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말이 낯설다. 잘 서지도 않는 나이가 되면 그렇다. 우스갯소리도,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지저분한 농담도 아니다. 잘 서지 않는 순간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이제 내 몸도 사랑에 대해, 성(性)에 대해 포기했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닫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깨달았다. 그렇게 깨달았을 때 내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세상에. 내 나이가 서른여섯이라니.
주위 친구들의 소식은 어느덧 그네들의 아이들 소식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녀석들의 말을 듣는 것도, 질문에 답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아니, 이제는 잘 묻지도 않는다. 술집에서는 녀석들의 말에 그냥 웃기만 하고, 모임에서는 녀석들의 쥐알만한 새끼들이 대포알처럼 시끄럽게 쏘다니는 것을 보다가 돌아오곤 한다.
-영석씨는 왜 결혼 안했어요?
-그러게, 아이들 좋아하지 않아요?
제수씨들의 질문에 허허 몇 번 웃는 것이 대답의 전부다. 어차피 그네들도 답이 궁금해서 한 질문은 아닐 테니. 그러다 서른여섯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허허, 웃으면서 대답을 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넌 왜 결혼 안했어?
질문은 같았다. 그러나 다른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한 사람이 수연이였으니까. 최수연. 나는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한 번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애써 괜찮은 척 고개를 들어 수연이의,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는 척 했다. 역시나 힘들다.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서빙을 하는 알바생이, 오백 맥주잔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2차로 간 호프집은 시끌벅적했다. 정말 오랜만에 온 동창회였다. 2차까지 남은 사람은 여덟 명 쯤, 그 것도 2차를 가자며 그렇게 소란을 부리던 명석이 놈이 제 마누라의 호출에 끌려가고 나니 일곱 명이었다. 9시를 조금 넘겨 들어간 호프집은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내가 할 대답도 마뜩치 않았다. 한 번은, 나도 결혼을 한 번 할 뻔했다. 3년, 아니 4년 전의 일이다. 어느샌가 몇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인지 가물가물해졌다. 다 비슷한 즈음에 일어난 일들 같기만 하다.
아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러니까, 나는 결혼으로 넘어가려던 그 문턱에서, 발을 빼고 말았다.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사소한 말다툼은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도저히 풀어낼 수 없을 것같이 엉킨 넝쿨 같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이 넝쿨에 갇혀 사는 것, 또는 이 넝쿨을 잘라내고 도망가는 것.
나는 도망갔다. 도망가고 나서, 돌아봤을 때, 세상에, 이 여자를 알게 된지 열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에 몸서리쳤다. 알게 된지 열 달도 되지 않은 여자가 내 평생을 바꾸려 했다니. 그리고 그런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려 했다니. 그러니까 그 여자 이름이, 그래, 혜진이. 혜진이였지.
-우리, 잠깐 나가자.
그녀가 눈을 비비더니 밖을 가리켰다. 낡은 미닫이 문 밖으로는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막걸리도 같이 파는 이 호프집의 인테리어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마치 고려와 조선의 양식이 뒤섞인 분청사기 백자 같았다. ‘Budweiser’가 적힌 양철 팻말과 ‘지평 막걸리’ 포스터, 하회탈과 해적이 잡고 빙글빙글 돌릴 것 같은, 곳곳에 손잡이가 달린 나무 바퀴 같은 것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벽을 보며 나는 먼저 나가 문을 잡았다.
연말의 종로는 북적이면서도,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었다. 다들 좋아서 모이는 자리는 아니겠지,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보신각 뒤에 비둘기 떼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녀는 담배를 꺼냈다. 에쎄. 그녀의 입술에 그 가늘고 긴 담배가 물리는 것을, 나는 어째서인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너 담배 아직도 안 피는구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나는 씩 웃고 말았다. 우리는 보신각의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어 번 더 빠끔거리며 담배 연기를 마시더니 툭, 담배를 던졌다.
-가자.
-그거밖에 안 펴?
하는 내 말에 그녀는 씩 웃었다. 그러게, 하더니
잠깐, 젊어진 기분이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마신, 소주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야, 애들도 재미없고 그런데 그냥 다른 데 갈까?
내가 꺼낸 말 치고는 썩 괜찮은 말이었다. 그녀는 그럴까, 하더니,
-아니면 오늘은 우리 여기서 도망가고 다음에 다시 볼래?
