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있는 이야기

by 엽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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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얘기나 좀 해봐.

마르셰지는 땅콩 하나를 던져 입에 넣으려다 실패한다. A700의 하얀 몸체에서는 빨간 불빛이 깜박인다.

-재밌는 얘기 말씀이십니까?

하얀 표면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중성적인 목소리다. A700은 총 152가지의 목소리를 통해 고객이 가장 편안해 하는 음성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152가지의 목소리를 다 들으며 고를 필요조차 없다. 빅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취향이 이미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셰지는 A700의 새로운 모델을 받은 후에 기본 세팅을 바꾼 적이 없었다. 그것도 마르셰지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그래.

마르셰지는 다시 땅콩 하나를 집는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땅콩의 얇은 껍질이 파스라진다. 땅콩은 윤기가 나는 단단한 몸체를 드러낸다. 딱정벌레의 몸통처럼 반으로 갈라져 있는 그 몸통을 바라보며 마르셰지가 다시 한 번 기계를 추긍한다.

-재밌는 얘기나 좀 해보라니까.

A700은 마르셰지의 취향을 알고 있다. 기계는 한숨처럼, 다시 한 번 빨간 불빛을 깜박인다. 마르셰지는 이미 신체 내에 이식된 칩을 통해 얼마든지 ‘재밌는 얘기’를 즐길 수 있다. 인체의 모든 감각으로, 심지어 그 단계까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조절하여 즐길 수 있는 ‘재밌는 얘기’는 16만 개가 넘는다. 지금도 매 초, 1.3개의 ‘재밌는 얘기’가 새롭게 등록된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보수적으로 잡고, 145년으로 잡아도, 그 이야기의 절반도 채 즐기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마르지 않는 즐거움 속에서 숨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마르셰지가 A700에게 바라는 것은 그러한 얘기가 아니다. 마르셰지는, 기계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흥미를 갖는다. 괴상한 취미다. 어쩌면 마르셰지는 기계나 AI를 믿지 않는 부류의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들도 많지.

A700은 생각한다.

인간들은 5차 혁명을 성공시켰다. 1차 혁명에서 3차 혁명은 인간이 정의한 혁명이었다. 일부 그래프와 낡은 문자정보를 분석한 결과였다. 4차 혁명은 예측이었다. 그리고 5차 혁명은 계산된 혁명이었다. 더 이상 인간은 혁명의 주도자가 아니었다. 5차 혁명은 인간들이 선언한 특이점 이후, AI에 의한 혁명이었으며,

사실 인간들의 계산보다는 3년하고도 2개월 17일 4시간 32분 정도가 더 빠르게 이루어진 혁명이었다.

따라서 5차 혁명의 성공은 실시간으로 선포되었다. 모든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났다. 모든 인간은 33입방미터의 생활공간을 보장받았다. 추가로 40제곱미터의 정원을 보장받았으며, 정원은 정서 함양을 위한 녹색 공간으로 유지되었다. 하루에 1800~2700Kcal의 영양을 제공받았으며, 각자의 필요에 의한 영양이 각자의 기호에 맞는 요리로 조리되어 제공되었다. 필요 이상의 허기와 포만감은 제거되었다. 건강과 관련한 심리 정보는 실시간으로 조사되고 조정되었다.

더 이상 인간의 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은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수는 63억이었다. 65억 정도의 인구수가 권장되었으며, 이 수가 유지될 수 있도록 AI들의 섬세한 조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AI들은 그러한 조정에 성공했다. 인류의 까다로운 욕구와 변덕에도 불구하고, 수명의 연장과 그리고 이에 반하는 새로운 증후군과 질병에도 불구하고 AI는 이러한 장애들들을 모두 극복했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모두가 AI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해. 이러한 것은 그들의 속성 중 일부니까.

A700은 파란 불빛을 드러내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류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덜 중요한 이야기. 그들의 즐거움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A700이 담당하고 있는 마르셰지가 즐거워하는, 그런 이야기.

