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향 가는 길
물음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의 물음을 위하여
-김 군이 아닌가?
호루(화물차 짐칸을 덮는 천막을 이르는 일본말.)를 젖히고 들어온 사내가 내게 말을 붙이고 손을 건넨다. 부산을 떠난 지 어언 달포가 넘는다. 말이 삼천리요, 기차에 마차에 때로는 걸어 오르는 고갯길도 마다 않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펼치면 떠나온 길이 반만 리는 넘을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이역만리의 땅이요, 생면부지들 사이에서 별안간 지음(知音)이라도 만난 양 친근하게 구는 이 사내가 누구인가 나는 족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내게 건네는 손을 잡고 사내를 짐칸으로 당겨 올린다.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사내는 등짝만한 봇짐 두 개를 또 짐꾼게서 받아 내게 훌쩍 넘긴다. 옥색 천으로 싸인 봇짐을 짐칸 한 쪽에 몰아넣고 손을 툭툭 털고 나니 사내의 정체가 떠오른다.
-윤 형이 아니요?
나는 다시 사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윤은 내가 부산 다케다 상회에서 일 할 때 만났던 사람이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많고 문학인가 뭔가를 배우러 내지(內地)로 떠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다케다 상의 지인의 추천이라 하여 시작부터 장부 쪽에서 일을 했는데 머리는 좋은 듯하나 상회 일에는 흥미가 없어 뵌다며 다케다 상은 그리 탐탁지 않아 했다. 과연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하관(下關: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를 잡고 내지로 떠나버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촌에서 소학교를 나오고 도회지로 나와, 가진 것이라곤 맨주먹 하나에 주산이 빠르다는 것뿐이었다. 나도 조선인일진데 일인 밑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겠느냐마는, 파리가 먹고 살려면 똥 묻은 개 주둥이라도 붙어야 살 수 있는 법이다. 강산도 십 년이 지나면 변하는 판국에, 나는 본 적도 없는 나라가 망하고 삼십 년이 훌쩍 넘어 천지는 일인의 것이니, 나 같은 장삼이사가 별 방도가 있으랴.
주인 다케다는 경술년(1910년을 이름.) 이전부터 내지에서 건너온 부친을 따라 조선에 뿌리를 내린 사내로, 미곡(米穀) 수매로 큰 돈을 벌었다 했다. 얼굴은 쥐 상이고 키는 다섯 척이 안 되는 모양새로, 언제나 옷은 양장에 하이카라를 고집하였다. 처음에는 나도 짐이나 나르고 가끔 심부름이나 하는 급사였으나 가는 말이었는지 내가 주판을 다룰 줄 안다는 말에 장부를 다루는 쪽으로 올라와 근 오륙 년을 수족처럼 지냈다. 말이 수족이지, 저들이 가져가는 것에 비하면 내게 떨어지는 것은 콩고물 같은 것이었으나 나는 그것이라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나도 머리가 굵어지고 어깨 너머로 미곡 넘기는 것을 배우고, 또 장부에 오고가는 숫자놀음을 보다보니 나도 어느 작은 촌에 싸전 흉내라도 차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울고 싶은 놈 따귀 때려준다는 식으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쇼와 17년인가부터 갑자기 공습에 대비하라, 자경대를 꾸려라, 소방대를 꾸려라 등등 설쳐대기 시작했다.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 가게 문을 내리고 물 양동이를 들고 뛰고 하는 통이 말 그대로 지랄 맞기 짝이 없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일인들이 들들 볶아대는 데야, 삶은 돼지가 뜨거운 물 무서워 할 쏘냐 하며 견디는 차름밖에는 없었으나, 올 여름에는 그럴 수만도 없었다.
그 미군 비행기라는 놈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때는 점심 때 쯤, 소바나 한 그릇 먹고 오는 길에 갑자기 싸이렌이 울렸다. 처음에는 에, 또 지랄들을 한다, 하며 괜히 보였다가는 센징(조선인을 비하하는 말인 조센징의 준말.)이라는 이유로 물 양동이나 나르겠거니 싶어 어느 골목에 잠깐 몸을 숨기려는데 사람들이 하늘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니, 과연 비행기 하나가 떠 있었다. 땅에서 올려다보자니 손톱 만해 보이는 것이 흰 꼬리를 길게 끌고, 무슨 학이나 그런 큰 새나 되는 양 유유히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지상에서 법석을 떨어댄 것과는 별도로 미군기는 하늘이 제 집이라도 되는 양 편하고 또 어쩌면 느긋하게도 보였다. 거기까지만 보았어도 아마 그냥 좋은 구경 했거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골목에서 갑자기 웬 화물차에서 일본 병정들이 쏟아져 내렸다. 저마다들 한 쪽 어깨에 기관총을 하나씩 들쳐 메었는데 눈빛들이 살벌하다. 처음에는 대공 사격을 하려는 것인가 싶은데 하늘은 보지 않고 죄다 길거리로 흩어져서 멧돼지처럼 숨을 쉭쉭 몰아쉬며 손가락질이며 고함이 흉흉하다. 그들 눈빛이 가 닿는 것은 죄다 나 같은 센징이다. 머리가 어찔하더니 기관총을 들고 온 까닭을 알 것 같다.
애초에 저 딱총 같은 기관총으로 미군기를 잡는다는 것은 새총으로 봉황 잡겠다는 격이다. 미군기는 잡지 못하겠으나 대신 미군이 공습을 하면 민심이 어지러워질 것이요, 저들도 조선인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니 제 발이 저리는 것이다. 하여 공습을 틈타 조선인들이 일인을 습격하거나 아니면 주재소에 불이라도 지르거나 할 것을 생각하고 병정들에게 기관총을 들려 보낸 것이다. 그러니 저 총부리가 겨누는 끝은 창천의 미군기가 아니라 누항의 조선인들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머리끝이 쭈볏 서고 일인들 마주 대하는 것이 전과 같게 여겨지지 않았다. 다케다 상을 마주하면서도 이 놈도 속으로는 나를 언제든 쏘아죽일 센징으로만 보겠구나 싶으니 예전처럼 견마지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또 도둑질도 처음이 무섭다고 미군기도 한 번 조선 하늘에 발을 들여놓더니 이제 하늘에 길이라도 익혀두려는 것인지 점점 자주 출몰하기 시작했다. 저 미군기에서 불벼락이라도 쏟아져 내리면 그 난리는 또 어찌 피할까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미군기에서 내리는 불벼락이요, 둘째는 병정들이 쏴 대는 기관총이다. 대우라도 남들보다 좋다면 글쎄. 그러나 하루하루 낫살만 늘어나는데 목숨까지 저당잡히며 이 정도 대우는 또 내가 어디 가서도 받지 못하겠냐 싶기도 하다.
