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매사냥
7. 매사냥
갈대밭이 시시각각 움직인다. 어디서 주먹만한 돌이 갈대밭위로 치솟더니 하늘을 날았다. 아이코,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갈대밭이 더욱 바삐 움직였다. 재증걸루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고구려 병사가 휘두른 장대낫을 피한 것은 간발의 차이였다. 재증걸루의 손이 흰 빛을 뿌렸다. 이마에 표창을 박은 고구려 병사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갈대밭에 코를 박았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 싶어 재증걸루는 그 뒤통수를 세게 즈려밟았다. 신발을 통해 표창이 적의 이마를 깊게 뚫는 것이 느껴졌다.
저쪽에서 갈대숲을 뚫고 온 것 역시 고구려 병사다.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적이 칼을 휘둘렀다. 크다. 바로 막기 버거울 만큼 큰 칼이다. 재증걸루의 칼이 적이 휘두른 칼을 겨우 빗겨 막았다. 불꽃이 튄다. 칼의 코등이가 서로 맞물리려는 그 순간 재증걸루는 무릎으로 상대의 복장을 질렀다. 적이 욱하며 고개를 숙인다. 바로 칼이 적의 목을 빗겨 그었다. 칼을 떨어뜨리고 안간힘을 다해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는 적병을 발로 찬 뒤, 재증걸루는 아직도 움직이는 갈대밭을 보았다.
적병 삼십 여명이 몰래 공사장에 와 일꾼들을 급습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100여명이 넘는 일꾼들이 도륙되었다. 예닐곱 명의 병사들이 재빨리 달려왔지만 겨우 적의 급습을 소리 쳐 알렸을 뿐이었다. 뒤이어 말을 타고 재증걸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머리 잘린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적병 하나가 잘라낸 머리를 집어던졌다. 고개를 숙여 피한 뒤 재증걸루는 칼을 앞으로 휘둘렀다. 적이 휘두른 것은 도끼다. 재증걸루가 재빨리 칼을 빗겨보았지만 칼은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칼이 두 동강이 난 덕에 도끼의 궤도는 재증걸루의 몸을 형편없이 빗겨 옆으로 떨어졌다. 재증걸루는 재빨리 손을 뻗어 도끼를 휘두르느라 휘청거리는 적의 머리칼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른 손의 팔꿈치로 턱을 후려갈겼다. 적이 이빨조각을 내뱉으며 무어라 입을 열었을 때는 재증걸루가 이미 도끼를 쥐고 있을 때였다. 적의 이마가 두 동강이 났다.
재증걸루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자신의 위치를 발각시키는 짓밖에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빌어먹을. 재증걸루는 도끼를 손에 단단히 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병은 쉽사리 갈대밭으로 달아났다. 아마 이 곳 지리를 똑똑히 알고 있는 것이리라. 눈 앞의 갈대밭에도 곧 적병이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 들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러나 적이 달아나게 두는 것도 아니 된다. 재증걸루는 몸을 숙이며 다시 갈대밭으로 파고 들었다. 그때 매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재증걸루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빙글 돌고 있었다.
“이 쪽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갈대밭의 적막을 찢었다. 아군의 외침이다. 재증걸루는 몸을 숙이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려가는 재증걸루 앞에 무언가 검은 것이 가로막았다. 재증걸루는 몸을 날리며 그 검은 것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개루가 날린 매는 빙글빙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개루의 옆에서는 시녀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태자 문주가 손가락으로 매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매가 하늘에서 갈대밭으로 내리꽂혔다. 매가 오리와 함께 디굴디굴 굴러갔다.
그 광경을 보며 모두 웃음을 피웠다. 문주는 작은 손으로 말안장까지 두드려가며 웃어댔다.
재증걸루는 몸을 일으켰다.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적병의 코에서 피가 솟았다. 적이 손을 뻗더니 재증걸루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재증걸루의 왼손이 도끼를 그러쥐었다. 손으로 도끼등을 쥔 채 고구려인의 얼굴에 쥐어밖았다. 비명소리.
재증걸루는 재빨리 몸을 굴려 일으켰다. 얼굴에 붉은 자국이 났다. 숨을 몰아쉬며 재증걸루는 도끼를 적의 얼굴에서 뽑아들었다.
매가 오리의 목을 꺾는다. 매의 발톱이 오리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퀸다. 오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달아나고자 힘겨이 발버둥친다. 그러나 다시 매의 발톱이 오리의 목아지를 쥔다.
재증걸루가 호듸기를 분다. 어쩔 수 없다. 뒤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재증걸루가 엎드렸다. 소리를 내며 목 위를 날아가는 것은 투창이다. 도끼를 든 채 재증걸루가 호듸기 소리를 내며 상대에게 달겨들었다.