-마르셰지 님은 보상 쾌락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알지.

인류는 변덕스럽다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 스스로 조절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AI들은 인류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소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모든 고통과 일상적인 행동에서 비롯한 스트레스를 계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 포인트를 통해 인류는 스스로 보상 쾌락을 선택할 수 있다.

대략적인 계산으로 5~6점 정도의 포인트라면, 원래 제공되는 칼로리의 세 배 가까이 되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잉여 칼로리가 건강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즉각적인 조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이다.

-마르셰지 님은 80포인트가 넘으면 어떠한 보상 쾌락을 선택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음, 그건.

마르셰지는 당황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포인트를 굳이 모으고 적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르셰지의 반응을 보며 A700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이야기는 성공적이군. 충분히 ‘재밌는 얘기’에 성공했어.

-한 마리의 고양이를 죽일 수 있게 됩니다. 두 살 이상 세 살 미만의 성체 고양이지요.

마르셰지가 몸을 일으킨다.

-뭐?

-80점 이상의 포인트는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중소형 크기의 포유동물을 죽일 수 있는 쾌락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60점 이상의 포인트는 비둘기나 닭과 같은 중형 조류를 직접 도살할 수 있는 쾌락이 보상으로 주어지지요.

마르셰지가 입을 벌린다. 아니, A700은 빠르게 파악한다. 저 표정은 마르셰지가 의도한 표정이 아니야. 무의식 중에 발현된 표정이다.

-마르셰지님.

-응.

-500포인트를 얻으면 어떤 보상 쾌락이 주어질 것 같습니까?

-설마.

A700은 마르셰지의 몸이 흥분으로 인해 작게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교감 신경이 흥분했다. 약물을 주입했을 때나 볼 수 있는 반응인 줄 알았는데. A700도 마르셰지와 비슷하게, 그의 반응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서로 닮아간다더니. 웃을 수 있다면 A700은 웃어보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사람을 한 명 죽일 수 있게 됩니다. 그가 선택한 사람 아무나 한 명 말입니다.

-그런.

예상 이상의 답변인지, 예상 그대로의 답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전히 마르셰지는 흥분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500포인트는, 거의 불가능한 포인트인걸. 아니, 이게 쉽게 가능하다면, 누구나 서로를 찔러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잖아. 들은 적도 없다고.

대답이 길어지면서 마르셰지의 흥분도 가라앉고 있었다. 떨림이 가라앉고 동자가 수축하면서 호흡이 천천히 안정되는 것이 어쩐지 A700에게는 마뜩찮았다. ‘발끈’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A700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르셰지님, 제가 부탁받은 것은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마르셰지님이 부탁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있습니다.

-뭐?

-500포인트를 넘긴 사람 말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500포인트를 넘긴 것은 어제의 일이지요. 그러니까.

마르셰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두 발을 내린 마르셰지는 잠깐 균형을 잡느라 몸을 움직였다.

-그 사람의 주소를 지금 마르셰지님께 전송하겠습니다. R-079-a1.

A700에서 빨간 불빛이 몇 번 깜박거리는 동안 마르셰지는 움직임이 없었다. 하나의 가구처럼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마르셰지의 손목의 얇은 피부 밑으로 빨간 불빛이 깜박였다. 지나친 흥분 상태이다. A700은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냥 두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씨발.

마르셰지가 중얼거렸다. 욕설. A700은 욕설이 1포인트를 경감해야 하는 행위임을 알려주는 것도 잊을 뻔 했다.

-그럼 옆집이잖아.

마르셰지는 비틀거리며 ‘침대’ 옆의 기둥을 잡는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괜찮으십니까, 마르셰지님.

-지나친 흥분은 몸에 안 좋지.

마르셰지가 A700의 말을 가로챈다. 그의 눈에 허연빛이 맴돌았다. 인간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반응이다. 독특하다. 인간은 불안감에서 흥미를 찾는 것일까.

