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는 벙글벙글 웃었다. 몇 년 만에 나온 대학 학회 동기 모임에 나온 사람이라곤 이 녀석이 전부였다. 물론 몇 년 만에 비슬대며 기어온 내가 다른 사람들을 탓할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짠, 하더니 연재가 잔을 들었다. 짠, 나도 모르게 연재를 따라 외쳤다. 그리고 그 말이 좀 쑥스러웠다. 말없이 양은 접시에 담긴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래 .인마. 대학 내내 지겨웠는데.
하고 지껄이지만 내 입은 피식 웃고 있었다. 잠깐 핸드폰을 들어 문자 메시지를 보았다. 문예창작과 학회 「산문」 동기의 밤,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학회「산문」은, 문예창작과에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문학 창작 동아리였다. 대부분 성적 때문에 들어온 이 학과에서, 우리는 유일하게 글을 쓰겠다 떠들어대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진짜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일은 얼마 없었다.
선배 중 몇몇은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중처럼 여자 후배들만 호시탐탐 노려댔다. 또는 졸업도 취업도 까마득하게 남은 채 늙어버린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모인 엉망진창의 술자리에서 우리는 그냥 자기가 쓰고 싶은, 또는 쓰겠다 마음 먹은 글에 대해 지껄이는 게 전부였다. 예를 들면,
들어 봐. 1인칭 시점. 여자. 한 20대 중반으로 할까? 회식을 했다고 할까, 술에 적당히 취했고, 밤은 열두 시가 늦었고, 택시에 탄다, 주소를 부르면서 뒷자리에 기대듯 앉고. 잠깐 졸았다가 깨니, 동부간선도로. 차는 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고. 어? 그런데 자꾸 앞에서 운전수가 말을 거네. 들어볼까. 아가씨, 아가씨, 그 동네 살아요? 요새 그 동네 막 살인 나고 그랬잖아. 아가씨. 근데 이거 진짜, 아가씨, 이거 진짜 내가 이상한 얘기 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아가씨. 이거 믿어줘야 돼요. 아가씨. 여태까지 죽은 사람들 있잖아요. 다 마지막으로 내 택시를 탔어요. 그래서 그런데 아가씨, 이 택시 왜 탔어요? 누가 불렀어요?
-야, 뭐야, 너무 싱거운데. 또 연쇄살인이야?
아니, 그 다음 장부터 시점이 옮겨 가. 택시 운전사로. 뉴스에서 나오는 피해자들의 인상착의가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뉴스에서 흰 블라우스, 빨간 치마, 이렇게 아나운서가 말하면, 국밥을 먹고 있던 주인공이 말하는 거야. 검정 구두. 그때 뉴스에서 검정 구두, 이렇게 나오고. 그럼 같이 먹고 있던, 뭐, 윤 씨라고 할까? 윤 씨가 주인공 얼굴을 멍하니 보고. 그러면 주인공도 입에 물고 있던 석박지를 툭 떨어트리고.
뭐 그런 거지. 그럼 이제 주인공은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거야. 그리고 뭔가, 분명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뭔가 그런 촉을 느끼는 거지. 어쩌면 저 여자들이 탄 마지막 택시나 내가 될 수 있겠다, 싶은. 그런 촉. 그러니까 내가 살인마들에게 저 여자들을 배달한 배달부였던 거지.
-그럼 경찰이 미리 알지 않았을까? 카드 결제 기록이 있는데…….
에이, 배경이 90년대 말이라니까? 조금 당기면 2000년대 초반으로 할 수도 있고. 그리고 야, 씨, 너 말 끊지 마라. 그래서 이제 주인공은, 밤에, 혹시 월계1동, 뭐 월계1동으로 하지. 그럼 그 동네 가는 손님을 태우면, 이제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야. 그래서 이런 말을 건 건데.
-뭐야,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일단 결론 쪽을 얘기해 봐. 살인자는 따로 있어?
아니, 그게, 알았어. 일단 결론 쪽을 말하면, 뭐 여자는 당연히 거기서 택시를 내리겠지. 주인공은 자기가 실수했구나, 싶은데 또 그냥 갈 수는 없고. 그래서 다시 여자가 타는 택시를 따라 그 동네에 내린단 말야. 슬그머니 여자를 미행하다가 여자가 달아나고, 여자가 달아나는 걸 주인공이 따라가면서 아니라고, 오해라고 말하다가 그냥 내려오려는데, 그런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거야. 머리가 쭈뼛하도록. 그래서 다시 주인공이 골목길을 올라가지. 쥐구멍 같은 골목길들을 따라 올라가면서…….