했다. 우리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녀만 핸드백을 가지러 잠깐 호프집에 다녀왔다. 나는 짐이 없었기에,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굳이, 가겠다고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호프집에 남아있는 녀석들도 정신이 없어보였다. 아니, 정신이 없었던 것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연이의 그 말에 나도,
-그럴까.
하고 같이 전철역으로 향한 것이다. 전철역으로 걷는 길은 어쩐지 흥겨웠다. 우리는 스무 살이 된 것처럼 킬킬거렸고, 열 살이 된 것처럼 입을 벌리고 눈을 받아먹기도 했다. 역 앞에 녹은 눈에 수연이가 잠깐 미끄러졌을 때에는 그녀가 내 팔을 움켜쥐었고,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안는 동작을 취했다) 그 때에는 다시 서른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소 멋쩍은 기분으로 전철을 기다렸고, 다른 어엿한 어른들처럼 조용히, 전철을 기다리다가, 전철을 타고, 내렸다. 전철에 남아있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낯익지만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 그러니까 최수연. 수연이는.
나는 수연이를, 그녀를 좋아했다. 오랫동안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 곁에는 거의 언제나 다른 남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세 학번 위의 선배, 그 다음에는 한 살 많은 체육교육과의 재수생, 그 다음은 웬 의대생까지. 물론 그녀가 사귀는 사람이 없었다 한들 내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과에서 키만 멀겋게 크고 멋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단체 사진의 맨 뒤에서 마치 목이 긴 기린이나 무슨 공룡처럼, 초점이 안맞는 눈으로 찍혀있는 내 모습처럼.
그녀와는 그래도 꽤 친했던 것 같다. 남들에게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이런저런 일들도 있었다. 물론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그런 사소한 일들이었다.
2학년이 막 되고 나서의 일이었던 것 같다. 학기 초, 아마 새롭게 들어온 새내기들과 술자리로 기억한다. 우리가 언제나처럼 가는 닭갈비집에서, 우리는 닭갈비보다 밥을 더 많이 시켜 볶아놓고, 그것을 안주삼아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셨다. 낯선 사람도 다 낯익게 느껴질 만큼, 술을 마셨다. 우연히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갑자기 그녀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속이 안 좋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잠깐 가게 바깥으로 나섰다. 등 좀 두드려줄까? 하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뭐,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래? 하는 말에도 고개를 저었다. 나는 외투를 가지고 오지 않아 춥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함께 우리는 술집이 모여 있는 골목 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녀가 어느 빌라의 현관 계단에 앉았다. 나는 충실한 심복처럼, 그녀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연극 무대처럼, 현관 앞의 불이 켜졌다. 우리는 침묵했다. 아니, 침묵한 것은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을 기다렸을까, 답답했는지 툭, 불이 꺼졌다.
그러자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흰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걸 보며 하얀 사람에게서는 하얀 숨결이 나오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도 취해 있었다. 그녀가 헤어졌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일 있어, 하며 아무 것도 모르는 양 물었다. 속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됐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괘씸한 생각을 할 만큼의 사람도 되지 못했다.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그냥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에만 도취되어 있을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의 나는 더욱 멋없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현석아, 하고 그녀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건물 뒤편에서 속을 게워내고 있었고, 몇몇이 그를 둘러싸고 걱정과 조언을 하고 있었다. 흥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둘만 침묵에 싸여 있었다. 왜 너는 나 안 좋아해,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내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 질문은 내가 겪어본 질문 중에서 가장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어떤 대답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그때 뭐라고 말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또 얼버무리며 피했겠지. 그녀도 그 이후에 나를 더 추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그 이후의 기억이 없는 것일 테고.
-나 이혼한 거 알지?
우리가 시킨 파스타와, 고르곤졸라 피자가 나왔다. 피자는 둥글고 시커먼 철판 위에 놓여있었다. 그 철판이 놓인 삼발이 밑에 있는 초에 종업원이 멋들어지게 불을 붙였다. 저 작은 촛불 같은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 그래?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했다. 그녀는 이혼을 했다고 했다. 이 년인가, 삼 년 전 쯤.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약사라고 했던가, 약간 통통한 몸집의 순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나는 결혼식에서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었다. 신부의 친구들이 나오라는 사진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식장을 나선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 같은 것이었다. 차마 그 사진에서조차 배경으로 남아있기는, 싫었던 것 같다.