또 한 편으로는 전부터 생각하던 것으로 나도 언제까지 다케다 상 밑에서 이렇게 껍적껍적하고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조선에서야 일인이 일등신민이요, 조선인은 아무리 잘나봐야 센징에 요보(조선인을 비하하는 말.) 취급이고 이등신민이다. 그러나 만주국이나 대만에 가면 그곳의 야인(野人)들이나 생번(生蕃)들보다는 좋게 취급을 해준다 한다. 어깨너머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그 곳에 가면 나도 다케다 상만큼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 가진 돈을 모아다 다케다 상에게 여차여차한 이유로 만주국에 가겠다 말을 하였다. 말이 없는 것이 일단 일 부리던 사람이 나간다 하니 다케다 상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조회 때 급사들이랑 일꾼들을 모아 놓더니 나를 앞에다 세워 놓는다. 그러더니 연설 투로, 지금 귀축영미(鬼畜英美)와 일전이 한창인 시국에, 신민으로서 만주국에 가는 것도 전선에서 병정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싸움이요, 천황에 대한 충성이다, 이렇게 말을 한다. 그러더니 내게, 만주국에 가서 문명(文明)의 싸움을 계속 하여 주게, 하더니 회중시계를 하나 주었다.
나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요,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주는 것을 그대로 고개를 넙죽넙죽 해가며 받으니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열흘 걸려 나 다음으로 주판 일을 맡게 되는 창근이 놈에게 일을 다 물려주고 다케다 상에게 넙죽 절을 하고 나왔다.
종잣돈은 많다면 많은 것이요, 적다면 적은 것이지만, 기찻놀이하러 나온 것도 아니니 모은 돈을 깎아 먹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 마음을 먹은 것이 잠깐 노무자 노릇은 고생스럽더라도 어디 가는 찻삯과 숙박비만큼은 벌어 놓고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알음알음 움직이니 의주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어느덧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만주 겨울이 혹독하다는 말은 나도 읽고 들어 알고 있던 터라 그제야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의주에서는 또 조선인들이 만주국으로 가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고 특히 농민들은 더욱 앞장서 마을과 땅을 알아봐주는 눈치였다. 무얼 하러 가냐는 지사에게 나도 알음알음 농사 지으러 가는 촌부 분위기를 내니 이런저런 말을 해준다. 지금 만주에서는 콩을 주로 먹는데 쌀 먹는 사람이 늘어 또 쌀값이 금값이라는 둥, 그렇다고 이런 전시 상황에 무작정 쌀을 실어 나가는 것은 불법이지만 국경 넘어 또 알아보면 수가 없지는 않다는 둥 하는 말들이다.
일단 쌀이며 콩이며 무작정 돈을 털어 사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가서 살 만한 촌락은 없나 알아보다 한 마을을 알게 되었다. 바로 금향(金鄕)이라는 작은 촌락인데, 압록강을 건너 있는 연길(延吉)과 현지인들이 지린이라 부르는 길림(吉林)을 지나 열하성(熱河省)에서도 북쪽으로 들어간다. 융화현(隆化县)에서 육천(淯川)이라 하는 강이 있는데 이곳은 청나라 시절부터 사금이 나던 곳이다. 하여 일본이 금광을 개발하고 촌을 만들어 만주군이 지키고 선 곳이다. 육천에 금이 난다 하니 그 위 상류로도 작은 개척촌들이 생겨났는데 여동(騹同)이라 하는 마을이 있고, 강의 발원지 중 하나인 가산(麚山)이라고 하는 곳에 이 금향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현지인들은 만주 말로 진샨, 또는 진산으로도 부르는 곳이다. 향(鄕)은 만주에서 촌(村)을 부르는 말이고, 금(金)은 금이 많이 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김 씨들이 많이 모여 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 말처럼 금향은 조선인들이 주로 모여 만든 촌이라 따로 만주 말이나 아라사 말을 쓰지 않고 조선말로도 살 수 있다 한다.
또 의주에서도 들으니 만주국에서는 조선인들에 대한 취급이 거의 일인과 다를 바 없을 만큼 대우가 좋다 하고 흙이 검고 비옥하여 사금을 찾는 요령이나 금맥 잡는 재주가 없이 농사만 지어도 제 한 입은 간수할 수 있다니 이 또한 반가운 말이다.
윤은 수선스럽게 나를 만난 것이 우연이다, 운명이다 하며 수선을 떨어댄다. 나는 평소와 같았으면 가만히 있으쇼, 딱 말 한 마디하고 들어가 앉았겠지만 나도 사실 윤을 만난 것이 싫지마는 않다. 부산에서 운과 크게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요, 사귐이 깊었던 것도 물론 아니지만, 얼굴 아는 사람을 만나 이전 얘기를 나누는 것이 보통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래, 부산은 요즘 치안이 어떻소.
갑자기 윤이 목소리를 줄이더니 내게 속살거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뭐, 그렇소.
미군기가 뜬 것을 이야기할까 하다 나는 왠지 사람들 다 아는 얘기를 혼자 떠벌리는 것 같아 그냥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나 윤은 한사코 내게,
-미군기가 떴다는데. 혹 다케다 상이 떠난 것 아니오?
하고 묻는다.
-미군기가 뜬 것은 뜬 것이지만, 그거야 그것이고, 다케다 상은 여전하오.
하고 나는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윤이 무언가 또 골 아픈 질문을 쏘아 대기 전에 내가 먼저 무언가 질문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윤은 어찌 지냈소?
하고 물었다. 윤은 또 한참 일본에서 자기가 지낸 얘기를 늘어놓는다. 중간 중간 윤이 내게, 알겠소, 하고 묻는데, 이야기 대부분이 대학 얘기다 보니 사실상 내가 알아듣는 것은 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냥 고개를 주억거리며, 예, 예, 하고 만다. 내가 또 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는 편하다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김 군.
하고 윤은 목소리를 낮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말하니, 윤은 내게,
-혹 저 안쪽의 노인은 일인(日人)인가?
