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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지새우는 밤

by 엽서시

해가 떠오기 직전의 밤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진실되이, 진실되이 가슴으로 알기 위하여서는,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 할까


그 말 한마디만 부둥켜안고 버티기에

밤은 고되게 길다, 또 얼마나 치떨리게 차거운 것인지―


잠 오지 않는 밤을 지새우며

나는 늙은 파수꾼을 생각한다

새벽이 오기를 누구보다 기다리는 파수꾼을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다림은 결코 외롭지 않다

어디에는 이 밤의 추위를 질색하는 고양이들이,

가진 것이라곤 둥지 속의 저들뿐인 비둘기들이,

또 나처럼 밤을 지새우고 버티며 새벽을 기다린다

그런데 또 나는 엉뚱스럽게도,

기다림들이 있어 저 새벽이 온다는 생각을 한다


저 먼, 여기에서 한참을 먼 땅에서,

시커먼 밤만이 자욱한 이 땅으로,

어스름을 데리고 새벽이 온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허둥지둥, 오고 있다

기다림이 없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기다림이 없다면 새벽이 서둘러 올 리 없다―

그러나 기다림이 있어서,

뜬 눈으로 버티고 선 기다림이 있어서,

울음 직전의, 울음을 깨문 기다림이 있어서,

새벽은 온다,

밤을 지새우는 이들에게

가장 어두운 순간은 해가 떠오기 직전이라는 말을

진실되이 알려주기 위하여,

새벽은 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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