-야, 야, 말 끊어서 진짜 미안한데, 난 그런 거 싫더라. 달동네 골목길 묘사할 때, 씨바, 맨날 쥐구멍이래. 야, 그럼 거기 사는 사람은 다 쥐야? 와본 적도 없으면서…….
아, 미안해요, 형. 그럼, 그럼 미로로 하지. 뭐. 이게 쫌 너무 흔한 표현이라. 미안해요, 형. 무튼 미로 같은 골목길을 뒤지다가 마침내 그 여자를 발견하는 거야. 여자는 어째서인지 피투성이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해도 의식이 없고, 그때 무언가가 후다닥, 담장을 넘어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걸 듣지. 그리고 주인공은.
-신고는 했고?
신고는 했지. 신고 하면 왜, 누군지, 무슨 일인지, 그 위치는 어딘지 물어보잖아. 위치 말하고, 지금 여기 여자가 쓰러져 있다고 말하고 대충 끊고 주인공은 이제 발자국 소리를 따라 뛰는 거야. 잡힐 듯, 아니면 영영 놓쳐버릴 듯, 시커먼 그림자 중간중간에 징검다리 돌처럼 드리운 허연 가로등 불빛만 보고 뛰다가.
-그러다?
쿵, 하고 무언가가 뒤통수를 내리치는 걸 느끼지. 그리고 깨어나니, 병원. 출혈과 가벼운 뇌진탕이 있었다는 의사 소견. 그리고 형사. 형사는 이 주인공이 범인이라고 완전히 믿고 있는 거야. 퇴원한 남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구속 수사.
-음.
90년대니까 어쩌겠어. 당신이 범인 아니냐. 다 안다. 아니, 내가 범인이면 내가 신고를 했겠냐, 이렇게 말하지만 통하지도 않고. 노골적인 협박, 그것보다는 은근한 구타. 여자가 증인이 아니냐 물어도, 어째. 여자는 의식이 없다는데. 그러다 나중에 여자는 깨어나지. 하지만 여자가 기억하는 건 주인공이 택시 운전석에서 한 음산한 말만 기억한다는 거야. 저 사람이 날 따라왔다는 말이나 하고. 그날 주인공은 꿈을 꿔.
-꿈? 갑자기 무슨?
꿈속에서 갑자기 자기가 봤던 여자들. 그 인상착의들이 지나가. 그리고 꿈속에서는 내가 이상하게 여자들 목을 조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살인자야? 주인공이?
아니, 일단 꿈속에서라니까.
-뭐야, 그럼 아냐?
아니, 그 모호함을 유지하는 거지. 무튼 그렇게 꿈에서 깨고, 식은땀으로 축축한 채, 주인공은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 시작하는 거야. 난가? 내가 아닌가? 난가? 아니면 내가 아닌가? 하고 쿵, 쿵, 쿵……. 그려면서.
-죽겠네.
어, 응. 네. 그렇죠, 형.
-야, 너무 스티븐 킹 오마쥬 아니냐. 그 살인범만 무슨 괴물 같은 걸로 바꿔 놓으면, 완전 스티븐 킹이잖아. 불가사의한 살인마. 오컬트. 휘말리는 주인공. 스티븐 킹이네.
하고 떠들어대는 식이었다.
-민준이는 안 오냐?
나는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이며 연재에게 슬쩍 물었다. 민준이는, 내 동기이자 개인적이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문예창작과에서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녀석이었다. 연락이 두절된 지는 벌써 오 년 가까이 흘렀다. 복학 시기도 그렇고, 민준이가 대학원에 가면서 나와 길이 달라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붙임성이라곤 쥐 눈곱만큼도 없는 나란 녀석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글 쓴다고 2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바뀔 일 없는 전화번호로 매 년 꾸역꾸역 오는 문자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오늘 술자리도 까맣게 잊었을 터였다.
