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사냥

여우와 사냥개 그 사이의 무언가

by 엽서시

똑같은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꿀 때마다,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걸 이해하기까지 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똑, 딱, 똑, 딱.

나는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컴컴한 공기와 거실에서 들리는 초침 소리에 집중했다. 동시에 지금이 몇 시인지 묻고 또 스스로 대답하려는 강박적인 문답을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똑같은 꿈이었다. 약을 끊고 요 며칠 나는 계속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을 꾸고 나면 온 몸에는 땀이 흥건했고. 나른할 정도로 힘이 빠졌다. 한참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누구는 낮에 돈 주고라도 운동한다는데, 잘됐네, 뭐.

또 그 꿈을 꾸었노라고 하면 엄마의 핀잔도 똑같았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엄마의 강요로 모든 식구가 모여서 먹는 아침 식탁에서, 나만 유달리 푸석푸석한 사람은 아니었다. 눈에 띄게 얼굴이 달라진 사람은 아빠였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속으로 아빠에게 할 말을 궁리했다. 요새는 서점 더 잘 안 되죠, 하고 근황이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에게, 사실 떠올려 보면 한 번도 잘 되는 일을 한 적이 없으면서도, 가장으로 삼십 년 가까이를 버텨온 사람에게 감히 위로와 더불어 내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 나는 떠올린 모든 말들을 입속의 밥과 함께 삼켜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은 원래도 매출이 줄어드는 중이었다. 작년 겨울에 아빠는 단 한 명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정리했다.

-내가 할까?

그저께 저녁 거실에 나왔을 때, 아빠는 소파 앞에 앉아 멍하니 거실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TV도 꺼져 있었다. 거실에 가득한 조용한 침묵에 묻혀있는 아빠의 표정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나는 괜히 아빠 옆에 앉아 이렇게 물었다.

-내가 할까? 알바?

-네가?

아빠는 무언가 몰래 나쁜 일을 하고 있다 들킨 사람처럼, 눈이 동그래져 나를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빠가 속으로 갈등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아빠는 이내,

-됐다.

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시 속으로 할 말을 궁리했다. 에이, 뭘 어때, 아빠 딸인데, 따위의 말이나, 아빠, 힘든 일 있어요, 하고 묻는 말 따위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입에 물고 있는 밥이 없더라도 이 말들을 내가 삼켜버릴 것이라는 걸.

-요새도 그 꿈이니?

아빠가 내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아빠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꿈의 내용은 항상 똑같았다. 꿈속에서 눈을 뜨면 동화책 속의 삽화처럼 녹색이 우거진 숲이 보였다. 나는 여우였다. 앞발과 주둥이에는 흰 털이 묻어 있었고, 몸통과 팔다리는 얼룽덜룽한 붉은 털이 덮여 있었다. 이내 꽹과리와 나팔 소리, 아니, 풍악 소리 같기도 하고 그저 난리법석 같기도 한 소음이 꽈광, 덤불 저 편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헐레벌떡 덤불을 뚫고 여우들이 튀어 나왔다.

이상한 것은, 혀를 빼어 물고 도망 나오는 여우들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면서, 또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저 낯선 사람들 얼굴 같기도 했다. 여우의 눈에 여우의 얼굴은 이렇게 보이는 걸까, 꿈속에서도 나는 그것이 궁금하였다.

여우들이 나를 지나치면 나도 그 여우들과 함께 뒤에서 쫓아오는 소음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면 곧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저릿저릿하도록 개들이 짖어댄다. 온 몸이 뜨거워졌다. 나도 혀를 빼어 물고, 침을 흘리며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렇게 한참을 여우들과 엎치락뒤치락 달리다보면, 하얀 털로 덮여 있던 내 발등이 어느새 잿빛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도 할딱거리는 여우의 숨소리가 아니라, 들숨마다 으르렁거리는 사냥개의 숨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내 앞에는 여전히 여우들이 달리고 있고, 내 뒤에는 사냥개들이 가쁘게 쫓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도 사냥개들처럼 저 여우들을 물어뜯어야 할지, 아니면 뒤에 쫓아오는 사냥개들을 피해 앞서 나가야 할 지. 뒤를 돌아 사냥개들에게, 나도 너희들과 같은 사냥개라고, 동족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가빴다. 발목에 나를 바싹 뒤쫓는 사냥개의 숨결이 뜨겁게 닿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죽어라 앞으로 달릴 뿐, 뒤를 돌아보지도, 무슨 말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발목이 간질간질하도록 입김이 닿았다.

덥석,

이빨이 내 발목을 잡아채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깼다. 또는 그 시커멓고 묵직한 사냥개가 나를 끌어당기고, 그 묵직한 몸뚱이와 함께 나동그라지는 순간. 꿈에서 깨면 언제나 몸이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특히 등 아래는 기분 나쁠 정도로, 젖은 땀이 만들어낸 자국이 축축하게 식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베개 맡을 손으로 뒤졌다. 약을 찾는 습관이었다. 약이 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나서도 내 손은 배게 머리맡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약은 다 먹은 지 오래였다.

불면증 약을 먹게 된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졸업을 하고(엄마 말에 따르자면 남들은 4년 다니는 대학을 저는 무슨 초등학교 다니듯 6년을 다니고 나서야),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턴, 그러니까 수습직 사원이었다. 그러나 3개월 후 정직원 전환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두 번의 단기 인턴 이후였고, 상반기에서 서른두 번, 하반기에서 열여섯 번 낙방한 후의 취직이었다.

짜릿했다. 한 달 간의 신입사원 연수도 다시 대학교에 입학한 기분이었다. 재미있었다. 대부분 지방 영업직으로 발령받은 남자 동기들과 다르게 본사에 배치 받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게 생각되었다. 머리를 쪽 져 올리고, 검은 자켓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슬쩍슬쩍 시계를 보면, 어느새 시침과 분침은 점점 다섯 시 반에 다가가 있고. 퇴근 시간이 되면, 재킷을 걸치고, 핸드백을 걸치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고 퇴근을 해야, 하는데.

회식이 많았다. 00기 신입사원 환영 전체 회식, 부서 단위 회식, 팀 단위 회식. 모 차장의 생일. 모 대리의 총각 파티. 참 회식이 많았다.

