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를 위하여
역사가 잊어버린 역사를 추억하며
그러니까 이미 취해 있던 재경이 덕화를 마주친 것은, 노원역 사거리에서도 걸어서 한 1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근처의 상가 지하의 호프집이었다. 벌써 소주 두 병을 비운 재경은 눈이 절반 가량 게게 풀려있었고 흰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 있었으며, 검은 동자는 가을 밤바람은 몸에 좋지 않다는 듯, 눈꺼풀을 반쯤 덮고 있었다. 시계바늘은 열 두 시를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며, 재경은 화장실로 팔자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덕화를 마주친 것은 딱 그때였다. 500cc 맥주잔을 가득 올라온 둥근 플라스틱 쟁반을 양 손에 들고 있던 덕화는 곁눈으로 재경을 흘깃 보고는 뒤뚱거리며 홀 쪽으로 걸어갔다.
쌍꺼풀 없이 치켜 올라간 눈, 힘깨나 쓰는 건달처럼 우뚝 서 있는 코, 두툼한 입술, 시커먼 피부에 한 두어 달 기른 듯 보이는 곱슬거리는 수염. 세로 보다 가로로 떡 벌어진 어깨와 몸뚱이. 어른 허벅다리 두께의 팔뚝. 그리고 손목뼈 위에서부터 반팔 소매 사이로 구물구물 들어가는 용인지 잉어인지 모를 검은 문신.
재경은, 한껏 취기에 올랐기에, 괜스레 눈에 힘을 주며 덕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새낀, 뭐야?’하고 호기를 부려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물론 이미 혀의 기능 중 일부분이 파업할 정도로 잔뜩 취했기에, ‘즈어 쉐킨, 므이야?’ 정도였을 것이다. 물론, 재경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술 먹고 누구와 시비를 붙거나 한 적 없는 안경잽이 서생이므로, 그렇게 호기를 부리는 자신을 머릿속으로만 잠깐 그려 본 후 화장실로 호닥닥 달음질쳤다.
1차에서 곱창과 함께 마셔댄 소맥은 조금 비뚜름한 각도의 물줄기가 되어 소변기에 쏟아 졌다. 두어 방울을 마저 털어내고 주섬주섬 바지춤을 추스르는 동안, 재경은 갑자기 방금 본 사람의 모습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이름까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황덕화.
이어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황덕화는 누구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재경은 직접 지갑을 열어 덕화의 신분증을 확인한 것처럼 그가 덕화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 같은 샌님이 저런 덕화 같은 인물을 알 리 없었다. 군대인가? 그러나 기억 속 내무반 TV다이 안까지 더듬어가며 샅샅이 뒤져보아도 닮은 그림자 하나 떠올릴 수 없었다.
테이블로 돌아온 재경은 카운터 쪽을 흘깃거리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재경은 덕화와의 인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주정뱅이 특유의 광기 어린 집착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 그땐가? 강릉 게스트하우스 놀러갔을 때?
아냐.
아, 그럼 6개월 다니고 그만 뒀던 그 △△물산 17기 동기인가? 아냐, 저런 애는 없었는데. 아니 그도 그럴 것이, 덕화는 △△물산을 다니는 게 아니라 △△물산을 철거할 것 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두 잔을 더 마시고 재경은 계산을 한다는 명목 하에 계산대에 섰다. 마침 주문도 없었다.
“…원 입니다.”
덕화가 재경의 카드를 받았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How do you do, 라고 물으면 I’m fine, thank you, and you하고 답하듯 약속처럼 정해진 문답이었다. 이제 덕화에게서 카드를 받아 호프집을 나서면 끝이다. 그때 문득 재경에게서 알 수 없는 용기가 일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백면서생, 재경에게는 참으로 있기 힘든 용기였다.
“혹시 고등학교, 창원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재경의 물음에 흡사 알알 짖어대는 치와와 새끼를 바라보는 도사견 같은 표정으로 덕화가 답했다.
“네…….”
대답하는 덕화의 표정은 마뜩찮아 보였다. 심지어 그 도사견 같은 시커먼 얼굴에 깊은 주름 하나가 가로지르기까지 했다.
“아, 그치?”
