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라는 작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인가, 그렇다. 아마 맞을 거다. 당신도 알 것이다. 나도 아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당신이 몰랐다 해도 좋다. 지금 내 말을 들으면 생각이 날 것이다. 생각이 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아는 척하고 ‘아, 그 사람?’ 하고 넘어가면 된다.
아무튼 이 카프카가 쓴 「변신」이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 아마 이름이 그레고리일 것이다. 어느날 그레고리는 딱정벌레, 바퀴벌레였나, 로 변신한다. 딱정벌레였던 것 같다. 사과, 아마도, 사과가 등딱지에 박혀서 죽었던가, 뭐 그랬으니까.
벌레가 된 그레고리는 비참하게 죽었다. 그레고리는 여자 친구도 없고, 직장도, 무슨 영업사원이었는데, 무튼 벌레가 된 후 혼자 근근이 버텨보았지만, 결국 죽었다.
거울을 본다. 거울에는 수염이 무성한 내가 있다. 어제 야근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 내내 나는 이렇게 덥수룩한 모습으로 있을 것이다. 나갈 일도 없으니까. 나 역시 여자 친구 없는 몸이다. 여자 친구는커녕 만날 친구 하나 없다. 만날 사람이라고 하면, 없지야 않겠다마는…….
그 뿐이다.
차라리 벌레가 되면 어떨까. 사람 말은 알아들으니, 유튜브 찍으면,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아니지, 어쩌면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 벌레TV. 사람 말을 알아듣는 벌레가 있다? 벌레 먹방, 벌레 방장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방장의 등딱지에 가려진 슬픈 사연 등등……. 구독자 십만 명은 우습지 않을까.
거울 속의 나는 눈이 벌겋다. 누렇게 뜬 피부는, 어디는 허연 버짐 같은 것이 피었고, 어디에는 연한 반점 같은 것이, 또 어디는 트러블이 일어 벌겋게 일어 올랐다. 피부가 아니라 가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멋대로 삐죽삐죽 자란 수염은, 차라리 무성했다면 그런 대로 볼만했겠지만, 무성하지도 않다.
희멀건 나잇살이 턱 밑의 그림자를 대신하고 있다. 차라리 앙상하게 말랐다면, 그것도 그런 대로 볼만했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 내 처지에 있어 설득력이라도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도 않다. 밤마다 마셔댄 맥주는 고스란히 뱃살이 되어 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요동친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맞다, 카프카. 그리고 벌레. 그리고 차라리 벌레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
그래, 이 이야기를 하려했었다. 나는 TV프로 「세상에 이런 일이」의 작가다. 사실 진짜 작가는 아니고, 인턴이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이라는 뜻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한다면, ‘나도밤나무’ 같은 것이다. 즉 밤나무는 아니지만 밤나무 엇비슷한 것. 그리고 끝내 밤나무로 분류되지는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튼 나는 신경질적이고 늘 회색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탈색한 머리가 뻣뻣한 막내 작가 밑에서 인턴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삼 개월 인턴이니까 딱 다음달까지다. 정규직 전환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삼 개월이 내, 뭐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거의 확정적으로, 마지막 방송 짬밥이 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제 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프로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니까 만일 이 프로를 알고 있다면, 이 문단은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는 세상 곳곳의 기괴한 일들을 찾아 소개하는 프로다. 매주 목요일 저녁 여덟 시 오십오 분. 방송 프로그램 소개 문구를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6mm 디지털카메라로 밀도 있게 취재, 독특한 구성과 내레이션으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정말 감동적일 만큼 사실 그대로의 소개 문구다. 이 프로그램은 6mm 디지털 카메라와 내레이션, 그리고 독특한 구성이 전부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구성이 무엇이냐면,
먼저 기인(伎人)이나, 또는 훌륭한 재주나 사연을 가진 개, 혹은 고양이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간다. 마을 주변에서 주민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인터뷰를 한 두 마디 딴다. 우리끼리는 이걸 꼭지라고 했다. “아유, 말도 마. 난 그거 보고 밤에 잠도 못 잤다니까.”,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따위 말도 안 되는 멘트 몇 개. 이렇게 꼭지를 딴다.