술을 잘 먹는 성격은 아니지만 회식에는 빠지지 않았다. 빠지는 사람도 없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회식 역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회식 때마다 자꾸 옆에 앉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옆 부서의, 대리 승진을 앞둔 사원이었다. 나보다는 나이가 네 살이 많다고 했다.

자꾸 손을 잡았다. 아니,손을 꽉 움켜쥐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섬칫하여 돌아보면 그 사람의 손이 손등 위에 놓여 있었다. 무어라 다그치고 싶었다. 다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눈치 채는 기미가 보이면 또 슬그머니 손을 빼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 또 몇 번 술잔이 돌면 다시 어느새 슬금슬금, 손등 위에 손이 닿아있었다.

처음 두 번의 회식에서 두 번 모두 똑같았다. 1차, 2차까지 똑같았다. 세 번째 회식 자리로 가는데 문득, 오늘도 그러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럼 내가 자리를 피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그래야, 돼, 하는 억울함이 불쑥 일었다. 그러나 나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는 거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비상식적인 생각으로 그 억울함을 덮었다.

처음 자리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거나 얼른 다른 사람들 사이에 앉았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화장실을 가거나, 전화를 받으러 가거나, 하며 자리가 비워지면 또 어느새 그는 내 옆에 슬그머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족발집이었던가, 어느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또 손등에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의 털을 누가 일일이 쭈뼛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헛구역질이 일었다.

입을 손으로 가리고 뛰듯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가게 바깥, 상가의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길쭉한 병따개가 달린 열쇠를 들고 들어간 낡은 화장실의 변기 앞에서 에엑, 엑,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속 안이 배배 꼬여 탁 막혀있는 기분이었다. 대여섯 번 헛구역질을 하고 나자, 뒤이어 온 몸에 한기가 찾아왔다. 12월 겨울바람 앞에서 얇은 블라우스는 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장실을 나섰다. 화장실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왜 그래요, 몸 안 좋아요?

그였다. 다시 속에서 무언가가 욱, 하고 치밀었다. 그는 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글 돌았다. 골목의 왁자지껄한 소음들에서 한없이 멀리 느껴졌다. 손등으로 눈물을 눌러 닦으며 다시 자리로 향했다. 그 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가방과 옷을 챙겨 집으로 갔던 것 같다. 몸이 안 좋다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헛구역질을 참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후 한 달은 나 자신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흐지부지하게 지냈다. 그와 가끔 마주칠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회사인데도, 심지어는 그가 사무실에 없는 중인데도 갑자기 그가 손등을 잡으려는 건 아닐까,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말할까, 했지만 결국 그네들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의 내용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말해야 한다는 ‘나’와 말하면 안 된다는 ‘나’가 내 안에서 치고받았다. 어떤 ‘나’도 이기지 않았고, 상처를 받는 것은 ‘나’였다.

결국 나는 세 달을 마치고, 정사원이 되기 직전에 사직서를 냈다. 퇴사하는 날에는 인사과 팀장이라는 사람과 면담을 했다. 혹시 근무를 하는 동안, 어떤 부조리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말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내내, 손에서 체온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겨울밤 베란다에 둔 생선처럼 나는 차갑고 뻣뻣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입이 바싹 말라붙은 채, 나는 겨우 입을 떼고, 아무 일도 없었어요, 라고 중얼거렸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요?

인사과 팀장이 물었다.

-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다시 바들바들 떨었다.

-혹시 팀 내에 누군가, 누군가가, 괴롭힌다거나, 어떤……. 그런 부조리한 일을 겪었다면 팀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가연 씨에겐 아무 불이익도 없을 겁니다.

손이 차가웠다. 손이 너무 차가워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개인적으로,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나는 겨우 입을 뗐다. 그리고 A4용지 박스에 얼마 안 되는 짐을 넣어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나는 회사를 나왔다. 차마 전철을 타고 집에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탔다. 운전수는 이 대낮에, 누가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택시를 잡은 손님에게 잔뜩 호기심이 생긴 눈치였다. 그러나 집에 가는 내내 나는 택시 뒷자리에서 누구도 말을 못 붙일 만큼 서럽게 울었다.

엄마에게는 회사 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을 준비하겠다고 했고, 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한 지윤이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내가 지윤이를 따라가지 않는다며 화를 낸 적은 있어도, 내가 지윤이를 따라간다고 화를 낸 적은 없었다.

윤이 얘기를 하면 엄마의 레퍼토리는 뻔했다. 네가 그렇다는데, 뭐, 라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닫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 결정에 의심을 품는 눈치였다. 가끔 엄마의 혀 차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꾸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여고를 나온 고등학생 시절이나, 아니면, 그때 함께 다녔던 친구들만 봐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못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불면증이 생겼다. 의사는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의사가 ‘일단’ 처방해주는 약을 받았다. 최대한 많이 주세요, 나는 힘없이 말했다. 이게 수면제고, 이게……. 약사의 설명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빵빵하게 배가 불룩한 약 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짧은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매 달 꼬박꼬박 약을 타야 했다. 차도는 없었다. 그리고 12월, 그 해의 꼬리 끝에 처음으로 그 전염병이 뉴스에 올랐다.

처음에는 먼 이야기였다. 중국의 어느, 처음 듣는 이름의 도시의 시장에서 시작된 폐렴균이었다. 사망자가 점점 늘더니,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걸린 사람이 생겨났다는 뉴스가 떴다. 3월이 되자 이제 그 폐렴은 완전히 우리 일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뉴스는 이 폐렴에 치료제가 없다고 했다. 또 어느 뉴스는 이 병이 중국이 만든 생화학 무기가 유출된 것이라는 의심을 하는 외신 기사를 소개했다. 또 다른 뉴스는 이 병은 미군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는 외신 기사를 소개했다. 성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뉴스도 있었고, 폐를 넘어 뇌, 아니, 심장도 공격한다는 뉴스도 있었다. 정말 재난 영화 속의 뉴스를 보는 것 같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입사 설명회까지 다 취소됐다며, 둘째 민석이가 이를 갈았다.

-아니, 싯팔, 뭘 어쩌라는 거야.

민석이는 세상 편해 보이는 옷차림으로, 세상 편해 보이는 자세로 누워 핸드폰을 하면서도, 틈틈이, 제가 이렇게 누워 있는 이유는 세상 때문이라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나도 내 위치가 있는지라, 너 취업 준비하는 건 아니었잖아, 라며 쏘아붙이진 않았다.

