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엽서시

[다시 쓰기] 어시장 뒷골목에서

by 엽서시

어릴 적 나도 내가 고래가 아닌 줄은 알았지마는

상어라도 될 줄은 알았지, 적어도, 날랜 청새치, 다랑어라도 되는 줄 알았지.


알고 보니, 이제 나는, 돈 천 원이라도 받으려거든, 됫박은 퍼야 하는, 곤쟁이, 젓새우 같은 것이더군(돈으로 모든 걸 재단할 수 없다는 헛소리는 서더리와 함께 치워버리고.


어시장 뒷골목에 앉아서 나는 나를 생각한다.

전에는 왜 다들, 잔멸치 틈에 섞인, 새끼 해마, 새끼 풀치, 콩게, 꼴뚜기같이 고만고만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다들 지느러미도 보이지를 않고, 나만이, 나만이 여기 쭈그려 앉아 있다.


흐려지고, 작아지고 있다, 다들 제값을 찾아 물살을 일으키며 사라지는데,


나는 여기에 있다,

어시장 뒷골목, 버려지는 것들 옆, 여기 어시장 뒷골목에, 축축한 비린내 그 위에 걸터앉은 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이 수레와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