민준이는 이를테면 이런 녀석이었다. 조용히 술을 먹다 민준이 녀석은 갑자기 탁자를 내리친다. 사람들이 돌아보고, 우리는 연신 사과를 하고 다시 자리에 온다. 그게 녀석의 술버릇이었다. 하도 잔을 깨먹는 바람에 나중에는 스테인리스 물컵을 녀석 전용 컵으로 만들어 소주를 따르기도 했다.
녀석은 술도 잘 못 먹었지만, 그럼에도 늘 뒤풀이 자리에 슬금슬금 따라 왔다. 따로 일러주지 않아도 언제인지 모르게 나타나 인사불성이 된 채 개똥철학 같은, 제 문학론을 늘어놓곤 했다.
예를 들면,
-그땐 천재들이 글을 썼잖아. 시만 해도, 백석이나 정지용 같이. 소설? 현진건, 아니, 염상섭이나. 그 이후에도 그랬고. 그런데 이제 천재들은 글을 쓰지 않지. 검사가 되거나 의사? 아니, 미국 가서 영어논문 읽고 영어 리포트 쓰겠지. 이젠.
따위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 데 저 혼자 탁자와 눈을 맞춰가며 주절대는 것이다.
-아, 민준이 형 바쁘대. 요즘 호프집 때문에.
-호프집?
-아, 어, 몰랐어? 요즘 민준이 형 호프집 때문에 엄청 바쁜데.
-그래? 호프집에서 일한다냐?
웃음이 났다. 숫기 없고 말주변 없는 녀석이 술집에서 일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녀석이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있는 꼴은 더욱 볼썽사나울 것이었다. MT라도 가면 냄비에 물을 한강수처럼 받아 라면을 끓여 놓고 김칫국물로 간을 맞출 요리 머리도 없는 주제에 뻔뻔한 얼굴로, 덜 익은 면을 건져 먹고 있던 녀석이 주방이라.
-아, 알바가 아니라…….
연재가 조금 망설이더니, 또 피식 웃었다.
-사장이야.
놀라자빠질 노릇이었다. 나는 국물을 떠먹던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하다 겨우 잡았고, 대신 젓가락을 테이블 밑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녀석이 사장이라니?
그러나 당혹스러움이 가라앉자 그 다음에 밀려오는 것은 첫 번째는 흐뭇함이었고 두 번째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궁금증보다 먼저 흐뭇함이 인 것에 대해 아주 약간이지만 자부심이 들었다. 동기이자 친구가 잘 된 것에 질투가 먼저 일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어떻게?
궁금했다. 녀석의 집안이 잘 살았던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시골에서 체리인가, 블루베리인가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름 방학이 가까울 무렵이면 주말마다 사라져 일손을 돕고, 시커먼 얼굴로 나타나 ‘여기 땀 흘려 일하고 온 사람이 왔노라.’라고 말하던 녀석이 아닌가. 그런 후에는 꼭 우리를 룸펜이라 부르며 강제로 제 술을 사게 하지 않았던가.
하기야 그 땅값이 올랐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래 농사짓는 사람들이 알부자라고 하지 않던가. 모를 일이다.
-아, 민준이 형, 소설 썼었거든. 형도 아나? 웹소설이라고, 요새 돈 잘 벌리는 게 있는데.
쭈뼛 몸의 털이 솟는 느낌이었다. 연재의 대답은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대답이었다. 글을 써서, 사장이 되었다니. 성공이다. 정말 성공했구나.
나는 민준이와 이런 얘기를 나누는 망상을 했다. 최근에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그 책이 그 녀석이 쓴 거라고? 그런데 왜 몰랐지? 아, 필명을 썼다고?
그 망상은 망상(妄想)이자 망상(望想)이었다. 녀석이 녀석의 바람대로 글을 통해 잘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또 우리 중에서 이름 난 작가 하나가 나와서 우리가 보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그리고 아직까지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민준의 대답은 영 생뚱맞은 것이었다.
-민준이 형이 복학해서 한 1년 소설을 썼었는데, 그 웹소설 사이트에서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줬다나 봐.
연재의 설명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웹소설 사이트에서 민준에게 치른 대금은 비트코인이었다. 한 1년, 무협소설을 연재한 결과 민준에게 떨어진 것은 비트코인 6개, 당시로는 한 30만원 돈이었다. 현금화할 것을 찾아봤지만 당시에는 절차가 까다로워 영 귀찮기도 하고 하여 그냥 뒀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2017년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코인 1개가 약 천만 원가량으로 부풀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민준이도 코인이라는 것에 투자를 했단다.