그 뉴스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Covid-19라는 말은, 코비드라고 읽어야 할지, 또 그 뒤에 19는, ‘십구’라고 읽어야 할지, ‘나인틴’이라고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열아홉’이라고 읽는 게 아니라는 것만 빼면, 정확한 것은 없었다.

병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인터넷에서는 그 병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정치 성향이 나뉘었다. 때로는 출신지가 바뀌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나는 갑자기 그게 궁금했다.

우리 집에서 그런 뉴스거리에 대해 제일 열심히 떠들어대는 것은 역시나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전염병에 대해서 말할 때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야, 어딜 또 나가? 너 마스크 했어? 그, 어? 아이구, 얘가 또 그냥 나가려구 하네? 뭐? 주머니에 마스크? 꺼내 봐봐. 꺼내봐. 야, 엄마가 지금 이게 잔소리하는 거야? 그 코로나 폐렴 걸리잖아! 걸리면 너만 죽어? 우리 집 다 죽는 건데.

-아이구, 남들은 밖에 있는 마스크 집에 못 갖고 와 안달이라는데, 이 양반은 집에 있는 거 못 갖고 나가 안달이네. 남들 마스크 살 때 뭐했수? 아니, 책방에 손님도 없는데, 책이 코로나 걸린답디까?

-너, 이 기집애, 이 밤에 어딜 나가. 뭐? 친구들? 너, 너, 그 메르스, 사스, 그, 야, 너 안 들어와?

우리 집은 코로나구나. 난 한 번 테스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전에 잠깐 집에 들른 엄마가 빨래를 개킬 때였다. 넌 집에 들어 앉아 빨래도 안 개키냐, 어쩌구저쩌구 하며 잔소리를 하는 엄마 뒤에 슬쩍 가 말을 붙였다.

-엄마, ‘코로나’ 때문에 고생이지?

엄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대꾸했다.

-어이구. 코로난지 발로난지 메로난지. 진짜 쌍팔년도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빨래를 개면서도 엄마는 한참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늘 그랬듯 귓등으로 엄마의 엄살을 흘러 넘겼다. 마음 속 무언가 한 가지가 후련했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이 이 전염병을 ‘코로나’라고 부르는 위치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넋두리와는 별개로, 엄마는 숫제 기세등등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프리카의 초원이 나타나는 다큐멘터리에서, 영양과 누우 떼를 휘젓고 다니는 코끼리처럼,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엄마의 당당함을 더욱 우뚝하게 받쳐주었다. 스물셋에 아빠와 결혼했을 무렵, 상가 1층의 작은 떡집으로 시작한 엄마는, 쉰이 되기 전 상가 지하와 1층과 2층을 모두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파트에서, 상가 반지하로 이사 가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엄마의 선택은 옳았다. 엄마 말마따나, 아파트 산다고 떡이 나오지도, 밥이 나오지도 않지만 상가는 매달 월세가 나왔으니까. 마침 그 이후로 근처 땅값이 오르면서, 엄마의 선택은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흠조차 낼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또 엄마의 선택에 누구도 불만을 표시할 수 없는 것은, 엄마의 선택이 지극한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엄마의 합리주의라는 것이 엄마가 겪어온 경험에서 기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마찰음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서점을 하기로 했을 때에도, 엄마는 아빠의 서점이 당신의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책 나부랭이 팔아서 월세나 안 밀릴 수 있겠냐는 것이 엄마의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또, 책이 팔리려면 근처에 학교나 학원이 있어야지, 숫제 빌라만 늘어서 있는 동네에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서점이냐는 것도 엄마의 생각이었다. 결국 아빠는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한 상가의 지하에 서점을 열었다.

과연 엄마의 생각은 이번에도 옳았다. 전전긍긍하지만서도 지금 아빠의 서점이 굴러가는 것도, 그 앞에 중학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 저것 봐. 지금 코로나 때문에 대구는 난리래.

엄마의 푸념이 슬쩍 엄마 앞에 앉아 빨래를 개키고 있는 사람을 향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슬쩍 뉴스로 화제를 돌렸다. 떡집을 할 때에도, 엄마는 늘 TV에 뉴스를 틀어놓았다. 쌀 찧는 방아소리에 다른 TV프로는 들리지가 않지만, 뉴스는 자막이 있어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버릇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무도 듣지 않는 뉴스 소리를 귀로 흘리며 자랐다.

-어머, 교회도 포함되나 보네.

엄마의 표정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엄마의 눈썹이 조금씩 치켜 올라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뉴스 앵커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잠시 손을 멈추고 앵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구의 장막성전교회라는 곳에서 잡단 감염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모를 한 감염자가 예배에 참석하면서, 해당 신도들을 감염시켰다는 것이다. 장막성전교회라는 곳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 예배를 듣기 때문에, 이미 전국으로 감염자가 퍼져나갔을 지도 모른다는 앵커의 목소리 뒤에는, 나무장판으로 된 마루에 꿇어앉아 무릎을 꿇은 채, 열성적으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신도들의 모습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용히 뉴스를 듣고 잇던 엄마는 엉뚱한 것을 물었다.

-저게 뭐라냐, 무슨 교회라고?

나는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다섯 가족의 빨래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찾아볼게, 엄마.

나는 말 잘듣는 학생처럼 쏟아지는 기사들 중 가장 위에 있는 몇 개의 기사와, 그 기사들에 달려있는 댓글들을 읽어 내렸다. 장막성전교회란? 경기도 S시 목사 출신의 아무개가 만든 기독교계 사이비 종교로서 아무개를 예수의 재림으로 믿고 따르는…….

-사이비라고?

엄마는 다시 눈썹을 크게 치켜 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 안되겠다. 너, 나 좀 따라와.

엄마의 표정은 전에 없이 단호했다. 나는 까닭 없는 불안감이 일었다.

-어디 가게?

엄마는 벌써 쿵쿵거리며 안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외출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갈 곳이 있어 그러지. 너, 저, 옷 입고 따라와.

내가 후닥닥 후드티 하나를 걸치고 있을 때, 엄마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슬리퍼를 꿰 차고 엄마를 따라 나섰다. 엄마의 뒷모습은 예의, 그 한 마리 코끼리처럼 당당하고, 또 전투적이었다.