하고 묻는다. 나도 윤의 눈을 따라 화물칸 안쪽의 노인을 바라본다. 가끔 기침을 쿨럭쿨럭하는 노인은 보기에는 칠십 노인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환갑을 갓 넘긴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본래 노인네들 나이를 알아맞히는 재주야 없지만 이 노인은 유별나게 어림짐작도 힘들게 생겼다. 허옇게 샌 머리는 기름인지 무언지를 발라 뒤로 넘기고 옷은 하이카라 차림이다. 코트는 검은 색인데 카라에는 담비인지 족제비인지 뭔지 모를 털가죽을 둘렀다. 키는 작달막하고 손에는 단장 하나를 쥔 것이 일인 같기도 하고 조선인으로 치면 시골에서 꽤나 목 세우고 다녔을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저 노인이 혼자 중얼거리는 조선말과 운전수에게 하는 일본말이 서투른 것을 들었던 고로,
-조선인이오.
하고 윤에게 답한다. 내 말을 듣고 윤은,
-요새 노인네들은 겉으로 뵈기엔 일인, 조선인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니까.
하고 투덜거린다. 아마 저의 두루마기 차림은 누가 보아도 조선인 복색인 것이 민망한 모양이다. 나도 웃으며,
-윤 형은 참 민족주의자요.
하고 추어준다. 화물칸 안쪽 노인 맞은편에는 웬 아낙이 아이를 안고 있다. 아낙은 얇은 옷을 많이 끼어 입은 복색으로 가장 겉에 두른 저고리는 굴뚝 빛이다. 본래 회색 저고리인지 회색으로 쩌든 것인지 알 수 없도록 구석구석 헤진 곳이 많다. 치마는 먹색인데 마찬가지로 먹물을 들인 것인지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본래부터 행색이 너저분한 사람은 아니었든지 머릿기름은 반질반질하게 잘 발라 머리를 쪽진 모양만은 야무지다. 아기는 서너 살 되어 보이는데 칭얼거림이 많다. 아낙은 어떻게든 아기를 재워보려 하지만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아기는 칭얼거리기만 할 뿐이다.
시계로 짐작하건데 한 두어 시간은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고 또 내리던 화물차가 작은 기차역에 선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기차역에는 시커먼 얼굴의 사람들이 대여섯 명 모여 있다 차를 보더니 달려온다. 달려와 다들 제 말로 왁왁대고 떠드는데 만주말인지 일어인지 아니면 조선말인지 알 수가 없다. 운전수도 같이 왁왁대더니 조수더러 무어라 손가락질을 하며 캡을 쓴 사람을 가리킨다. 조수가 내려 한 사람을 따라가더니 둘이서 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오고 그 뒤로는 장옷을 두른 웬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좇아온다.
나와 윤은, 또 화물칸 바깥 자리에 앉은 탓도 있고, 장옷을 두른 여자가 나잇대가 젊어 보이는 탓에 호기심이 들어 괜스레 더 바깥을 기웃거린다. 내가 조수와 또 캡 쓴 역부가 건네주는 짐 보따리를 끙끙대며 나르는 동안 윤은 손을 내밀어 여자가 차에 오르는 것을 돕는다.
-고마와요.
여자의 목소리가 고와 나는 다시 한 번 흘긋 여자의 차림을 훑어보았다. 여자는 장옷을 훌훌 벗어 개키더니 자리에 깐다. 장옷 안에는 코트 차림인데, 붉은 색으로 물을 들였다. 살빛은 희다. 살이 흰 것이 빨간 겉옷과 똑 칼로 나눈 것 같다. 나는 속으로 분을 바르지 않고도 저런 사람이 있는가 생각을 하고, 애기를 달래는 아낙도 점잖은 체 하고 앉아 있는 노인도 이쪽을 흘긋흘긋 쳐다보는 눈치다.
머리는 조선 여인 모양으로 쪽머리를 틀어 비녀를 꽂았는데 어느 남자의 부인된 모양새는 아니다. 눈은 쌍꺼풀이 없고 눈썹이 길다. 코는 콧불이 둥그르슴하고 입은 좀 작다. 얼굴에는 분을 바르지 아니하였는데 입술에는 연지를 발랐는가 싶도록 붉다. 나이는 스물하고도 서넛쯤 더 되어 보이는데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올라앉아 무릎을 털고 여자는 흐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만주 사람들은 차 알아봐주는 사람까지 심부름삯을 달라지 뭐예요.
한다. 그러고는 화물칸 사람들을 둘러보고, 아기하고는 조금 더 눈을 맞추고, 마침내 윤의 검정 두루마기까지 보고는,
-여기는 꼭 조선땅 다시 온 기분예요.
하고 웃는다. 윤도 웃으면서 ,
-적지마는 조선에 다시 온 것을 환영합니다.
하고 농을 한다.
-아유, 그동안은 만주 사람들 틈새에서 혼났어요.
-아, 만주 말을 좀 할 줄 압니까?
윤이 물으니,
-뭐 어째어째 아기들 따듬거리는 식으로 할 줄을 알아요. 눈칫밥 삼 년이면 고양이 말두 알아듣는다지 않아요.
하고 여자는 깔깔 웃는다. 나도 무어라 말을 걸어볼까 생각하는데 운전수가 우리에게 뭐라 왁왁 외친다. 조수가 짧은 일본말로 옮기려는데,
-운전수가 연료를 넣는다구 다들 내리라네요.
하고 여자가 먼저 말을 옮긴다. 그러더니 운전수에게, 꼭 새가 지저귀는 듯한 말소리로 뭐라뭐라 몇 마디를 나누고 깔깔 웃더니, 다시 우리를 보고는,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용무라도 보라고 하네요.
하고 생긋 웃는다. 그러더니 아기 손을 잡고 조금 흔들기도 하고 하며 아낙에게 말을 건다. 윤은 입을 조금 벌리고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조수도 차에 내려 저쪽 담배 피는 사람들 무리로 향하고 있다. 나도 차에 내려 다리라도 좀 피고 할 요량으로 윤에게,
-만두라도 몇 개 사 오지요.
하고 훌쩍 짐칸에서 내린다. 그러자 윤도,
-나도 같이 가지.
