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 있을 때의 일이다. 마을사람이 게 한 광주리를 주었다. 광주리에는 온갖 게와 새우 큰 것이 함께 들어 있었다. 촌로에게 물으니 솥에 넣어 삶아 먹으라 일러주어 솔가지를 그러모아 불을 지펴 물을 끓일 준비를 하였다.
솥에 광주리 안에 든 것을 쏟아내고 옆에 서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데 어물(魚物)들이 서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새우(大鰕)란 놈이 입을 열기를,
"이보게들, 광주리에서 풀려나 다시 물에 들어온 것은 구사일생이라 하겠거니와, 왠걸, 사방이 막혀 뚫린 물길이란 없는데, 바닥은 자꾸 뜨끈뜨끈해오는 것이 이변이 난 것이 분명하네."
하였다.
그러나 게들이 거품만 우물우물하고 뿜어대며 다리만 바그락바그락하며 구르고 있으니, 다시 새우가 수염을 떨며 말하기를,
"다 같은 처지에 이르렀는데도 자네들이 아무 말 없는 것이 답답하네. 옛 노인들이 전하는 말로 사람들이 게와 새우를 잡으면 검은 솥에 담아 뜨거운 물에 펄펄 끓여낸 후 먹는다 하였는데, 지금 이곳이 그 솥이란 곳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네. 내 짐작이 분명한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곳이 우리 난 바다와 다른 곳임은 분명한 즉,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웅덩이처럼 저렇게 위에 천장이 뻥 뚫려 있으니,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곳을 나서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걸세. 먼저 우리가 집게발 힘이 좋은 게들을 등으로 밀어 위로 보내고, 위로 올라간 게들이 아래에 있는 게들을 끌어당긴다면, 이 솥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일세. 그대들 의중은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게들이 눈을 굴리던 중 청게(靑蟹)란 놈이 나서더니 말하기를,
"아닌 게 아니라 내 진즉 우리에게 이런 사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네. 게란 족속은 본디 모래톱에 구멍을 파고 사는 족속이요, 흙을 파 먹고 사는 것을 청렴으로 여기고 때로 물고기란 놈들이 겁없이 덤비면 맞서 그 살을 취하는 것을 용기로 여기며 대대로 살아왔소. 그런데 몇몇 족속들이 이러한 전통에 무지하고 오직 제 껍데기 속의 살을 불리는 데만 급급하여, 인간들이 사는 해안가 바위 틈으로 슬금슬금 옮겨나와 그 찌꺼기를 주워먹으니, 내 이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여 동지들을 이끌기 위해 왔다가 이렇게 잡히니 통탄스러울 뿐이오. 이렇게 우리가 한데 모였으니,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을 생각하여 제일 먼저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산 게가 누구인지 찾는 것이 우선일세."
하였다. 그러자 구석에 있던 홍게(紫蟹)란 놈이 긴 다리를 휘저으며 나와 소리치기를,
"이놈, 청게야! 너 말 잘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새는 그 속과 털빛이 다르다 하였으니 네놈이 그 꼴이다. 네놈이 집게발은 청색이나 그 속이 청렴하지 못하니, 표리부동이란 말 아니 맞으랴. 내 네 놈이 잡히는 꼴을 보았으되, 어부놈이 통발에 넣어둔 정어리 토막에 눈이 팔려 슬금슬금 기어들다 잡혔으니, 어찌 그물에 걸려 잡힌 나와 같을까. 제 놈이 용렬하여 잡힌 주제에 다른 동지들을 탓하니 그 말이 요사하다. 네놈은 집게발을 달 자격도 없는 놈이로다."
