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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자화상

by 엽서시

이것은

오랫동안 그리는 그림이다,

아직도 밑그림을 고치기도 한다,

때로는, 때로는 붓을 들지도 않는 날도 있었다.


무얼 보고 따라 그릴 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흉내를 내려던 적도 있었다,

남달라 보이는 것들, 더 있어 보이는 것들…….

아직도 내 얼굴을 붉게 만드는 것들.


지울 수 없는 것들을,

지우려 노력한 적도 있었다,

잔뜩 짜 놓은 물감의 두께,

그러나 나는 그 물감의 밑에 그려진 맨낯을 안다,

여전히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들.


이것은

오래도록 그리는 그림인데,

여전히 밑그림에서도 실수가 보인다,

그러다보면, 붓조차 들기 싫어지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단 한 번도, 나는 이 그림의 전체를 바라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고개를 들었을 때,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다른 이들의 그림……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서 흉내 내고 싶은 것을 찾아내고 마는

내 못난 붓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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