그러나 재경의 얼굴은 환했다. 어려운 문제를 끙끙대고 풀어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덕화야, 나, 나 재경이야, 그 2학년 5반, 우리 같은 반이었잖어.”
“아, 너?”
“재경이.”
“아, 재경이, 야, 너, 그, 맞지? 교실에서 빗자루 들고 비둘기랑 싸웠던…….”
“응? 왜 교실에서 비둘기랑 싸워?”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후배가 뒤에서 불쑥 나왔다.
“야……. 너 여기서 일하는구나. 내가 일찍 알았으면 맥주 한 잔 샀을 텐데…….”
재경이 말하자,
“아냐. 나 일할 때는 술 안 먹는다.”
의외로 덕화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 어쩔까…….”
재경이 말을 더듬었다.
“번호나 줘라. 다음에 같이 한 잔 하지.”
덕화의 두터운 손가락이 핸드폰을 두드렸다.
자꾸 왜 비둘기랑 싸운 거냐고 물어대는 후배를 전철역으로 바래다주고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길에는 고등학교 시절 덕화와의 추억들이 돌부리처럼 툭툭 불거져 나왔다.
재경이 기억하는 덕화는 장사였다. ‘장사치’나 ‘장사꾼’을 이야기할 때 장사도 아니요, 장사지내다, 할 때 그 장사도 아니었다. 천하장사, 백두장사, 만만세 할 때 그 장사였다. 덕화는 재경이 살면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유일한 장사였다.
물론 노동으로 뼛골이 굵은 사람이나, 체육을 전공해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은 재경도 족히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덕화는 달랐다. 재경의 고등학교에도 체육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교실 뒤쪽에 모닥모닥 모여 앉아 체육복 지퍼를 코 밑까지 쭉 올려 입은 채 7교시 내내 주머니에 손을 꽂고 폼을 잡는 녀석들. 물론 개중에는 진지하게 운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운동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손을 놓은 녀석들이었다.
재경의 반에는 안 모라는 녀석이 그 녀석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생각해보면 대담한 녀석이었는데, 선생들이 애들을 말린 북어 패듯 때리던 그 시절에 녀석은 담뱃갑을 가슴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항상 가슴주머니가 불룩하게 각이 져 있었다. 물론 이러고도 녀석이 두들겨 맞지 않은 것은 녀석이 교문으로 등교를 하지 않고 담을 넘어 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쥐가 고양이를 피하고 병장이 원사들을 피해 다니듯 녀석은 교사의 눈을 피해 다니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었다. 하여 녀석에게 학교는 교사가 없는 무법천지나 다름없었고, 그 무법천지에서 녀석은 생태계의 꼭대기에 선 양 행동했다. 건들거리며 걷는 법이나 복도에 목에서 돋워낸 묽은 침을 탁 쏘아 뱉는 법, 말 한두 마디마다 욕지거리를 섞어 말하는 법 따위를 어디서 따로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배운 것처럼 녀석은 완벽하게 양아치 행세를 소화해냈다.
어느 날은 안 모가 교실 뒤에서 같은 반 친구랑 시비가 붙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아마 안 모가 장난을 심하게 걸었거나 했을 것이다. 재경이 기억하기론 갑자기 교실 뒤가 왁자하니 달아올랐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이미 안 모가 그 친구의 뺨을 치고 있었다. 미는 것과 때리는 것의 중간 정도의 세기였다. 재경이 기억하기로, 폭력에 익숙한 놈들은 주로 그런 식으로 폭력을 시작했다. 낚시꾼과 비슷하다. 처음 한두 번 입질을 보며 물고기의 힘을 알아보듯, 그렇게 한두 번 밀듯 때리듯 하며 상대의 반응을 알아보고, 그 다음에 폭력의 물꼬를 틔우는 것이다.