계단을 올라 나와 엄마가 향하는 곳은 상가 가장 구석의 중국집이었다. ‘옛날짜장’이라는 상호의 중국집은 3년 전부터 조선족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중국집이었다. 가게 안에 다닥다닥 식탁을 붙여놨지만 손님이 앉을 의자는 열 개 남짓이 전부였다.

종을 울리며 우리가 들어서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손님인 줄 알고 환하게 웃던 얼굴이, 우리를, 정확히는 엄마를 알아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무슨, 일이쎄요?

-응, 아줌마. 난데.

엄마는 가게 안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점심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가게에 가득한 한산함은 단순히 시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주방 한 쪽에서 졸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하며, 식탁마다 가득가득 차 있는 잘 모르는 냅킨까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랬다.

-아줌마, 요새 가게는 잘 돼요?

살짝 턱을 올리고 묻는 엄마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아주머니는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른 표정이었다. 목소리는 낮고, 작았으며 여운이 길었다. 그러나 누구의 동정을 바라는 대답도 결코 아니었다.

-그럼, 아줌마. 내가 한 달은 돈 안 받을 테니까. 한 달 쉬지 그래?

나는 놀라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의 말은 놀랍기 그지없는 통보였다.

-네?

아주머니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심지어 나도 엄마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아니, 아줌마도 요새 뉴스 봐서 알 거 아냐. 그 코로나. 그게 중국에서 온 폐렴이라며. 그런데 이 상가에, 그것도 1층에 이렇게 중국집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상가를 안 들어오려고 할 거 아냐. 그럼 이 상가 안에 있는 가게 사람들, 어떡해. 다 망해야 돼?

엄마의 목소리는 높고 빠르면서도 분명했다. 더듬는 말 한 마디 없이 엄마의 논조는 분명했다.

-쉬는 동안 월세 달란 말은 안할게요, 한 달 좀 쉬고 그래. 지금 어차피 가게도 잘 안 되잖아.

본론을 털어내고 난 뒤, 엄마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해졌다. 흡사 아이를 설득하는, 그런 말투였다. 그러나 여전히, 허리에 올린 손과, 한 일 자로 다물어진 입은 엄마의 결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저는…….

아주머니는 어딜 보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흡사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이라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식당 곳곳을 뒤져도, 아니, 이 상가 전체를 뒤져도 아주머니가 잡을 밧줄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저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시면…….

한참을 떠듬거린 후에 아주머니가 꺼낸 변명이었다. 그러나 이 변명을 받는 엄마의 표정은 더욱 쌀쌀맞았다.

-그럼 아줌마네 나라에 가서 따져요? 왜 나한테 그래? 우리가 병 걸려 죽으면 아줌마가 책임질 건가? 그리고 누가 그만두라고 했어요? 한 달만 쉬라고 했지.

아주머니는 고개를 굽실거렸다. 엄마는 서슬 퍼렇게 눈을 치켜뜨고 다시 가게를 한 번 훑어 본 다음 돌아 나섰다. 나도 엄마를 따라 돌아섰다.

-다음 주까지 가게 문에 쉰다고 써 붙여 놔요!

엄마는 다시 한 번 으름장을 놓았다. 딸랑, 가게 문을 닫고 나선 거리에는 쌀쌀한 햇빛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가게 갈 거야?

분명 엄마의 승리였다. 그러나 후련한 승리는 아니었다. 나는 엄마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같은 날 엄마 옆에 눈에 띄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할 것이었다. 이런 날 떡집에서는 손님들도 엄마의 눈치를 봐야 했다.

나는 꼭 포악한 사또를 따라 마을에 나선 이방의 기분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걸음은 다시 상가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방처럼 쭐레쭐레 엄마를 따라갔다.

-가게는 무슨. 엄마는 저, 2층 목사님한테 가봐야겠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벌써 엄마는 2층 계단으로 휙 올라갈 기세였다. 계단 벽에는 빨간 화살표와 함께, 테두리가 누렇게 바랜 ‘2층 진리영광교회’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엄마, 진짜로 가게?

하고, 나는 다급하게 엄마를 불러 세웠다. 벌써 두어 칸 쯤 위에서, 엄마는 언짢은 기색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 뭐, 문제 있어?

엄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니, 목사님한테 뭐라고 말하려고…….

나는 그 조선족 아주머니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 무슨, 그 교회가 사이비라며? 혹시 그 교회 아는지 물어봐야지.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엄마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는 무얼 하나 딱 정해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상가에 세를 든 사람들 중에 그래도 목사에게 가장 친절한 편이었다.

-아, 그런 거야?

왜인지 모르게, 조금 안심이 되었다.

-너는 아까 그 빨래나 마저 개켜 놔.

내게 임무를 내리면서 엄마는 2층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나타난 건 저녁 즈음이었다. 엄마가 전날 끓여놓은 국을 다시 덥히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아마 오늘 하루 종일 저렇게 기세등등한 모습이었을 것이 뻔했다.

저녁상에 둘러 앉아 엄마는 오늘 당신이 겪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일단 가장 큰 성과는 진리영광교회가 증거장막성전교회와 무관하다는 것을 목사의 입으로 확답받았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 목사 말은 어떻게 믿어?

민석이는 입이 튀어나온 채, 뿌루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엄마가 민석이를 쳐다보았다.

-아니, 사이비한테 가서, 당신, 사이비입니까, 하고 물으면, 예, 하고 잘도 대답하겠다. 당연히 아니라고 그러지.

민석이는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는 듯, 나와 세연이를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조용해 봐.

숟가락을 든 엄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깐, 방금, 뭐랬니?

엄마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우리는 숟갈질을 멈추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뭐?

엄마처럼 눈썹을 치켜 올리며 민석이가 되물었다.

-방금, 그, 뉴스에서. 대구에는 1월부터 코로나가 퍼졌다 하지 않았어?

엄마는 그렇게 하면 이미 지나간 뉴스를 돌려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뚫어져라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런데?

민석이는 여전히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안되겠네.

엄마가 중얼거렸다.

-뭐가?

이번에는 세연이가 민석이처럼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가연아, 너 저녁 다 먹었으면 엄마 좀 따라와라.

