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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Feb 12. 2019

#19 이직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16주 차] 막상 이직을 하려고 하니 두렵기 그지없다.

저번 주 브런치에 이직에 관한 글을 올렸다. 이직을 고민할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어떤 마음 가짐이어야 하는지를 썼다. '이직 경험이 많은 내'가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쓴 글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쓴 글이었다. 감정적이 되어 냉정하게 이직의 이유나 득실을 따지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냉정을 찾으라고 말하는 글이었다. 덕분에 난 냉정을 다소 찾았다. 그리고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이직할까? 말까?

막상 이직을 하려고 하니 두렵기 그지없다. 이직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날 감싼다. 고작 회사 하나 바꾸는 것인데, 회사를 바꾼 다고 내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닌데, 인생이 흔들리는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예전에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에 수능을 잘 못 봐서 슬프다는 사연이 왔다. 이 사연에 신해철은 이렇게 대답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금은 수능이 인생 최대의 일이겠지만 3년만 지나도 10번째가 되고 10년이 지나면 100번째 안에 들까 말까 하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수능은 인생에서 정말 작은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직은 인생에 있어 절대 수정할 수 없는 이벤트가 아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이직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내 성격 때문인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난 당시 컴퓨터를 잘하는 아이로 통했다. 아버지가 8비트 컴퓨터부터 사주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엑셀과 PPT만 겨우 하는 평범한 회사원 수준이지만 그때는 약간의 우월감 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컴퓨터 대회에 나가 볼 것을 권유했다. 베이식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문제를 푸는 대회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코딩이었다. 어쨌든, 난 나가겠다고 했지만 너무 무서웠다. 잘 못할 까 봐, 내가 모르는 문제가 나올까 봐 그저 무서웠다. 결국 난 그 대회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편안하게 현재를 즐기며 집에서 페르시아 왕자 게임을 했다. 엄마는 속이 터져했다.


예나 지금이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은 날 쪼그라들게 만든다. 난 초등학교 시절 대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는 걸 선택했다. 이 선택이 나에게 위기가 되었을지 기회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시 나에게 엄청난 불안감으로 다가왔던 그 컴퓨터 대회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미비하다는 거다.



이직 가스

육아 휴직 중에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을 만났다. 초중고 내내 이래야만 한다고 교육받고 주변에서 당연하다고 하며 부정하면 왠지 불편한 그런 개념이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즐거움', '성실'과 같은 개념인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었다. 그 책은 '넌 왜 지금 바보처럼 5일을 일하고 고작 2일만 쉬냐?'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왜 너 자신의 시간은 없느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면서 현재와 같은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을 책에 담아 놓았다. 이 책의 주장에 큰 충격을 받고 멍해졌고 그 후 내 꿈은 지금의 현금흐름을 유지하면서 근로시간을 일주일에 4시간으로 줄이는 것이 되었다.


막상 그렇게 하자니 막막했다. 퇴직을 하고 현금흐름을 창출해야 하는데 회사를 그만두는 게 생각보다 너무 무서웠다. 이미 회사에 적응한 몸을 회사에서 빼내려는 시도는 어렵기 그지없었다.


퇴직의 중간 단계로 '조금 더 나은 조건과 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퇴직을 하기 전 연습 개념이랄까? 이직 가스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직 가스가 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복직 후 회사를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회사가 나에게 주는 교육, 경험, 금전적인 혜택 등을 모두 이용하여 내 발전에 사용했다. 업무도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형태로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직원의 입장이 아닌 경영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사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5년 차에서 10년 차 사이에 온다. 신입사원 때는 개인의 발전이고 뭐고 주어지는 일을 하는데에 급급했고 3년 정도 지나 일을 어느 정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조금 더 상위 직무의 일을 부여받았다. 지루함은 없었다. 대리로 승진하고 일이 지루해질 무렵 마케팅 기획팀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지내는 2년 동안 지루함 없이 일할 수 있었다. 그러다 휴직을 했고 1년 후 복직을 했다.