안 모는 그런 입질의 달인이었다. 거의 강태공에 가까운 솜씨였다. 짐승들이 그러하듯 안 모는 자신이 지는 싸움은 피했다. 즉 안 모는 이기는 싸움만 하였고, 자신이 완벽하게 이길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 전과를 자랑할 수 있을 정도의 상대를 골라 싸움을 걸었다. 안 모가 어디서 그러한 재주를 배웠을지 가끔 재경은 궁금하였다. 공교육에서 가르치지 않았으니 사교육을 통해 배웠을 것이요, 아마 실력 있는 과외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날 안 모가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하필 그날 교실 뒤에 덕화가 제 책상에 웅크리고 엎드려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안 모에게 뺨을 맞은 친구가 뒷걸음질을 쳤는지, 아니면 감정이 격해진 안 모가 앞으로 나아가다가 덕화의 책상에 부딪쳤는지도 모른다. 무튼 덕화가 잠에서 깼다. 덕화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뭐야.”
안 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안 모는 알고 있었다. 일단 한 번 싸움을 시작했으면 그 기세를 접으면 안 된다. 승냥이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약한 승냥이는 제 동료에게 먼저 물어뜯기기 때문이다. 하여 안 모는 덕화에게도 제 자존심을 지키면서 덕화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제 이빨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씨발, 뭐.”
안 모가 뇌까렸다. 이 상황에서 거의 정답에 가까운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 세 글자에는 안 모가 겪어온 삶의 대책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덕화였다.
“왜 싸우냐. 싸우지 좀 마라.”
덕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은 곰처럼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덕화 역시 싸움판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하긴 싸움 구경 싫어하는 고등학생이 어디 있으랴.
“뭐, 씨발.”
안 모의 패착은 이것이었다. 덕화의 심중을 파악하지 못한 안 모가 두 번이나 이빨을 드러낸 것이었다. 훗날 안 모가 이 순간을 복기한다면, 이때라도 차라리 싸움을 포기하고 매점으로 향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 모는 다시 한 번 이빨을 드러냈다. 아까 괜찮았으니 지금도 괜찮겠지, 타성에 기반한 행동이었다.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너 뒤진다.”
덕화가 내뱉은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이제 교실의 시선은 덕화와 안 모에게 꽂혔다. 안 모에게 뺨을 맞은 친구 역시 어느새 관객이 되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프로레슬링에서 새로운 상대가 난입하며 다시 경기가 시작한 것처럼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아까의 싸움이 발에 채이는 것처럼 흔하디 흔한, 저열한 다툼이었다면, 이번 싸움에 새롭게 등장한 상대는 신선하기 그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덕화가 안 모를 향해 똑바로 섰다. 그것이 덕화가 싸움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재경이 본 싸움을 시작하는 자세 중 가장 특이한 자세였다. 안 모가 그러듯 목을 우득우득 비틀며 요란한 자세를 취한다거나, 아니면 태권도나 복싱 자세를 흉내내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덕화는 그저 안 모를 바라보고 똑바로 서는 것이 전부였다. 곰이 두 발로 일어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안 모는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할 수 없었다. 안 모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 모의 운명은 이미 덕화가 스스로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안 모의 눈에는 물기가 도는 것 같았는데, 재경은 처음으로 안 모가 불쌍하게까지 여겨졌다.
교실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재경은 직감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끼리 치고박는 싸움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이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사냥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누우와 사자가 서로 얼기설기 뒤엉키는 그런 사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마귀가 나비를 채거나, 방울뱀이 들쥐에게 달겨드는 것처럼 일방적인 사냥. 싸움을 구경하는 열기가 사라지고 교실에는 고요와 긴장이 흘렀다.
그 몇 초의 긴장은 거대한 소리로 끝났다.
뻑.
받아쓰기를 할 수 있을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소리였다.
덕화가 손을 들어 안 모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나 안 모의 뺨에서 난 소리는 결코 뺨을 때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보았던 아이들은 하나 같이 "차라리 총 쏘는 소리에 가까웠다."라고 증언했다. 정말로 안 모는 얼굴에 총을 맞은 것처럼 모가지가 돌아간 채, 거의 교실 반 가까이를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 쓰러졌다. 코피가 터져 흐르고 있었는데 얼굴은 잔뜩 부어올라 있었다. 마치 얼굴만 차로 치인 사람 같아 보였다.
덕화가 다가가자 안 모는 손사래를 치며 부들부들 떨었다. 덕화는 안 모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괜찮냐?”
덕화가 물었다. 안 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 괜찮아?”
