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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May 30. 2016

구의제문(九宜祭文)

네 육개장을 보고 쓰다


육개장은 개장국에서 비롯한 것으로 육(肉), 즉 소고기를 써서 개장국을 흉내 냈다는 말에서 그 이름을 찾는다. 본디 우리나라는 개고기를 먹는 것은 천한 습성이라 일컬었으니, 도가(道家)는 개는 의리가 있는 짐승이라하여 그 고기를 꺼렸으며 불가(佛家)는 개고기를 먹는 것은 자신의 전생을 먹는 것이라 피했으며 유가(儒家)는 공자가 수레를 덮던 낡은 천으로 개를 묻어주었다 하여 제사에 감히 그 고기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고기와 채소를 썰어 맵게 볶아 국물을 우린 것이 맛이 좋으니, 너나 할 것 없이 먹기를 바랐고, 양반들은 천한 고기를 귀한 고기로 바꾼 것으로 체면을 차리려 들었다.    


월나라의 구천은 강병을 만들기 위해 사내아이를 낳는 집에 술 두 병과 개고기를 주었다 한다. 우리나라의 군은 그 오랑캐의 습속을 바꾸어 개장국 대신 육개장을 주어 병사들에게 먹이는 것을 일삼는다. 멀겋게 끓인 것은 주로 저녁에 밥과 함께 주며, 사발면으로 나오는 것은 부식으로 나누어 준다.

어느 장정이 이 사발면 하나로 배가 차랴.

어느 장정이 이 육개장 사발면 하나로 배가 차겠냐만, 밤에 당직을 서고나면 벌건 눈으로 이것을 불려 먹는 것이 습관이 된다. 이것을 만드는 회사로는 농심이 있고 삼양이 있고 팔도가 있는데 내가 있던 군은 농심을 상등품으로 쳤고 팔도를 하등품으로 쳤다. 병들은 시부렁리면서도 팔도 사발면을 먹었고, 간부들은 제 돈으로 산 참깨라면을 먹었으니 야밤에 라면 끓이는 냄새만으로도 병과 간부가 나뉘었다. 그것을 끓이는 냄새가 싫은 병들은 서로 모여 앉아 육개장을 부수어 먹었고, 계급이 낮아 씹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병들은 또 담요 속에서 침으로 녹여 먹었는데, 서로 말하기를 이건 개도 먹지 않을 것으로 사회에 나가면 돈 주고 사먹을 일은 없을 것이라 하였다.

사진 출처: 광진 소방서

너는 전철역 안전문을 고치다가 사고를 당하였다. 네 나이가 고작 열아홉 살이니 사내라 부르기도 부끄럽다. 그러나 네 가방어느 사내 부끄러울만큼 묵직하였을 것이다. 네 가방에는 두 개의 드라이버와 니퍼, 수 개의 스패너와 안정장갑과 안내문이 있었고, 뜯지 않은 나무젓가락과 수저, 그리고 육개장 사발면이 있었다.

네 가방은 여느 사내의 가방만큼이나 묵직하였을 게다.

그 육개장 사발면은 점심으로 준 것이라 하였다. 네가 죽은 시간이 오후 다섯 시 십칠 분이다. 너는 그 보잘 것 없는 것도 먹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너는 용역이었다 하고, 비정규직이었다 하고, 2년을 참으면 정규직이 된다고 제 아버지에게 종종 말했다 하고, 죽기 전 주에는 노조와 함께 길거리에서 비정규직 시위를 했다 하고, 죽은 날은 생일 전날이었다 하고, 죽은 당일 아침에는 동생에게 용돈을 주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마음이 가벼운 말을 한 문장도 쓸 수 없으니, 내가 살아있는 것이 도리어 참혹하다.


죽은 이의 장례식장에는 육개장이 끓고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끓는 육개장은 사발면이 아닌, 진짜 육개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 육개장은 또 어느 용역이 기르고 키운 것을 또 어느 용역이 나르고 또 어느 용역이 여 죽은 용역의 앞에  둔 것이. 하여 서럽고 서러운 것인데, 누가 감히 그 서러운 것을 한 술 뜰 수 있을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다. 탓할 것이 너무도 많 누구를 탓하지도 못한다. 나는 그저 서러울 뿐이니 너를 조문하여 이 짧은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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