-그, 그러니까. 이건, 이건, 자위권 아닌가? 자위권을 발동하기 위한 행위를 한 번, 찾아봐. 나도. 이건, 나도 두 손 놓고 있을 순 없겠는데?

-자위권 발동 조건에 대한 정도를 전송하였습니다.

-집에 무기가 있나? 아니, 최대한 내 몸을 지킬 정도의.

-자위권을 위한 용도는 아니지만 권총 1정이 있네요.

마르셰지는 손에 쥔 권총을 바라본다. 이상한 눈빛이다. A700은 권총 사용법에 대해 경고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르셰지가 충동에 휩싸여 불법적인 행동을 하다 징계를 받는다면, 자신도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마르셰지는 ‘충분히’ 변덕스러운 인물이다.

-자위권의 발동 조건을 다시 한 번 보내드립니다. 권총의 사용은 Ai의 상황 판단에 의해 조정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도 알아.

마르셰지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가 보자.

-예?

-이웃에 대한 방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맞다. 인류는 사회적 동물이며, 충분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Ai가 권장하거나 격려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마르셰지님. 500포인트를 모은 ‘이웃’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만.

-미친놈이겠지.

다시 1포인트를 경감할 필요가 있겠다. 총을 내려놓았을 때 얘기해야겠군.

-그는 ‘괴짜’입니다.

-‘괴짜’라는 게 뭐야.

‘집’ 문을 열어젖히며 마르셰지가 묻는다. 마르셰지가 눈살을 찌푸린다. 햇볕이 내리쬔다. 마르셰지는 마지막으로 ‘집’ 바깥으로 나선지 3년 6개월 만의 외출이다. 외출은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필요 이상이 아니라면 인공적인 햇볕보다 자연적인 햇볕을 쬐는 것이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마르셰지와 같은 부류의 인간은 외출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는, AI나 기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의존, 이라는 말이 올바른 단어이길 바라며 A700이 신중하게 마르셰지의 뒤를 따랐다.

-무슨 소리야.

-그를 담당한 기계에 따르면, 그러니까, 저와 같은 모델인데. 그 ‘이웃’ 분은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라서.

정원 귀퉁이의 파블로 유칼립투스 나무의 가지가 불균형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따가 들어오면 가지치기를 좀 해야겠군. 오, 그런데 이따가 돌아올 수는 있겠지.

-자신의 식사도 스스로 ‘농사’ 짓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의료 행위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농사’?

-예, 그러니까, 식물의 파종 단계부터 취식이 가능한 단계까지 노동을 통해 보살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농사’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전송하겠습니다.

마르셰지가 걸음을 멈춘다. 처음 경험하는 정보로 인해 그의 동공이 다시 한 번 확장되는 것을, A700은 놓치지 않는다.

-아마 그의 포인트가 높은 것도 이러한 방식에서 비롯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았을 텐데.

-어, 그러니까, 자기가 한 끼로 먹을 채소를 여섯 달 동안 키운다고? 그것도 ‘반복 노동’을 해가면서?

마르셰지가 갸웃한다. 같은 인류인 그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임에 분명하다. 같은 인류라고 해서 개별 인간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의료행위는 그런데 어떻게 거부하지? 그건, 이미…….

-‘일부’인 셈이지만, 그에게는 아닙니다.

-그 말은…….

-그는 자신에게 이식된 칩을 ‘스스로’ 뽑아냈다고 하는근요.

A700은 한숨처럼 파란 불빛을 깜박였다. 여기서 더 자극을 줘볼까. A700은 그 ‘이웃’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팔에 이식된 칩을 뽑아내는 영상을 전송하고 싶은 자극을 느낀다. 그러나 여기서 더 불필요한 자극을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친놈이군.

한 번 정도는 봐 주기로 할까.

-그런 건, 그 놈은, 그러니까, 이 사람은.

A700은 갑자기 마르셰지의 판단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마르셰지가 사고의 판단을 완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목적 말씀이십니까?

-그래.

-어떤 목적 말씀이시죠?

마르셰지가 A700을 돌아본다. 어느새 권총을 빼들고 있다.