수많은 경험으로 채득한 절차가 있는 것처럼 덕화는 차근차근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상냥했다. 안 모가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덕화는 안 모의 얼굴을 돌려가며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야,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고 안모에게 조언까지 하며 천연덕스럽게 어깨동무를 하고 그를 보건실로 데려갔다. 덕화가 안 모를 보건실에 데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아이의 말에 따르면 “독수리가 쥐를 채가는 것 같았다”라고 증언했다. 누가 “븅신, 지랄하네. 너 독수리 본 적 있냐?”며 그 묘사를 비웃었다.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방금 전까지 들뜬 채로 싸움을 묘사하던 둘이 서로를 형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비릿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그 순간, 이어폰을 꽂은 덕화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실에 들어왔고,
교실은 우정으로 더 없이 화기애애했다.
안 모는 전학을 갔다. 전학을 가기 전까지 안 모는 말수가 줄어들었고 학교에서 담배도 피지 않았다. 전학을 가는 당일에도 전학을 간다는 말도 없이 5교시가 끝나고 사라진 것이 전부였다. 다음날 아침 조회 때 머리가 벗겨진 담임이 무슨 시간표가 바뀐 것을 알려주듯, 안 모가 전학을 갔다고 말 한 것이 전부였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싸움이 줄어들었다. 적어도 학교에서 싸우지는 않았다. 본 적은 없지만 작은 웅덩이에 송사리끼리 두면 아마 송사리들도 저들끼리 서열을 가린답시고 싸워댈 것이다. 그 조그마한 입으로 서로의 비늘과 지느러미를 물어뜯을 것이다. 하여 송사리 중에도 이른바 ‘통’이랍시고 싸움을 잘 하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웅덩이에 곰이 나타나 물을 마신다면, 그 싸움과 서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장 몸이 날래고 주먹, 아니, 주둥이가 센 송사리라 할지라도 곰이 한 모금 물을 마실 때 빨려 들어가면 그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하여 학교는 평화를 찾았다. 재경이 교실에 들어온 비둘기와 싸웠던 일화 정도가 소소하게 기억될 정도였다.
재경이 기억하는 덕화의 일화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재경은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근처 복지관으로 가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 활동을 했다. 어떤 강한 의무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재경은 봉사활동 동아리였는데, 그 봉사활동 동아리를 하는 학생들은 전부 의무적으로 도시락을 배달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봉사활동 동아리를 했는가. 그것은 학기 초에 동아리를 가위바위보 순으로 정했는데 재경의 가위바위보 솜씨는 같은 반 서른여섯 명 중 서른세 번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경 뒤의 세 명은 뜨개질 동아리에 배정되어 강제로 방과 후에 남아 목도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재경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자전거를 묶어둔 곳에 와보니 자전거가 없었다. 이후 정부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를 도입하지만, 그 당시 노원구에서 자전거는 이미 공공재에 가까웠다. 자전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이나 햇빛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자물쇠로 묶어두면 자전거가 공공재로 변질하는 시간을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발랑 까진 중학생들도 절단기를 들고 다니는 시점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었다.
“뭐하냐?”
재경이 분주하게 자전거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불쑥 나타난 덕화가 말을 걸어왔다. 재경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덕화는 날름날름 혀를 내밀며 한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었다.
“자전거?”
재경이 제 사연을 털어놓자 덕화가 반문했다.
“어, 자전거. 저, 봉사하러 가야 되는데, 누가 자전거를 훔쳐 가갖고.”
“그러면 안 되지.”
덕화가 아이스크림 막대를 집어던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목이 굵직한 것이 꼭 한 마리 황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건너에 검은 칠이 벗겨지기 시작한 낡고 커다란 자전거가 하나 길가에 묶여 있었다. 덕화는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했다. 덕화라면 차에 치여도 죽지 않는 것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며 재경은 쫄래쫄래 그 뒤를 따라갔다.
덕화는 그 자전거 앞에 주저앉더니 자전거의 자물쇠를 만져보았다.
“이거 내 거 아닌데?”
재경이 당황하여 말했다. 대답 대신 덕화는 자물쇠의 고리 양 쪽을 손아귀로 쥐었다. 그러더니 재경을 바라보았다.
“이거 사실 이렇게 당기면 빠져.”
