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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Oct 12. 2023

천리마와 천리마의 뼈

천리마를 얻고 세상의 말을 잃다

 옛 연나라(燕)의 왕이 어느 날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옛 임금들은 어진 선비를 구하기 위해 초막을 찾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머리를 끌어 쥐고 밤을 지새웠다. 집이 튼튼한지 알기 위해서는 골재를 보아야 하고, 나라가 부강한지 알기 위해서는 선비를 보아야 한다 하였다. 과인은 이제 어진 선비를 얻어 이 나라를 부강하는 일에 몰두하려 하니, 무릇 제신(諸臣)들 또한 어진 선비를 얻는 일에 골몰하도록 하라.”

 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연나라의 궁궐 앞에 선비들이 늘어섰는데, 그 줄이 10리나 달했다. 그럼에도 왕은 어진 선비를 귀하게 대함에 있어 보석을 보는 것과 같게 하여 날이 갈수록 궁궐 앞에 선비들의 줄은 나날이 길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동이(東夷)가 연의 국경을 침입하여 노략하고 백성들을 잡아가 노예로 삼았으며, 제나라가 다섯 성을 빼앗았으며, 흉년이 잇따르니 연왕의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왕이 궁궐 밖을 보고 있는데, 한 사내가 선비들이 늘어선 줄을 지나가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 마치 큰 고기가 물살을 거스르는 것과 같았다. 왕이 신하들에게 묻자, 신하들이 답하기를,

 “옷이 묵빛이고 얼굴이 밤처럼 검으며, 신을 신지 않고 머리를 높게 묶은 것을 보아 묵가(墨家:묵자를 따르는 제자들을 일컬음)임이 분명합니다.”

 하였다. 왕이 그 묵가를 불러 근심을 말하였다. 그러자 묵가가 말하였다.

 “궁궐 앞에 늘어선 선비의 행렬은 얼마나 되며, 지금까지 받아들인 선비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왕이,

 “선비의 행렬은 10리를 넘고, 지금까지 받아들여 관리가 된 선비는 천 명이 넘습니다.”

 하고 답하였다. 그러자 묵가가 왕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라에 현재 기름진 밭은 얼마나 되며, 흉년으로 묵혀둔 밭은 얼마나 되며, 또 고향을 떠난 농민들은 얼마나 되고, 아직 남아 있는 농민들은 얼마나 됩니까?”

 왕이 답하지 못하였다. 이에 묵가가 이어 말하였다.

 “옛 왕이 신하에게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천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안에 천리마를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에 신하가 천금을 주고 죽은 천리마의 뼈를 사오자 왕이 대노하여, 신하를 베려 하였습니다. 이때 신하가 답하기를, 천리마의 뼈도 천금을 주고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곧 온 천하의 천리마가 나라에 모여들 것이라고 답하였습니다(천금매골(千金買骨)의 고사). 왕께서는 이 일화를 아시는지요?”

 이에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묵가가 말하였다.

 “용맹한 장수가 천리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며 병사에게 호령을 하고, 날랜 범처럼 동서를 치면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기고 성을 뺏는 것을 마치 제 주머니에 든 물건을 빼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말의 올곧은 쓰임을 천리마로만 여기고, 천리마가 아닌 말은 잘못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천리마는 전쟁에서만 쓰일 뿐이니, 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데 있어 여느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임금이 천금을 주고 천리마의 뼈를 사면, 백성들은 밭을 갈고 짐을 나르던 말이 혹 천리마가 아닐까 야단을 떨고, 혹 천리마를 낳지 않을까 싶어 마구간에 말을 들이고 누가 말을 훔칠까 싶어 보초를 세웁니다. 새로 태어난 망아지가 옛 그림의 천리마와 같이 다리가 길고 목이 곧지 않으면 실망하여 일찍 젖을 끊어 죽이고 다시 망아지를 바라는 일만을 반복하니 곧 밭을 갈고 짐을 나르던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하여 나라에 곡식이 줄고 물자의 흐름 더뎌져 그 부(富)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가난해질수록 백성들은 천리마만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 나라의 폐단이 뼛속에 든 병처럼 깊어집니다. 그러니 비록 임금이 천리마로 마굿간을 채운다 하더라도 이 나라의 병을 낫게 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천리마만을 귀하게 여기면, 천리마 아닌 세상의 온 말이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한 마리의 천리마에 이득을 보는 것은 편자를 만드는 수선공과 거간꾼 몇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연나라에 와 보니, 모든 사람들이 그저 어진 선비라는 이름을 얻어 왕의 눈에만 들려 하, 궁궐 앞에 줄을 늘어선 이들에게 밥과 술을 파는 이들만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천리마 몇을 얻기 위하여 세상의 온 말을 저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이 답하고자 하였으나 입을 벌리고 땀을 흘릴 뿐, 말을 하지 못하니 묵가는 절을 올리고 궁궐을 떠났다.   

  

 계묘년, 주막의 기둥에 적혀 있던 글을 옮겨 적다.





(https://www.fnnews.com/news/20231006131044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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