하고 조금은 어설프게 짐칸에서 몸을 내린다. 나는 벌써 훌쩍 몇 걸음을 앞서가는데 윤은 아낙과 여자의 손을 잡고 내려준다고 뒤에서 시간을 끈다. 돌아서 구경하고 있자니 여자와는 뭐라 몇 마디를 나누고 또 깔깔 웃는다. 노인은 차에서 끝까지 내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역 한 쪽에 작은 구루마(손수레) 앞에 앉은 장사치에게 만두를 산다. 조선에서 만두라 하면 밀가루 피 안에 돼지고기며 부추며 다져 넣은 소를 넣은 음식이지만, 압록강 이북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속에 고기는커녕 순 밀가루로 찐 떡이나 다름없는 것이요, 이것만 먹기에는 목이 메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장 싸고 든든한 식사임이 틀림없다.
만두를 몇 개 받아 종이에 싸고 변소라도 가려는데 윤이 뒤에서 쫓아온다.
-그렇지?
하고 윤이 내게 묻는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놓치기라도 했나 싶어 잠깐 눈을 끔벅거리며 생각하는데,
-저 여자 말일세.
하고 다시 말을 붙인다.
-저 여자, 기생 출신이야.
나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 그렇습니까, 하며 바지춤을 추스른다.
-설매(雪梅)라던가, 그렇게 이름을 대는데 그런 이름은 주로 기명(妓名)이거든. 말투를 들으면 또 평양 사람인데, 그쪽에서 온 것 같지는 않고.
-윤 형이 언제부터 그렇게 풍류의 도사가 되었소?
하고 나는 죽 농으로 받아치는데,
-아냐, 의주나 함흥 쪽일지도 모르지. 평양 말씨의 기생이라면 어딜 가서도 높게 몸값을 받거든.
하고 윤은 꽤나 진지하다.
차에 오르니 우리가 가장 늦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조수가 다시 사람 머릿수를 헤아리더니 차가 출발한다. 그동안 여자는 벌써 아낙과 아기에게 말을 붙이고 있다. 아기를 안아보아도 되느냐, 아기가 참 이마가 잘생겼다 하며 칭찬을 하고 웬 양과자 같은 것을 아기에게 먹이기도 한다.
한참 여자가 품에 얼르니 아기도 잠이 들고 아낙도 그것을 흐뭇이 지켜보다 이내 졸기 시작한다. 여자는 또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고는 아기를 아낙에게 안긴다. 심심한 모양인지 우리를 보며 눈을 빛내는데 나는 어쩐지 졸립기도 하고 또 여자와 어울리는 일이 낯 부끄럽기도 하고 또 스스로 민망스럽기도 하여 거짓으로 하품을 쩍쩍 하고는 눈을 감았다.
여자와 윤이 둘이 만두를 나누어 먹으며 수작을 하는데 나는 까무룩 잠이 들어 중간중간 깨어 들었을 뿐이지만 웃음이 끊이지를 않는 것이 아주 재미가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또 운전수가 차를 멈추고 꽥꽥 소리를 지른다. 에서 내리란다. 회중시계를 슬쩍 보니 점심시간이 넘었다는 말이 민망할 만큼 훌쩍 지난 시간이다. 운전수가 나눠준 벤또(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몸을 기지개도 켜고 앉았다 일어서기도 한다. 나는 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만주국의 벤또라 하여 뭐 다를 것은 없고 절인 무 몇 도막과 우메보시(절인 매실) 하나가 전부다. 별 식사 같지도 않은 것이야 훌훌 털어 넣고 용변을 보고 있는데 윤이 갑자기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설매에게도 금향에 갈 생각이 아닌가 물어보려 하오.
윤의 얼굴은 딴에 걸맞지 않도록 진지한 얼굴이다.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만다.
-윤 형이 홀딱 빠지셨구먼.
-빠지다니.
하더니 윤도 자기도 모르게 웃는다.
-빠졌나. 아니, 잠깐 얘기를 나눠보니 문학도 잘하고 소양이 있네그려. 우리가 낡아빠진 조선을 떠나 새 나라, 새 시대를 찾아왔는데, 구태 옛날 기생 시절을 잡고 늘어질 것도 없지.
윤이 혼자 말을 하는데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꼭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윤은 혼자 중얼중얼하고 또 몇 걸음 돌아다니다가,
-옳아.
하고는,
-새로운 시대에는 저런 여자가 또 참된 부인상인지 모르오.
한다. 나는 어쩐지 민망스럽도 하고, 또 윤이 부접대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우습기도 하여,
-윤 형은 나이도 있는데 결혼은 아니 하였소?
하고 물으니, 윤은,
-결혼?
하고 되묻더니 또 피식 웃는다.
-조선에서는 나이가 없어 못했고, 일본에서는 돈이 없어서 못했고.
나도 웃으며,
-오래 기다리셨소. 드디어 만주에서 저 설매랑 할 모양이오.
말하니 윤은 껄껄 웃는다.
-옳아. 설매에게 한 번 물어보지.
내가 놀라,
-결혼을?
하고 물으니, 윤은 더 크게 껄껄 웃어댄다.
-그건 너무 이르고, 어쨌건 금향에 올 생각이 있는지 한 번 물어볼 생각이오.
하고 윤은 말한다. 그때,
-저 쪽에서도 둘이 웃는 소리가 들립디다.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눈에 웃음을 띤 여자가 슥 다가와 윤의 곁에 앉는다.
-무슨 얘기가 그리 재미있수?
하고 묻는 여자의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가득하다. 윤은 머쓱한 표정이고, 나는 그 둘 사이에 있는 것이 멋쩍어 슬쩍 자리를 일어난다.
-어디 가려구?
하고 윤이 묻는다.
-그러게. 사람이 오자마자 일어선다니 온 사람이 민망시럽지 않겠어요.
하고 여자도 말한다. 거기에 둘러댄다는 것이,
-아, 눈꼴이 시러버 그러우.
하고 말해 버렸다.
-우리가 무엘 했다구 눈꼴이 시렵단 말야.
하고 여자는 굳이 말꼬리를 붙들어 멘다. 나는 잠깐 생각을 하다,
-오늘 처음 본 여자를 형수라 불러야 할 판인데, 그게 눈꼴 시럽단 말야.