그러고 나면 그 기인이나……. 너무 길기 때문에 이후로는 그냥 ‘주인공’이라고 하겠다. 그 주인공을 만난다. 가끔은 주인공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짐승일 경우에는 119 소방대의 지원을 받은 사다리차나 드론 카메라까지 동원한 장대한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주인공을 만나고 나면 주인공의 재주나 사연을 소개한다. 내레이션으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재연 영상을 찍기도 한다. 주인공의 재주나 사연이라는 것은, 뭐, 긍정적인 사연이라면, 8살에 스노우보드 신동이라 불리는 동현이라거나, 13살에 수학 천재가 된 유경이 같은 사연일 것이고, 독특한 사연이라면 치약을 먹는 할아버지나 섬유 유연제로 온 몸을 씻는 보살 아주머니 같은 사연이 될 것이다.
주인공의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반드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다. 세상에는 참 당신도 모르는 별의별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이때 깨닫는다.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주인공은 기뻐하기도 하고 득의양양하기도 하고 자신만만하기도 한다. 또 가끔은 시무룩해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뭐 그렇다.
정규직 전환도 안 되는 인턴 자리라도 얻은 것도 그나마 아버지 친구라는 빽이 있어서였다. 하기야 문예창작과를 나와 월급이라는 것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복되고 영광되며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랴. 비록 삼 개월, 메뚜기 한살이만도 못한 기간이라 할지라도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나 그 아저씨 말마따나, 공영방송이라는 큰물에 비록 놀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발이라도 담가 보는 게 앞으로 인생에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겪어 봐야 아는 노릇이었다.
무튼 그렇게 팔자에도 없던, 아니, 팔자에 점처럼 찍혀 있는 짧은 인턴 작가 노릇을 하게 되었다. 회의에 참가하고, 과연 누가 읽기나 할까 의심스러운 회의록을 작성하고, 공유하고……. 현장 취재는 주로 막내작가가 동행했는데 나 역시 막내 작가 곁에 붙어 있는 깍두기 신세였다. PD 노릇까지 담당하는, 장비처럼 털이 덥수룩한 VJ의 회색 카니발에는 온갖 촬영 장비와 함께 장비 취급도 받지 못하는 막내 작가와 작가 취급도 받지 못하는 내가 억지로 몸을 욱여넣었다.
사실 촬영을 하고 내레이션 대본을 쓴다고 언제나 방송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우리 팀이 촬영하는 것들은 감동적인 사연이라 봐야 ‘고물 줍는 할머니 등에 업혀 다니는 강아지 꽃님이’요, 기괴한 사연이라 봐야 ‘날마다 후추를 반 통씩 먹는 후추 아저씨’ 정도이니. 거의 ‘딜레이’나 ‘킬’을 먹기 일쑤였다.
-그래도 큰물에서 일을 해봐야 일이 늘지. 맨날 똑같은 거 찍고 쓰는 것 같지만 처음에는 이렇게 해야 실력이 느는 거야.
차가 막힐 때마다 입에 늘어놓는 말이야 음담과 희롱이 전부인 장비를 닮은 VJ는 우리가 찍은 촬영분이 ‘킬’을 당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쓴 내레이션을 전문 성우가 읽어주고, 또 그렇게 완성된 촬영분이 방송에 나갈 때야 참으로 감동스럽겠지만, 뭐 내가 감동을 바라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정해진 퇴근 시간도, 주말도 없는 삶이었다. 거의 똑같아 보이는 회색 후드티를 브랜드만 바꿔가며 입는 막내작가는 촬영분이 킬 될 때마다 나에게 중언부언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변명을 늘어놓다가 자연스럽게 그 변명을 시시콜콜한 하소연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요새 방송계가 어떻다거나, 요새 자기가 살고 있는 집 주변 월세가 어떻다거나, 7년 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어떻다거나…….
