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들이 사라졌다, 가을 거미들이,
사라졌다, 나무줄기와 가지 사이,
가로등 밑 거미줄을 죄 쳐 놓고,
낙엽과 부스러기들과 죽은 벌레들의 껍질 사이,
길다란 다리를 뻗치고 있던 가을 거미들이 사라졌다.
벌써 그런 계절이 되었나, 나는 오늘 아침 추위에 옹송그리고 떨며 출근했던 것을 생각한다.
또 거리 곳곳에 쓸어놓은 낙엽이 무더기지어 있고, 이내 사라지던 것을 생각한다.
화단의 사루비아들이 사라진 것을 생각한다,
벽돌 사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이파리들이 사라진 것을 생각한다.
사라진다, 사라졌다,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가, 나는 나의 사라짐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않고 있었다.
마치 저 산의 바위나 되는 것처럼, 소나무나 되는 것처럼.
아니, 저 산의 바위도, 소나무도, 저의 사라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저 바위 밑 부스러기들을 보아라……뿌리 위 쌓인 솔잎들을 보아라……
나만이 모르고 있었다, 단지 얼굴에 주름이 패고, 술이 늦게 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부턴가 글이 더딘 것을, 더디고 무딘 것을, 그리고 글이 더디고 무딘 것을 부끄러워 않는 것을… 새로운 일을 않는 것을… 걸인이 내민 바구니를 보지 못한 척 하는 것을… 꽃을 놓치고 마는 것을… 새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 것을…
나는 사라지고 있다, 부스러기들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있는 것을, 가을 거미도 알았던 것을,
나만이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