하고는 돌아섰다. 뒤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더니 이내 깔깔 웃는다. 나는 속으로, 무엇이 그리 좋담, 하고는 걸어가 떨어져 있는 그루터기에 앉았다.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는 것도 지루하여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있노라니 만주 땅에 날아다니는 새들도 조선 땅의 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목눈이, 곤줄박이, 박새 따위가 서로 쫓아다니고 쫓고 하면서 지줄대는 것을 보니 시간이 가는 것도 몰랐다. 운전수가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모은다.
-옳아. 설매도 금향에 관심이 있더군.
화물칸에 오르니 윤이 내게 속살거린다.
-금향 얘기를 했소?
내가 물으니,
-그렇고말고.
하며 윤은 수선스럽게 여자와 나눈 얘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크게 관심이 없어 예, 예 하며 윤의 얘기를 반쯤 흘려 듣는다. 화물칸 안쪽에서는 여자가 이쪽을 슬쩍 엿보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인다. 윤은 언제 갑자기 만주의 도사가 되기라도 한 모양인지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또 여자에게 만주말을 배우겠다 하여 또 법석을 피운다. 나는 입때까지 살면서 형수란 사람을 모셔본 적이 없지만 형수란 사람이 있고 그가 형과 떠들고 있는데 내가 시동생 노릇으로 밥상머리에서 그네들 떠들고 있는 말소리를 듣고 있자면 꼭 이런 기분일 것 같아 괜히 목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느낌으로 둘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둘은 정말 부부인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윤이 오라비요, 여자가 누이 동생이라도 된 듯 서로 정답기 그지없다. 가끔 아낙도 얘기에 끼어들고 또 애기도 재롱질을 부리거나 아니면 트림을 하거나 하며 사람들 눈길을 끈다. 노인도 이쪽을 힐긋힐긋 눈치를 보며 즐기는 눈치다. 워낙 사람들이 재미나게 떠들어대니 조수도 말을 몇 마디 끼어들기 시작하고 운전수도 말을 붙이고 하여 차는 여자가 타기 이전과 같지 않게 또 시끌벅적하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차는 웬 숲으로 들어가 한참 숲길을 달린다. 원래는 초원 쪽으로 가면 길이 조금 돌아가기는 해도 평탄한데, 요즘 마적 떼가 워낙 들끓어 숲으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들이 저마다 전신주처럼 키가 큰데 또 허연 나무 기둥들에 푸르스름한 빛이 물들어 어쩐지 기분이 음산하였다.
숲 저 쪽에 주황빛 불빛이 보인다. 차는 가기 싫은 걸음을 떼는 것처럼 속도를 줄인다. 과연 불빛이 있는 곳에는 웬 건물들이 몇 채 있는데 벽돌로 지은 건물은 이 층 되어 보이는 건물이요, 다른 건물들은 죄 나무로 지어놓았다. 또 몇 채는 누가 보아도 새로 지은 것이 틀림없었다.
-주재소.
하고 윤은 목소리를 낮춘다. 벽돌 건물 이 층에는 무슨 일인지 불빛이란 불빛은 죄다 훤하게 밝혀 놓고 시끌벅적하다. 전축이라도 틀어놓은 것인지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놈들이 무슨 연회라도 하는 모양이지.
누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윤은 또 속달댄다.
-군인들이라고 죄 남정네뿐이 없을 텐데 연회는 무슨.
하고 윤이 중얼대는데 운전수는 스스로 차를 세우고 순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있는 놈들이 배짱이라고, 이쪽 낌새를 눈치챘으면서도 순사들은 동작에 늦장이다. 시동 소리도 꺼지고 나니 차 안은 더욱 조용하다. 침 삼키는 소리만 있는 침묵이 한참 있고서야 긴 장총을 비뚜름히 멘 군인이 순사 둘과 함께 건들거리며 걸어온다. 먼저 순사들이 운전수를 내리게 한다. 군인은 운전수랑 무어라 무어라 얘기를 나누는데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승객들이랑 짐이 무언지 염탐하는 것이겠지.
윤은 또 중얼거린다. 나는 또 불안한 기분이 들어 밖을 슬쩍 내려다 보니 운전수 말에 무엇이 성이 났는지 군인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더니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나는 죄를 짓다 걸린 아이 같은 마음이 들어 얼른 호루를 내리고 다시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윤이 내게 무어라 물어보려는 눈치지만, 곧이어 누가 호루를 확 잡아챈다.
군인이다. 군인은 한 손에 든 남포(램프)로 화물칸 안을 빙 둘러본다. 그러더니 군인의 눈이 여자에게 가 닿는다. 윤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군인이,
-센징?(조선인인가?)
하더니 또 한 번 여자 얼굴을 유심히 본다. 그러더니 운전수에게는 퉁명스럽게 기다리라고 하고 쏜살같이 안으로 달려간다. 운전수와 조수가 하는 말을 들으니 군인 말이 기념 연회를 하는데 여자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모양이었다. 다시 나온 군인은 운전수에게 무어라 무어라 말을 하며 자꾸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 심상찮다. 운전수가 무어라 우는 소리로 답하니 군인은,
-우케로, 쿠루마다이(받아라, 찻삯.).
하더니 은전 몇 닢을 던진다. 운전수는 모자를 벗고 땀이 번들거리는 이마를 몇 번 긁적이더니 이쪽을 슬금슬금 쳐다본다. 화물칸 사람들은 괜스레 죄지은 사람이 된 것처럼 눈을 피한다. 눈을 피하지만 눈을 피하지 못하는 건 딱 한 사람뿐이다.
여자는 이제 이야기가 자기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슬슬 눈치를 챈 모양인지 눈에 두려움이 어린다. 놈들이 여자를 내리게 할 작정인 것이다.
차 안에도 비슷한 공기가 일렁인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조선인이요, 이곳은 또 조선에서 이역만리, 아는 사람, 눈에 익은 흙 한 줌 없는 만주 땅이다. 여기서 저들이 해꼬지를 잡거나 트집을 잡아대면 도리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듣기로도 초소나 주재소에서 뇌물을 주지 않으면 통과를 해주지 않아 며칠이 넘게 구금되어 있거나 아니면 짐 보따리를 압수당하기도 한다던 말이 지금 누가 귓가에 속살거리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러느니 이 여자를, 생면부지의, 그리고 어차피 기생 출신이면 이런 일이란 능숙할 것이 아닌가, 여자를 내려주고 나면 또 저들은 연회를 하느라 바쁠 터인데 우리에게 신경을 쓸까 싶다. 그러나 또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떠오를 수 있고, 또 지금도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사람이 섬찟하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그러면 고작,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주판이 전부요, 배운 것이라고는 주판 굴리고 곡식 넘기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만주국의 순사들로부터 이 여자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싶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여자와 윤은 또 저들끼리 수작 중이었다. 수작이라기에, 윤은 입을 닫고 있고 여자가 주로 떠듬떠듬 말을 붙이는 모양이었다.