- 원래 코인이, 형, 주식하나? 그럼 좀 이해가 빠를 텐데. 아무튼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는데, 민준이 형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코인이 비트코인이고, 코인 중에선 비트코인이 대장주라고, 가장 안전한 가치거든. 아무튼 그 형이 비트코인을 기본으로 해서 분산 투자했는데 잘 벌었나 봐. 정부가 지랄해서 잠깐 코인판 다 떨어졌는데 그 때도 비트코인으로 돌리고 해서 결국 손해는 안 보고. 작년에 조금 손절하고 그냥 나왔다고 하는데, 그래도 몇 억 벌었다나. 그걸로 학교 근처에 원룸 몇 개해서 임대하고 남은 돈으로 이 호프집 인수한 거래.
이후 연재는 코인이 암호화폐고, 사토시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비트코인이고, 암호화폐가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이게 안전자산으로 금처럼 투자가치가 있고, 자기가 투자했던 코인은 뭐였고 따위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냐, 그러냐, 대답은 했지만 내 머리에 그 따위 얘기가 들어올 리 없었다.
충격이었다. 첫 번째는 부끄러움에서 오는 충격이었는데, 나는 코인이다 뭐다 하는 것을 들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게 뭔지, 여기에 돈을 투자하고 말고 할 생각을, 손톱만큼도 안 했던 것이다. 그저 투기로 치부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또는 속물들이나 했다 신세 망치는 것이지 하고 시작할 생각조차 없었다.
내 부끄러움은 투자를 해서 돈을 벌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연재의 말마따나 젊은 애들치고 안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명색이, 소설을 쓴다는 사람이 처음 듣는 사람과 다르지 않게 눈만 멀뚱멀뚱 뜨고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는 내 처지가 부끄러웠다.
소설을 씁네, 하고 스스로 방에 갇혀 있는 동안, 제대로 된 소설 한 편 써 내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방에 갇혀 있었으니 제대로 된 소설 한 편을 써 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두 번째 충격은, 민준이 녀석이 투기로 돈을 벌어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행복하게 했던 망상을 말 그대로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민준이는 글이 아닌, 투기로 돈을 벌었다. 따라서 결국 우리의 시간은 헛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물거품이 된 내 망상처럼, 망한 상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너는, 뭐 거의 코인 전문가다?
하는 내 퉁명스러운 말을,
-원래 월급쟁이들은 자기 일 빼고 다 전문가거든.
하며 연재는 흘려 넘겼다. 연재 이 녀석도 나보다 낫다, 그런 생각이 속에서 일었다.
-야, 가자.
연재를 끌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 민준이네 술집. 거기 가봐야지.
계산을 마치고 연재는 술집 앞에서 몇 번이고 민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배도 피지 않는 나는 하릴 없이 전봇대 옆에 서서 민준이를 바라보며 입에 괴는 침을 뱉어대는 게 전부였다. 날이 추웠다. 입김이 일었다. 전봇대 밑에 뱉은 침들이 허옇게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핸드폰을 든 채 발을 동동 구리고 있던 연재가 날 보더니 멋쩍게 웃었다.
-원래 민준이 형 전화 잘 받는데, 오늘은 안 받네?
-오늘 뭐 바쁜가 보지.
나도 연재의 말을 받아 넘겼다.
-그래도 가게 어딨는 지 아니까, 일단 가자.
민준이가 사장으로 있다는 호프집은 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나와 영 인연이 없어 보이는 브랜드 이름을 가슴팍에 붙인 아파트 단지 앞에 삼 층짜리 빌라들과 상가가 어깨를 맞붙인 채 늘어서 있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전깃줄이 드리운 그림자들이 지저분한 골목을 더욱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곱창집과 치킨집 사이에 노란 불빛이 번져 나오는 작은 간판을 단 호프집이 보였다.
-깡통비어?
-웃기지?
연재가 피식 웃었다. 깡통집에서 따온 이름일까. 깡통이라는 말이 민준이 얼굴처럼 반가웠다. 안 그래도 좁은 호프 안은 테이블과 의자로 더욱 비좁았다. 요즘 좁은 호프집들이 그러하듯, 벽마다 벽을 보고 앉도록 자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나마 가장 널찍한 자리는 4인용 테이블 두 개가 붙어 있는 자리였다. 우리는 문 근처 높고 좁은 의자에 앉아 생맥주 두 잔과 기본 감자 튀김을 시켰다.