하였다. 그러자 청게가 성이 나서 집게발을 불쑥 치켜들며 말하기를,
"이놈, 눈먼 것은 해삼이 아니라 네놈의 그 눈이로다. 내 어부의 통발에 걸린 것은 내 배가 주려 달겨든 것이 아니라 통발에 갇힌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것인데, 이를 두고 나를 탓하는 것은 인간의 편을 들어 저 혼자 이 솥에서 살아 나가 함이렷다. 내가 가만 저놈을 보니 저놈은 다리가 여덟 개라. 다리가 열 개인 우리와 다르니, 어찌 저놈과 힘을 합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게들이 놀라 웅성거리며 서로의 다리 수를 새어보았는데, 꽃게며 돌게며 농게며 방게며 칠게며 달랑게며 하는 것들의 족속은 집게발까지 다리가 열 개인데, 왕게와 소라게 등등의 족속은 다리가 여덟 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다리가 열 개인 게들과 다리가 여덟 개인 게들이 서로 집게발을 겨누며 다투기 시작하였다. 어떤 게들은 날 때부터 다리 수를 세는 것이 맞다 하였고, 또 어떤 게들은 사고로 잃은 것도 제 잘못이니 지금 남은 다리 수로 세는 것이 맞다 하였다. 또 어떤 게는 다리가 짝수 개인 게들끼리 연합하여야 한다고 말했고, 또 어떤 게는 다리가 홀수인 게들이야말로 선택받은 게라 하였다. 몇몇 게들은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제 다리를 끊어 내기도 하였고, 또 어느 게들은 그 다리를 주워다 물더니 다리가 열 개인 시늉을 하기도 하였다. 게들이 서로 의심하고 흠을 내며 다투기를, 끝내는 서로의 다리를 믿지 못하여 잡아당기고 떼어 내는 일까지 있었다.
이에 새우가 큰 한숨을 쉬더니 낯을 붉히며 말하기를,
"이 어리석은 게들아, 그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한 곳으로 힘을 쓰기는커녕 서로 다투기만 하니, 게를 두고 물가의 선비(橫行介士)*요, 바다의 공자(無腸公子)*라는 말이 헛되다. 살아날 길이 머리 위에 있는데 아무도 머리 위를 보지 않고 서로 흠집내기를 멈추지 못해 결국 죽을 길로 가는구나. 내 혼자 허리의 힘을 다하여 뛰쳐오른다면 솥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 것도 없으나, 이놈들과 함께 나간다고 벼르는 동안 허리가 다 익고 말았으니 아쉬울 뿐이다. 네놈들이 다리의 수를 가지고 다투나 솥에 삶기기가 끝나면 네놈들의 다릿수를 누가 알아주겠느냐. 다리 껍데기 속의 살을 빼먹기에 바쁠 것이니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그러나 예로부터 가재는 게 편이요, 새우는 가재의 한 친척이니, 이 어리석은 놈들도 내 피붙이요, 살붙이다. 밖에 사람이 있고, 혹 군자라면 들으시게, 옛말에 이르기를 인자한 장수는 적장의 목은 거두어도 그 부하는 살려둔다 하였으니, 내 모가지를 꺾고 껍데기를 벗겨 허리를 먹는 것은 원통치 않으나, 이 어리석은 것들은 살려주길 바라오."
외치더니 곧 익어버렸다.
새우의 말에 마음이 동하여, 새우를 건져 땅에 묻고 게들은 광주리에 담아 바다에 놓아주었다. 게들은 바다에 놓여나서도 서로 물고 헐뜯으며 뭉쳐있었는데, 큰 파도가 친 끝에야 뿔뿔이 흩어졌다.
어느날 송악에 살던 벗이 찾아와 술을 먹는데 이 일이 떠올라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벗이 웃으며 말하기를,
"꿩을 사냥할 적에 몰이꾼은 꽹과리를 치고, 종놈들은 징을 두드리며, 아이들은 호디기를 불어대며 온 산을 뛰어다닌다네. 용맹한 사냥개가 덤불마다 짖고, 날쌘 매가 하늘에서 눈을 부라리면, 이 꿩이란 놈이 달아나다 죽을 길에 몰리면, 저를 죽이려 드는 날붙이를 보지 않으려고 땅에 머리를 박는다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꿩을 어리석다 하나, 나는 꿩과 사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건대, 죽을 길 앞에서도 서로 나뉘어 물고 헐뜯기를 좋아하는 것에 있어 과연 게와 사람이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하였다. 다음날 술에 깨어 생각하니 그 말에 깨달음이 있어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몇 자 적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