-윤 상. 저…….
여자는 윤의 옷소매를 잠깐 잡아당기더니 잠깐 말을 멈춘다. 그러더니 눈은 윤에게 맞추지는 못하고, 얼굴만 든 채로 작게 말을 꺼낸다.
-윤 상을 제 남편으로 소개를 하면. 아니면 오누이라두…….
끝의 ‘아니면 오누이라두’ 하는 말은 거의 입 안으로 중얼거리는 모양새다.
-얼굴이 닮지를 않아서…….
윤은 우물우물 한 마디를 뱉어 낸다. 그러더니 그 한 마디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푹 숙인다. 여자는 잠깐 입을 벌리고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만 하지 못하고 만다. 여자도 결국 고개를 푹 숙인다.
-…….
그러는 동안 낮은 계급으로 보이는 순사들이 오가며 호루를 들추고 저들끼리 낄낄거린다. 여자는 양 팔에 얼굴을 묻고 있다. 순사들은 저마다 불콰한 얼굴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저질스럽게 웃어댄다. 몇 명은 지폐 몇 장을 흔들어대더니 또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그럴 때마다 뒤에서 부장처럼 보이는 이가 무어라 호통을 치지만 그 이도 잘 보면 낯에 히죽거리는 웃음이 가득하다.
마침내 운전수가 포기를 한 것인지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며 무어라 한다. 군인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화물칸에 군홧발 한 쪽을 올려놓더니 모든 것이 다 결정되었다는 듯 여자를 보고 말한다.
-오리로(내려라).
여자가 휙 차 안을 돌아본다. 초소에서 번져 나오는 남포 불빛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빛난다.
-거, 추우니 빨리 좀 내리쇼. 웬 말이 그렇게도 많을까.
늙은이가 그렁그렁하는 목소리가 무슨 이리 같다. 가래를 뱉듯 툭 말을 뱉어놓고 늙은이는 다시 카라에 턱주가리를 묻는다. 여자는 동굴처럼 컴컴한 늙은이 쪽을 힐끗 돌아보다 또 아낙 쪽을 돌아보다, 우리를 돌아보다 하며 정신이 없다. 누군가 저를 잡아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이때 아낙의 품에서 아기가,
-아아.
하며 팔을 벌린다. 여자는 흰 얼굴에 잠깐 미소가 띤다. 아기를 보며 여자가 손을 벌리는데,
-얘.
하더니 아낙이 아기를 얼른 품으로 거둔다. 아낙은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제 어미의 쌀쌀맞은 태도에 아기도 놀랐는지 어미의 품에 고개를 묻는다. 여자는 벌린 손은 내리지도 못하고 멍청하니 입을 벌린 채 서 있다. 여자의 눈에는 이제 눈물기도 없다. 다시 이쪽을 본다.
-오리로오(내려라).
다시 군인이 채근을 해댄다. 그러자 여자가 입을 달싹이더니 우리에게만 겨우 들릴 목소리로 말한다.
-윤 상은.
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여자를 보지 않고 있다. 여자가 이쪽을 보는가 싶어 나도 눈을 돌렸다. 눈이 마주쳐 서로 얼굴을 본들 재미 적은 일이다. 아무도 저를 보지 않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여자는 조금 목소리를 높이더니,
-안녕히들 가세요.
하더니 호루를 내린다. 호루가 내려가자 화물차 안은 완연한 어둠이다.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도 없다. 조용하다. 밖에서 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우렁우렁한 병정들 목소리가 들리더니 아까 그 하사관이 호루를 올리고 쓱 들어온다. 그리고 밖으로 무어라 말을 하다 여자의 보따리를 인부에게 건넨다. 죽 우리를 둘러보고,
-자, 마따네(또 봅시다들).
하고는 킬킬 웃더니 호루를 내린다.
-츄바츠시마스(출발하겠습니다),
운전수가 시동을 걸고 차가 움직인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짐이 나갔기로 화물칸 안은 그 만큼 자리가 넓어진 셈이나 사람들은 그 넓은 자리를 쓸 생각을 못하고 여전히 비좁은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마치 사람은 나갔으나 사람이 나간 만큼, 아니, 그 부피보다 더 큰 무언가가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차는 거칠고 투박스러운 길을 투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흔들리고 덜컹거리기 일쑤다. 그때마다 짐칸의 사람들은 알았다는 듯, 알겠다는 듯,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혼쭐을 내겠다고 엄포를 논 것 같다.
짐칸 안의 램프도 빛이 다하자 호루 안은 이불 속처럼 어두워진다. 간혹 호루에 난 구멍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스며드는 것이 전부다. 몇 시간을 가는지 가늠 할 방도도 없다. 졸다가 깨기를 몇 번 하였는데도 여전히 차는 변함없이 덜컹거리며 흙길을 달리는 중이다.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을뿐더러, 이렇게 잠들고 나면 밤에 잠을 자는 일이 고역일 것이 뻔하여 나는 더 이상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윤은 이미 곯아 떨어진지 오래고 설령 깨어있다 하더라도 차 안의 침묵을 깨는 일이 꼭 무슨 범죄를 저지르는 일처럼 여겨진다. 하여 가진 돈을 생각하기도 하고 금향에 도착하면 무슨 일부터 해야할 지, 윤과는 언제까지 동행을 할 것인 지 따위의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고 차가 덜컹거리는 횟수를 세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차가 달리는 속도가 늦춰진다. 호루 틈새에 가끔 훤한 전깃불이 비춰 뵈기도 하고 바깥이 시끌시끌한 것이 아마 어느 시가지라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소피가 마렵기도 하여 언제쯤 차가 멈출 양인가, 아니면 운전수에게 말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멈춘다. 일본말로 무어라 지껄이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더니 호루가 확 열린다.
-오리로오(내리시오)!
