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모든 고난에도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by 엽서시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그럴 때면 잠자리를 뒤척여보지만, 그런 짓이 꼭 머릿속을 뒤적이는 것처럼 별의 별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결국 잠깐씩 숨을 멎게 만드는 순간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기억이라든지.

중학교 1학년, 겨울.

코가 닿을 정도의 난로 앞이 아니면, 어디서도 허옇게 입김이 일던 교실. 그 교실의 공기.

윤이 나지만 가장자리마다 닳아있던 책걸상.

교복 마이 깊은 곳에서 묵혀있던 쿰쿰한 비린내.

내 손을 떠나 원호를 그리며 허공을 날아가는 걸레.

그 원호의 끝에 있는 그녀.

모든 우주에 작용하는 힘과 힘의 원리에 따라 공전하듯 낙하하는 걸레.

우리 반 아이들은 늘 점잔빼는 저들의 담임이 중학교 1학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본전'을 뽑으라는, 악다구니 같은 어머니의 등쌀에 밀려 박박 깎은 스포츠머리에, 여드름과 뭉쳐진 열등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우리는 우리가 살던 주공아파트에서 더 좁은 주공아파트로 옮겨가야 했다. 지금도 그 아파트가 기억난다. 옷장 대신 행거에 잔뜩 옷을 걸어놓았는데, 밤에 누워 잘 때면 행거에 걸린 겨울옷들이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온 집구석에 빨간 딱지가 붙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을러대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가난은 그렇게 간지럼처럼 견딜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그 사이의 무언가로 내게 닥쳐왔다.

이듬해 나는 이전에 살던 아파트 같은 층의 형이 입었던 교복을 물려받았다. 어머니가 수선집에 맡겼다 받아온 교복은 한복처럼 품이 컸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줄었다. 그만큼이나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는 돈도 줄어 들었기에, 어머니는 노점상에서 생선을 팔게 되었다. 역시나 이전에 살던 아파트 옆집의 할머니가 주선한 자리였다.

큰길가에 있는 은행과 작은 상가 옆의 좌판이었다. 물론 그 좌판의 자리는 이미 다른 생선장사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좌판의 한 컨을 빌려 생선을 팔게 된 것이다.

장사 첫날, 처음으로 새벽 수산시장에서 물건을 떼어 봤다는 소감을 늘어놓던 어머니는 갑자기 자식 앞에서 무엇이 걸렸는지 생선 장사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큰 돈 안 들면서 장사도 배울 겸, 그리고 급한 불도 끌 겸……. 그러던 어머니는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 한복 같은 교복을 입고, 동네 형들이 물려준 옷을 섞어 입으며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나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과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춘기의 자아는 한 번 기스가 나면 고칠 수 없는 유리조각과 같은 것이다. 깨뜨려버릴 수도 없어 그 위로 포장지를 덧씌우고 꽁꽁 싸매어 보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내 사진을 보면,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사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한결같이 우스운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우스운 모양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굴었다. 자기 안에 수줍음과 우울감이 깊어질수록 광대처럼 구는 남자애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행동했다. 가난이라거나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생선을 판다거나 할아버지처럼 차려입고 소풍을 간다거나 하는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물론 내가 그렇게 철딱서니 없이 난리를 칠수록 여자애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사실 내 안에는 그 눈빛에 몸 달아하는 내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구두 안에 양말에 빵구가 난 것을 혼자 알아차리거나 하면, 사실 누가 알아차릴 리도 없고 알아챈다 한들 그런 걸로 놀려대겠냐마는 지금도 혼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기색 없이, 시끌벅적하게 지냈다.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어머니는 비록 당신은 상고를 졸업했지만 공부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래도’ 지방대학 출신인 아버지가 전 직장에서 일찍 부장을 단 것도 다 4년제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생선 장사를 하는 그 고된 하루에도 어머니는 저녁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내 공부를 감시했다. 주로 영어였다. 6학년 때부터 나는 매일 하루에 30개씩, 어머니가 집어주는 영어단어를 외워야 했다. 어째서 영어인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점점 어려워지는 수학을 봐줄 수는 없었을 테니, 어머니에게는 그 영어 단어가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교과서의 본문도 몇 번씩 읽고 쓰게 했다. 교과서 본문을 옮겨 적고, 어머니 앞에서 읽고, 우리말로 해석한 것을 다시 한 번 읽고, 뭐 그런 식이었다.