매가 오리의 목줄을 물었다. 둘 다 감탕에 범벅이 된 채. 매가 오리의 목을 물고 날갯짓을 했다. 개루가 호듸기를 불었다. 매가 오리를 쥐고 개루에게 날아들었다. 개루 앞에 피범벅이 된 오리 주검이 한 바퀴 굴렀다. 앞에서 깃털 손질을 하고 있는 매를 시종이 달려와 안아들었다. 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북쪽 하늘에서 다른 매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처럼.
재증걸루가 손가락을 들어 병사들을 헤아렸다. 살아있는 병사는 열여섯. 그리고 갈대밭에서 찾아온 고구려 병사의 주검은 모두 스물여섯 구. 되찾은 아군의 목은 일흔네 개.
불에 태우기 위해 목과 시체를 쌓았다. 제 목을 찾아주려 했건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짐승 같은 소리였다. 재증걸루는 그저 눈을 감았다. 재증걸루는 울지 않았다. 속으로 울부짖었을 뿐이다.
주검을 뒤섞어 태웠다.
재증걸루가 벗어던진 피 묻은 옷도 시체와 함께 타고 있었다.
새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재증걸루는 온몸에 묻어나오는 피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피 묻은 옷을 태울 수 있는 것은 재증걸루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대로 피 묻은 옷을 입은 채 시체들이 뒤섞여 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구려인을 태우는 냄새나 백제인을 태우는 냄새나 다를 바 없었다.
흐느끼는 병사가 일꾼들이 있었다. 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바람에 잿빛 연기가 우쭐거리며 흩어졌다.
재증걸루도 눈을 감았다.
피가 엉킨 채 쓰러져 섞여있던 시체들의 모습이 눈꺼풀 뒤에서 떠올랐다. 고개를 저었다. 돌연 눈꺼풀 뒤의 어둠에서 나타나는 것은 흰 얼굴이다. 그러나 그 얼굴이 선명해지려하기 전에 재증걸루는 눈을 떴다.
재증걸루의 입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신음 같은 것이
“개루······.”
처럼 들렸다. 애꿎은 이름이었다. 애꿎다. 재증걸루는 다시 그 말을 되뇌었다.
애꿎다······.
두개골 안 깊은 곳에서 사향 냄새가 배어나왔다. 사향은 허파에 섞인 사람 타는 냄새와 부딪치며 우쭐거렸다. 재증걸루는 침을 뱉었다. 노루를 메고 우쭐거리던 시종의 모습과. 개루가 그토록 좋아한다던 매사냥이.
“개루.”
이번에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거머쥔 주먹이 떨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연기가 매운 내를 풍겼다. 바람이 몰고 온 짙은 연기가 눈을 간질였다.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뒤섞인 냄새였다. 다시 눈꺼풀 뒤에서 흰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 모습이 선명해질 때까지 재증걸루는 눈을 감고 내버려 두었다.
그립다. 그립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악물고 되뇌는 이름은 달랐다.
개루야. 개루야.
그날 저녁 개루의 상에는 오리가 올랐다. 오리에 젓가락을 대는 그 순간 개루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감히 ‘개루야’하고 자신을 부를만한 사람이 궁에 있을 리 없었다. 개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젓가락이 오리의 살점을 들어올렸다.
오리의 살점을 보던 개루가 시종장을 불렀다.
“오늘 위례성에 적이 침투하였다 들었다.”
“예, 고구려의 적병 삼십이 기습한 것을 재증걸루가 격퇴했다 하였습니다.”
“그렇더냐.”
갑자기 개루가 미소를 지었다.
“장부를 본 일이 없는데······?”
“······.”
시종장이 당황한 얼굴을 옷소매로 가렸다.
“황송하오나, 요사이 위례성에서 장부가 올라오는 일이 드뭅니다. 사람을 보내었으나 재증걸루가 사실 그런 일은 적지 않은 편이라 수시로 장부를 올리는 일도 괴롭다 하였고, 성이 완성되는 경과만 차차 보고한다 하였으니.”
“괴롭다, 괴롭다 하였느냐?”
시종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덜덜 떨었다. 개루가 젓가락을 놓았다. 오리의 살점이 힘없이 고개를 늘이며 상에 기름자국을 묻혔다.
“오늘은 궁에 호위병을 두 배로 늘리라.”
그림자 하나가 덤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한 호위무사가 횃불을 휘두르며 덤불 앞을 지나갔다. 호위무사가 횃불로 처마 밑에 매달린 박쥐 떼를 쫓는 동안 그림자는 물살처럼 건물 뒤로 흘러들어갔다.