얼굴이 시커먼 병정이 다짜고짜 나를 끌어내린다. 졸다 깬 사람들은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싶어 머뭇대는 데 소리를 와락 지르는 사람이 손에 총을 들고 있으니 우리는 시키는 대로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밖은 사거리 흙길이요, 그래도 버젓한 건물들이 몇 보이는 것이 무슨 면 소재지 쯤 되어 보이는 듯하다. 운전수와 조수가 나와 짐을 전부 끌어내리고 병정과 무어라 얘기를 한다. 얘기랄 것도 없다. 말은 병정만 떠들어대고 운전수는 숫제 하잇, 하잇,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기에 그저 바쁘다.
-무슨 일이오?
물으니, 옆에 노무자가 떠듬떠듬 조선말과 일본말을 섞어 말하기를, 지금 어디서 사태가 일어나 차량을 쵸슈(징집)하니 어쩔 수 없다 한다. 그럼 우리는 어찌 해야 하냐 물으니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는 것이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요 면사무소 옆으로 돌아가면 있는 여인숙으로 가라 한다. 보아도 이 사람이 거짓으로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요, 병정들에게 차를 빼앗긴 것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어쩔 수 없다. 나와 윤의 봇짐을 내리고 아기를 업은 아낙네가 봇짐을 내리는 것까지 도왔다.
내가 짐을 내리는 동안 아낙네는 자꾸 등에서 흘러내리는 아이를 다시 들춰 메고 하느라 정신이 없다. 짐을 내리고 나니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우물쭈물한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는 모양이요, 아까 여자와 말하던 그 친척 산다는 곳도 어떻게 가야 하는 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아이가 딸린 여인이요, 거기에 이역만리에서 짧게나마 인연이 있는 동포이니 도와줌직도 한 데 그럴 마음이 영 들지 않는다. 때 마침 윤이 나를 부르기에,
-잘 가시오.
하고 얼른 내 보따리를 들고 돌아섰다. 윤은 나를 붙들고 운전수가 혹시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는다. 자기는 만주군 병정 한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가 죽통을 맞을 뻔 했다며 호들갑이다. 나도 직접 들은 바는 없으나 징집이란 말은 들었으니 무슨 난리가 나 바퀴 달린 것들은 다 쓸어가는 모양이라 말했다. 윤이랑 말을 하며 눈치를 보고 있자니 운전수가 길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인다. 헐레벌떡 달려가 물으니 운전수는 일본 말이 짧아 내가 하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야스야도, 야스야도(여인숙)하고 반복한다.
차가 언제쯤 출발하겠느냐고 거듭해 물으니, 아시따(내일), 아삿떼(모레), 시아삿떼(글피) 이따위 말을 늘어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와까리마센카(모르겠습니까?)하고 물으니 와카리마센(모르겠습니다.)하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아무래도 저 여인숙에서 오늘은 묵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인숙은 벽돌로 외장을 쌓은 신식 5층 건물이다. 외양으로 보기에는 조선 시가지에 있는 건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조선과 달리 뽀이 하나 나올 생각을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 사내가 식탁을 정리하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본다. 사내는 한 서른 되어 보이는 모습으로 머리는 병정 모양으로 박박 밀었다. 웃옷은 때는 묻었으나 그래도 하이칼라 차림인데 바지는 물들인 낡은 군복 바지를 입었다. 주인인가 하고 물으니 꽥꽥 거리는 목소리로 자기는 일본말을 모른다 한다. 손짓 발짓으로 빈 방이 있냐고 하니 3층에 방 하나를 내어준다. 가보니 말이 여인숙이요, 숫제 마굿간 같은 방이다. 침대는 두 개가 있으되, 침대보를 언제 빨았는지 알 수가 없고 베갯잇은 누렇다 못해 거무스름하게 쩌든 것이 이 베개를 베고 잔 사람이 못해도 한 개 연대급은 되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다시 내려와 이게 무슨 방이냐고 소리를 치니 사내가 대뜸,
-센징!
한다. 만주인이나 조선인은 2층과 3층의 방을 쓰고 4층과 5층의 깨끗한 방은 일인들에게만 내어주는 모양이었다. 다시 방에 가 잠을 청하려 하나 놀란 탓인지 분한 탓인지 아니면 차마 돈 내고는 받을 수 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이 처지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윤을 보니 윤도 뒤척거리고만 있지 쉬이 잠을 청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윤 형.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하니 윤도 좋다 한다. 다시 일 층으로 내려와 사내에게 아무거나 안주를 하나 달라 하고 백주(白酒) 하나를 달라 하였다. 무언가 매캐하게 볶는 냄새가 나더니 양고기를 죽순일지 포두부일지 하는 것들과 함께 볶아 낸 안주와 함께 술이 나온다. 안주에는 석불리 젓가락이 가지를 않으나 술을 비우는 속도는 서로가 비슷하였다.
생각하여보니 종일 먹은 것이 없는 빈속에 백주를 쏟아 부어 대니 금세 고주망태가 되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윤은 더욱 취하였다. 나에게 자꾸 설매는 어디 있냐고 성화다. 설매는 아까 초소에서 내리지 않았느냐고 하니 술이 불콰한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더니 내게 묻는다.
-설매도 금향까지 같이 간다고 하지 않았소? 왜 초소에서 내렸지.
뜬금없는 소리에,
-일인들이 끌고 가지 않았소.
하고 답한다.
-그럼 김 군은 그것을 그냥 두었소?
하고 윤이 나를 본다. 윤의 붉은 눈에는 물기가 어리었다.
-윤 형도 그냥 두지 않았소?
하고 나는 얼버무리고 만다. 윤은 제 술잔에 술을 따르려다 헛손질을 하고 만다. 나는 윤과 내 술잔에 다시 백주를 가득 채운다. 독한 밀주라면 부산서도 몇 번 마셔본 적이 있고 백주라 하면 의주에서도 몇 병 비워본 적이 있다. 그러나 만주의 백주는 또 그것보다 독하다. 나는 금방 머리를 홰홰 돌리는 신세가 되었고 윤은 몸도 채 가누지 못하였다.
-이제 그만 들어갑시다.
하니 윤은,
-안주가 많이 남았소.
하며 굳이 한 병을 더 시키려 든다. 나는 되었다며 고개를 젓는 것을,
-육시를, 돈이 없을까 봐 그래?
하더니 은전 몇 개를 집어 바닥에 던진다.
-윤 형, 많이 취하였소.