그 당시 중학교 영어 수업이라는 것은, 철저히 교과서 위주의 수업이었다. 교사가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번호를 부르면, 주르르 영어 문장을 읽고,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교사가 끊고, 밑줄을 치고 무슨 무슨 용법이라거나, 숙어라거나 이런 것을 칠판에 적으면 또 우르르 받아 적고 하는 식이었다.

어느 날은 내가 단어를 읽게 될 차례였다. However, 뭐시기로 시작하는 문장이었다. 전날에 공부한 내용이겠다, 내가 줄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영어 선생이 내 말을 뚝 끊었다.

-다시 읽어.

-호웨버…….

하고 다음 단어를 읽어나가려는데,

-다시 읽어.

-호웨버.

-다시.

-호…….

나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킥킥거리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더 크고 또박또박하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호웨버!

-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니 터졌다. 영어 선생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성이나 있었다. 그녀는 나를 교단 앞으로 세웠다. 지금 내가 다시 생각을 해보아도,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세차게 내 뺨을 후려갈겼다.

서너 대 나를 후려갈긴 뒤 선생은 나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콧잔등까지 내려온 안경을 다시 손가락으로 올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목걸이를 고쳐 맨 후 수업을 계속 했다.

아마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대들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사건은 말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랑 공부하니까 발음이 구려, 애들이 놀린단 말야, 정도로 말했을 것이다. 잠깐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참 후 그럼 학원이라도 가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다시 대들었다. 학교에서 놀림이 모자라 학원까지 가서 놀림 받아야겠느냐, 뭐 이런 대꾸였을 것이다. 하여 나는 그날 이후로 영어 공부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면 가슴 한편이 쿡쿡 아리던 것도 고작 며칠이었다. 그 나이 때 남자애들이 그러하듯.

나는 새로운 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편하기 그지없었다. 성적이 내려가는 것은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닫는 것과 같았다. 힘겹게 중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은 금방 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가방 또는 사물함 한 구석에 교과서를 처박아둔 채 나는 친구들과 농구장과 PC방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죽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니까 그녀는,

돌이켜 추억하면 기억에 남는 이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여느 여자애들과는 달랐다. 남자애들마냥 키가 컸고, 피부가 희었다. 가늘지만 숱이 짙은 눈썹 아래 쌍꺼풀이 없는 눈은 길었고 코가 뾰족하니 높았다. 그리고 언제나 목을 꼿꼿이 세우고 다녀서, 안 그래도 큰 키가 더욱 커 보였다. 겨울에는 교복 셔츠대신 흰 폴라티를 조끼 안에 챙겨 입었는데, 그 모습은 조숙해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창가 잘 드는 교실 뒷자리에서 나랑 비슷한 녀석들과 왁자하니 떠들고 있었다면, 그녀는 복도 쪽 창가 교실 앞자리에서 제 친구들과 함께 학원 숙제를 한다거나, 아니면 TV에 나오는 ‘오빠들’ 얘기를 하곤 했다. 듣기로, 그녀는 외고를 준비하는 모범생이었고, 실제로 전교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공부를 잘하기도 했다. 사실 나와 그녀 사이에 큰 접점은 없었다.

그녀와 기억에 남는 대화를 한 것은, 그녀와 내가 청소당번이었을 때였다.

겨울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남자애 둘, 여자애 셋이 그 한 주간의 청소당번이었다. 그 시절의 청소는 이런 식이었다. 책걸상을 교실 뒤편으로 밀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난 다음, 남자애들이 대걸레를 빨아와 교실을 닦는 동안, 여자애들이 걸레를 빨아와 교실 양 편의 창과 칠판 틀을 닦고, 열쇠를 교무실에 걸어놓으면 끝.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여자애들이 우리가 대걸레를 다 빨고 교실바닥을 닦는 동안, 걸레를 빨 생각도 않았던 것이다. 아마 옹기종기 모여 학원 숙제를 하고 있었던가.

하여 싸움이 붙었다.

야, 너네도 청소 좀 해, 라던가,

야, 우리가 빗자루랑 대걸레질 다했는데 왜 걸레 안 빠냐고.

