중 머무르는 장소‘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자신 있게 친구의 집에서 머무른다고 대답했고, 입국 심사관의 표정은 뒤틀렸다. 아뿔싸! 이 사람에게는 나의 대답이 ‘추후 소재지 불명’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후 입국 심사관은 친구의 직업과 회사를 물어댔지만 회계사라는 단어를 영어로 알 턱이 있겠나! (나중에
찾아보니 Accountant라는 간단한 단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Sending money to company.(회사에 돈을 보내요.)"라고 대답했다. 실은 회계사가 정확히 뭘 하는 직종인지에 대해서는 한국어로도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저 돈을 만지고 어쩌고 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니 단순한 사고 회로에 의해 저렇게 대답한 것이다. 이것저것 입력하던 입국 심사관은 내 대답을 듣고는 잠시 멈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참고로 내가 심사받던 입국심사대의 위치는, 심사에 통과하지 못한 비운의 여행객들이 끌려간다는 ‘Secondary room' 바로 앞이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를 따라갔다.
아! 여행 블로그에서 말만 듣던 세컨더리 룸에 내가 결국은 끌려가고 마는구나!
하지만 심각한 표정의 입국 심사관은 다행히도 세컨더리 룸이 아닌 바로 옆의 다른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멀쩡하던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휴----우!!!
다행히 ‘추후 소재지 불명’에 대해서는 서로 오해를 잘 풀고 무사히 심사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입국장으로 들어가니, ‘리치’와 ‘몽구’의 입양인 가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에게 새 가족이 될 선한 인상의 미국인 부부는 한국의 강아지들을 만나기 위해 무려 6개월을 기다렸다고 말하며, 흔쾌히 이동 봉사를 해준 나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며 멋쩍게 웃고는 주차장으로 이동해 새 가족의 차에 강아지들을 실어 주며, ‘이제 어떻게 친구네 집으로 가나’라는 막막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로컬인 그들에게 구글맵을 보여주며 혹시 요 동네로 가려면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그들은 위치를 확인하고서 밝은 표정으로 웃고는 ”우리가 태워 줄게. 우리 동네 바로 옆이야. “라고 말했다. 아니? 입국하자마자 이런 친절을 경험하다니! 역시 좋은 일은 또 다른 좋은 일을 낳는다고 생각하던 나는 그저 “땡큐! 땡큐!”밖에 할 수 없는 짧은 영어에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며 차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부터 한 30분을 달렸을까. 드디어 도착한 친구네 동네는 차 안에서 본 풍경(약에 절은 좀비들이 거주하는 텐트촌이 즐비했다. 정말로...)과는 다르게 정말이지 깔끔했다.
친구를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배가 고파 뭐라도 사러 잠시 나가기로 했다. 애석하게도 친구는 재택근무 중이어서 나와 함께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홀로서기 동네탐험을 해보기로 했다.
친구의 공간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지하 도보를 건너 3분 만에 도착한다. 둘째, 골목을 빙 둘러 7분 만에 도착한다. 나는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당연히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고, 룰루랄라 저놈의 지하 도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생전 처음 맡는 역한 냄새에 후각을 영원히 잃는 줄 알았다.
지하 도보는 생각보다 어두웠고, 길었다. 정체 모를 액체가 낭자했고 도대체가 무슨 냄새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냄새가 가득했다. 이거 불쾌하다는 느낌이 팍 온 순간! 지하보도 반대쪽을 향해 전력질주했고 나는 한참이나 길에 서서 우에엑 우에엑 헛구역질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바로 마리화나의 냄새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암모니아 냄새라고 한다. 그냥 암모니아가 아니라 정말 농축되고.. 숙성되고... 뭐랄까 아무튼 모르겠는데 살면서 두 번 다시 맡고 싶지 않은 그런 냄새였다.
어릴 때부터 미국은 분명히 대단한 선진국이라고 여기저기서 배웠는데 이 지하 도보에서의 냄새를 맡고서야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절실히 깨달았달까. 아니, 선진국이라고? 사람 사는 동네에서 이런 미친 냄새가 나는데 말이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미국에서의 첫 하루는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금방 끝났다. 장시간의 비행과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냄새 공격이라는 카운터 펀치에 체력적으로 상당히 지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된다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