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아하는 글에 밑줄을 치지 않습니다.
한참 넋을 놓고 바라보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밑줄은 그 글만 보게 합니다
망원경과 같지요, 그 주변은 보지 않게 됩니다
놓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 글이 흘러가게 둡니다.
흘러가지요, 글은 마침표 너머 기억의 뒤로 흘러갑니다
잘게 부서지고 쪼개져 흩어지다가
다시 모이기도 합니다, 단어가 되고 구절이 될 만큼 뭉쳤다가도
다시 부서지고… 다시 모이고…
그러다 어느 날,
저는 사로잡힌 것처럼
그 글을 떠올리게 됩니다.
미치는 일이지요,
겨우 어름어름 주워든 몇 개의 글자를 가지고
정신없이, 책과 화면을 오갑니다, 백주대낮에 지갑이라도 흘린 사람처럼 뛰어다닙니다.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아니,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발을 동동 굴리기도 합니다.
아
그러다가 마주치는 것이지요.
그때는,
그때에는,
글이 제게 밑줄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는,
저는 그대로 둡니다.
그 글이 제게 마음껏 밑줄을 치도록 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