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허수아비

또는 허수인간

by 엽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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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무엇으로 만든 사람일까,

헝클어진 머리는 만져도 뻗친 그대로.

나도 뻗댄 그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다가 나는 어느 방향으로 뻗댔는지도 모른다는 인식에 부딪힌다. 식물이 제 뿌리의 방향과 가지의 흐름을 알지 못하듯, 나도 그렇게 사는 사람인가보다. 오뉴월이 되어 이파리들이 한층 가득할 때, 그 때마다 전지가위를 든 관리인이 나타나는 것처럼, 하여 언제나 웅크리고 있는 화단의 식물들 처럼, 나도 마찬가지이다. 가지를 뻗댈 줄 모르고, 뿌리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 나는, 허수아비, 허수아비 같은 사람인 게다. 아니, 열매조차 맺을 줄 모르고, 열매를 맺을 일조차 없는 나는 허수라는 말 뒤의 아비도 부끄럽다. 지푸라기를 엮어 양복을 입힌 사람. 까치와 까마귀가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며 웃는 사람. 웃는 얼굴을 그려넣은 사람. 대체 어느 바람이 불어야지 나는 흩날릴 수 있을까.


-2-

허수아비는 농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가 팔을 벌리고 서 있기만 한다고 달아나는 참새는 없다구요. 누구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나를 무섭게 만들려면 나도 움직일 줄 알아야 해요. 움직이려면 살이 있고 뼈가 있어야 하지요. 살이 있고 뼈가 있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지요. 밥을 먹으려면 일을 할 줄 알아야 하지요. 그러니 내일부터 저도 서 있기만 하지는 않겠어요.

그렇게 하려무나. 농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부터 허수아비는 일을 했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움직였다. 훠어이, 외치면 참새들이 후루룩 날아갔고 허수아비는 사납게 웃었다. 허수아비는 움직이고 밥을 먹고 일을 했다.

어느 날 다시 지랄 맞은 가을이 찾아왔다. 허수아비는 일을 하다 말고 마른 논으로 걸어 들어갔다. 맨발이었다. 땀에 전 수건이 논두렁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논 복판에서 허수아비는 두 팔을 벌렸다. 두 팔을 벌리고 허수아비가 다시 끌어안은 것이 가을인지 하늘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새가 날아들었다. 허수아비는 팔을 벌린 그대로 숨을 멈췄다. 살은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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