-여기 사장님 자주 오세요?
뚱한 얼굴의 알바에게 연재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네?
알바가 멍한 얼굴로 연재를 바라보았다.
-김민준 사장님이요. 저희가 친군데.
나는 먼저 나온 뻥튀기 하나를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김민준 사장님’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아, 그러세요…….
그러나 알바는 입만 달싹일 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연재는 붙임성 좋게 말을 이어갔다.
-저, 근데 죄송한데, 가게 전화로 사장님께 저희가 통화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아, 민준이 형이 예전에 가게 오면 가게 전화로 전화하라고 얘기 했었거든.
-어…….
생선처럼 멍하던 알바의 얼굴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이 눈에 띄게 일어났다. 실수로 어부의 배에 뛰어오른 물고기처럼 황망해하던 알바는,
-아, 저 카운터에 한 번 얘기 해볼게요.
하고는 계산대 쪽으로 허둥지둥 사라졌다.
-뭐야, 진짜야?
나도 알바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심정이었다.
-어. 내가 그럼 미쳤다고 갑자기 가게 전화 쓴다고 했겠어?
한참 이런 수작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다시 테이블로 온 알바가,
-저, 사장님께 지금 저희가 전화 드렸는데, 그,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계산대에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퉁퉁한 청년이 전화기를 들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처음 전화하기 전에 누구시냐고 먼저 물었어야 했을 텐데, 잔소리 좀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일었다.
-아, 저는 김연재고…….
하고 연재가 말하는 것을,
-저희 그 문예창작과 학회 학회 글 쓰는 모임 산문이라고 전해주세요.
내가 말꼬리를 잘랐다.
-글 쓰는……. 모임이요?
-네.
다시 알바가 총총거리며 계산대로 뛰어 갔다.
-얘들 맥주는 아직도 안 주네.
내 볼멘소리에 연재도 피식 웃었다.
-뭐, 알바 처음 하나 보지.
우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알바가 요란스레 움직였다. 이내 테이블로 온 알바의 양 손에 거품이 출렁이는 맥주잔이 들려 있었다. 짠, 우리는 처음 만난 것처럼 다시 잔을 부딪혔다.
-형, 건진이 선배 결혼식은 안 왔었지?
-그 인간 결혼했어?
-어, 작년 여름에.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생각해보니 작년에 한 번 뜬금없이 전화가 왔던 기억이 날 듯싶다. 받지도 않아 무슨 일인지도 몰랐는데, 결혼 때문이었나 싶다.
-건진이 그 새끼는 아직도 회사 잘 다니나?
-그러게.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니는 것 같더라. 그 보험사, 처음 다닐 때는 얼마 못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연재도 따로 연락은 안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대신 감자튀김을 하나 집으며 개새끼, 하고 나오려는 욕을 참았다. 학교 다닐 적에도 그렇게 후배들에게 선배랍시고 선배 노릇을 하던 놈이 졸업 후에 과방에서 멋모르는 애들 붙잡고 보험 영업을 하는 게 들통 났다. 그 말을 들은 동기 중 한 녀석이 과방에 뛰어 들어가 서류를 집어던지고 난리를 피워 댔다. 민준이 녀석도 그 난리통이 일어난 과방 밖에서 저런 놈은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둥, 게거품을 물어댔었다.
-붙어있을 데가 거기밖에 없나 보지. 그 새끼.
중얼거리며 맥주잔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우리 다 잘됐다 싶네.
갑자기 연재가 중얼거렸다.
-건진이 형도 결혼하고 회사 잘 다니고. 민준이 형은 사장님에.
-나는, 인마.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형은, 형도 곧 잘 되겠지. 형은 지금 꿈을 실현 중인데, 뭐.
나는 멋쩍은 기분이 들어 괜히 관심도 없는, 이름이나 겨우 생각나는 애들의 이름을 주어올렸다.
-아, 창모는 그럼 접때 얘기하던 데 취직한 거냐?
-아, 거기요? 거기 나왔어요. 나온 지 꽤 됐는데. 거기 무슨 다단계 피라미드 같은 데였나 봐요.