야, 그럼 우리가 걸레 빨아오고 집에 갈 테니까 너네가 걸레질하고 열쇠 놓고 가, 라던가 말이 오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우리가 불리한 싸움임이 분명했다. 일단 수가 적었고, 또 여느 또래 남자애들처럼 교사에게 일러바치는 것을 죽는 것처럼 싫어하다보니, 결국 우리가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져 서로의 별명을 부르며 욕설이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의 순간까지 치달았을 때였다.

-거지새끼.

그녀였다. 이렇게 말하고 난 뒤 그녀는 나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뭐?

나는 되물었다.

-뭐, 이 거지새끼가.

나는 속이 뒤집힌다는 말을 지금도 문자 그대로 믿는다. 중학교 1학년의 한 남자애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것이, 기색 않던 것이 모두 속에서 끓어올라와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중학교 1학년, 겨울.

코가 닿을 정도의 난로 앞이 아니면, 어디서도 허옇게 입김이 일던 교실. 그 교실의 공기.

윤이 나지만 가장자리마다 닳아있던 책걸상.

그리고 내 손에는 걸레가 들려 있었다. 내가 빤 걸레였다.

지금도 그렇다. 가끔 내가 맡고 있는 학급 남자 아이들이 싸움이 붙어 끌려오면, 언제나 발단은 말싸움이다. 그 나이 무렵의 애들이란 원래 생각 없이 말을 내뱉기 십상이다. 그것을 서로 알기에, 아이들이 서로에게 내뱉는 말의 수위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높다. 그러나 아이들의 사이에서도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예를 들어, 여드름이 많은 아이에게 화산이라고 한다거나, 키가 작은 아이에게 난쟁이 새끼라고 놀려대는 것이다. 그런 말 속의 가시는 말 속에 잠자코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튀어나와 가슴을 후벼 파고 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한다. 아이들은 말 속에 담긴 가시가 실제로 자신을 찌를 때,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다.

진실. 그러니까.

더 예를 들자면 가난한 아이에게 거지새끼라고 한다거나.

교복 마이 깊은 곳에서 묵혀있던 쿰쿰한 비린내가 풍겼다. 좁은 주공 아파트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니, 주공아파트 철문으로도 채 가둬놓지 못해 복도 밖까지 연하게 풍겨 나오던 비린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걸레를 그녀에게 집어 던졌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파란색 걸레뭉치가 물을 흩뿌리며 교실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걸레가 그리는 원호의 끝에는 그녀가 있었다. 걸레는 그녀의 뺨과 목 언저리를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교실에는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흰 폴라티에 시커먼 물자국이 스멀스멀 번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입술을 물고 있다가, 휙 뒤돌아 교실을 나섰다. 그녀의 친구들이 참새들처럼 지저귀며 그녀를 따라갔다.

하여 교실에는 내 숨소리만이 반복하여 오르내렸다. 같이 교실에 있던 친구가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의 눈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다. 담임이, 아니 선생들이 모두 모여 다 내 뺨을 후려친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저년이 나한테 거지새끼라고 했어요, 나는 그네들에게 이렇게 말할 터였다. 그저 온 세상 걸레를 다 집어던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네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여 남은 교실 청소는 나와 친구의 몫이었다. 녀석에게는 미안하기 그지없었으나, 나는 녀석에게 보답할 돈이 없었다. 녀석은 괜찮다며 낄낄 웃었다. 중간에 여자애 하나가 도끼눈을 하고 와서 가방들을 챙겨 갔다.

청소를 마치고 어쩐지 더 돈독해진 것만 같은 친구와 같이 교실을 나섰다. 교실 열쇠를 두러 교무실에 들어설 때는 심장이 쫄아 붙었으나, 선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여자애들이 일러대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교무실에서 멀어지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신명이 났다.

무슨 년, 무슨 년들 하면서 교문을 지날 때였다. 교문의 한 쪽 기둥 뒤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왔다. 다시 심장이 잔뜩 쫄아 붙는 기분이었다.

