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 차] 나는 매일 아침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때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그리고 선생님은 매일매일 일기를 검사했다. 전날 일기 쓰기를 깜빡해 보도블록에서 휘갈겨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개학 2일 전. 일기를 하나도 써 놓지 않아 미친 듯이 한 달치를 썼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무도 나에게 일기를 강요하지 않았고 난 단 한 번도 일기를 쓴 적이 없다. 누가 강제하기 전에 스스로 일기를 쓸 생각은 없었다.
엄마가 침대에 있는 날 부른다. 학교 갈 시간이다. 엄마는 비몽 사몽인 날 일으켜 세우고 부엌으로 간다. 5분 후 엄마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나에게 일어나라고 한다. 이 방에 계속 있다가는 엄마에게 맞는다. 좀비처럼 일어나 안방으로 간다. 10분 후 엄마는 이 새끼가 아직 안 일어났음을 인지한다. 안방에 누워 있는 날 발견하고 등짝에 스매시를 날린다. 거실로 나가 소파에 눕는다. 10분 후 엄마가 두성으로 날 부른다. 노래는 못하지만 소리 지를 때는 두성을 쓴다. 깨우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난 밥상 앞에 앉는다.
직장까지는 도어 투 도어로 30분. 목표 기상 시간은 항상 7시 30분. 알람을 5개 맞추어 놓는다. 알람이 울린다. 아침이다. 시끄럽게 울리는 5개의 알람을 깔끔하게 끈다. 이 어려운걸 쉽게 해낸다. 깜짝 놀라 일어난다. 8시다. 30분간 분주하게 준비해서 출근한다. 갑자기 똥이 마렵다. 싸고 갈까 그냥 갈까 고민이다. 시간상 그냥 가야 한다. 어서 회사에 도착하길 바라며 지하철에 오른다. 아침은 항상 전쟁이다.
이랬던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침에. 일기는커녕 똥 쌀 시간도 없던 내가 그 지겨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퇴근을 하면 7시 정도 된다. 씻고 밥 먹고 아이들과 조금 놀다 보면 9시다. 아이들은 자야 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새나라의 어린이로 키우고 싶은 욕망이 크다.
아이들이 자야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아이들을 재우고 싶지만, 날 닮았는지 지겹게도 잠이 안 든다. 아이를 재우다 나도 같이 잠든다. 깜짝 놀라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니 12시. 지금부터라도 내 시간을 갖으려 한다. 책이 펴지지 않는다. 자극적인 유튜브를 보다 보니 새벽 2시다. 부랴 부랴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전쟁 같은 아침이 다가온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난 과감히 아침시간을 선택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18시간 중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단 2시간 만이라도. 아침이든 저녁이든 상관없다. 저녁에 내 시간을 갖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아침은 가능했다.
탈모 예방 말고는 인생의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팀 페리스는 그의 책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아침 일기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1.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2. 제멋대로 날뛰는 정신을 종이 위에 붙들어 놓아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내가 일기를 선택한 이유는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20대 때는 전날 미친 듯이 놀고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금세 모드를 전환하여 깔끔한 수트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러나 30대 후반이 되고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우려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하고 글을 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작년 10월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아침 일기를 쓴 지 벌써 5달이 되었다. 난 왜 아침 일기를 계속 쓰고 있을까? 아니 어떻게 계속 아침 일기를 쓸 수 있었을까?
1. 아침은 충만하고 여유롭다
어제저녁 존 레넌의 '이매진 Imagine'을 들었다. 아니 들으려 했다. 그런데 1분도 채 들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난 여유가 없었다. 단 1분도 들을 수 없었다. 이미 에너지가 거의 소진되었고 눈 앞에는 아이들과 아내가 있다. 1분도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 이 노래를 들었다. 아침에는 눈 깜짝할 시간에 이 노래가 끝나 버렸다. 3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나 싶을 정도로. 아침은 이렇다. 한 가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편안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저녁은 마치 에스프레소를 2잔 연거푸 마신 것처럼 둥둥 떠있다. 그래서인지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날 집중시킬 수 없다.
2.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아침은 충만하고 여유롭다. 그 누구도 날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난 30년 이상 살면서 나에게 집중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공부나 업무, 연애, 친구, 경쟁, 짜증, 날 힘들게 하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을 지금 느끼고 있는지, 무엇에 감사한지, 무엇이 힘든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냥 막연히 느낄 뿐.
아침 일기는 나에게 질문한다. 넌 누구냐고. 난 '작은 꽃'처럼 '자신이 누군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3. 위로
힘들었던 일들을 쏟아 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면 속이 후련해 진다. 즐거웠던 일을 하나씩 올려놓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고마운 일들을 적어 놓다 보면 삶이 충만해 짐을 느낀다. 정리되지 않는 단상들을 하나씩 집어다 정리를 하다 보면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아침 일기를 쓰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적이 있다. '못하면 안 된다며 나 스스로를 압박하며 살아왔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불안감 때문이었음을, 내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음을, 안 그런 척, 쿨한 척하며 살아서 더 힘들었다는 고백을 했다. 이런 후련한 감정은 내 인생에서 느껴 본 적이 없다.
4. 확신과 변화
프라이밍 priming 이란 뇌 속에 정보를 심어놓고 언제든 회상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뇌를 프라이밍 할 수 있을까?
답은 확언 affirmation에 있다. 확신의 말은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당신 자신을 정의하는 일종의 '자기 긍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텔리전트 체인지, 하루 5분 아침 일기(Five-Minute Journal)-
자신에게 계속 강력한 말을 던지면, 그것은 믿음이 된다.
그 믿음이 깊은 확신으로 바뀌면 마침내 현실이 된다.
-무하마드 알리-
아침 일기를 쓰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내가 변화하길 원하는 모습을,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아침 일기에 담는다. 나를 위한 긍정의 말을 아침 일기에 넣어 둔다.
'난 안될 거야...', '왜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지?' 같은 부정적인 말과 감정들은 이내 사라진다.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야.', '친구 따위 없으면 어때!'와 같이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모습이 들어찬다.
썼을 때와 쓰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크다. 아직 5개월 밖엔 안되었지만 쓰지 않은 날은 왠지 찝찝하고 주변이 어수선하다. 그러나 아침 일기를 쓴 날은 주변이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고 모든 행동에 활력이 넘친다.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일을 한다.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하루를 살게 된다.
아침 일기가 나에게 어떤 기적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겠다. 아직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과연 기적을 가져다줄까?'라는 의심도 든다. 뭐... 성공한 사람들은 다 아침 일기를 썼다고 하니 한번 믿어 보련다. 기적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어떤가. 이미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