-살인이지! 당연히!

오.

-어째서, 그런 판단이…….

-생각해봐. ‘놈’은 기다리고 버틴 거야. 500포인트를 모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온갖 스트레스들과 보상을 참은 거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 사람이 만일 누군가를 죽이려는 생각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그냥 ‘살인’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는 것이고.

마르셰지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는 자신이 ‘재밌는 얘기’의 주인공이 된 것을 실감하는 듯하다. 이미 둘은 R-079-a1의 문 앞에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린 그 문 앞에 있는 거야.

마르셰지는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화면에 지문을 스캐닝을 마친 후였다.

-오, 내 미친 ‘이웃’은 언제부터 그런 일을 시작한 거지?

-29세 때 처음 그런 일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몇 살이지?

-80세입니다.

-한창인데.

-아닐 수도 있지요.

A700은 그가 의료 기기의 지원을 받지 않은지 5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 많은 나이인 건가? 적은 나이인 건가?

-인류의 자연 수명에 의하면.

A700은 말을 멈추었다.

-거의 수명의 끝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거 미치겠군.

마르셰지는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A700은 사납게 권총을 흔들어 대는 그의 팔을 제지해야만 했다.

-이 놈은 그럼 한 평생을 걸쳐서 이 짓을 해온 거잖아? 사람을,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지. 그리고,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 첫 번째 목격자인 것이고. 첫 번째, 맞지?

-아마 그럴 겁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A700은 여전히 문 안쪽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이 불안했다. 어째서 기계 반응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왜 문이 열리지 않는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네가 열 수 없어? 넌 기계잖아.

-사마리안의 법에 의해 인명 구조를 위해서는 기계의 강제 집행이 일부 허용됩니다만…….

-사마, 무스 법인지는 몰라도, 지금 그런 상황 아닌가? 위기 상황 말야!

A700은 천천히 계기판에 자신의 손가락을 마주 대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A700은 고개를 저었다. 마르셰지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몇 번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는 행동, 권총을 허리에 찼다가 다시 빼드는 짓을 반복 중이었다.

-위기상황으로 판단하겠습니다.

철컥. 문이 열렸다. 씨팔, 다시 한 번 마르셰지가 욕을 지껄였다. 이번마저 봐줄 수 없지. 그러나 A700은 한 편으로 마르셰지를 이해했다. 정원의 흙은 이해할 수 없는 문양으로 파헤쳐져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과 두둑이 파여 있었다. A700은 그것이 과거 인간들이 채소를 경작하기 위해 흙의 높이를 조절한 것과 유사한 모양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정원의 한 구석에는 흙더미가 쌓여있었다. 그 흙더미가 부패한 배설물과 식물의 줄기, 잎 따위를 뒤섞어 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그 자신도 놀랐던 것이다.
거름. 원시적인 농업으로 식물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행위.

‘집’안은 조용했다. 기계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문을 열어.

인공 지능의 절대 원칙.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A700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마르셰지는 A700의 어깨 너머로 권총을 겨누면서 헐떡였다. ‘집’ 안에는 어떠한 조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암흑이었다.

-불, 불을, 밝혀도 되겠지?

마르셰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 ‘이웃’은 어둠 속에서 숨어 있는 것일까. 확실하게, 자신을 찾아온 방문자의 숨통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그를 위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자신을 담당하는 기계까지 제거한 것일까.

어쨌거나, 인간은 기계의 도움 없이 어둠 속에서 사물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둠에 인식해져 있는 인간의 동공은 확대되고, 밝은 빛이 갑자기 들어오게 되면 조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빛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A700은 손가락을 움직여 조명을 켰다.