그녀였다. 걸레로 한 대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별반 다를 것 없는 키였음에도, 꼭 그 쌍꺼풀 없는 긴 눈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교무실을 나서면서 허공에 대고 지껄였던 그 신랄한 조롱과 저주 등 어느 한 마디도 나는 내뱉지 못했다. 영원 같은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리고 그녀는 뒤돌아 키 높은 아파트 단지 쪽으로 총총, 걸어갔다.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어영부영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린내 가득한 거실 복판 앉은뱅이 상에는 식은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식은 밥, 식은 생선, 시어버린 김치 쪼가리를 우물우물 입에 넣고.

TV를 틀어도 전에 빌려두었던 만화책을 다시 펴 보아도 정신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피곤이 끌리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돌아오고, 자리에 누울 시간이 되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다시 그녀가 떠올랐다.

도도하다, 키가 훌쩍하다, 고상하다, 우아하다 따위의 쓸데없는 형용사들을 저 멀리 집어던질 만큼 짙고 또렷한 형상이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앉아, 손바닥을 들어 내 얼굴을 만져보았다. 내 얼굴은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나서, 이번에는 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가난, 우스꽝스러운 머리 모양, 못생긴 얼굴, 여드름, 비린내, 열등감, 수줍음, 우울함…….

열 개의 손가락을 꽉 채우고도 남은 것들이 손바닥 위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나는 손을 꽉 쥐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또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담임이, 늙은 도덕 선생님이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른 울림이 일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머리가 굵어진 이후 처음으로 해본 생각이었다.

불을 켜지 않은 방은 어두웠다.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주무시며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불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이 훨씬 넘은 밤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책장을 뒤지다가, 결국 가방에서 반쯤 구겨진 교과서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채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영어 교과서였다.

그 선생에게 뺨을 맞은 이후로 특히나 한 번도 건드린 적이 없는 교과서였다. 뺨의 얼얼함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깔깔거리던 웃음소리가 어느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교과서를 폈다.

교과서는 공부를 했던 곳과 하지 않은 곳이 양분되어 있었다. 내가 펼친 곳은 교과서 영어 지문의 중간쯤이었다. 섀클턴이라는 탐험가가 남극점으로 향해가는 이야기였다. 교과서 하단에는 이미 힘겹게 썰매를 끌고 눈보라를 해치는 외국인의 삽화가 있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However, he made a step forward despite all kinds of adversity.

-호, 호웨버.

However, he made a step forward despite all kinds of adversity.

-호웨버.

However, he made a step forward despite all kinds of adversity.

-호웨버 히 메이드 어 스텝 포워드 디스파이트 얼 카인즈 오브 어드서비티.

However, he made a step forward despite all kinds of adversity.

-그러나 그 모든 고난에도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However, 에 밑줄을 쳤다. 삐뚤빼뚤한 선을 바라보다 나는 다시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를 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위를 향해 발버둥을 치는 일이었다. 또는 빛을 향해 벌레가 버르적거리는 일과 같았다. 열등감, 우울함과 같은 어둠에서 조금씩 나는 벗어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옳은 방향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성적을 올리는 것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했다. 가끔은 한두 칸씩 주저앉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올라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선생님들 입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1학년 이후로 그녀와 같은 반이 된 적은 다시없었다. 가끔 우연히 복도에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무리 어 다니는 것을 마주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내리 깔았다. 심장 소리가 커져 귀가 먹먹하곤 했다.

나는 집 근처의 남고에 진학했다. 그녀는 어디 서울 근교의 외고로 진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종전보다는 작은, 중소기업에 다시 취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옆 동의 빌라로 이사를 했다. 전의 비좁은 주공아파트보다 훨씬 나았다. 내 방도 생겼다.

고등학교 시절은, 조금 더 편했다. 모범생들은 늘 밀고자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유자재로 광대와 모범생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나는 영악하게, 때로는 우직하게 친구들 사이에서 신임을 얻었다.

성적은 조금씩 계속 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의 담임선생이 상담 때 말한 대학교 이름과 3학년 때 담임의 진학 상담 때 말하는 대학교 이름이 달랐다. 이른바 명문대라 할 만한 학교에도 충분히 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학과는?

하고 묻는 선생에게 나는,

-사범대요.

하고 대답했다. 진로에 대해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선생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However를 ‘하우에버’라고 읽건, '호웨버'라고 읽건. 아니, 아니면 ‘흐오웨베르’라고 읽건, 뺨을 때리지 않는 그런 선생이 되어야지. 이런 속을 알 리 없는 선생들우 내가 사범대 진학을 꿈꾸는 것이 더욱 모범생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여느 애들처럼 불려가 촌지를 가져다주는 일 없어도, 선생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순탄한 학창 생활이었다.