삼 개월을 일하면서 마치 이러한 것들이 정해진 하나의 체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러저러한 내용을 찍으라는 말을 듣고, 담당PD의 전혀 믿음이 느껴지지 않는 눈을 보며 이번에는 잘 좀 찍으라는 당부를 듣고, 회색 카니발 근처에서 장비를 닮은 VJ를 기다리고, 그가 담배를 피는 것을 기다리고, 차를 타고, 이번 촬영은 어떨 것이라는 둥 맞는 일이 없는 그의 ‘17년 방송 짬밥’에서 비롯한 예측을 듣다가 그 예측이 듣기에도 거북한 희롱과 패설로 변하고 나면 예, 예, 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하다 눈을 돌려 차가 막힌 도로를 보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불쌍한 개를 찾아 뛰어다니고. 꼭지를 따고. 대본을 쓰고. 회의에 나가고. 이번에는 딜레이. 요새 같은 세상에 앞발 없는 개는 너무 자극적이야, 일단 딜레이 해, 라는 말을 듣고. 막내 작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이번에 딜레이가 된 이유에 어째서 자기 잘못이 없는지, 그녀의 변명을 듣고. 그 변명이 어느 순간 슬금슬금 변하더니, 남자들은 전부 똑같은 거짓말쟁이고, 핸드폰 요금 고지서를 보니 한국 통신 시장은 전부 사기꾼들뿐이라는 따위의 절대 지칠 줄도 끝날 줄도 모르는 하소연을 듣는.
그런 삶이었다.
그날은 경기도 이천으로 한 모 씨라는 남자를 촬영하기 위해 떠났다. 제보자는 남자의 어머니였다.
-제보자가 엄마야?
-네.
-이거, 씨바, 느낌 안 좋은데.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도 천박한 모양으로 침을 뱉는 재주가 있는 VJ가 되알지게 침을 뱉고, 입술 오른쪽으로 늘어진 침을 능숙하게 손으로 문질렀다.
-이게 엔만큼 문제가 크지 않으면 집에서 자기 식구들 방송에다 꼰지르지 않는다고. 뭐 해봐야 지 얼굴에 침 뱉기 아녀? 그리고 이번에 얘가, 뭐라고 했지?
-거미 남자요.
-거미 남자?
VJ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볼에 난 여드름을 긁었다. 손가락이 어찌나 굵은지 개구리의 발가락처럼 둥그렇게 보였다.
-그럼 스파이더맨 아냐.
사연은 이랬다. 사연 속 남자는 거미에 심취해 중학교 시절부터 거미를 기르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방이 한가득 살아있는 거미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넘어 심지어 최근에는 거미에게 일부러 물리기까지 한다나.
-그 지랄을 왜 하는데.
-그 영화에서 피터 파커가 거미한테 물리고 스파이더맨이 되잖아요.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막내 작가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신이 들어도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심통 맞았는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차도를 바라보았다. 탈색에 염색, 염색에 탈색을 반복한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날따라 더욱 푸석푸석해 보였다.
-아니, 거미 물린다고 스파이더맨이 돼? 참 나.
그러나 그녀의 기운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알지만 오늘은 넘어가겠다는 것인지 VJ는 평소 같은 목소리로 콧방귀를 뀌어댔다.
주소지에는 낡은 연립 빌라가 있었다. 빌라의 4층이 오늘의 촬영지였다. 약간 눈이 붉은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사내의 방은 과연 어두컴컴했다.
내가 처음에 카프카를 언급한 이유다. 방문을 여는 순간 나는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내가 무슨 교양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확히 책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변신」에서 묘사하는, 벌레로 변해버리고 난 그레고리의 방이 꼭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어두컴컴하고 습기 가득한 방이었다. 방에서는 알 수 없는, 비릿한 이끼 냄새와 함께 꼭 마른 멸치 똥이 쌓여 썩어가는 냄새가 났다.
-어우…….
인상을 잔뜩 찌푸린 막내작가는 불만을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30대 중반의 남자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않았던지 창백한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기른 머리는 잔뜩 기름이 져 머리통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안경알은 도수가 어찌나 높은지 안경알에 사내의 온 얼굴이 다 찌그러져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마른 얼굴이었는데 계란 같이 둥근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것이 괴이했다.
사내는 팔자주름이 깊게 패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가 압정으로 고정이라도 한 것 같은 웃음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입술은 하얗게 터 있었는데 그 밑으로 이빨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전반적으로 호감이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고 말해두자.
사내는 말주변이 없어보였지만, 과하게 밝고 명랑하게 말하려는 티가 분명했다. 문장이 길고 어수선했으며, 말을 더듬었다. 사내의 말이 방송에 나갈 수 있도록 막내작가는 몇 번이고 다시 질문을 반복해야 했다. 다행히 사내는 같은 말을 다시 하는 것에 크게 불쾌해하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이 키우는 거미들을 보여주고, 일일히 그 이름을 소개했다. 대부분이 타란튤라라는 거미들이었다. 다리가 어른 손가락처럼 굵고 몸통이 손바닥만 한 시커먼 거미들이었다. 꿈에 나올까 몸서리가 저절로 이는 광경이었다.