엄마는 반이 넘게 남은 밥그릇을 두고 일어설 기세였다. 나는 입을 닦으며 주춤주춤 일어섰다. 엄마의 기세에 민석이와 세연이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시늉이었다.

-왜, 무슨 일인데?

나는 다시 후드티를 챙기며 되물었다.

-나와서 얘기하자.

문을 걸어 닫더니 엄마는 빠른 목소리로 당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까 뉴스에서 그 대구, 대구에서는 겨울부터 확진자가 나왔대잖니. 우리 상가에도……. 어쩌니, 이걸. 진즉 말했어야 하는 건데. 엄마는 저, 국밥집 가서 얘기할 테니까, 너는 그, 정육점 가서 얘기해라.

엄마의 목소리는 아까 옛날짜장 아주머니를 상대할 때만큼 빠르고 높았다.

-내가? 나 공부해야 되는데…….

내 볼멘소리에 엄마의 눈썹과 눈썹 사이가 더욱 좁혀졌다. 미간 사이에 주름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뭐, 그, 말 좀 하는 게 뭐가 힘들어? 그, 무시깽이야, 그 공부, 뭐, 그 하루 웬 종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지금 잠깐 엄마 일 돕는 게 힘들어? 방금 엄마 한 대로만 하면 되는 거…….

나는 엄마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손사래를 치며 엄마를 말렸다.

-아냐, 엄마. 아냐, 내가 할게. 아까처럼 하는 되는 거지?

굳이 엄마와 척을 질 이유가 없었다. 아니, 굳이, 라는 말을 붙일 것도 없이, 우리 집에서, 그리고 이 상가에서 최우선적으로 척을 져서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엄마, 그러면…….

그러나 나는 돌아서는 엄마를 다시 불러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면 정육점에도 문 닫으라고 해?

내 질문에 엄마의 눈에 기세등등하게 살아있던 독기가 사라졌다. 엄마는 다시 궁리하는 눈치였다.

-아니, 얘, 그건 아니고. 얘는, 지금…….

이내 궁리를 마친 엄마의 목소리는, 다시 이 씨 아줌마를 몰아세울 때처럼 높아졌다.

-그, 코로나 검산가 그거 받아 오라고 해야지. 특히 그 정육점 집, 그 집 총각은 대구 출신이니까, 꼭 받아야지. 그거 안 해오면 옛날짜장처럼 한 달 쉬던가.

계단을 올라오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응? 대구 출신은 그, 대구국밥집 아냐?

처음 듣는 말에 나는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구국밥? 박 여사? 얘는. 박 여사는 광주 출신인데. 너는 그걸 아직도 모르니?

-근데 왜 대구국밥이야?

나는 말끝마다 물음표를 붙이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구국밥집은 원래 하던 할머니가 대구 출신이고. 지금은 둘짼가, 셋째 며느리가 이어서 하는데 그 며느리가 광주 사람이랜다.

나는 구구단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다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훤하게 각 집의 신상을 파악하고 있는 엄마가 신기하기도 했다.

정육점 총각은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청년이었다. 억양이 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게 사투리였던 모양이었다. 무튼 상가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정육점 총각이라면 내가 상대하기에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중국집에 엄마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이건 말싸움도 아닌, 통보였다. 그러자 속이 울렁거렸다. 어쨌거나 상대가 듣기 싫은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것도 회사를 퇴사하면서 생긴 후유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화가 났다. 정육점으로 걸어가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번엔 내가 갑이야. 내가 갑. 내가 갑. 갑은 나야.

-안녕하세요.

나는 꾸며낸 목소리로 최대한 밝게 인사했다. 정육점도 손님이 없기는 낮에 본 중국집과 마찬가지였다. 정육점 총각은 한 쪽 손을 턱에 괸 채 멍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어, 딸내미?

정육점 총각은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나를 ‘딸내미’라고 부른 이유가 대구 사람이라서 그랬구나. 문득 오랫동안 품어왔던 하찮은 수수께끼 하나가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대구 사람이에요?

나는 살짝 턱을 내밀고 고개를 왼쪽으로 꼬며 물었다. 엄마를 흉내 내는 자세였다.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했다. 볼이 살짝 떨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 나? 나, 나, 그치. 집은 구미긴 한데, 그치, 대구 사람 맞지.

정육점 총각은 더욱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도 잘 아시죠? 지금 대구 코로나로 난리인 거. 엄마가 혹시 모르니까 안 걸렸다는 검사 그거 받아오시래요. 안되면 가게세 안내도 좋으니까 한 달 가게 쉬시던가요.

나는 속으로 십 수번을 외웠던 말을 뱉었다. 떨지 않았다. 몇 번 이를 떨긴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아니, 무슨 말이고. 내가 왜, 검사를 받아야 되는데?

정육점 총각의 말에 억양이 강해졌다.

-아저씨가 걸렸을 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저기 중국집은 다음 주부터 한 달 쉬기로 했는데요.

나는 턱으로 중국집 쪽을 가리켰다. 정육점 총각은 나를 따라 중국집 쪽을 한 번 보고,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멍한 얼굴이었다.

-그, 근데, 그 검사라는 게, 따로 받으려면 막 돈도 비싸고, 그렇다는데.

정육점 총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낮에 본 옛날짜장 조선족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이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아니, 그래도…….

정육점 총각이 쩔쩔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그럼 올 겨울 대구 한 번도 안내려간 거예요? 그러면 그렇다고 얘기하세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기분인지, 아니면 실제로 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더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살짝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 그게, 내려갔지. 아니, 그런데, 사실은 내가 구미 사람이라.

정육점 총각은 자꾸 말을 얼버무렸다.

-아까는 대구 사람 맞다면서요.

나는 되물었다.

-글치. 근데.

틈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떨리는 게 들킬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갔다는 것도 맞네요?

나는 다시 쏘아붙였다.

-에이, 그니까 그 내려간 건 맞는데…….

말은 꺼내놨지만 정육점 총각은 그 이후로 말이 턱, 막히는 모양이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정 씨를 앞에 두고 나는,

-다른 건 엄마한테 가서 얘기하세요.

하고 쏘아붙인 뒤, 돌아 나섰다. 몸이 확확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상가 안 화장실 옆을 지날 때 나는 문득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내 걸음걸이도 엄마처럼 기세등등한 모습일까. 거울 속의 나는 엄마와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너는 엄마의 딸이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아빠의 딸이기도 해. 속에서 내가 중얼거렸다.