-However.

그러나, 그러나. 가끔씩 그녀가 떠오를 때도 있었다.

대학에 진학했다. 끄트머리로 가까스로 합격한 것이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이었다. 어머니의 소원대로, 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사범대학이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선생님이 되었네, 어머니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연거푸 합장을 했다.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었다.

그러다, 교정에서 그녀를 우연히 마주쳤다. 교양 수업을 듣는 건물 근처였다. 여전히 긴 목을 꼿꼿이 세우고, 흰 얼굴에, 쌍꺼풀이 없는 눈은 길었다. 처음에는 나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입학 후 지나치게 커져버린 자의식과, 항상 남아있는 전날의 술기운이 만들어낸 환각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더 그녀를 마주쳤다. 이번에도 교정이었다. 본관 앞 중앙광장의 잔디밭에서. 그녀는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여전히 긴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전공서적 한 권을 손에 들고,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옆의 친구들과 까르륵,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선배들과 잔디밭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 불어터진 자장면을 안주로 술을 마시는 와중이었다. 비어 굴러다니고 있는 싸구려 이과두주 병에 붙어 있는 스티커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그 와중에도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술자리 게임이 있었고, 자꾸 한 눈을 팔던 나는 벌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중앙광장을 지나 사라졌다.

그래도 중학교 시절 여자애들과 연락을 하는 동창을 쥐어짜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내가 합격한 대학의 경영대학을 다니고 있다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사실 그녀를 수소문하면서도, 그녀와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내가 무언가 그녀에게 빚지고 있다는, 어떤 그런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내가 무얼 그녀에게 빚진 것인지, 무얼 갚아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군대를 가고,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치르고, 집 근처의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스물여덟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처음으로 담임 반을 배정받고, 첫 월급을 받고…….

문득 술 한 잔 마시고 자리에 누울 때면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마주친 것은, 내가 서른한 살이 될 무렵, 그러니까 서른 살의 겨울이었다. 명예퇴직을 하는 선생님을 환송하는 자리가 있어, 여느 때보다 늦게 퇴근하는 지하철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내 자리에서 오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퇴근길의 만원지하철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흰 니트 폴라티. 캐시미어 코트. 검은 핸드백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낯선 화장기와 낯선 표정 밑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고, 나는 그녀도 나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했다.

얼른 고개를 숙였다. 서른 살이 넘은 나이였기에, 지하철에 앉아 있는 그녀가 착각도, 환각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상한 충동이었다. 걸고 싶다는 소망이 아닌 강한 명령과도 같은 충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른 살이 넘은 나이였기에, 그런 충동을 내리누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설령 그녀에게 말을 건다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중학생 아이들에게 화법을 가르치면서도, 나는 해야 할 말을 한 마디도 제대로 골라낼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집으로 걷는 내내 그 생각을 곱씹었다. 다음날 1교시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편의점을 들러 맥주를 몇 캔 살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갔다. 거실 저편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코를 고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조용히 맥주캔을 집었다.

홀짝홀짝 캔을 비워나가던 때,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거지새끼, 차갑고 기괴하기까지 할 정도로 조용하던 교실의 공기. 얼얼하도록 아린 손에 들린 걸레의 무게와 그 촉감. 마침내 내 손을 떠나 허공을 날아가던. 그녀의 얼굴을 때리고 떨어지던 걸레뭉치와 흰 폴라티에 젖어드는 그 물자국.

아마도 길었을 기다림. 교문 뒤편에서 그녀가 했을 생각. 이제는 그녀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할.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이제야 나는 내가 그때 그녀에게 해야 했을 말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해.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빚진 것이었다. 미안해.

지하철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겠다 생각한 그 강한 충동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집이었고, 그 말을 하기에 너무나도, 너무나도 늦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순간 그 지긋지긋하던 비린내가 코 안쪽에서 풍겼다. 동시에 어디라고 짚을 수 없는, 내장 안쪽의 어딘가가 쓰라렸다.

이것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릿함과 쓰라림이 오묘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이렇게 가끔씩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빚진 것이 나를 내리누르는 밤이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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