사내가 거미가 든 사육장을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의외로 거미들은 얌전했다. 대부분이 사육장 구석에서 굴을 파고 몸의 일부분만 내놓고 있거나 허연 거미줄 사이에 숨어있었다.
-이러면 이쁘게 나오긴 힘들겠는데…….
VJ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그가 원하는 화면은 다큐멘터리처럼 거미들의 몸통이 깔끔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그러면 이쪽을 좀 정리하고…….
남자가 다급한 듯이 대답했다. 놀랍게도 남자는 촬영에 협조적이었다. 특히 이런 동물들, 이런 거미 같은 것들이나 뱀 같은 파충류, 양서류들을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들 사육장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데 이 남자는 달랐다. 그래도 무엇이 불안한지 가끔 뒤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긴 했지만, 거미줄을 치워주거나 새로운 사육장에 잠깐 거미를 옮겨 넣는 등 열심히 촬영을 도왔다.
남자는 거미들이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실 거미들이 귀뚜라미나, 밀웜 따위 다른 벌레를 덮치는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사내는 가장 큰 거미에게는(정말 무슨 얼굴만 한 거미였다)실험용 쥐인지 흰쥐를 먹이기도 했다.
-우엑.
찌푸린 얼굴이 펴지지 않는 막내작가는 조그맣게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방송에 나가기는 아무래도 좀…….
-그치?
VJ는 이상하게도 신이 나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남자와 죽이 맞기 시작했다. 그들의 법석 뒤에서 우리는 조그맣게 속닥였다.
그날 촬영의 클라이맥스는 남자가 거미에게 물리는 모습을 찍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남자는 ‘스파이더맨’이 되기 위해 거미에게 주기적으로 물린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미에게 물리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말을 하면서도 막내작가는 자신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거미에 물리고 앓던 감기가 낫는 기분이었다, 또 우연히 보게 된 「스파이더맨」 영화 속에서 거미에 물리는 장면을 보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등…….
-거미는 남극이랑 북극 대륙을 제외한 전 대륙에 살고 있어요. 또 거미 유체는 성층권에서도 채집되기도 하고……. 거미는 성공한 절지류지요. 가장 성공한 포식자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익충이기도 해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또 위험하지도 않고요. 언젠가 제가 스파이더맨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거미에 대한 편견을 없애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망상과 공상이 뒤섞인 것이 판에 박힌 듯했다. 나는 남자가 공연히 방송에 나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거미에게 물리면 사실 독이 아니라 소화액이 나오지요.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남자가 속닥였다.
-그러면 사람 몸속에서 단백질이 분해되고 다시 재구성됩니다. 저는 이때 유전구조도 같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DNA도 단백질이니까요. 그런 과정에서 언젠가 제가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스파이더맨이 되면 거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막내작가가 메모를 멈추고 고개를 들 정도였다.
-진짜로 이렇게 거미에게 물리다보니 병에도 안 걸리게 되었고……. 어렸을 땐 되게 몸이 약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거든요. 그리고 처음보다 점점 덜 아파요. 아마 제가 변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니, 지금 실제로 진짜 보여드릴게요.
남자가 진짜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 앙상한 팔뚝을 보는 순간 나는 남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의 팔에는 작은 흉터들이 주근깨처럼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일부 울긋불긋한 상처들도 결코 사내가 하루 이틀 보여주기 식으로 거미에게 물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 제일 큰 놈으로 한 번 해 보지.
VJ가 턱으로 사육장을 가리켰다. 아까 흰 쥐를 잡아먹은 거미와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남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사육장을 집어 들었다. 짙은 고동색의 거미가 놀란 듯이 사내의 흰 팔뚝 위로 뛰쳐나왔다. 거미의 눈은 전등을 받아 작은 모래알처럼 빛나고 있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거미가 천천히 다리를 움직었다. 거미의 대가리에서 새까만 이빨이 불안스럽게 움직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날 촬영은 그렇게 끝났다. 막내작가는 또다시 회의적이었지만 VJ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엽기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도 장면도 아주 이 정도면 끝장이야.
-끝장이라뇨?