마치 비밀을 알려주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무슨 소리야, 재경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덕화는 자물쇠를 양 방향으로 당겼다. 끙차, 라던가 기합을 주는 일도 없었다. 그것이 덕화의 ‘이렇게’였다. 그러자 자물쇠가 빠졌다. 재경은 눈을 의심했다.
덕화는 유익한 비밀을 알려주었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재경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화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뒤에서 자전거 주인이 달려온다거나, 경찰이 지나가다 보고 의심한다거나, 그런 걱정 따위는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신화 속에서 신들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져 섬을 만든다. 상고(上古)에 가까운 역사를 뒤지면, 청동화로를 맨손으로 우그러뜨리고, 호랑이를 목 졸라 죽이는 장수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 조선의 민담 속에는 엄지와 검지로 호두를 부수거나, 호박돌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장사가 있다.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만일 그 완력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왜 인간은 점점 약해지는 것일까. 손바닥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힘의 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과 장사들의 피가 점점 희석이 되는 탓일까. 하여 이렇게, 운동장에 덩그러니 놓인 철봉을 몇 번 오르내리는 것이 전부요, 완력이라고는 동네 미용실에 귀를 염색한 말티즈 뽀삐를 겨우 이길 수준의 힘만 지금의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럼에도 어딘가에 신과 장사들의 피가 남아있지 않을까.
재경은 다시 한 번 덕화를 바라보았다. 이미 볼일을 마친 덕화는 다시 길을 건너, 당연하다는 듯 무단횡단으로, 어디론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만일 지금이 춘추전국시대였다면. 재경은 생각했다. 덕화는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아니, 지금이 농경사회이기만 했어도 덕화는 온 고을이 추앙하는 장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덕화는,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국어 5등급에 수학 7등급을 받는 학생에 지나지 않다. 재경은 그 사실이 슬펐다. 비록 재경 자신이 가진 힘은 아니었지만 전설 내지는 역사로 기억될 수 있을 힘이 이렇게 자전거 자물쇠를 끊는 데 쓰이고 있었다. 평소에 망해라, 망해라 저주하던 조국이 망했을 때 느끼는 서러움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재경을 감쌌다.
덕화에 대한 재경의 기억은 사실 이런 것들이 전부였다. 그러니 덕화가 재경을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전설 속의 장사가 자신이 도와주었던 농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재경은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재경에게 덕화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덕화와 술자리는 보름 가까이가 지나고 난 뒤 금요일 저녁이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재경은 이상하게 마음이 들떴다. 어린 아이가 동화 속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기분이었다. 금요일 저녁 노원역 9번 출구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덕화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11월이지만 덕화는 무릎이 드러난 반바지 차림이었다. 다시 보니 고등학생 시절보다 살이 붙어 더욱 거대해보였다. 이런 저런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에는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 고등학교 시절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경은 덕화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덕화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싸움 한 번 없는 평화로운 시절로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군대에 갔더니, 다른 애들은 학교에서 엄청나게 싸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 태풍은 자신의 힘을 모르는 법이지.’ 하고 생각하며 재경은 술잔을 비웠다. 또 덕화가 한 번도 싸운 기억이 없다는 말에 재경은 다시 한 번 놀랄 뻔 했으나, 덕화가 안 모의 뺨을 갈기던 장면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이 어찌 싸움이 되겠는가.
재경의 생각과 다르게 덕화의 삶은 지극히 평온했다. 팔의 문신은 군대를 제대하고, 지방에서 잠깐 일할 때 아는 형님의 가게에서 제 돈 내고 한 지극히 평범한 문신이었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매니저까지 올랐는데, 스카웃 제의를 받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잠실에서 큰 술집의 매니저도 하고,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어릴 적의 궁금증이 다시 재경을 휘감았다. 어째서 이 장사가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일까. 시대를 잘 맞춰 태어났으면, 무슨 나라를 세우고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성 하나는 갖고 호령했을 인물이.
재경은 일제 시대 지식인들이 임경업이나 이순신을 두고 이들이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안타까워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들이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임경업이나 이순신은 장수의 자리에는 올랐다. 덕화는 호프집 매니저가 전부였다.
호프집 매니저가 어떻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덕화가 시대만 잘 맞춰 태어났어도 누릴 수 있었을 것들에 비하면 지금 덕화의 자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것들도 그랬다. 덕화가 행정병, 그것도 공군 출신이라는 점에 재경은 놀라는 동시에 실말했다.