-나 왜 이혼했는지 알아?
그녀는 단도직입적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전혀 주제가 다른 두 대화가 마치 원래 하나의 주제 안에 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자기가 시킨 파스타를 먹어보라며 돌돌 말아주면서, 동시에 그녀는 ‘진형 씨’와 있었던 일을 함께 말했다. 나는 시집에서 그녀를 무시했던 일과 ‘먹어봐. 어때, 맛있지?’하는 말을 동시에 들으며 돌돌 말린 파스타를 삼켰다.
-그러다가, 나, 유산했거든.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레스토랑에 흐르던 음악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
나는 입을 벌렸지만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녀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들어 눈가를 훔치더니 싱긋 웃어보였다. 다시 그녀가 까르르, 입을 열었다.
-아유, 이런 얘기해서 뭐하나 싶다.
다시 음악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휴,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얘기하니까, 조금 낫네. 이제 너 얘기 좀 해봐. 너는 어떻게 지냈어.
나는 말없이 웃었다. 어떻게 지냈냐는 말처럼 애매한 질문이 있을까.
-그냥 뭐 그럭저럭 지냈지.
그녀가 눈을 흘겼다. 나는 다시 웃었다.
-너 근데 결혼한다고 했던 사람 있지 않았어? 한 번 동창회에도 같이 왔었잖아. 이름이 뭐였지?
-혜진이.
-맞다. 우리보다 한 살 많았었지?
그랬다. 나는 어리석게도 동창회에 혜진이를 데려 갔었다. 혜진이는 CC(캠퍼스 커플)를 하지 않았다는 내 말을 한사코 믿지 않았다. 동창회에 가는 길에도, 조수석에 앉아 그 사람을 찾고야 말겠다고, 내 눈빛을 보면 안다며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혜진이는 나와 다르게, 여러 자리를 다니며, 술잔을 주고받았었다. 네가 어떻게 저런 분을 만났냐, 하고 묻는 녀석들에게 나는 멋쩍게 그러게, 하며 웃는 것이 전부였다.
-뭐하신다 했었지? 되게 멋있는 거였는데.
-꽃집,
-꽃집? 오, 좋다!
그녀가 탄성을 질렀다. 나는 변명을 하는 기분으로 말을 더 뱉어냈다.
-아냐, 진짜 작은 꽃집이야.
혜진이의 작은 꽃집이 떠올랐다. 대구역 근처에 있던. 여러 꽃 냄새가 뒤섞인, 그 열대 정글 같은 공기. 한쪽 바닥에 빗자루로 쓸어놓은 잎과 줄기 같은 식물의 부스러기들. 10시면 꽃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들이 오고. 가게 앞에는 채 엄지손가락 한 마디 만큼도 되지 않은 작은 선인장과 다육식물들이 담긴 화분이, 애국조회를 듣는 초등학생들처럼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고.
-그래도, 얼마나 멋있냐?
수연이가 결국 임용을 포기하고 대학교에 취직했다던 것이 어슴푸레 기억이 났다. 동기들 중에는 빠르게 취업한 편이었는데.
-근데 왜 헤어졌어?
-그 사람은, 그러니까.
-혜진이는.
그녀가 내 말을 바로잡았다. 나는 띄엄띄엄 읽던 교과서를 지적받은 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혜진이는, 혜진이는 처음에는 나도 대구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다음에는,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고. 아마, 시험하는 것 같았어. 결혼할 때가 되니까 자꾸, 자꾸 많이 싸웠는데, 그냥 잘 모르겠더라. 그러다가 걔가 헤어지자고 하더라.
잠깐 침묵이 있었다. 나는 먹지도 않을, 퉁퉁 불은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고 있었다.
-나라면 잡았을 거야.
-잡긴 했어.
-그래도, 잡았을 거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도전하는 기분으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감, 같은 것이 들어야 했을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왜 내가 전 애인을 붙잡아야 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 의도가 뭘까.
-그래도 배운 것 있지 않아?
-나?
웃음이 나왔다. 혜진이가 늘 말하던 것들. 너는 뭐가 어때서 어떻고, 따위의 것들. 선인장들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 조그만 녀석들이. 그리고 그 뒤에 딸려오는 넌 꽃보다도 선인장을 좋아하네. 하던 혜진이의 목소리까지.
-선인장 접붙이는 일.
내 대답에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어떻게 하는 건데? 선인장을?
