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

터널을 지날 때

by 엽서시


“잠시 후 터널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모든 승객 여러분들은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선내 방송에 잭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막 잠들려는 참이었는데…….”

창밖에는 항성 타우리스가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다. 시계 액정화면 크기의 푸른 불덩이를 보던 잭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벨트로 좌석에 고정된 몸을 겨우 틀어야 볼 수 있는 우주선의 앞은 어두운 암흑이었다.

“다나까, 다나까!”

옆자리의 다나까가 일어나지 않자 잭은 증강현실의 자극을 활용했다. 다나까가 소스라치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잭은 소리죽여 웄었다.

“이런 씹…….”

다나까는 찡그린 얼굴로 잭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잠들려는 참이었는데…….”

다나까는 항성 타우리스 같은 창밖의 풍경에는 관심 없이 연신 하품을 했다. 이번이 그에게는 지구-E02로의 두 번째 출항이었다.

“잠시 후 터널을 통과할 예정입니다. 모든 승객 여러분들은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선내 방송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왜 창문을 열면 안 되는 거야?”

잭의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먼지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뭔가가 창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손에 쥔 펜을 돌리며 잭이 말을 이어갔다.

“창문?”

졸린 눈을 비비던 다나까는 멍한 표정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그래, 창문. 대체 왜 웜홀 터널을 지날 때마다 창문을 닫아야 하느냐 이 말이지.”

선내는 뱃머리 부분부터 어두워지고 있었다. 대부분, 아니, 다나까와 잭을 제외한 승객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잠은 짧아도 2년 가까이 걸리는 우주여행 기간을 가장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생명조절장치가 유지되어 있는 동안 잠든 승객들은 거의 노화를 겪지 않는 동시에 시간의 흐름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잭과 다나까처럼 잠들지 않고 우주를 여행하는 승객들도 있었다. 잠들지 않고 선내 안전 요원의 의무를 다하는 대신, 그들은 일반 티켓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배를 탈 수 있었다.

딸깍, 어느새 잭 바로 옆의 창에도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다. 선내는 금세 어두워졌다.

“글쎄…….”

다시 한 번 하품을 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다나까는 잭의 말을 받았다. 산소가 부족한 선내에서 하품은 질병과도 같았다. 다나까는 산소 부족으로 멍한 머리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년 2개월을 함께 선내 안전 요원으로 보냈고, 앞으로 10개월을 함께 보내야 하는 잭의 말을 굳이 무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이따가 창문 하나만 열어 보던가.”

하품처럼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다나까는 다시 눈을 감았다. 선내 안전 요원은 3교대로 근무한다. 그러나 여행이 진행될수록 잠들어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어차피 배는 인공지능에 의해 자율순항하기 때문에 안전 요원이 깨어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그저, 인간이란 존재의 자존심이 인공지능에게 승객들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아.”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명과 함께 고막이 지끈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배가 웜홀에 들어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잭은 재빨리 캡슐 안에 있는 알약을 털어 넣었다. 이내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욱신거림이 사라졌다.

“웜홀은 매번 이런가?”

창문 바깥에는 별빛을 포함한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았다. 배가 웜홀에 들어섰다는 증거였다. 다나까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어떤 흥미로운 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인류 기술의 한계에 다다른 우주선의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웜홀의 풍경이야 나도 모르지, 창문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

그들은 자연스럽게 창밖의 풍경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웜홀이라, 우스운 이름이야. 그렇지?”

“벌레 구멍, 농담 같은 말이지. 처음 웜홀 이론을 주장한 과학자들도 이게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이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뿐이지. 사실 존재할 이유조차 없으니까.”

“웜홀이 존재할 이유라…….”

“하지만, 생각해 봐. 이 우주에 인간이 그 존재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있겠어. 웜홀을 발견하고 통로로 이용할 수 있는지 증명에는 87년이 걸렸어. 웜홀로 투사한 무인비행체의 신호를 우주 저 편에서 다시 잡는 데 걸린 시간이야. 우주 순항에 있어서는 혁명적인 발견이었지. 이 타우리스 웜홀 터널만으로도 3광년 가까운 거리를 단축할 수 있으니까.”

둘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밖은 여전히 검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이번이 두 번째 여행인가, 다나까?”

“그렇지.”

다나까에게 이번 출항은 그의 박사 과정을 마무리 짓는 단계였다.

“논문 때문이었나?”