계단을 내려와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서는 라면 냄새가 났다.

-엄마는?

부엌에는 세연이가 서 있었다. 또 라면을 끓여 먹는 모양이었다. 저녁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세연이에게 엄마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웬 일이래, 엄마를 다 찾고.

-그럴 일이 있어.

세연이는 선 채로, 냄비 뚜껑에 라면 면발과 김치를 얹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중이었다. 기집애, 저럴 거면 다이어트 한단 말이나 하지 말지. 야, 너 고3 맞냐, 하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문득 내 위치가 떠올랐다. 세연이는 엄마 말대로 ‘누굴 닮아’ 머리는 안 좋지만, 또 ‘누굴 닮아’ 말발은 좋았다. 고3이라 더욱 기가 세진 기집애가 달려들면 괜히 피를 보는 건 나였다.

-언니, 우리 2층에 교회도 ‘J’로 시작하지 않아?

세연이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제이?

그러나 세연이는 천연덕스럽게 라면을 먹으며 말을 이어갔다.

-응. 그 증거전멸? 증거……. 암튼 그 사이비 애들이 여기저기 잠입해서 교회를 내는데, 그 교회들은 전부 다‘J’로 시작한다는 거야.

나는 퉁명스럽게 세연이의 말을 잘랐다.

-장막성전교회.

후루룩, 내가 말을 자른 것을 개의치 않고 세연이는 라면이 가득한 입을 우물거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응, 암튼. 그런데 우리 2층 교회도 무슨, 무슨, 뭐 지읒으로 시작하는 교회잖아.

나는 또 세연이의 말을 잘랐다.

-진리영광교회.

세연이의 말을 잘랐지만, 나는 천천히 세연이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 ‘사이비’들이 우리 상가에 잠입해 있다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 그러니까. 진리영광이면……. ‘J’ 들어가잖아. 그리고 봐, 여섯 글자인 것도 똑같고. 이거 수상한데.

세연이는 손가락까지 꼽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세연이의 말은 그럴 듯 했다. 뉴스를 보면 장막교회 신도들은 악에 받혀 있었다. 신도 중 확진자로 밝혀진 한 사람은 서울과 대구를 드나들며 수십 명과 접촉했다고 했다. 뉴스는 연일 장막교회를 코로나의 전파자로 꼽았다.

-야, 이세연.

나는 세연이를 불렀다. 냄비 바닥을 긁어먹고 있던 세연이가 나를 멀뚱히 보았다.

-아니다, 내가 엄마한테 얘기할게.

나는 세연이더러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해보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세연이의 멍한 얼굴을 보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야 말았다. 세연이가 엄마에게 무언갈 설명하는 걸 상상하자니, 민석이가 사람 노릇하는 걸 상상하는 게 더 수월할 터였다. 게다가 이 사안은 중대 사안이 아닌가.

차라리 내가 말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나 엄마의 귀가는 예상보다 늦었다. 아빠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들어와 몸을 씻으러 들어갔을 때였다. 삑! 삑삑! 누군가 현관문 도어락을 거칠게 눌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나는 슬쩍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벌써 아홉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거의 박차듯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묻기도 어려운 표정이었다.

-박 여사 ,이 여편네가…….

엄마는 말을 하다 말고 냉장고를 벌컥 열고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찬 보리차도 엄마의 화기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보리차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야 엄마는 당신의 하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박 여사, 그러니까 대구국밥집의 사장이자, 원조 대구국밥집 할머니의 둘째(셋째였던가?) 며느리는 엄마의 의견을 단박에 귓등으로 흘려 넘겼다는 것이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는 보건증을 내밀며, 영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더란다. 화가 치밀었지만 식당 안에 손님들 보기 민망스러웠던 엄마는 결국 필살기를 꺼냈다. 바로 옛날짜장 이 씨 아주머니와, 정육점 총각이 침몰했던 바로 그 필살기, 그럴 거면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한 달을 쉬라는 엄포였다.

그러나 박 여사는 호락호락하게 당할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게를 쉬라는 게 무슨 소리냐며, 명절날도 쉬어 본 적 없는 제가 무슨 당치도 않은 ‘중국 감기’에 한 달 가게를 쉬는 게 말이 되냐, 건물 있다고 유세떠는 거냐, 지금 나한테 갑질 부리는 거냐는 말까지.

-무슨 유세냐니, 아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엄마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기야 대구국밥집에서 물러나게 되면, 옛날짜장과 정육점에도 앞으로 말발이 서지 않을 터였다. 엄마는 그럼 구청 위생과에 전화를 해서 확답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자 박 여사가 움찔하더란다. 털어서 먼지 없는 곳 없다고, 구청 위생과가 나와 들쑤시고 간다면 불편한 건 박 여사였다.

박 여사가 옆구리를 찌른 것인지, 상인회 회장까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좀 봐달라며, 어려운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엄마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박 여사는 십 몇 만원에 해당하는 검사비를 내고 따로 코로나 감염 여부를 검사 받기로 했다.

또 이번 주야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까진 가게를 닫기로 했다. 고개를 숙인 박 여사 앞에서 엄마는, 지금 이 시국에 사장이 코로나 안 걸렸다고 검사증을 붙여 놓으면 손님들도 더 많이 오지 않겠냐는 덕담 아닌 덕담까지 남겼다고 했다.

-엄마, 근데, 2층에 교회도…….

세연이가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나는 세연이의 등을 힘껏 꼬집었다. 세연이는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입모양으로 보아 세연이는 나에게 왜 지랄이야, 어쩌구저쩌구 중얼거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분노였다. 지금 엄마에게 진리영광교회가 사이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장작불에 기름을 퍼붓는 일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세연이에게 눈짓과 입모양으로 잠자코 조용히 있으라는 내 의사를 전달했다. 세연이는 주둥이처럼 내민 입을 삐죽거렸다.

그날 밤, 나는 또 여우 사냥의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사냥개의 이빨이 내 발목에 어른거렸다. 나는 다시 흠뻑 땀에 젖은 채 일어났다.

교회에 대한 나의 보고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엄마와 설거지를 하며 이루어졌다. 물소리에 파묻혀 정확한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의 이해는 빠르고 간결하였다.