내 반문에 VJ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한 장면이라 이 거지. 이 정도 미친놈 없어.
-아니, 방송에 나갈 수나 있겠어요?
막내작가는 여전히 속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방송 아니면 유튜브로 보내면 되지.
VJ는 무언가 이상한 확신에 차 있었다. 하긴 담당PD는 방송만큼이나 유튜브 내보낼 영상을 신경 쓰라며 계속 우리를 닥달해댔다. 「동물농장」은 유튜브로 수익을 얼마얼마 올리고 영어 자막까지 내보낸다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방송에 안 나가는 것들도 유튜브로 나갈 수 있는 것들은 정리를 해서 매주 나한테 보고해라 등등.
-유튜브로는 나갈 수 있을까요?
-안될 게 뭐있어? 아까 들어보니까 뭐 이런 동물 키우는 사람들 유튜브가 뭐 조회수 십만 이렇게 나온다더만.
-그래요?
-애들한테 인기가 많다던데?
결국 나는 VJ로부터 담당PD에게 이 안건을 보고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받게 되었다. 무조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내라면서.
-스파이더맨?
담당PD가 입을 삐죽였다.
-스파이더맨이라.
PD가 한 손에 들고 있는 볼펜을 까닥거렸다. PD는 의자에 몸을 푹 묻은 채로 천천히 의자를 돌렸다.
-어벤져스가 이슈된 지 좀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뭐 괜찮겠지. 일단 전문가 인터뷰까지 다 따놓고, 방송까지 준비는 해 둬.
전문가와 인터뷰를 찍는 팀은 따로 있었다. 이틀 후 우리는 자막까지 처리된 전문가의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기묘한 기분이었다. 특히나 DNA 어쩌구를 운운하던 남자의 말에서 풍기던 그 묘한 자신감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전문가의 영상을 들고 다시 사내를 방문했다. 국내 최고의 거미 박사와의 인터뷰였다. 영상 속에서 거미 박사는 카메라의 작은 액정 화면 속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 되죠.
화면 속 하얀 가운을 입은 박사가 말했다.
-거미의 독은 인간의 위액이나 췌장액처럼 소화액입니다. 이 독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독이지 영화에서처럼 유전자의 배열을 바꾸거나 하지 못합니다.
안경을 낀 박사의 얼굴에는 진리를 입에 담은 사람 특유의 인자한 미소가 서렸다.
-또 이러한 특징 때문에 거미의 독을 많이 주입한다고 해서 면역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와는 다르게 거미의 독은 항체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아마 지금 면역이 생겼다고 하는 한 모 씨의 경우에는 그, 통증에 익숙해졌거나, 아니면 가미가 독을 주입하는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주의사항.
-이렇게 자주 거미에게 물리는 것은 절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특히 타란튤라처럼 크기가 큰 거미는 독을 주입하는 양도 많고 세균 감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또 타랸튤라가 날리는 털에 의해 발진이나 피부 질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TV를 시청하시는 시청자 분들도 조심하시고 한 모 씨도 앞으로는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침을 삼키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화면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은 외골격이라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 남자는 뭐라고 말할까.
남자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씩 웃었다.
누군가 양 옆으로 입 꼬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더욱 깊어져 입술만 없다뿐이지 또 다른 입처럼 보였다.
-잘 알겠습니다.
남자가 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이후에도 뻔한 인터뷰였다. 다시는 이렇게 위험하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남자의 약속을 받아냈다. ‘거미들이랑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라는 내레이션이 환청처럼 귓가에 들렸다. 그 정도로 뻔한 인터뷰였다.
-이거 진짜 방송 나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내 질문에 막내작가는 말을 흐렸다.
-방송 타기엔 조금 자극적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유튜브라면 되지 않을까요…….
뻑뻑 담배를 피고 있던 VJ가 나를 바라보더니 대뜸 쏘아붙였다.
-야, 맞다. 이거 방송 안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어?
-네? 아뇨.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야, 그런 걸로 계속 방송국 전화하고 그러는 이상한 또라이들 있단 말야. 얘도 좀 상태 꼬롬하니까…….
VJ가 침을 뱉었다.
죄송합니다, 여전히 눈이 붉은 아주머니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현관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의 방문에 노크를 하려는 찰나였다. 어쩐지 방문 틈 사이로 괴괴한 기운이 새어나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노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나도 모르게 방문에 귀를 붙였다. 침을 삼켰다.