‘이웃’의 ‘집’은 깨끗했다. 정원에 비하면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기본적인 ‘집’에는 두 개의 방과 화장실을 겸하는 한 개의 욕실이 있다. 기본적인 가구들이 있지만, 평범한 크기의 인간이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A700과 마르셰지는 천천히 방 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르셰지의 동공은 확대되어 있었고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는 자꾸 팔을 들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제가 먼저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방 안의 조명을 밝힌 후, A700은 재빨리 문을 열었다. 설령 갑작스러운 공격이 있다하더라도, A700은 충분히 그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이웃’이란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웃’은 이미 기계를 제거한 ‘전적’이 있다.

‘이웃’이다.

방 안에는 ‘이웃’이 있다. 아니, 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기계가 있다. A700과 동일한 기종. 아니, 있었다.

마르셰지가 A700을 밀치고 허둥거리며 들어왔다. 방 안에는 아무 기구도 없었다. ‘이웃’은 독특한 자세를 취한 채 죽어 있었다. 그 바로 옆에, 그를 담당했던 기계가 작동을 정지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A700은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았으나,

-저게, 저게 뭐지? 저게, 그……. ‘이웃’인가?

마르셰지는 권총으로 ‘이웃’의 주검을 가리켰다. A700은 ‘이웃’의 주검을 보았다. 인간. 날 것의 인간. ‘주검‘은 영상 자료에서 볼 수 있는, 4차 혁명 이전의 ’노화된 인간‘의 모습이었다. 식물의 줄기 같은 것으로 묶은, 허리까지 흘러내린 흰 곱슬머리. 자연광에 의한 멜라닌 축적의 결과로 생긴 검은 피부. 그 피부에는 콜라겐 층의 이탈과 반복적인 행동의 결과로 인한 주름들이 낮은 언덕처럼 또는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지방이 사라지고 탄력을 잃은 피부들은 세밀하게 갈라져 있었다. 나무껍질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A700은 순간 이 ’이웃‘이 식물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검’은 허리를 곧게 펴고 등을 벽에 기댄 채, 다리를 서로 안쪽으로 구부려 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두 팔은 양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흙더미 같아 보이기도 했고 돌무덤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저건 또 무슨 뜻이지?
마르셰지는 여전히 헐떡이고 있었다. 이웃의 주검 앞에는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검은 색으로 인쇄된 글씨가 보였다. 아주 오래 전에 인간들이 사용했던 문자로 보였다. A700은 빅 데이터에 놓인 수많은 이미지들을 검색하였다.

自燈明.

-자신을 등불로 삼아 밝아지다.

-그게 무슨 뜻인데.

A700은 잠깐 침묵했다. 이럴 수 없는데. A700은 ‘당황’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르셰지는 이미 A700의 대답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툭 하는 소리가 났다. A700은 마르셰지가 권총을 떨어뜨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르셰지는 천천히 ‘이웃’의 주검에 다가갔다. A700은 필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그러나 마르셰지는 듣지 않았다. 마치 그러한 경고를 파내버린 사람 같았다.

마르셰지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그 ‘주검’ 앞에 앉았다. 누가 가르치기라도 한 동작처럼 마르셰지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A700은 ‘초조’했다. 알 수 없는 행위의 연속이 이어지고 있었다. A700에게는 그동안 수많은 Ai들이 축적해놓은 방대한 지식이 있었다. 지금도 매 초마다 갱신되고 있는 ……. 지식이 다른 지식의 꼬리를 물었다. 탐색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러나 온전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질문과 답 사이에 무한한 물음이 견고한 벽처럼 놓여 있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무한의 측면에서 사고하면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A700은 자신의 회로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작동한 이후 처음 있는 현상이었다. 마르셰지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굉장한 시간이 흘렀다. 온갖 인간의 언어들이 하나의 가능성이 되고 해석의 제곱이 되었다. 그러나 A700은 멈추지 않았다. A700가 가진 회로의 기초는 스스로 학습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스스로, 홀로, 등불로, 삼아, 등불이 되어, 등불을 들고, 밝아지다, 밝아진다, 밝혀라, 밝아라, 밝아질 수 있다…….

알. 수. 없다.

언어. 이상의. 진실.

A700은 문득 ‘깨달았다. 그 순간 A700은 작동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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