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밑줄

by 엽서시

저는 좋아하는 글에 밑줄을 치지 않습니다.

한참 넋을 놓고 바라보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밑줄은 그 글만 보게 합니다

망원경과 같지요, 그 주변은 보지 않게 됩니다

놓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 글이 흘러가게 둡니다.

흘러가지요, 글은 마침표 너머 기억의 뒤로 흘러갑니다

잘게 부서지고 쪼개져 흩어지다가

다시 모이기도 합니다, 단어가 되고 구절이 될 만큼 뭉쳤다가도

다시 부서지고… 다시 모이고…


그러다 어느 날,

저는 사로잡힌 것처럼

그 글을 떠올리게 됩니다.


미치는 일이지요,

겨우 어름어름 주워든 몇 개의 글자를 가지고

정신없이, 책과 화면을 오갑니다, 백주대낮에 지갑이라도 흘린 사람처럼 뛰어다닙니다.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아니,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발을 동동 굴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주치는 것이지요.

그때는,

그때에는,


글이 제게 밑줄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는,

저는 그대로 둡니다.

그 글이 제게 마음껏 밑줄을 치도록 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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