물론 덕화가 특수부대에 들어가 북파 공작원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덕화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제대를 했다는 것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칼을 휘두를 일이 없다 하더라도, 이런 장수의 재목을 데려다가 엑셀이나 두드리고 작전판에 아스테이지나 붙이게 했다는 것에, 이 현대 사회의 둔감함에 재경은 몸서리를 쳤던 것이다.
갑자기 재경의 눈에 마주 앉아 있는 덕화가 그 자신이 가진 것만큼이나 평범해 보였다. 덩치가 좀 있는, 문신을 보아하니 젊었을 적 잠깐 놀았던 시절이 있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장사. 어처구니 없는 말이 아닐까 재경은 생각했다. 옛날 이야기 속 영웅들처럼 혹시 덕화가 학창 시절의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지금의 평범한 덕화도 이해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둘은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얼추 방향이 비슷했다. 덕화가 무슨 얘기를 하며 웃었다. 재경도 따라 웃었다. 낡은 상가 건물 구석에 철물점이 보였다. 번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재경은 덕화를 바라보았다. 덕화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너 옛날에 자전거 자물쇠 그냥 손으로 끊고 막 그랬던 거 기억하냐.”
말을 마치다 재경이 기침을 했다. 밭은기침이 이어지자 덕화가 놀란 듯 재경의 등을 두드렸다. 덕화가 등을 두드릴 때마다 허파가 등에 붙었다 가슴팍에 붙었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쩐지 이 정도 힘으로 등을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는 않더라도, 뭐 백 명에 한둘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로운 생각이 재경에게 들었다.
“그랬나, 내가?”
덕화는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여기 자전거 있나?”
그러더니 덕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문득 재경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다시 웃었다.
“왜, 그때처럼 다시 훔치게?”
하니, 덕화도 멋쩍게 웃어보였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수줍기까지 한 웃음이었다. 문득 재경은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보니 덕화는 조금 덩치가 있을 뿐 평범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힘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전락한 영웅도 있지 않을까. 삼손이나 아니면 우투리처럼. 신화나 전설에서 힘을 잃은 영웅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라면, 그들이 힘을 잃는다고 해서 그들의 결말이 비극적일 일도 없다.
“그치. 이제 우리도 어른인데…….”
하며 재경도 같이 웃었다. 어른이라는 말이 목에 달라붙는 기분이 이상했다.
“저기 자동차는 있다, 야.”
재경이 웃으면서 길가에 놓인 차를 가리켰다. 민트색의 네모난 경차였다.
그러나 재경과 달리 덕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한쪽 눈썹은 주저앉히고 다른 눈썹을 치켜든 채 자동차를 바라보던 덕화가 길을 건넜다. 여전히, 무단횡단이었다. 재경이 쫄래쫄래 그 뒤를 따라 길을 건넜다. 잔뜩 먹은 술과 안주가 속을 치받아 숨이 찼다.
덕화가 차 한 바퀴를 빙글 돌았다. 사자가 사냥한 먹잇감 주위를 도는, 꼭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봐라.”
하고 덕화는 재경을 바라보았다. 빙긋 웃는 듯했다. 예전 자전거 자물쇠의 비밀을 말해줄 때 그 표정이었다. 설마, 재경의 머릿속에서는 상식과 기억이 충돌했다. 덕화가 자동차의 뒤에 똑바로 붙어 서서, 차 밑으로 손을 집어넣을 때까지도 상식과 기억은 치열하게 부딪쳤다.
덕화는 자동차를 들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재경은 한 번도 이렇게 자신의 눈으로 보는 광경을 머릿속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적이 없었다. 목적어의 자리에 위치한 ‘자동차’라는 단어와 개념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게 ‘들다’라는 말의 목적어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덕화는 힘을 주고 있었다. 검은 옷을 뚫고 힘줄과 근육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재경은 침을 삼켰다. 덕화는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였다. 마치 땅에서 솟아나온 바위나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의 뿌리 같은, 기이한 자연물의 모습이었다. 당당한 반바지 아래로 불거진 허벅다리가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 하며 재경이 비명 같은 소리로 목에 가득 찬 놀라움을 토해내는 동안,
덕화의 허벅다리는 천천히 펴지고 있었다.