비원 근처였다.
철쭉이 새빨간 꽃잎들을 오종종히 벌리고 서 있었다.
한 궁녀가 달빛을 온몸에 받고 있었다.
그림자는 몸을 떨었다. 궁녀 뒤에서 또 다른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시종이다. 시종이 무어라 중얼중얼 말을 늘어놓는 것이 바람을 타고 흐드러진 철쭉을 흔들어댔다.
“오늘도 여기에 오는구나.”
그림자는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궁녀가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의 눈에는 궁녀는.
울고 있었다.
철철철철철, 흐르는 눈물이 솨, 갈대소리를 내며 그림자의 발밑을 금 새 적셨다. 눈물이 그림자의 사방을 에워쌌다. 그림자의 몸에 묻은 숯가루가 떨어져 나갔다. 무어에 홀린 것처럼 그림자가 한 발짝을 옮겼다.
꽃이 진 벚나무가 가지를 저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발짝을 옮겼다.
벚나무가 가지를 한껏 뻗어보았다. 그러나 그림자는 제자리에서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림자가 조각조각 나있던 팔과 다리를 주워 올렸다. 궁녀는 어느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자가 제게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궁녀는 놀라지도 않은 채 바라보았다. 시종이 무어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손을 허둥지둥 휘두르며 달려갔다.
그림자는 시종을 보지도 못하였다. 달빛이 그림자에 묻은 어둠을 떨어냈다. 그러지 말라는 듯 벚나무가 다시 한 번 가지를 뻗어보았지만 재증걸루는 그림자를 벗고 다시 한 발을 옮겼다. 궁녀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재증걸루는 그러나 떨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궁녀의 머리에 꽂혀 있는 마른 꽃을 건드렸다.
“괜찮습니다.”
재증걸루는 팔을 뻗어 궁녀의 어깨를 만졌다. 아주 어설픈 몸짓이었지만 그 손은 따스했다. 툭, 하고 꽃이 머리에서 떨어졌다. 궁녀가 재증걸루의 품에 달려들었다. 그토록 아끼던 꽃이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괜찮습니다.”
재증걸루가 궁녀의 머리를 힘주어 쓰다듬었다. 궁녀가 힘들게 울음을 삼켰다.
“꽃이 부서졌습니다.”
“괜찮습니다.”
“꽃이······. 그래서 오지 않으셨습니까?”
재증걸루가 궁녀의 손을 더듬었다. 궁녀는 제 흰 손을 감싸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꽃이 떨어지면 다시 주우면 되는 것입니다.”
“꽃이 떨어지면 다시 꽂으면 되는 것입니다.”
“꽃이 지면······.”
재증걸루의 앞섶을 쥐는 궁녀의 손이 떨려왔다. 재증걸루는 궁녀의 얼굴에 가득한 눈물을 바라보았다. 눈물에 비친 달빛이 이미 다 진 벚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재증걸루가 가만 입을 열었다.
“다시 피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궁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꽃을 다시 주어도 떨어지는 것을 어찌해야 합니까.”
“꽃이 피면 다시 시드는 것을, 시들고 다시 시드는 것을······.”
재증걸루는 말이 없었다. 궁녀가 다시 울음을 묻으며 입을 열었다.
“어찌 오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어찌 말도 없이.”
재증걸루가 궁녀의 손을 감싼 제 손을 가만 움직였다. 그 손이 재증걸루의 앞섶을 더듬었다. 발각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재증걸루의 손은 그 자리에서 멎었지만 궁녀의 손이 움직였다. 재증걸루의 앞섶에서 궁녀가 꺼낸 것은 종이로 만든 꽃이었다.
“이젠 시들지 않습니다. 이젠 떨어지지도······.”
궁녀가 웃어보였다. 눈물을 짜내느라 다시 고개를 숙이던 궁녀가 다시 얼굴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꽃을 들어보였다. 재증걸루가 그 꽃을 궁녀의 손에서 뽑아들었다. 궁녀의 머리 위로 재증걸루의 손이 움직였다. 검은 머리칼이 꽃을 단단히 붙들었다. 궁녀가 떨리는 목소리를 삼키며 물었다.
“이젠, 깨어지지 않습니까?”
대답대신 재증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녀가 힘주어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그러나 재증걸루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횃불이 일렁였다. 재증걸루는 놀라 무어라 말을 하려는 궁녀의 머리를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둘러라!”
병사들의 창이 둘을 둘러쌌다. 얼굴에 두건을 두른 누군가가 횃불을 둘의 얼굴에 들이 댔다. 재증걸루는 그저 궁녀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