피라미드, 하니 갑자기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건진이 그 새끼가 한 얘기였을 거다. 내가 아는 외국 얘기란 게 거의 전부 그 인간 것이니까. 우리 중에, 아니, 내 주변 사람 중에 외국 물에 발 한 번 담가 본 건 그 인간뿐이니까. 4학년 마지막 학기 전 뜬금없이 휴학을 하더니 갑자기 유럽과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3개월 후 과방에 나타난 놈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그런 놈이 제일 처음 우리에게 늘어놓은 이야기가 바로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에 가는 길이 말도 안 되게 허름하다고 했던가. 뭐 남아 있는 게 없다던가. 그렇단다. 이집트에 남아있는 유적지 중에 이슬람 관련 유적지가 아니면 정부에서 관리를 안 한다 했다. 제대로 된 문도 없어서 울타리를 넘어가야 한다나. 그리고 피라미드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낙서가 엄청 많더란다. 4천 년 전 문명의 정점이 남긴 그 유적에. 제 이름을 쓰기도 하고. 매직으로 적은 것도, 송곳 같은 쇠붙이를, 거기까지 어떻게 들고 온 것인지, 아예 음각을 파서 새겨 놓은 놈들도 있고. 근데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낙서가 있었다 했다.
-섹스?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목소리였다.
-그렇더라.
-섹스. S.E.X라고. 어떤 미친놈이. 시바.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가지고는.
욕설 끝에 건진이 놈이 과방에, 죽 늘어지는 침을 뱉었다. 놈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다른 무엇과 섞여 견디기 힘든 구취를 풍기고 있었다.
피라미드 벽돌에 누군가 새겨 놓은 S.E.X.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구석에 새겨진 ‘숙명’이라는 낙서를 보고 『노트르담의 꼽추』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둘레에 새겨진 ‘SEX’를 본 건진이 그 자식은 아무런 소설도 쓰지 않았다.
-무슨 생각해, 형. 취했어?
연재가 잔을 부딪쳤다. 아냐, 새끼야. 입으로 중얼거리며 잔을 들었다. 맥주가 밍밍했다. 김도 온도도 빠져나간 것처럼. 연재가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섰다. 어, 그래, 하며 연재가 계산대에서 열쇠 꾸러미를 들고 가게를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호프집 안은 꽤나 법석이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게 다 민준이 돈이 되려나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호프집의 인테리어는 소박했다. 여느 호프집들이 그렇듯 곳곳에 작은 미니어처들이 있었다. 색다른 것은 나무로 만든 붙박이장에는 조금 낡아 보이는 책들이 꽂혀 있는 점이었다. 책이 인테리어로 꽂혀 있는 건 카페에서나 그러는 줄 알았는데, 민준이 녀석이 한 짓인가 싶었다.
붙박이장의 책들은 죄다 고전들이었다. 「죄와 벌」, 「부활」, 「레미제라블」, 「인간의 굴레」 등. 저마다 출판사가 달랐다. 어느 헌책방에서 그냥 한 질 사다 꽂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민준이다, 이거 민준이가 꽂아놓은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고전이라도, 번역자가 다르면 다른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민준이의 지론이었다. 그렇겠지, 싶어 녀석 말에 동의는 했지만, 사실 나는 번역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 해의 신춘문예 등단 모음집을 모아 공통점을 찾기에 바빴던 것이다.
고전은 인류의 유산이야.
민준이는 늘 힘주어 얘기하곤 했다.
소설의 시대는 다시 온다.
이 말도 민준이의 입버릇이었다. 술만 취하면, 무슨 비밀을 늘어놓는 양, 녀석은 낮은 목소리로 자리에 앉은 모두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시대는 다시 온다고.
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달과 6펜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이었다. 책을 집었다. 표지에는 폴 고갱의 자화상이 오만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폴 고갱. 그리고 소설 속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 찰스 스트릭랜드는 안락한 가정과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예술을 택한다. 도덕과 체면까지 벗어던지고 사회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그는 마침내 문명을 벗어나 야만의 섬 타히티로 향한다. 그의 예술은 그곳에서 완성된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지만 예술은 존재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완성된다.