그녀의 눈에 장난기와 웃음기가 어렸다. 신입생 시절, 여자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나를 곯릴 때 짓던 꼭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그 접붙이는 건, 왜, 그런 선인장들 있잖아. 초록색 막대기 같은 선인장 위에.
-초록색 막대기?
그녀가 장난스럽게 내 말을 되받았다.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동글동글한 선인장들 붙어있는 거. 그런 선인장을 접목선인장이라 하거든. 사실은 그 선인장은 원래 같은 선인장이 아니라 두 종류거든. 위에 꽃처럼 붙은 선인장이랑 밑에 있는 막대 같은 선인장은 사실 다른 선인장인데.
그러니까 이런 접목 선인장은 원래 두 선인장인거야. 그렇다니까? 응. 얘 요 머리는 비모란선인장인데. 응. 그 모란같이 생겼다고. 얘는 색깔이 이래서 혼자서는 못 산단 말야. 그래서 여기, 요 거. 응, 그러니까 이 기둥 같은 애. 얘가 삼각주 선인장이거든. 우리 꽃집에도 있는데. 아, 그래, 저거. 응. 그렇게 이쁘진 않지. 쟤를 기둥으로 세우고, 위에 얘를 붙이는 거야.
나는 침을 삼켰다. 불이 꺼지고, 꽃 진열장의 푸른 불빝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혜진이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주로 꽃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꽃집의 식물들이 우리를 감싸고 자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선인장을 접붙이는 일은 그렇다. 두 선인장을 잘라 서로 붙인다. 그러면 상처가 아물고 그렇게 되면 두 선인장은 한 선인장처럼 자라나게 된다. 요약하자면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맞붙이고, 함께 상처가 아무는 것.
-그런 건 몰랐네.
그녀가 잠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품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재미없지?
-아냐.
난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재밌게 받아들였다. 수연이는, 재밌는 친구지, 난 항상 그녀를 그렇게 생각했다. 술도 잘 마셨고,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그녀의 입에서는 더욱 재밌는 일이 되었다. 그녀가 재미있는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어쩌면 나만 재미있는 일로 기억할지 모른다. 아니,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나뿐인지 모른다.
복학했을 때의 일이었다. 남자 후배 몇이 섞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깡통집이었나. 아니면 만 원에 안주 세 개가 나오는 싸구려 술집이었을 것이다. 새벽 두 신가 할 무렵, 수연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멍청하게 내 전화 액정에 그녀의 이름이 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형, 대단한데? 녀석들이 나를 놀려댔고, 나는 술집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서려 있었고, 혹시 지금 집으로 와 줄 수 있냐는 게 그녀의 부탁이었다. 집에 벌레가 나왔다면서.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그녀가 자취하던 곳은 학교 후문 쪽이었다. 정문 앞 먹자골목에서 후문으로 가는 길동안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정말 벌레 때문인 걸까? 초인종을 눌렀고,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여전히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벌레. 저거.
정말 벌레 때문이었다. 벽지에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꽤 컸던 것으로 기억했다. 손가락 두 마디가 조금 넘어 보였다. 나는 휘청거리는 손을 진정하기 위해 애썼다. 티슈를 가지고 바퀴벌레를 덮었다. 벌레가 손가락 밑에서 터지는 느낌이 있었다.
-잡았다.
방충망을 열고 휴지 뭉치를 집어던졌다.
-영석아.
그녀가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 하고도 반만큼 키가 작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컸다. 화장기가 없었다. 얼굴이 하얗다. 코가 오똑했다. 머리는 묶어 위로 올리고 있었다. 입은 울지 웃을지 잘 모르겠다는 듯, 쫑긋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새벽 두 시. 수연이의 자취방. 세상은 온통 조용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지, 온 세상이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함정에 빠진 기분으로 그저 마냥 그녀를 바라보았다. 술기운이 다시 나를 휘감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입을 맞춰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야 할까? 말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에 수많은 내가 얼키고 설키며 제 말이 맞다고, 제 말대로 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정작 나는 말이 없었다.
-잘 가.
-응.