-그러니까, 진리영광교회가 사이비일지도 모른단 거지?

엄마와 진리영광교회 목사의 푸닥거리는 의외로 간단하게 끝난 모양이었다. 교회 안에 방역을 하겠다, 신도들 체온 검사를 하겠다는 둥 목사는 여러 방안을 내놓았지만 엄마가 제시한 선택지는 간결했다. 일단 잠깐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목사님. 엄마는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저녁 상 앞에서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사실 엄마는 당신의 떡집도 예외없이 문을 걸어 닫았다. 엄마의 공평함과 합리성은 당신 자신에게도 예외는 없었으니, 결국 교회 역시 엄마의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진리영광교회가 사이비건 지랄이건 매주 주말마다 예배다 뭐다 사람 모이는데, 그게 과연 코로나에 좋겠냐는 것이었다. 코로냐에 좋겠냐는 말의 문장 성립 여부를 떠나 엄마의 의도 자체에 분명 틀린 점은 없었다.

또한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는 엄마의 말이 옳다고 말하는 아나운서와 패널,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는 이래도 되나 싶은, 불편한 조각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이내 그 조각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다음 뉴스가 몰아쳤다.

00시 확진자 증가. 대국 경북 지역 확진자 증가 일일 세 자리 수 돌파. 00시 지역감염 우려. 00시 최초 확진자 발생, 대중교통 이용에 따른 추가 확진자 발생 우려.

또 정부와 구청에서 보낸 문자들이 핸드폰을 울려댈 때마다, 우리는 새삼 엄마의 선견지명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진자 한 사람의 동선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그 동선에 해당하는 가게들이 밝혀졌다. 물론 그 가게들이 전부 폐업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막대한 피해가 가리라는 것쯤은 분명했다.

-나도 한 달 쯤 쉬려고.

어느 날 아빠도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일종의 패배 선언이었다. 이번 사태 이후 더욱 기세등등해진 엄마에게 아빠는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아빠까지 엄마의 의견을 따르게 된 것이었다. 아니, 이미 온 세상이 엄마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아빠인들 어쩔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상가는 조용했다. 그나마 영업 중인 대구국밥집도 한산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 나는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샀다. 대롱대롱 봉지를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는데 차 밑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검은 얼룩무늬의 고양이는 주차된 차들 밑을 파고들며 한적한 거리를 지그재그로 가로질렀다.

고양이는 우리 집이 있는 상가까지 종종걸음을 쳤다. 나는 고양이를 따라 상가 모퉁이를 돌았다. 상가는 조용했다. 그래도 대구국밥집이 영업을 하는 앞과 달리, 상가 뒤편은 괴이쩍을 만큼 조용했다. 전에는 반찬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정체를 알 수 없지만 회를 동하게 하는 냄새가 가득했는데, 이제 냄새마저 조용했다.

참, 중국집도 문을 닫았지, 나는 당연한 생각을 했다. 옛날짜장이라고 적힌, 빛에 하얗게 바랜 노란 간판 아래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문을 닫은 지 꽤 된 것이 역력했다. 유리문 뒤로는 흰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글씨를 읽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때문에

임시휴점을결정하게되었

습니다고객과직원의안전을

위해많은양해부탁드립니다

찾아주셨어갑사합니다

조선족 이 씨 아주머니의 글씨였다. 글씨는 각지고 반듯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글씨의 각지고 반듯함이 어리숙하게 보였다. 띄어쓰기 없이 줄을 맞춰 늘어선 글은 문장과 상관없이 행갈이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안내문은 마치 한시(漢詩)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안내문의 글자를 읽어 보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찾아주셨어,

갑사합니다,

갑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아닌 ‘갑사합니다’를 다시 읽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맥주가 담긴 검은색 봉투가 내 옆에 같이 주저앉아 부시럭거렸다. 맥주 한 캔을 꺼냈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파랗고 통통한 맥주 한 캔을 비웠다.

그날 밤, 나는 또 꿈을 꾸었다.

녹색이 우거진 숲에 꽹과리와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나는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 내 앞에 앞서 달리고 있는 여우들이 보였다. 여우들의 붉고 탐스러운 꼬리가 사납게 흔들렸다.

나는 그제야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꿈속이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그때 내 앞발이 보였다. 내 앞발은 잿빛이었다. 갈색과 흰색, 검은색 털이 얼룩덜룩한, 큼직한 앞발이었다.

아, 사냥개구나, 나는 깨달았다. 나는 사냥개야. 이미 여우들은 내 눈앞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내 눈 앞에 다른 사냥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빨라, 나는 웃음이 났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내 입에서는 우렁찬 개 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둥 같은 소리였다. 나는 마음껏 짖어대며 눈앞의 여우들을 쫓았다. 꽹과리와 나팔 소리, 양철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풍악처럼 느껴졌다.

유달리 허둥지둥 달리고 있는 여우 한 마리의 뒤를 쫓았다. 여우의 꼬리가 마치 깃발처럼 좌우로 나부꼈다. 나는 몇 번 입질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 발목을 물어야겠다. 여우의 가는 발목을 향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여우의 발이 정신 사납게 앞뒤로 움직였다. 나는 입을 벌렸다. 여우의 발목이 내 입에 닿을 듯, 말 듯했다. 그때 여우의 뒷발이 내 턱을 걷어찼다.

나동그라졌다. 내 뒤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헐레벌떡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들의 털이 잿빛인지 붉은색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사냥개야.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내 앞발이 여우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손등만 하얀 털이 뒤덮여 있었고 팔은 온통 붉은 털이었다. 나는 달리는 것도 잊어버린 채 내 앞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뛰기 시작한 심장이 쿵쿵, 귀를 울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눈치를 채기도 전이었다. 묵직한 무게가 나를 밀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것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휙휙, 사냥개인지 여우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 달려 나갔다. 그것들도 전부 앞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나는 대체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뒤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우렁차게 짖어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헐떡거리면서, 짖어댔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숲은 떠나갈 듯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서로를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동시에 모두가 서로에게서 달아나고 있었다.

꿈을 깼다. 이번에는 새벽이 아니었다. 핸드폰을 더듬어 들었다. 알람이 울리기 딱 10분 전이었다. 나는 눈을 비볐다.

