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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Oct 16. 2023

진귀한 꽃나무를 팔다

매화설(賣花設): 꽃을 팔다

 노량진에 장이 섰다는 말을 듣고 나가보았다. 한 장수가 꽃나무를 파는데 향이 짙어 천지를 뒤덮는 듯하고 그 모습이 늙은 용처럼 진귀하니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장수가 구경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이 꽃나무는 대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처음에는 싹에 힘이 있지 못하고 가지가 자꾸 부러져 고생하였으나, 선대가 이 나무의 쓰임을 알아보고 물려가며 키운 것이오. 선대는 이 나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적이 들어도 달아나지 않았으며, 내 아버지는 가뭄이 들었을 때 어렵게 물을 얻으면 집안사람보다 이 나무에게 먼저 물을 주며 길렀소. 이제 그 줄기의 기묘함과 꽃의 향기로움이 어우러져 귀물 중에 귀물이 되었으니, 천금과 바꿀 만하오. 어진 선비의 이름이 꽃나무의 자욱한 향과 같다 이른 옛말처럼, 이 꽃나무의 소문이 퍼지면 그 값이 또 얼마나 뛸지 모르오.”

 내 일전에 난초와 국화, 나무를 보는 법을 잠깐 배운 일이 있어 들여다보니, 과연 그 기묘함과 향이 진귀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밑둥에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고, 흙 위로 나온 뿌리가 말라붙은 것이 제대로 가꾸지 않으면 이윽고 시들어 죽을 것처럼 보였다. 장이 파한 뒤에, 장수에게 이 말을 넌지시 일렀다. 그러자 장수가 웃으며 말하였다.

  “선대는 이 나무를 물려주기 위해 가꾸었으나, 나는 이 나무의 꽃이 다하기 전에 팔면 그뿐입니다. 그 이후의 일은 나무를 산 사람의 일이니, 제가 걱정할 일이 있겠습니까?” 

  내 이 황당한 일을 기억하였다가 벗들에게 말하니, 한 벗이 답하기를 지금도 다스리기보다 높은 값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 하였다. 나는 몽매하여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나, 두고 그 뜻을 깨닫기 위하여 적는다.

 계묘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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