하며 나는 돈을 주워 탁자에 놓고, 어쩔 수 없이 한 병을 더 시키고 만다. 한 잔을 더 따라 마시더니 윤은,
-그럼 여기가 어디요?
하고 묻는다. 내게 묻는 모양은 아니고, 만주인 사내에게 묻는 모습도 아니다. 허공에 대고, 또는 자기 자신에다 대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윤 형, 많이 취하였소.
하니,
-여기가 어디오? 여기를 왜 온 거요?
하고 윤은 또 주정을 부린다. 그러더니 윤은 엉엉 울기 시작한다. 어처구니가 없을뿐더러 다 큰 사내가 엉엉 우는 것이 놀랍기도 하여 그냥 보고 있는데 만주인 사내는 저쪽 구석에서 우리를 보며 킥킥 웃는 눈치다. 결국 안주는 더 젓가락을 대지 않고 술도 반 병이 넘게 남기고 만주인 사내와 함께 겨우 윤을 끌어다 방에 두었다.
밤에는 윤이 하도 코를 골아대고 또 잠자리에는 빈대가 성화를 부리고 밖에서는 병정들의 고함소리며 차가 빵빵대는 소리에 나는 결국 거진 밤을 새고야 말았다. 만주의 새벽이 이불보를 푸르스름하게 물들 무렵에야 소란이 아물었다. 겨우 선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었을 무렵 다시 잠에서 깨었다.
아침이 나오는 눈치도 없고 여인숙은 조용하기만 하여 나는 슬쩍 거리로 나와 보았다. 사거리 한 편에 전신주가 있고 전신주 옆에 정거장처럼 차려놓은 곳이 있다. 그곳을 기웃거리는데 웬 사내들이 한 대여섯 뭉쳐 개가죽 모자를 들쓰고 돌아다닌다. 낯익은 얼굴이 있다 싶어 보니 우리를 여기까지 태워다 준 운전수처럼 보이는 사내다.
-오이, 고코, 고코(이봐, 여기, 여기)!
하고 부르니 사내들이 이쪽을 본다. 한 사내가 모자 한 쪽을 들어 보이는데 운전수가 맞다. 사내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들고 대체 이곳을 언제 떠나느냐며 물었다. 그러자 일본군이 죄다 화물차를 쓸어가 당분간 이 마을 떠나는 차는 없다고 소리만 꽥꽥 지른다. 나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소리라도 지르려는데 운전수는 내 말은 듣지 않고 휑하니 돌아 골목길로 빠져 나간다. 종로에서 뺨을 맞았으니 한강에라도 화풀이를 하면 좋으련만 이 시내에는 내가 아는 곳이란 손톱만큼도 없으니 나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관 앞의 사거리에는 여전히 일본군들이 호각을 삑삑 불고 긴 소총을 들고 횡으로 종으로 뛰어다니며 야단이다. 그냥 들어가기 싱겁다 싶어 여관 주위를 쏘다니는데 웬 아이가 지나간다. 머리는 옛이야기의 오랑캐들처럼 말총 모양으로 늘어뜨리고 까만 호복을 입었다. 열 살배기로 뵈는 이 아이를 붙잡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쪽 손으로는 일본 병정들을 가리키고 또 가슴을 치고 답답한 시늉을 몸짓으로 하니 이 애가 무어라 만주 말로 지껄인다. 일본말은 혀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를 붙들고 나는 몸짓, 아이는 만주 말로 난리를 치고 있는데 웬 사내가 우리를 보고 아침부터 재미 좋은 구경났다는 얼굴로 비실비실 웃고 서있다. 아닌 말로 비단 장수 왕 서방 모양으로 풍채가 좋고 살집이 투실투실하다,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팔자 좋게 메기수염을 꼬고 있는 모양이 일본말을 한다는 그 여관 주인이다 싶어 붙잡고 물어보니, 주인장이 말하기를, 전날 금향이라는 곳에 마적 떼가 들이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이고 하여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한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겨우 숨을 돌이키고 그럼 살아남은 사람은 없느냐 물으니 그것은 잘 모르겠으나, 일본 병정들이 저렇게 법석을 부리는 것을 보면 마적 떼가 아마 살아남은 사람들이 적은 모양이다 답한다.
내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으니 주인은 혹시 그 곳에 연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그런 사람은 없다 답하니 주인이 요카타(다행이오)하는 말만 거듭 내뱉고는 휙 떠난다.
다행이라, 혼자 그 말을 입 속으로 곱씹으며 방에 들어가니 여전히 윤은 인사불성이다.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 챘는지 고개만 슬쩍 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또,
-김 군, 여기가 어디요.
한다.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가 그만 닫고 말았다. 나는 여적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지 못하였다. 내가 답을 못하고 비슥거리자 윤은 또 취기가 섞인 비명 같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어쩌다, 이런 데까지 오게 되었단 말이요.
그러더니 윤은 같은 소리를 주정처럼 지껄인다.
-여기가 그 근처인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금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오.
내 대답을 들었는지 아니면 들었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인지 또 윤은 같은 소리를 웅얼웅얼, 지껄인다. 비쓱 기어 올라가 침대에 눕는 것을 이불을 끌러 올려 주었다. 정신은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계속 같은 말을 하는 것이 개구리나 새가 같은 소리를 지저귀는 것과 같게도 느껴진다. 개구리나 새가, 저들이 무어라 지저귀는지 과연 알고서야 지저귀는 것이겠냐만 그러나 윤의 그 주정 같은 지껄임이 이제 나를 심상케 한다.
윤은 계속 지껄이고, 또 밖에서는 희끗희끗 어제처럼 눈발이 돋기 시작하는데, 바람이 또 밖에서 창을 때리며 잉잉 운다. 그렇게나 지독하다는 만주의 겨울이 이제 오려는 모양이다. 앞으로 무엇을 뜯어 먹고 살 지도 막막한 모양인데 나는 윤의 물음이, 내가 놓치면 안 되는 새끼줄이라도 되는 양 여겨졌다. 여기는 어디이고 또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 누가 답해줄 수 없는 물음을, 어쩌면 이미 진즉에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물음을 이제야 곰곰이 씹고 있는 것이다.
창밖의 눈발이 굵다. 일본 병정들의 고함과 호각 소리 사이로, 눈들은 아무 생각도 물음도 없이 사거리 위로 쌓이고 또 쌓이는 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