그림으로 먹고 살 정도로 성공한 화가에 예술을 보는 눈도 있지만 정작 예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화가. 그, 이름이, 작고 통통한 사람인데, 이름이, 스트로브였던가.
영국인 선장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작은 돌섬 하나를 일구어 자신 만의 낙원으로 만든 사람. 스트릭랜드가 붓과 물감으로 자신의 예술을 완성해 나갈 때 땀과 노동, 시간을 들여 예술을 완성한 사람.
성공한 의사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지만 그리스, 알렉산드리아인가에 내리는 순간,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공보의로 초라하게 남은 친구. 이름이, 뭐였지.
나는 몸을 떨었다. 고전은 단지 하나의 서사만 있지 않다. 천재들은, 마치 수백 가닥의 지푸라기를 꼬고 엮어 하나의 밧줄을 만들 듯 수십 개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고작 하나의 서사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해 절절 매는 나와는 다른.
문득 그 의사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앞날이 보장된 천재였던 그는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그리스에 남는다. 그가 그리스에 남는 바람에, 그의 자리를 물려받았던 친구는 기사 작위를 받고 미인 아내와 결혼하는 성공을 누린다.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짤막한 이야기지만 결국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고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그 의사 이름이 뭐였지.
한참 책을 뒤진 끝에 그 의사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아브라함. 맞아. 아브라함.
안정감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찾아왔다. 그때 끝이 노랗게 바랜 페이지 밑에 적혀있는 낙서 하나가 보였다.
361days, 형욱 오빠 ♡ 수여닝
또 몇 장을 넘겼다. 다른 낙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Sex.
빨간 볼펜으로 쓴 조악한 글씨였다.
나는 낄낄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숨이 막혀 컥컥 댈 때까지 웃어댔다. 형, 형 왜 그래, 취했어, 어느새 화장실에서 돌아온 연재가 내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가게 밖은 이미 시커먼 밤이었다. 나는 부축을 해준다는 연재의 팔을 몇 번이고 뿌리쳤다. 어차피 연재도 술에 취해 있어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까만 밤하늘을 보다 나는 갑자기 호기가 일었다.
-야, 나도, 씨바, 야, 나도 이제 일할 거야.
-왜, 형. 소설 쓰는 것도 일이지…….
-야, 그게 일이냐. 진짜, 진짜, 일을 해야지. 알바건 뭐건.
나는 입에 자꾸 괴는 침을 툭 뱉었다. 그러나 침이 길게 늘어지는 바람에 나는 손등으로 침이 묻은 주둥이를 문질러야 했다.
-요새, 참, 형, 취준생들도 알바 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다.
-…….
나는 말없이 연재를 바라보았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하고 변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그냥 멀거니 연재를 바라보았다.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변명을 하는 것은 연재였다.
-그런 게 아니면 뭐.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형, 요새 편의점 알바도 자소서 쓰고 다 해야 돼. 면접도 보고. 그런 거 이제 다 기본이니까.
-쓰지. 뭐 내가 그거라고 못 쓰겠냐.
나는 흡사 돼지새끼처럼 껙껙 소리를 질렀다. 못 쓰겠냐, 겠냐, 하고 메아리, 같은 것이 환청처럼 들렸다. 연재는 숫제 웃는 목소리로,
-그래, 생각해보니 형은 자소서도 잘 쓸 거야.
하더니 균형을 잃고 팔을 버둥거렸다. 아마 내 어깨를 두드리려 한 것 같았다. 나는 연재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멈춰서고 말았다. 연재가 비틀거린 것인지, 아니면 내 발걸음이 엉망인 것인지, 걸음이 엉켰다.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연재는 취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왜냐면 자소서, 그것도 다 소설이야.
하더니 웃었다. 그러냐, 대답하고 말하려는데 목이 메었다. 속에서 무언가 욱 치밀었다. 연재를 뿌리치고 전봇대를 잡고 기침과 구역질을 했다. 속에서 나오는 것은 없고 멀건 침만 잔뜩 흘렀다.
그렇구나. 지금 세상에서 일 하는 사람들은 다 이미 다 소설을 쓰고 사는구나. 지금 세상에서 천재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아무도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다 소설을 쓴다.
갑자기 눈물이 돌았다. 엄지로 눈을 눌러 눈물을 닦고 손등으로 입가에 흐르는 침을 훔치다 나는 연재를 보며 괜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