문제는 인력구조에 있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 회사는 그 문제가 조금 더 심각했다. 대리 과장급 인력과 차장 부장 인력이 거의 같다. 따라서 난 휴직 전 했던 업무 혹은 같은 수준의 일을 복직 후에도 하고 있고 앞으로 5년 이상 그 정도 수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즉, 같은 수준의 일을 10년간 해야 한다. 상위 직무의 일은 나와 10년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하고 있고 그 사람들의 위는 족히 5년은 있어야 없어진다.


우리 세대는 대리 승진 후 과장이 된 지금까지 같은 수준의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그 사람들이 퇴직하기 전까지 우린 같은 직무를 하게 된다.


팀장, 부장들은 5년만 지나면 너희들 세상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그 5년 동안 난 똑같은 일을 하며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한다.


단순한 업무라도 주도적으로, 창의적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업무에 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만든다거나, 프로세스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업무에는 범위나 수준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직하기 전 나에게 해야 할 5가지 질문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올 찰나 먼저 이직한 동기의 제안이 있었다. 여기에 크고 작은 불만과 사건들로 인해 스파크가 튀었다. 감정적으로 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냉정해 지기 위해 천천히 나에게 5가지 질문을 했다.


1. 이직을 하는 이유가 인간관계나 불합리한 시스템, 과도한 업무 때문인가?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은 정말 회사에 있는가?

난 다행히 상사와의 트러블이 없다. 입사한 이후 단 한 번도 상사와의 트러블이 없었다. 조금 짜증 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큰 일은 아니었다. 업무도 전혀 과도하지 않다. 업무의 만족감이 떨어지고 있을 뿐 전혀 과도하지 않다. 오히려 추가 업무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다.

 

2. 내가 갈 자리는 왜 생겼는가?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신규 사업으로 인한 인력 충원이다. 나에겐 바로 성과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규 사업의 특성상 2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다.


3. 내가 현 직장에서 쌓아놓은 것은 무엇인가? 그중 이직 후 없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나쁘지 않은 평판과 신뢰다. 10년 이란 시간 동안 '일 잘한다'는 평판과 '일을 맡길만하다'는 신뢰를 얻었다. 이직을 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이 평판과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얼마나 걸릴지 아니면 아예 쌓을 수 없을 수도 있다.


4. 이직 후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급여와 직급이 상승한다.

그리고 시장과 업무에 대한 기회를 얻는다. 현재 내가 있는 시장은 큰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가 이직할 시장은 이제 막 생겨난 시장이므로 성장에 대한 기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제안하고,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기회가 지금의 직장보다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능력과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내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필요하고 유용한 능력 중에 하나이다. 회사를 다니던 사업을 하던 모든 일이 이 두 가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5. 잃는 것과 얻을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잃는 것 : 평판, 신뢰, 안정

얻을 것 : 기회, 시간, 급여 및 승진


이 회사에 남는다면 나에게 평판, 신뢰, 안정이 남을 것이다. 이를 가지고 3년 후에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과 똑같은 업무를 하며 상위 직무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혹 인사 정체가 풀려 상위 보직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겠다.


이직을 하면 기회, 시간, 급여 및 승진을 얻는다. 이를 가지고 3년 후에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악의 상황이라면 팀이 사라져 다른 팀으로 가게 될 것이다. 최고의 상황이라면 이 팀에 가능성이 보이고 팀이 커지며 많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있을 것이다.



결단

10년 선배들을 보면 내 10년 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10년 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직을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알면 이상하다. 막연한 두려움이 내 결정을 방해하고 있다.


이직 후 최악의 상황은 직장에서 잘리는 것이다.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직장에서 잘리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직장을 그만두는 건 내 인생 목표 아니었나?

오래 달리려면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경험이 선물하는 것들을 음미하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장에 나가는 것이다.

-재클린 노보그라츠Jaqueline Novogratz 아큐먼의 설립자이자 CEO-


내 경기장은 어디인가? 다시 집에서 게임이나 하며 편안하게 있을까? 아니면 경기장으로 나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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