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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Apr 12. 2022

서묘설(犀卯說): 코뿔소와 토끼의 이야기

犀는 코뿔소요, 卯는 토끼를 이른다

 예로부터 내가 짐승의 일에 더러 밝은 것을 사람들이 알고 묻거나 놀리는 일이 많았다. 

 박생(生)이 어느 날 내게 묻기를, 

 “선생은 서준*이 무슨 동물인지 아십니까?”

 하였다. 내가 웃으며,

 “서준은 곧 무소를 말하는데, 그 암컷은 시(兕)라고 하네. 시 중 몸이 푸른 것은 노자(老子)가 타고 다닌 신성한 동물이니, 호랑이도 감히 해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들었네. 불가(佛家)에서 이르기를, 부처가 무소를 두고 두려움 없는 동물이라 하였으니, 힘으로 따지자면, 코끼리(象)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지.”

 하고 답하였다. 이어 내가 박생에게 묻기를,

 “그렇다면 이 서준과 토끼 중 어느 동물이 잔혹하겠는가?”

 하니, 박생이 웃으며,

 “선생의 말을 들으니, 토끼란 놈은 천 마리를 모아도 서준을 당해낼 재간이 없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내가,

 “옛글에 이르기를 서준이 암컷을 두고 서로 싸울 때에는, 서른 장(丈)*이나 두고 서로 떨어졌다가 서로를 향해 뿔을 겨누고 맹렬히 달려드는데, 결코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다는군. 서준의 뿔은 코끼리의 가죽도 뚫는 법이니, 서로 결사(決死)하여 다투면 함께 죽음에 이르는 일임을 아는 것이야. 그러니 암컷을 두고 다툴 때에도 서로의 용기만 가릴 뿐, 서로를 죽음에 이르게는 하지 않는 것이지.

 그러나 토끼라는 놈은, 제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니, 암컷을 두고 다툴 때에도, 승리한 놈은 그 승리에 취해 패한 놈을 쫓아가 끝까지 물어뜯고 할퀴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만드니 참혹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네.”

 하였다. 이에 박생이 말하기를,  

 “과연 그렇습니다. 여항(閭巷)*에서 일어나는 싸움 중 칼과 주먹으로 일어나는 싸움은 보기 드뭅니다. 그러나 말과 혀로 인하여 일어나는 싸움은 반드시 있는 법이요, 곧 사람이 상하고 다치는 일도 이로 인해 일어납니다. 또한 말과 혀로 인한 상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속으로 곪아 들어간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크며, 약을 달여 먹고 붕대를 감싸 낫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칼과 주먹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쉽게 아나, 말과 혀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쉽게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과 혀로 인한 폐해 또한 주먹과 칼로 인한 폐해에 못지 않게 참혹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였는데, 과연 그 말의 뜻이 옳았다. 그 뜻을 기억하기 위해 짧게 적는다.


                                                                                                   임인년, 적다.

           

* 서준(犀樽): ‘서’는 코뿔소, 곧 무소를 이르는 말이며, ‘서준’은 코뿔소 모양의 제기를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서’라 하지 않고 ‘서준’이라 한 것은 원문의 오기로 보인다.

* 장(丈): 어른 한 명의 키. 

* 여항(閭巷): 문이 늘어선 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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