합판으로 이루어진 방문 너머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흐느낌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울음 사이로 그 흐느낌은 심장소리 만큼이나 규칙적이었다. 비둘기나 소쩍새나 아니면 부엉이. 사람이 우는 소리라기보다는 새소리 같았다.
왜 우는 걸까. 정말로, 21세기에서, 자신이, 거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방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째선지 알 수 없었다. 이런저런 주의사항은 아주머니에게 대신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염기가 있는 것인지 주의사항을 들으면서도 아주머니는 연신 콧물을 훌쩍였다.
우선 유튜브 용으로 방송을 편집했다. 내레이션은 방송용에만 들어가기 때문에 따로 자막이 필요했다. 자막에 들어갈 내용을 쓰고, 편집이 적용된 것을 확인해야 했다. 편집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 집에 들어섰을 때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매일 맥주를 마시고 자는 사람은 왜 방송 소재가 되지 않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내레이션이 들렸다. 삼 년 째 제대로 된 직장도 갖지 못하고 매일매일 밤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거리에 나갔다. 웬 빌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붉은 벽돌의 낡은 빌라였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건물 옥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있었다.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난간에 기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뭘까, 저게. 눈을 찌푸렸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달은 초승달이었다. 손톱만큼 그나마 남아 있는 달의 모습도 가끔 구름에 가리곤 했다. 누군가 후레쉬를 켜 옥상 난간을 비췄다. 놀랄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하나 둘 빛이 옥상 난간을 가리켰다. 한 걸음 빌라 쪽으로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길 때였다. 주머니에 무언가 이물감이 들었다. 내 주머니에도 후레쉬가 있었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옥상 난간에 있는 그것은 여전히 검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나도 후레쉬를 켰다.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것은 ‘거미 남자’였다. 말 그대로 거미가 남자에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에도 시커먼 털이 잔뜩 뒤덮여 있었고 팔 말고도 네 개의 다리, 꼭 대게 다리처럼 생긴 시커먼 다리가 마치 전선이나 나뭇가지처럼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거미 남자는 거푸 난간 너머로 팔(어쩌면 다리)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점점 커졌다. 경찰 불러, 아니, 119 아냐? 119는 무슨, 저건 군대가 와야 돼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때 거미 남자가 그나마 사람의 팔처럼 생긴 팔을 허공에 뻗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거미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중지와 약지를 손바닥에 붙이고, 검지와 소지를 쭉 뻗은 손 모양. 그러니까 저것은.
-스파이더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꿈인가 싶었다. 저 손 끝에서 거미줄이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거미 남자는 끝없이 허공에 손을 휘적이고 있었다. 무얼 하고 있는 것이지? 어디에 거미줄을 걸려는 걸까?
-달, 달에다 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옥상 위에서 거미 남자는 초승달에 거미줄을 내던지고 있었다. 십수 번을 넘어 수십 번을,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그러하듯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끓었다.
사람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거미 남자가 난간 위에 올라섰다. 뒤에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권총을 뽑아든 경찰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아, 방송차도 보였다. 그리고,
쿵.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에 놀라 눈을 떴을 때에는 내 방 안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충전기 잭을 뱉어낸 채 뒤집어져 있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오전 3시 23분. 새벽이었다. 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날은 오프, 그러니까 출근하지 않는 날이었다. 늦은 오전 쯤 막내 작가를 통해 ‘스파이더맨’이 ‘킬’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방송은 물론이고 유튜브도 마찬가지였다.
예, 뭐,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방구석 끝에 누런 장판이 말려있었다. 나는 그 장판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느새 막내 작가는 자연스럽게 하소연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건성으로 듣고 있는데 방바닥 한 가운데를 무언가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먼지가 굴러다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거미였다. 아주 작은 거미.
먼지처럼 희뿌연 색의 작은 거미가 보이지도 않는 다리를 날래게 움직이며 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거미는 무슨 고비사막을 지나는 행상인들처럼 내 좁은 방을 건너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거미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거미로도 살지 못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인가.
이제 당신도 알 것이다. 내가 어째서 휴일 오전에 밥도 먹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카프카를, 그리고 그 사람이 쓴 책에서 딱정벌레가 되는 것에 성공한 그레고리를 생각한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