그날 정부는 국무총리의 입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우리는 저녁상을 앞에 두고 입 안에 든 밥을 씹으며 뉴스를 보았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모두 2주간 외출을 자제하시고 최대한 집안에 머물러주십시오. 오늘부터 보름간 종교시설, 유흥시설과 일부 업종은 운영을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세연이는 방학이 길어졌다. 아, 올해 고3인데 큰일 났어, 하며 입으로는 투정을 부리고 있었지만 세연이의 큰 눈에는 아무 위기의식도 보이지 않았다. 그거 알아, 그 콘서트 취소됐다네, 묻지도 않았으나, 세연이는 고소한 표정으로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취소된 것을 내게 알렸다.

민석이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댔다. 모 그룹도, 모 기업도 취업 설명회를 취소했다고 했다. 아니 취업 설명회는커녕 아예 채용 자체를 취소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게 맞어, 취업 시험 보러 가면 하루에 몇 명이 모이는데, 거기에 코로나 걸린 누가 있을지 어떻게 아냐, 나는 하루 종일 죽은 나무처럼 엎드려 있는 민석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맞긴 뭘 맞어, 나한테 맞을래?’하며 민석이가 눈을 부라렸다. 이게 누나한테, 나는 다시 한 번 민석이의 엉덩이를 되알지게 걷어찼다.

공무원 시험도 연장되었다. 예상대로야, 하고 말했지만 뜻밖이었다. 하긴 이미 나의 수험생활은 엉망이었다. 긴장과 불안과 일상과 안심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노량진 모 공무원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기사가 있었다. 학원이 휴업하고 학원 수강생 전원이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를 진행한다는 기사였다. 나는 불안일지 다행일지 모를 기분으로 기사를 읽었다.

아빠도 정말로 서점을 닫았다. 어차피 중학교가 개학을 하지 않는데, 서점에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괜히 방역업체에 돈은 돈대로 드는데, 돈이 벌리진 않을 것이라는 게 아빠의 말이었다. 아빠는 거실에 햇볕이 드는 네모난 구석에, 꼭 늙은 고양이처럼 누워 있었다.

하여 우리는 온 가족이 집 안에 있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집 안에 있는 동안 우리는 전부 기세등등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탓할 대상을 찾고, 거칠게 욕을 뱉었다. 욕설의 대상은, 중국 전체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특정 지방이기도 했다. 때로는 사이비 종교와 ‘21세기에도 멍청하게 사이비에 빠지는’신도들이었고, 때로는 ‘우리는 집에서 고생하는데’, ‘밖에서 쏘다니는 등신 같은 놈들’이기도 했다. 우리의 고생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 이유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거실에 늘 켜져 있는 TV가 중얼거리는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놈들은 시시각각 늘어났다. 우리도 시시각각 놈들의 탓을 했다.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욕이 터져 나왔고, 가끔씩은 저주가 따라 붙기도 했다. 헤어 드라이기가 바람이 약하거나, 인터넷이 갑자기 끊길 때조차도 욕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기도 했다.

또 보름이 흘렀다. 나는 슬슬 이 상황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꾼 꿈들은 엉망진창이었다. 사냥개와 여우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앞에 누군가 있으면 짖어댔고, 아무도 없다 싶으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꿈을 꾸는 내내 도망가기도 했고, 꿈을 꾸는 내내 짖어대기도 했다. 나는 점차 내 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있었다. 사냥개 역할을 맡아 짖어대기만 했어도, 꿈을 깨고 나면 누군가에게 잔뜩 쫓긴 듯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속이 울렁거렸다. 사냥개 뒤에도 뭔가 있나봐. 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주일 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엄마의 푸념은 나날이 늘어났다. 엄마에게 이상한 시간인 것은 분명했다. 당신이 옳은 것이 맞고, 또 TV를 포함해서 모두가 당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엄마의 상황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텅 빈 상가에는 먼지 냄새만 풍겼다.

올 상반기 취업을 포기한 민석이는 밥 때가 아니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밤에 슬쩍 나가나 싶더니 이내 검은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걸 보면, 편의점에서 술이나 사오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민석이 방에서 나오는 술병이 대구국밥집 장사 잘될 때랑 비슷하다며, 저 놈이 술병 공장에 취직할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세연이네 학교는 개학을 온라인으로 한다고 했다. 세연이는 누워서 수업을 들었다. 엄마는 그때마다 세연이의 등짝에 손바닥을 날리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세연이는 등을 방바닥에 딱 붙인 채, 결코 빈틈을 주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아빠는 등산을 다녔다. 그러나 엄마가 등산도 위험하다고 하자 그것도 그만두었다. 아빠는 가끔 TV채널을 돌려 중국 무협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도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엄마의 푸념을 들어주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이 주일이 흘렀다. 전염병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제는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이 주일을 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거나 이 주일이 끝나는 날, 아침이었다. 정부가 오전 중에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에 대해 발표할 것이라는 자막이 화면 아래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TV는 혼자 열심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점심 식사를 앞에 두고, 엄마는 무언가에 대해 또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세연이와 민석이가 점심을 제 때 안 먹는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가리가 굵어지더니 버르장머리가 없어졌다는 둥, 요즘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둥, 늙은 것들도 마찬가지라는 둥, 얼마 전에는 웬 늙은이가 찾아와 교회는 언제 여냐고 시비를 걸어댔다는 둥. 엄마의 불평의 대상은 평등하고도 다양했다.

응, 응, 하고 추임새를 넣는 것도 지겨웠다. 엄마의 불평에서 벗어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TV 화면 속 아나운서는 고장 난 신호등 불빛처럼 변함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응, 그렇지, 엄마, 하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뉴스 화면을 바라보았다.

-엄마, 저것 봐.

엄마도 말을 멈추고 TV를 바라보았다.

오늘 정부는 집중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 주일 더 연장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민들에게 식당 및 종교 시설의 운영과 출입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저 봐라. 엄마 말 맞지.

엄마는 숟가락으로 뉴스 화면을 가리켰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 안의 무언가가 천방지방으로 날뛰고 있었다. 여우인지, 사냥개인지 모를 것들이 법석을 떨고 있었다. 오늘은 또 꿈을 꾸겠구나. 속이 울렁거려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반지하 창문의 끄트머리에는 길가 너머 벚나무 가지에 맺힌 벚꽃들이 걸려 있었다.

봄이었다.

그러나 사냥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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