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너의 씁쓸함은 나의 잠을 쫓는다
커피콩은
가지에 뜯겨 나와 동댕이질을 당하여
누군가 박박 껍질과 과육을 벗기고 나면
열대의 태양을 맨몸으로 받아야 했을 것이다.
자신의 몸에 생기가 한 톨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그의 형제들과 함께 어느 자루에 갇혀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죄수들이 그러하듯 숫자가 적혀 있었을 것이고,
다시 트럭에 실리는 그 중간의 휴식마다는
값이 매겨졌을 것이다. 환율과 무게와 품종이 그 숫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시급을 받는 젊은 노동자가 자루를 뜯고
무참하게 바가지로 그와 그의 형제들을 퍼 담았을 것이다.
우연이나 운명 따위가 아닌 정량이 그의 최후를 정했을 것이다.
커피콩은, 그리하여,
볶아지고 달구어진 쇠에 얼굴을 지지고
빻아지고 뜨거운 물을 끼얹어진 후에야 어느 한 구석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때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그의 볼따구니를 쓸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식민지 시대의 책을 읽듯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