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엽서시

꽃다발

조금 덜 행복한 것도 행복이었다고, 이제야 적는다

by 엽서시

사랑은 꽃다발 같은 것이다, 라고 쓴다

지우고는, 사랑은 꽃다발 같은 것이었다, 라고 쓴다


하루 전체를 집어삼키고도 꽃잎이 옆으로 번지고 넘쳐흐르는 큰 꽃들, 종종 매달려있는 소박한 꽃들, 걸음마다, 식사 자리마다, 처음 만난 카페에서 시킨 커피 모금모금마다 피어있던 꽃들. 한 송이 한 송이 차마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피어 있는 그 꽃들이 너무도 소중하여서, 누가 물어보면 나는 그냥 넌지시 웃기만 했었지.


그래, 꽃이 아닌 것도 있었어, 그렇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그 또한 꽃다발인 것을, 일부이고 마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긴 다툼과 기다림이 끝에 달했을 때에는,

꽃잎은 말라 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남은 것은 앙상한 가지뿐,

그리고 나는 홀로 앉아, 그 가지들을 보며,

가지의 묶음을 보며, 그 가지마다 피었던 꽃들을, 웃음을, 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랑을 생각한다.


지나고 보니,

우리의 사랑은,

그 모두가 하나의 꽃다발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마뱀이 꼬리를 끊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