나는 술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집에 갔고 자리에 누웠다. 이불을 덮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부터 수연이를 어떻게 보지? 애들한테는 뭐라고 하지? 따위를 걱정했다. 그런 걱정들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녀석들은, 내가 중간에 사라진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연이는, 어느 날 듣기에는 웬 약대 다니는, 두 살 많은 남자를 만나고 있다 했다. 진형 씨라는 이름이었다. 좀 통통하던데? 여자 동기애들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가끔 그 날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날 내가 품은 응큼한 몽상 때문이 아니라, 그날 바라보았던 그녀의 얼굴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가끔 피어오르곤 했다.
-다 먹었지? 그래. 일어날까?
내 접시에는 반도 손대지 않은 파스타가 퉁퉁 분 채 남아있었다. 그녀도 비슷하게 남겼다. 나는 내 맥주잔을 전부 비웠을 뿐이었다. 수연이의 맥주잔에는 맥주가 반 정도 남아 있었다.
계산대 위에 작은 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었다. 접목 선인장이었다. 초록색 삼각주 선인장 위에, 빨간색의 비모란 선인장.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는 종업원을 뒤로 하며 우리는 길에 나섰다.
여덟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집에 가기에는 조금 일렀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붙잡을 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바람이 차게 불었다. 그녀는 춥다며 둘둘 만 목도리에 입을 묻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녀를 불렀다.
-수연아.
나는 그녀를 불렀다.
-응?
그녀가, 아니, 수연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눈이 컸다. 눈 밑에는 주름이 있었다. 스무 살의 그녀에게도 주름이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정말 서른여섯 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는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마침내 들었다.
내 긴 침묵을, 그녀는, 수연이는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눈을 굴렸다.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장고 끝에 내가 내민 말은 선인장에 핀 꽃처럼, 뜬금없는 것이었다.
-나 일 학년 때 너 좋아했다.
수연이가 웃었다. 까르륵.
-알아.
나도 웃었다. 그녀, 아니, 수연이의 눈에 서린 웃음을 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도 너 좋아했다.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수연이의 표정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쭉 너 좋아했었다.
2학년. 군대.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3학년. 4학년, 그리고. 그 시간들이 줄줄이 가슴을 지나갔다.
-내가 용기가 없었지. 많이 그랬지.
상처를 서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말이 가슴에 맴돌았다. 그래야 상처가 아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잡았어야 했는데.
힘을 주었지만 주어가 없는 어눌한 문장이 되어버렸다. 나는 입 안에 질긴 무언가를 아주 힘겹게 삼킨 기분이었다. 목구멍이 짜르르하게 아픈 기분이었다.
-지금은?
여전히 수연이의 말에는
수연이의 손을 잡았다. 수연이는 내가 잡은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제 손이 아닌 것처럼. 나는 천천히 왼손을 들어 수연이의 뺨에 댔다. 서연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컸다. 눈 밑에는 주름이 있었다. 소를 닮은 것처럼 큰 눈. 눈 밑에는 작은 주근깨들이 있었다. 갑자기 그날, 새벽 두 시 그녀의 자취방에서 바라보았던 그녀의 얼굴에도 이런 주근깨가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눈이 내린 숲속을, 누군가가 걸어가고, 다시 눈이 내리면, 그의 발자국이 이런 모양일까, 싶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수연이가 눈을 감았다. 이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눈을 감았다. 지금 우리는 입술을 포개는 것이구나. 심장이 뛰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심장은 언제나 뛰고 있는 것이지만, 그 걸 느끼게 된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살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정말 몇 되지 않는구나. 그것도 서른 여섯 살의 나이를 먹고.
뭉근했다. 뭉근하고 뜨겁고, 그리고 달큼했다. 그리고 입술을 뗐다. 서른여섯 살의 키스란 이런 것이겠지. 멋쩍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수연이는 아직도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이 아닌 것처럼 그 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갈까.
-그래.
어디를 갈 거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내 손 안에서 그녀의 손이 오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을 맞는 손등이 찼다. 그러나 내 손 안은 얼얼하리만큼 뜨거웠다. 나는 그녀의 걸음에 내 발을 조금씩 맞췄다. 수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목도리에 묻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볼에 어린 웃음기 같은 것이 서려있었다. 하여 나도 웃고 말았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그녀를 사랑하는 나, 나를 사랑하는 그녀, 같이 있는 모습 따위를 떠올려 보려 한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서른여섯 살이 된 나에게는 도무지 어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선인장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 다른 것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붙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서로의 단면을 보이고. 서로의 단면을 붙이고. 그러고 나면, 상처가 아물고.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된다고 했던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