“그렇지. 기존 지구의 생태와 지구 E-02의 생태를 비교하는 논문이야. 그때 얘기했었지? 내 전공이 지구 곤충 생태학이라고. 지구 E-02의 생태가 기존 지구의 곤충 생태와 유사하다고 판단이 되면, 지구 표면에 다시 생태계를 적용시키는 것이 가능하거든. 대멸절 이전 지구에 가장 번성했던 생명체가 곤충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이론이지. 테라포밍의 역발상이 되는 거야.”

잭은 눈에 띄게 딴청을 부려보았지만, 다나까는 막무가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예전에 지구에 Cicindela, 그러니까 길앞잡이라는 곤충이 있었어. 유충 때는 구멍을 파고 그 구멍 안에서 숨어 있다가 근처를 지나가는 곤충을 포식하는 육식성 생태를 보이는데, 이번에 E-02의 알파 섹터에서 유사한 생태의 생물이 발견되었거든. 이미 생태는 거의 유사하다고 판단되었어. 물론 그 크기가 좀 차이가 나긴 하지만…….”

잭은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이 젖혀질 정도의 속도였다. 다나까 역시 자신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잭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나까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빛은 뭐지?”

잭이 목소리를 높였다. 다나까가 고개를 들렸다.

“무슨?”

“저 빛 말이야. 저기.”

잭의 손가락 끝에서 다이오드 같은 불빛이 깜박이더니 사라졌다. 다나까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

잭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왜?”

“저기에도 우리 같은 사람이 있나 본데.”

다나까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불빛이 다시 깜박였다. 점에 가까운 아주 먼 곳의 별처럼 보였다.

“신경 꺼.”

“아니면…….”

잭이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선내 불빛이 깜박였다.
“이번엔 내가 해볼까.”

다나까도 멋을 부린 동작으로 손가락을 부딪쳤다. 두 번, 선내 불빛이 깜박였다.

“저것 봐.”

어둠 저편의 빛이 두 번 깜박였다. 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잭과 다나까는 함께 탄성을 터뜨렸다. 잭과 다나까는 번갈아 가며 몇 번이고 선내의 불빛을 깜박였다. 그때마다 어둠 저 편의 빛 역시 깜박거리며 잭과 다나까에게 호응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몇 번의 장난이 이어진 후에는 잭과 다나까도 그 빛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저편의 안전 요원은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다나까의 말에 잭이 키득거렸다.

“웜홀을 빠져나가면 다른 배들의 선로를 찾아보자고. 승객 명단도 검색할 수 있나?”

“보안이 걸려있는 명단이 아니라면 아마 알 수 있을 거야. 우주 항법에 명시되어 있으니까.”

잭이 다시 한 번 키득거렸다.

“저편의 안전 요원이 여자였으면 좋겠군.”

잭과 다나까는 다시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산소 부족으로 멍한 머리를 잠깨우기 위해 둘은 카페인 캡슐을 두 알씩 집어 삼켰다. 고농도의 카페인이 관자놀이의 혈관을 헤집으며 머리에서 졸음을 몰아냈다.

잭이 무언가 또 이야기를 꺼낼 때 다나까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봐, 잭. 저 빛…….”

그러나 다나까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미 잭 역시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주 저편의 빛은, 이제 엄지손톱 크기로 커져 있었다. 하얀 색의 빛은 천천히 느린 속도로 깜박거리면서 눈에 띄게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빛의 크기가 손목시계의 액정 정도 크기가 되고 나서야, 잭과 다나까는 저 빛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둘은 경악했다. 이제 잭과 다나까의 눈에 빛 뒤로 보이는 ‘그것’의 길게 늘어진 몸통이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흡사 ‘벌레’처럼 보였다.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것도 벌레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벌레라는 명칭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치부하고 ‘그것’은 몸통을 뒤흔들며 천천히, 그러나 절대 ‘천천히’라고 부를 수 없는 속도로, 마치 '벌레처럼' 배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 느리게, 천천히 불빛을 깜박였다. 짝짓기 또는 먹이 사냥을 하는 심해의 물고기들이 그러하듯.

작은 행성처럼 거대한 ‘그것’의 머리에서는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얀고 둥그런 머리의 밑에는 검은 이빨처럼 보이는 뿔과 집게들이 보였다. 작은 소행성이라도 부술 수 있을 듯한 크기였다. 몸통에는 어두운 색깔의 노란 빛이 흐르고 있었고, 그 몸통 곳곳에는 암석과 얼음들이 토성의 고리처럼 다닥다닥 붙어 투명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저게 무슨…….”

“저건…….”

웜홀, 길앞잡이 유충, 목적,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의 머리가 배의 측면에 충돌할 때, 다나까가 파편적으로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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