차의 뒷바퀴가 조금씩 공중에 뜨고 있었다. 재경의 눈에도 분명하게 보였다. 재경은 한 마리 암탉처럼 거푸 소리를 질러댔다. 덕화의 눈은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얼핏 그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깨와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다만 범퍼 밑으로 들어간 손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덕화는 곧게 허리를 폈다.
자동차는 이럴 줄 정말 몰랐다는 듯 난감한 표정으로 뒤꽁무니를 쳐들고 있었다. 꼭 천천히 쓰러지듯 내려앉다 덕화에게 슬쩍 기대고 있는 것 같았다. 덕화는 목을 하늘로 죽 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양 어깨에서 넓적하게 벌어져 있었고 그 어깨에서 뿌리처럼 뻗어 내린 삼두근은 말 주둥이처럼 푸르르 떨렸다. 손아귀는 자동차 아래를 단단하게 그러쥐고 있었다. 재경의 어두운 밤눈에도 그 힘의 작용과 이동이 무슨 설명서의 그림처럼 훤하게 보였다. 병화의 팔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다가 멎고, 다시 떨리기를 반복했다. 시간을 셌다면 몇 초나 그렇게 들고 있었던 것일까. 재경의 안에서는 한 시간 같은 시간이었다. 결국,
“야!”
하는 덕화의 외침과 함께 차가 들썩였다. 그리고는,
쿵,
하고 차가 내려앉았다. 덕화가 재경을 돌아보았다. 덕화의 시커먼 얼굴에 흰 이빨이 드러났다. 덕화는 웃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환한 웃음이었다.
삐용삐용삐용삐용-, 뒤늦게 신경질이 난 것인지, 차에서는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튀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덕화와 재경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재경은 아파트 단지 쪽으로 달아났다. 상가의 골목 사이로 덕화의 몸이 뒤뚱거리며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삐용삐용삐용, 경보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달아나려 했지만 중간중간 고약하게도 헛구역질이 일었다. 오랜만에 뜀박질을 하는 폐는 들숨, 날숨이 모두 벅찬지 단숨만 뱉어낼 뿐이었다. 그렇지만 재경은 허겁지겁 팔을 휘두르며 달렸다.
달리는 동안, 재경의 머릿속에는 덕화가 차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천천히, 그리고 또 빠르게 재생되었다.
한참을 달린 후였다. 재경은 자신이 혼자 웬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정을 막 지난 시간의 아파트 단지는 괴괴하기 그지없었다. 뜨겁던 몸에 배어나오던 땀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덕화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덕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덕화아!”
재경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혀가 취기에 오그라들어 쉽사리 발음이 되지 않았다. 하여 덕화야, 하고 부르는 재경의 고함은,
“떡콰야아아아아아!”
하고, 마치 울음 같은 괴성으로 울려 퍼졌다.
“떡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재경이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렀다. 멀리 떨어진 아파트에서 웬 개가 재경을 따라 짖었다. 덕화를 찾아 이리저리 주차된 자동차 사이를 헤매던 재경은 고함을 멈췄다. 손바닥에 바슬바슬한 껍질 가루가 묻어나오는 느티나무 하나를 붙들고 헛구역질을 뱉었다.
“떡콰야아아….”
묽은 침처럼 입에 고인 덕화의 이름을 뱉어냈다. 그러고는 느티나무 옆에 주저앉았다.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재경은 그의 집안이 그에게 내려준 것 중 유일하게 남 자랑할 만한, 그 숱 많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숨을 골랐다.
경차를 들어 올리던 덕화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재경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힘을 가진 덕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러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어디로 가야할까.
아파트 외벽에 써 있는 단지 이름을 보기 위해 재경은 몸을 일으켰다. 잔뜩 처든 고개에서 묽은 침 한 줄기가 턱 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던 중 재경은 그만 하늘을 바라보고야 말았다.
하늘에는 달 하나가 하얗게 얼굴로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개가 짖었다.
까닭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디로 걷는지도 모르면서 재경은 허청허청 걸음을 옮겼다. 그의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또 어디 먼 곳에서 개가 짖어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